-
1918년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가홍정은 천성산 자락에 있는 흥룡사 앞쪽에 위치한다. 가홍정은 양산 대석에 살던 가선대부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이 노병을 치유하고 난 66세이던 1918년에 죽우(竹友) 권순도(權順度)와 함께 자신의 소유지였던 홍동의 흥룡폭포 아래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 이재영이 남긴 「가홍정원...
-
경상남도 양산시 명곡동 명곡천변에 있는 조선 중기 양산군수 이여익이 고을 유생들에게 강학하던 대(臺). 강학대는 1832년(순조 32)에 간행된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이여익(李汝翊)이 1644년(인조 22)~1649년(인조 27) 양산군수로 재임하면서 고을 유생들을 인솔하여 강학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라고 한다. 이여익은 창녕 사람으로, 자는 비경(棐卿),...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김수로왕(金首露王)의 49세손 김관(金管)[1250~1348]은 자가 희범(希範), 호가 정성헌(靖醒軒)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고려 말의 문신이다. 김관의 5세손 김극일의 여섯 아들에 와서 문중은 다시 6개의 지파(支派)로 나뉘어졌다.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는 중시조 김관의 9세손이고 녹사공의 4세손...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석리에 있는 동래정씨 재실. 경구재는 동래정씨 경상도관찰부주사(慶尙道觀察府主事) 및 통정비서감승(通政秘書監丞)인 구계(龜溪) 정인휘(鄭寅暉)를 받드는 재실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새롭게 축조되었다. 경구재는 본래 고려 공양왕 때 승정원 비서를 역임한 정인휘의 묘실(墓室)이었다고 한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 경덕재는 1983년 경주이씨 물금 입향조인 이경덕(李敬德)의 후손들이 이경덕과 그 후손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재명은 입향 선조의 휘를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경덕재라 하였다. 현재 60위를 모시고 있다. 경주이씨의 시조 이알평(李謁平)은 호가 표암(瓢巖)이며 신라좌명공신(新羅佐命功臣)을 지냈다. 중시...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대(臺). 1939년 박재화(朴宰華) 형제가 그의 선조 박치형(朴致亨)을 우모하여 축조하였다. 금산리 거주민의 구전에 의하면, 이곳은 200여 년 전부터 놀이터로서 자리매김하여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백중놀이 때 마을 사람들이 화전놀이를 하는 장소로 정해진 마을에서 가깝고 경치 좋...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사기골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경모재는 밀양박씨 양산 입향조인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 박진립(朴振立)과 그의 후손인 박애달(朴愛達)·박종달(朴從達)·박준달(朴俊達)·이우당(二憂堂)·묵헌(黙軒) 등을 모시기 위해 1987년 착공하여 1988년 준공된 사당 겸 재실이다. 박진립은 자가 입지(立之), 호가 강좌(江左)이며, 문...
-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금성나씨 재실. 경북재는 1941년 금성나씨 양산 입향조인 북간처사 북헌(北軒) 나이인(羅以仁)과 그 후손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후손 나진규와 나기흥이 중심이 되어 나이인을 비롯한 금성나씨 143위를 모시는 재실을 북정과 분암 사이에 세웠다. 금성나씨의 시조는 나총례(羅聰禮)로 고려 혜종과 정종 때 공을...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옛 양산군 관아 터에 있던 조선시대 폐문루 터. 경성루는 조선시대 양산군 관아에 있던 폐문루(閉門樓)로서 새벽과 밤에 취타(吹打)하여 관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루가 건립되고 없어진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0년(철종 11) 가을 양산군수 이휘정(李彙廷)이 부임하여 폐문루가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황을 보고...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경옥재는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49세손 김관(金管)[1250~1348]을 중시조로 하는 녹사공파(錄事公波) 후손의 재실이다. 김관은 자가 희범(希範), 호가 정성헌(靖醒軒)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고려 말의 문신이다. 김관의 자손인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문민공(文愍公) 탁...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김녕김씨 재실. 경의재는 김녕김씨 충의공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인 김재연(金在衍)·김재간(金在衎)·김재형(金在衡)·김우권(金禹權) 등의 재사이다. 경의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 중 하나이다. 그의 후손인 김재연은 자는 영보, 호는 양심재이며, 성품이 순수하고 인정이 많고 검소하였다. 늙어서는 성리학을 연구하였는데 경과...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영천이씨 재실. 영천이씨 이구(李鳩)는 고려 말 절의자 남곡(南谷) 이석지(李釋之)의 후손이다. 구체적으로는 남곡공파(南谷公派)의 지파인 서파공파(西坡公派)의 후손이다. 이구는 임진왜란 때 양산에서 이수생(李秀生)·최흥국(崔興國) 등과 창의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송담(松潭) 백수회(白受繪)[1574~...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나주오씨의 제단(祭壇). 나주오씨의 제단으로 주위에는 나주오씨 조상묘가 있다. 이전에는 단의 이름을 치등제단(治登祭壇)이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는 나주오씨의 집성촌이다. 중시조인 진사공 오속규의 후손인 오손을 일대로 하여 8세 오명한이 울산에 입거하고 12세 오세윤에 이르러 양산에 이거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경주이씨의 재실. 경주이씨는 현재 도정(都正) 이종운(李種運)의 후손은 화제리에, 가선대부겸이조참의(嘉善大夫兼吏曹參議) 이중우(李仲雨)의 후손은 내포리에, 병조참판(兵曹參判) 이순곤(李順坤)의 후손은 용당리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경춘재는 경주이씨 중시조 이거명(居明)의 17세손인 익제(益齊) 이제현(李齊賢)의...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대(臺). 경파대는 조선 고종조 사인(士人) 정임교(丁壬敎)가 향토의 사우(士友)들과 수창(酬唱)하던 승경지(勝景地)다. 정임교는 이황(李滉)의 문인인 고암(顧庵) 정윤희(丁胤禧)[1531~1589]의 후손으로, 자는 남서(南瑞), 호는 매촌(梅村), 일명 규열(奎烈)이라고도 하며,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정임교는 양산향교의 문묘...
-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달성서씨 재실. 달성서씨 감찰공파(監察公派) 증산 문중(增山門中) 절충장군겸지중추부사(折衷將軍兼知中樞府事) 서두망(徐斗望)[1686~1746]을 기리기 위한 재사이다. 달성서씨는 입향조인 서몽호가 임진왜란 때에 창의하여 주부를 제수 받고 후에 증산사에 배향되었으며 이후 울산으로부터 와서 매곡에서 살았다. 이후 증산문중의...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대(臺). 금호(琴湖) 이수생(李秀生)의 후손인 조선시대의 문신 이일녕(李一寧)이 글 읽기를 좋아하여 쌓은 누각이다. 이수생은 조선 명종 대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 금산리에서 출생하여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으로 첨정에 올랐고, 선무원종공신 삼등훈을 받았다. 이수생의 후손인 이일녕은 천성이 후덕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경...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지라 천변 영산신씨(靈山辛氏)의 재사인 삼강사 앞에 위치해 있다. 옛날 지라천(旨羅川)에 큰 소(沼)가 있었는데, 그 소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살았던 신용권(辛容權)이 부친 신도일(辛道日)의 유상처(遊賞處)로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구룡대라고 이름하였...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마을 신당. 국사당의 발생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구전되어 오는 것을 종합해 보면 원시 신앙의 구심점인 천신 신앙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정에 국사를 모셔 놓고 지역 수호신으로 섬기고, 호랑이로부터의 환난을 막을 수 있도록 석마를 모시기도 했는데 서리 국사당에는 석마를 모셔 호환을 막고자 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명박홍남(朴弘楠)의 재실. 고령(高靈) 김성도(金聲燾)가 지은 「귀후재기」에는 우풍현(虞風縣)의 명곡촌(椧谷村)에 우뚝 솟은 정사가 있는데, 이것이 선무공신(宣武功臣) 훈련원 봉사 박홍남의 묘소 아래 재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후손 김장식(金長植), 김명수(金明守), 김정건(金正鍵) 등이 여러 친족들과 조상의 뜻을...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나주정씨 재실. 나주정씨(羅州丁氏) 고암공파(顧菴公派)의 36대 정지태(丁志泰)부터 40대까지의 선조를 모시는 재실이다. 「금수재기(金水齋記)」를 통해 살펴보면, 나주정씨 41대 정용섭(丁龍燮)의 자는 해룡(海龍)이고, 호는 춘전(春田)이며 조상의 유업을 받들어 이곳에서 살았다. 시대의 변천과 종교, 사상의 갈림...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조선시대 나주임씨 재실. 금영재는 나주임씨(羅州林氏) 김해문중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조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재실이다. 임비(林庇)는 고려 충렬왕 때의 대장군 충청도지휘사판사재시사(忠淸道指揮使判司宰寺事)이고, 임비의 9대손 임탁(林卓)은 벼슬이 봉순대부해남감무(奉順大夫海南監務)에 이르렀다. 현관 입구에는 ‘경선당(...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있는 김녕김씨 재실. 김녕김씨 문중의 중시조인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15세손인 이용(利用) 김국기(金國夔)는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이거, 김녕김씨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금원재는 김국기를 추모하는 재사다. 남양산 IC를 나와 양산시 동면 방향으로 우회전한 후 400m 정도 가면 석산해강이 보이는데 그 뒤편...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안이씨 사당. 연안이씨(延安李氏) 중시조(中始祖) 판소부감공(判小府監公) 이현려(李賢呂)의 15세손인 금호공(琴湖公) 이수생(李秀生)의 향사를 봉행하기 위하여 1810년(순조 10) 연안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지하철 호포역에서 내려 양산 방면으로 300m 올라간 후 우회전하여 양산시 동면 방향으로 1㎞ 정도...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남평문씨 재실. 기산재는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1층의 기단을 쌓았다. 재청은 강당 형식이며 마당은 자갈로 조성되어 있고 왼쪽에는 비가 3기 있다. 경모비, 공덕비, 추모비가 있으며, 뒤편에는 단을 쌓아 남평문씨 가족 묘소를 있다. 대문 앞에는 애국지사(문시한)의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다. 「기산재서(基山齋序)」의 확인은 다...
-
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 있는 이겸수를 제향하던 서원 터. 학성이씨(鶴城李氏) 서면파 이겸수(李謙受)의 자는 자우(子虞), 호는 잠와(潛窩)이며, 수사(水使) 이종실(李宗實)의 5세손이요, 이종실의 여섯째 아들인 서면파 파조(派祖) 이직강(李直剛)의 후손이다. 1594년(선조 27) 왜장(倭將)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울산의 서생포(西生浦)에 진을 치고 화친을...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구소석마을에 학문을 익히기 위해 지은 집. 조선 후기에 통정대부비서감승(通政大夫秘書監丞)을 지낸 정인휘(鄭寅諱)가 세운 정사다. 정인휘의 관향은 동래요, 호는 구계(龜溪)며, 천석꾼이란 부와 명예를 얻은 데다 인심이 후하여 빈객(賓客)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남유대는 성주인(星州人)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이기주(李琪柱)가 만년에 쌓은 누대이다. 남유대 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고 물줄기가 셋으로 나뉘어 흐르고 있다. 아래는 이기주가 남유대에 대하여 지은 시이다. “천리 교남 땅 낙동강 동쪽/ 이 대를 쌓고서 사람들과 함께 했네./ 절벽에는 내...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에 있는 밀성박씨 재실. 밀성후인(密城後人) 양산 입향조 내석(內石) 박세웅(朴世雄)의 우모지소(寓慕之所)이다. 양산 IC를 나와 통도사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삼계교 입구 사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상북면 내석리 방향으로 6㎞ 정도 가면 있다. 성균관 부관장 안종석(安鍾石)이 지은 「내석재기(內石齋記)」에는 후손들이 종의를 모아 조선(...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경주김씨 재실. 경주김씨는 시조 김알지(金閼智), 중시조 28세 김명종(金鳴鐘)을 이어 61세 김일용(金逸龍)에 이른다. 김일용은 자가 대견(大見)이며, 1590년에 영일군에서 물금 사지동(沙旨洞)으로 이거하였다. 1982년 그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재실을 건립하고 그의 자를 따서 대견재라 이름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수원김씨 재실. 재실은 모두 삼가(三架)로서, 동서 두 방은 재소(齋所)이며, 재소 가운데와 앞쪽은 당(堂)으로서 재회소(齋會所)로 삼았고, 옆에 주방과 고사가 있다. 앞으로는 요사채와 출입문을 만들었고, 정당에 편액을 달아 ‘도원재(道源齋)’라 하였다. 문소(聞韶) 김종락(金鍾洛)이 쓴 「도원재기(道源齋記)」에 따르면 도...
-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에 임진왜란 후 최흥국 등이 세운 정자의 터. 남계(南溪) 최흥국(崔興國)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고향 양산 지역으로 돌아와 한강(寒崗) 정구(鄭逑)의 문하에 들어가 제자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망우당 곽재우 등과 함께 화왕성 전투 등에 참전하여 전략을 세우고 진두지휘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최흥국은 임진왜란 후의...
-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에 있는 경주최씨 재실. 임진왜란 공신인 호조참의 쌍백당(雙白堂) 최기(崔沂)와 최기의 장질(長姪)인 성균관진사 최흥국(崔興國)을 추모하는 경주최씨의 재실이다. 1980년에 건립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재실 터. 소계사(蘇溪詞) 강당으로서 만성재 안평중(安平重)이 서당으로 개칭하고 은거, 강학하였다. 이곳에는 안평중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산을 의지하여 학숙을 지으니 높고도 정정하고/ 대나무 뜨락과 솔 울타리는 먼 들판을 굽어본다/ 굳이 내 조상의 덕을 높이고자 함이니/ 너희 후생에게 경영을 맡긴들 어찌...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대(臺)의 터. 만수동 폭포를 배경으로 상북면 상삼리의 만석 부자인 초은 김교환(金敎桓)이 1936년경 폭포 옆에 만수대를 축조했다고 한다. 당시 천성산의 정기를 받아 경관이 수려한 이곳에서 떨어지는 물보라로 목을 축여가면서 목을 틔우기 위하여 많은 시조 창객(唱客)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해진다....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 순조 때 이광영(李光榮)과 아들 이규성(李圭聖), 그리고 손자인 이종기(李鍾琪)의 3대의 분묘를 이종기 맏아들 이은우(李殷雨)가 건립하였다. 남양산IC를 나와 좌회전한 후 범어 삼거리에서 물금 방향 낙동강 옆길을 따라 계속 달리면 양산시 원동면을 지나게 되는데, 모선재는 원동면 화제리 내화마을에 있다. 3대...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초계정씨 재실. 콘크리트 2중 기단의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재청은 강당 형식이다. 건물 바깥 오른쪽의 산에는 선대의 산소가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대성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대(臺). 대성 입구에 ‘숲안’으로 불리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큰 터가 있다. 그 속에는 약수터가 있으며, 지금의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행인들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1917년경 마을 주민인 권순도가 숲안을 무송대(撫松臺)로 이름을 고치고 ‘세계인의 환영비’라는 비석을 세웠다. 현재 이 비석은...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 이백천(李柏天)은 호가 묵암(黙菴), 자가 천보(天甫)이다. 경주 출생으로 재정공(齋亭公) 이달충(李達衷)과 집현전 학사 이계선(李繼善)이 조상이다. 이백천은 임진왜란 때 동면 여락리로 이거하여 경주이씨 문중의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묵암재는 이백천과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1991년에 건립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 화룡리 어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영일인(迎日人) 처사(處士) 정상순(鄭相淳)이 축조하였다. 할석을 쌓아 반구형으로 담장을 둘러놓았으며, 바닥에는 평평한 자연석을 깔아놓았다. 그 위에는 장기·바둑·고누판이 새겨져 있다. 건너편 바위에는 휴룡연(休龍蓮)이라는 각서가 있다. 수석(水石)의 기절(奇絶)이 많아 읍재(邑宰)와 문인(文人)들의 제영(題詠)이...
-
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 어곡리 화룡마을에 있는 영일정씨 재실. 정도만(鄭道萬)은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의 12세손으로 조선 숙종대에 합천에서 화룡(化龍)마을으로 이거하여 영일정씨 화룡마을 입향조가 되었다. 반룡재는 1991년도에 건립된 영일정씨 화룡마을 문중의 재실로 정도만과 그의 후손들을 모시고 있다. 반룡재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재기(齋...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대(臺). 반산대는 묵경(黙耕) 유준영(柳準永)과 그의 동생인 유복영(柳福永)과 유해영(柳海永) 삼형제가 유상(遊賞)하던 곳이라고 한다. 유준영이 남긴 시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사방의 봉화산에 아침 해 하늘로 떠오르고/ 석양에 푸른 돌은 물 맑은 북천이로다./ 옷섶을 날리며 대에 올라 금회를 노래하는데/ 반산대 위에는...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대(臺). 영천이씨 족보에 의하면, 영조 때 이정회(李廷會)라는 사람이 고을 선비들과 유상(流觴)한 곳이라 한다. 선장(仙庄)이라는 지명에 따라 반선대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반선대의 큰 바위에 ‘반선정’이라 새겨져 있고, 아래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이다. ‘반선정’ 위에는 모란바위라는...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조성된 연안이씨 재실. 연안이씨 양산 입향조인 금호공(琴湖公) 이수생(李秀生)의 증손 이동근(李東根)의 묘실(墓室)이다. 1928년 윤 2월 19일에 상량, 건립되었으며, 서남향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목조 와즙건물이다. 본의재 앞뜰 아래쪽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의 대문이 있다. 경내 넓이는...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건물. 조선시대에 주택 안에 세워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조선조 성리학이 널리 시행되던 이후부터 사대부 양반층을 중심으로 널리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조상의 보은 정신을 살리며 효와 예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능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 양산은 예로부터 충의와 문화의 향훈이...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신사천을 제향하는 사당. 삼강사는 영산신씨(靈山辛氏) 봉익대부전공판서(奉翊大夫典公判書)인 중시조 곡강(曲江) 신사천(辛斯蕆)을 위시하여 19세손 신유임(辛有任) 및 그의 후손들을 모시는 재실이다.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신사천이 1382년(우왕 8)에 몇 차례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다 낙동강 멸포(蔑浦)[현...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외송리에 있는 평해황씨 재실. 평해황씨 문절공파(文節公派) 양산문중 재실이다. 14세손 통정대부원주목사 황삼계(黃三繼)가 1560년경 양산에 입향, 이곳을 세거지로 삼았다. 「삼송재건기(三松齋建記)」에는 고위(考位) 열조지위패(列祖之位牌)를 봉안하고, 각계 사손(嗣孫)이 경건하게 향사하고 우모하여 대대로 유모(遺謨)를 계승하기 위해 삼송재...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있는 이징석·이징옥·이징규 삼형제의 사당. 양산부원군(梁山府院君) 이전생(李全生)이 조선 태종 때 순찰사로 양산을 순력(巡歷)하다가 하북면 삼수리에 정착하여, 아들 장강공(莊剛公) 이징석(李澄石)과 충강공(忠剛公) 이징옥(李澄玉)과 영산군(靈山君) 이징규(李澄圭) 삼형제를 낳았다. 삼수정사는 이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삼수정사...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이천 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조성된 청도김씨 사당. 삼우당은 청도김씨 영헌공(英憲公) 김대(金垈)의 후손인 김영호(金榮澔)·김기호(金基澔)·김성호(金聖澔) 삼형제를 추향하는 사당이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에 있는 칠원윤씨 재실. 칠원윤씨 대언공파(代言公派) 양산 소문중(小門中)이 임진왜란 전에 남하하여 양산 상삼 및 양동에 세거의 터를 잡았는데 26세조 윤승원(尹承元)을 모시는 재사이다. 「상량재기」는 1997년 5월 18일 38세손 윤정삼(尹政三)이 근찬한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사로서 고명원로(顧命元老)...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경주김씨 재실. 경주김씨 문간공파(文簡公派)의 후손들이 조선(祖先)의 음덕을 기르기 위하여 1995년 10월 10일에 준공한 재실이다. 「상인재창건기」에 따르면, 상인재는 정족산 아래 장군등(將軍嶝) 기슭에 1995년 10월 10일에 준공한 전통 한옥 건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주김씨 문간공파는 신라 경순왕의...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동래정씨 재실. 성기재는 동래에 거주하는 동래정씨 동지공파(同知公派) 후손들이 동면 법기리 천성산 동쪽 지맥 끝자락에 이장한 19세 정치문(鄭致文)과 부인 전주최씨, 17세손 통정대부수사조참판(通政大夫守史曹參判) 정기영(鄭基永)을 추모하기 위해 1971년 4월 20일에 건립한 재실이다. 매년 10월에 향사를 올린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립된 진주강씨 재실. 강정구(姜貞求)는 진주강씨 23세손으로 자가 세정(世貞)이며, 진주강씨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세정재는 강정구와 그의 선조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된 재실이다. 세정재는 시멘트로 축조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와가(瓦家) 건물이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립된 재실. 소경재는 죽림칠현 김칠득(金七得)과 증산(甑山) 박승장(朴承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재실이다. 소경재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소경재기(紹景齋記)」와 「현효사이건기(賢孝祠移建記)」가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경재기」 “ 양산군 현효사는 김죽림(金竹林), 박증산(朴甑山)...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광주안씨 사당. 조선 태종 때의 유학자인 안몽득(安夢得)과 아들인 계산 안우(安宇), 치암 안주(安宙), 광려 안택(安宅)을 주향(主享)하였고, 임진왜란 공신인 구암 안근(安瑾), 안수(安琇), 주부(主簿) 안시명(安諟命), 첨사(僉使) 안이명(安以命), 매죽헌(梅竹軒) 안신명(安信命)을 배향하였다. 1783년(...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동래정씨 서원. 1835년(헌종 2)에 사림이 소산사(蘇山祠)를 창건하여 춘추로 제향을 올려오다가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고, 1929년에 동래정씨 문중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상의사(尙義祠)와 강당이 풍우에 퇴색되어 1985년에 사우(祠宇)를 중건하고 강당을 확장하여 정규 서원의 모...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당곡리에 있는 창원정씨 재실. 소헌재(小軒齋)는 창원정씨 소헌(小軒) 문중의 재사로, 1999년 10월 30일에 준공하였다. 13세손 정열(丁悅)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원수로 있으면서 강감찬과 함께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로서,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의 겹처마 건물이며, 강당 형식이다. 담장은 시...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에 있는 영천이씨 재실. 이익정(李益貞)·이익복(李益馥)·이익춘(李益春) 삼형제는영천이씨 중시조의 17세손으로 1684년(숙종 10)에 양산 원동으로 이거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숭익정은 이 삼형제와 그 후손 88위를 추향하는 재실로 2001년에 건립되었다. 숭익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시멘트 기와집으로 팔작지붕 형태...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목조 누각. 옛날에 누 아래에 시내가 흐르고 넓은 면적의 푸른 대나무가 있어 서로 마주하여 푸른 빛을 비추고 있어 쌍벽루(雙碧樓)라고 이름하였다 한다. 쌍벽루는 처음에 벽계(碧溪)로 명명되었다. 고려시대 1381년(우왕 14)에 왜구(倭寇)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며, 군수 전평원(田平遠)이 중건하여 쌍벽(雙碧)으로 이름을...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던 조선 후기 재실 터. 충렬사가 국명으로 철폐될 때 재실(齋室)로 바뀌었다. 1877년(고종 14)에 양산군수 이만도(李晩燾)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학자 김상효(金相孝)의 시문집 『경재유고(敬齋遺稿)』의 잡저 중에 양사재에 관해 기록된 「양산현학양사재기(梁山縣學養士齋記)」를 보면 선비를 양성하는 방법과 제생들이...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박제상을 추모하는 재사당. 양산 지역의 천성산 아래에 있는 효충리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나고 자란 곳이다. 박제상은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갔던 눌지왕의 두 아우, 복호와 미사흔을 구한 후 왜국에서 어떠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켜 순국한 충신이다. 이런 박제상을 추모하기 위해서 효충사를 지어 향사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었던 조선 전기 객사. 양주객사는 옛 관아(官衙) 북문 안 현 중앙동사무소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양주객사와 관련하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문인들이 남긴 시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포(鄭誧)[1309~1345], 「양산객사의 벽에 쓰다」 "오경의 등잔 그림자 헝클어진 단장 비추고/ 이별을 말하려니 애 먼저...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대 터. 어룡대는 벽파(碧波) 양재두(梁在斗)가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문에 “사방의 산이 매우 아름다워 물고기가 변화하여 용이 되었다”고 하였다. 물금읍 범어리 오봉산 기슭에 있다. 오봉산은 양산 시민들이 당일 코스로 많이 찾는 산으로 영남알프스의 동남쪽에 솟아 있는 명산이다. 양재...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어영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1779년(정조 3)에 원동면 어영리에 입향한 김해김씨 석성공파 66대조 김우현(金禹鉉)을 모시는 사당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겹처마를 한 목조 건물이다. 기둥은 다포계 양식이며, 배흘림기둥에는 여섯 개의 주련이 있고, 재청 양옆으로 방을 두었다. 재실 바깥은 관리인의 집과 대문이 있는데, 태극 문양...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대(臺). 조선 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오명환(吳明煥)이 만년에 건립하였다. ‘병풍 같은 바위와 개석이 있어 매양 이곳에 올라 소요 자적했다’는 제명(題名)이 있다. 병풍 같은 바위 위에 개석이 있고, 대에는 연구대(蓮龜臺)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곳곳에는 나주오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정자 터. 양산시 북부동의 쌍벽루 북쪽에 세워졌다고 한다. 연무정은 1835년(헌종 1)에 양산군수 한승렬(韓升烈)이 건립하였다. 1871년(고종 8)에 양산군수 손상일(孫相馹)이 중건하였으며, 1878년(고종 15)에 양산군수 이만도(李晩燾)가 개수하였다고 한다. 이만도의 요청으로 안동부사 김기수가 「연무...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늑동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연필대를 묘사한 이재현의 글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돌 모양은 벼루와 같고 봉우리 모양은 붓과 같으니 오직 너를 좋아하는 것이 너의 붓과 벼루로다. 너를 사랑하고 이름하기를 연필이라 한 것은 붓으로써 쟁기를 삼고 벼루로써 밭을 삼아 갈고 또 다스리면 나의 단전(丹田)을 개벽하리라.”...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던 조선시대에 조성된 대(臺). 조선시대에 현재의 양산시 산막리 영동에 살았던 정병모(鄭柄謨)가 3단으로 축대를 쌓아 조성하였다고 한다. 천성산 기슭에서 발원한 범내가 양산천으로 향하다가 ‘ㄱ’자로 꺾어져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자리에 위치한 암반 위에 있었다. 대는 높이 약 6~7m, 넓이 60평 정도로 100여 명이 동시에 모일 수 있는 규...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 있는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의 재실. 김해김씨 삼현파의 중시조인 정성헌 문정공 김관(金管)의 15세손인 가선대부 김경구(金景九)의 위패를 모시는 재실이다. 영모재(永慕齋)라고 한 것은 조상의 은덕을 영원히 사모하겠다는 뜻이다. 조상 중에 둔재 김재복(金載馥)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후손들이 영모재를 건립한 듯하다. 김...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밀양 박씨 양산 입향조인 부위공(副尉公) 박이한(朴栭漢)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전면 4칸, 측면 2칸의 시멘트 단층 팔작기와 건물로, 넓이 규모는 84㎠이다. 매년 음력 10월 13일에 30명 정도가 참여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장수황씨의 재실. 재실 이름을 오린재라고 한 이유는 후손들의 기록에 잘 드러난다. “장수황씨의 조상 중에 고려 후기, 조선 전기에 황희(黃喜)가 있었으니 곧 방촌 선생이다. 선생은 문장이 세상에 으뜸이요 정략의 도와 청렴 결백한 자질은 여항의 필부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흔의 노령에 이르도록 세종대왕을 보필하여 그 치적의 많음은 지필로...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정자 터.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정자로, 바위 위에 ‘오수정(午睡亭)’이라고 새겨져 있다. 양산시 동면 내송리 마을 동쪽 1㎞ 지점 동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위쪽 200m 지점에는 폭포가 흐르는데, 여기에 오수정 터가 있다. 현재 정자는 없고 바위에 ‘오수정’이라고 새긴 흔적만...
-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 탑골 191번지에 에 있던 울산박씨의 사당. 용강사는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공이 많았던 울산박씨 장무공(裝武公) 박윤웅(朴允雄)과 지한주사 박추(朴諏)의 영령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는 사당으로 1851년(철종 2)에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향되었다가 이후 사지에 단을 설치하고 향사하기 위해 중...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 법기천에 있는 대(臺). 양산 사람인 박경홍이 용천대를 소요 자적하며 지은 시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땅과 하늘이 숨겨서 이름은 드러나지 않아도/ 돌로 된 대와 은빛 폭포를 자연으로 이루었도다./웅덩이가 검푸르니 일찍이 고기 새우 집이 되었고/ 골짜기가 깊으니 초목이 늦도록 싱그럽도다./고사(高士)가 서로 만나면 사마공처럼 술을...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밀양박씨 문중에서는 입향조인 밀양부사 박수성(朴秀成)을 위하여 재사 3칸을 지어 매년 서리 내리는 절기에 맞추어 실묘(失墓)한 여러 조상을 우모재에 합재하여 제사를 올렸다. 비록 여러 조상을 합재하는 것이 예에 어긋나지만 조상을 모시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이름을 우모재(寓慕齋)라 한 것이다. 1972년에...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우촌 정수가 지은 정사(精舍)의 터. 현재 우촌정사는 터만 남아있고, 오시유가 지은 노래만이 전한다. “앞 언덕에서 소 먹이며 백석의 무구를 노래하노라/ 세상일은 내 알바 아니니 은약을 즐기노라/ 소가 주리고 배부름은 제 힘에 맡기노라/ 세월이 끝나도록 고생하여도 축적한 것 없노라/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거워하노라/...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수원김씨 재실. 운곡재는 수원김씨가 1600년대 밀양으로부터 이사를 와 양산 입향조가 된 운곡 김중채를 위시한 51위를 봉안한 곳이다. 김중채는 1675년(숙종 1)에 태어났고, 이조참판을 지냈다. 1963년 건립했고, 지금 건물은 1995년에 다시 지었지만 나무를 잘못 사용해서 벌레가 파먹어 썩고 있다. 보수가 필요한 시...
-
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희조를 추모하는 정자. 조선시대 양산 주진 마을의 효자 김희조는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 한결같이 순종했으며, 학질로 고생하는 부모에게 살을 베어 먹이고, 등창을 앓을 때는 입으로 빨아서 낳게 했으며, 상을 당한 후 3년간 술과 고기를 금하고 매달 두 번씩 성묘하는 일을 늙어서도 폐하지 않았다. 이에 나라에서는 김희조에게 동지...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의춘방씨 재실. 의춘방씨의 시조 방태경은 1452년(문종 2)에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고, 문하찬성사상호군을 제수받았다. 1470년(문종 20) 2월에 서쪽 변경을 안정시킨 공로로 문종이 보국공신으로 의춘군(宜春君)에 봉하고 식읍을 내렸다. 67세의 나이로 타계한 뒤 조선 태종 때 이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충렬사에 제향하였다. 재...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학문을 익히기 위해 지은 집. 율리정사는 『오륜행실도』, 『삼강행실도』, 『사기』,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1672년(현종 13) 안희청이 진사 안효필의 생가에 학문을 익히기 위해 지은 정사로, 처음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집이었다. 그러다 율리정사에 살았던 안종석이 1970년에 틀은 그...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함포리에 있는 경주최씨 재실. 양산시 원동면 함포리는 은수(殷岫) 최봉한이 충주에서 이주해 살던 곳이다. 최봉한은 어려서부터 자질이 순수하여 지극하게 부모를 섬겼으며, 기개가 굳어 충직하게 의리를 지켰다. 병자호란 때 국권이 위태롭자 스스로 청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절의를 본받고자 깎아지른 절벽...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최익현을 추모하는 단소. 상북면에 살던 면암의 문인 권순도가 의충단을 축조하고 나서 “춘추대의 일월고충(春秋大義 日月高忠)”이라 했다. 권순도가 남긴 한시가 전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생의 대의는 우리나라에 천양되었으니/ 군자와 소인의 길이 같지 않았네/ 우뚝 선 순국으로 절개 지킨 혼백이요/ 기미를 막고 조짐을 막아...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현재 황산역 내에 있는 정자로 옛 관리들의 휴식 장소였다. 일아라는 명칭은 한문공(韓文公)의 『승청벽기(丞廳壁記)』의 한 구절을 취한 것이다. 『양산군지』에는 일아정과 관련하여 조선 숙종 때의 명신 우암 송시열 기문(記文)이 기록되어 있다. 1630년(인조 8)에 찰방(察訪) 정백순(鄭百順)이 일아정을 창건하고, 그...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정자. 일명 고운대, 최공대(崔公臺)라고 하는데, 황산강(현 낙동강의 옛 이름) 서쪽 절벽 위에 있다. 벽에는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되어 조감하기 어렵고, 시만 전할 뿐이다. 임경대는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 낙동강과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명소...
-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밀양손씨 재실. 밀양손씨 입향조인 손신(孫信)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손신은 밀양손씨 7세손인 광리군 손극훈의 19세손이 되는 첨정공파 손수산의 7세손이다. 손신은 창녕에서 출생하였으나 양산의 수성나씨 집안과 결혼하였고, 그 뒤 처가인 양산시 북정동에 정착하였다. 이로써 밀양손씨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2002년에 신축...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창원황씨 재실. 창원황씨 양산 입향조인 통정대부호조참의를 지낸 황시중과 아들 황두석을 모시는 재실이다. 20년 전부터 집안에서 제사를 모시다가, 2005년에 한옥을 개조한 형태로 장재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충주지씨 재실. 충주지씨 시조와 입향조인 가선대부 지귀명 등 29위를 봉안하고 있다. 후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사랑을 다한다는 뜻에서 저존재(著存齋)라 했다. 「저존재기」에는 “절제공 지봉원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참혹한 화를 당하자 지봉원의 아우인 참판공 지만원이 마침내 이곳에 숨어 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에 있는 달성서씨 재실. 고려조 봉익대부판도판서 달성군 서진의 8세손인 곡성현감 서의손과 병자호란 때 출정한 서중룡, 일제에 항거한 의병장 서병조 등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좌삼재를 지으면서 후손들은 다음과 같은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엎드려 원하건대, 상량의 후에 효도의 문이 열리고, 부귀가 끊어지지 아니하며, 건물을 새로 창건함에 높이 우...
-
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서재. 1910년 경술국치 후 양산·울산·부산 등지에서 거주하는 경주이씨 용재파 후손들이 선조를 기리고 학문을 강론하는 정사를 창건하기로 하고, 사림들이 회의를 거쳐 1920년에 주강정사(周岡精舍)라 현액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에 벼슬을 한 익재 이제현과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에서 급제한 용재 이종준을 추모하는 단소(壇所)...
-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매곡동에 처음 뿌리를 내린 사람이 바로 임진왜란 때의 공신인 서몽호이다. 서몽호가 임진왜란 때 왜적을 토벌하고, 수많은 공을 세우자 권율 장군과 어사 한준겸이 임금에게 그 공을 알려 훈련원주부를 제수받았다. 서몽호가 죽은 뒤에는 충절을 기리고자 영남의 유림들이 건의하여 경상감영의 지원으로 1791년 매곡리에 사당...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건물 터. 징심헌은 객사의 서편에 있었다. 오랫동안 퇴락하여 방치되었던 것을 1680년(숙종 6)에 양산군수 조헌경(曺憲卿)이 중건하고 서헌을 지었으나 1687년에 객사와 함께 화재로 소실되었다. 1689년(숙종 15)에 양산군수 유정휘(柳挺輝)가 다시 영건(營建)했으나 1697년(숙종 23) 겨울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양산군수 이여익(李汝翊)이 관아(官衙)의 서편 창고 옆 연못가에 창건한 정자이다. 남양산IC를 나와 좌회전한 후 700m 직진하면 남부 사거리가 나온다. 창포정은 남부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후 800m 떨어진 중앙동사무소 인근에 있다. 창포정과 관련된 기록인 「창포정기(菖蒲亭記)」, 「창포정중수기(菖蒲亭...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터. 상북면 소토리의 소노서원에 있는 정호인의 한시에 청계당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술이 좋고 관직 한가해서 보병과 비슷한데/작은 마루 적적하게 단지 네 칸이로다/구여릉의 백발은 무너지듯 취하였고/구루령의 단사는 도모할 필요가 없네/십리 바다 산이 일곱 점 떠오르고/한 당의 풍월은 둘이 맑아 풍족하...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있는 강릉유씨 재실. 양산의 입향조인 강릉유씨 19세 유세원(劉世源)을 추모하기 위하여 1999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재실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매년 음력 10월 보름에 30명 정도의 후손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김일손의 후손인 김치하는 무오사화 때 청도에서 양산 증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후손들이 청도의 ‘청’자와 증산의 ‘산’자를 따서 청산재라 이름을 붙였다. 1983년에 건립되었고, 2008년 현재 입향조 김치하를 1세로 168위를 모시고 있다. 재실은 11평의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매년 음력 10...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초산리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 경주 사람 이한영이 증조부 사우당(四友堂) 이형규, 조부 초은(草隱) 이계일을 추모(追慕)하여 지은 재실이다. 재실 이름은 시골에서 숨어 지낸다는 의미인 초은재이다. 1899년에 건립했다가, 1958년 3월 6일에 재건했다. 목조 건물이고, 정면 4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홑처마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의 양산읍성 내에 있던 정자 터. 춘화당은 원래 양산읍성 내에 있었다고 전하는 조선시대 정자이나, 현재는 터만 전하고 있다. 춘화당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이를 묘사하는 선현들의 시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춘화당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시 몇 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거정 작) 말을 몰아 달린 병이 늙음과 함께 겹쳐서/ 동쪽...
-
경상남도 양산시 양산읍성터 내에 있던 조선 후기에 세워진 임진왜란의 충의지사 조영규와 백수회의 사우 터. 조영규(趙英圭)는 자가 옥첨(玉瞻), 본관은 직산(稷山)으로, 1554년(명종 9)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동래성을 사수하다가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58세로 순절하였다. 1669년(현종...
-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된 동래정씨 재실. 충보재는 동래정씨 25세손 충보공(忠甫公) 정상량(鄭尙良)과 그의 자손 10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재실이다. 1997년 4월 10일에 옛건물을 철거하고 재건하였다. 옛건물을 철거할 당시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삼기해팔월십이일묘시입주상량(崇禎紀元後三己亥八月十二日卯時立柱上樑)”이라고 쓰여 있어 1793...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충과 효와 열을 행했던 사람들.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효충사의 효충계 서문에는 충효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릇 충효열(忠孝烈) 세 가지는 천성에서 나오는데, 사람의 도리 가운데 큰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성인을 내리시어 군주로 만들고 스승으로 삼아서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집집마다 깨우쳐서, 왕궁과 도성에서부터 시골마을...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김해김씨 재실. 콘크리트 목조형 건물로서, 기단을 높게 쌓아 사방에 난간을 두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겹처마이며, 내부에는 재청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이 있다. 취산재 왼편에는 사당으로 들어가는 3칸 목조의 내삼문이 있고, 문에는 ‘통모문(統慕門)’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으며, 맞배지붕에 홑처마이고, 단청이...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취서산에 있는 사당. 취서사는 김유신(金庾信)의 조부인 김무력(金武力)과 아버지인 김서현(金舒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취서사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취서사창건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취서사는 양산시 하북면 취서산(鷲棲山) 기슭에에 있다. 가락국 왕자 신라 각간 휘 무력공(武力公)의 무덤은 동원(東原)에...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노서원(小魯書院)에 있는 조선시대 목조 누각. 1994년 함안 조용하의 소노서원 「취송루기」에는 “양산 고을의 북쪽 십 리에 대림산(大林山)이 있는데, 송림이 은은하여 고인(高人)이나 일사(逸士)가 밭이랑 옆에서 살면서 천지가 바뀌어도 변치 않을 듯하고, 여기가 소산(蘇山) 선생의 탄생지요 구거지인 소토(蘇土)란 곳”이라고 실려 있다. 1...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풍산홍씨 재실. 홍우적(洪禹績)은 풍산홍씨 시조 홍지경(洪之慶)의 14세손으로 자는 대여(大余)이고, 호는 취우(聚愚)이며,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홍우적은 약 400년 전에 밀양으로부터 이곳으로 이거하였다. 취우재는 홍우적을 위시하여 그 후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89년에 건립되었다. 매년 추향제를 올리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은진송씨 재실. 양산IC를 나와 통도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12㎞를 직진한 후 하북면 삼거리에서 우회전한 다음 다시 한 번 좌회전하면 치상재가 있는 하북면 답곡리 성천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치상재(致祥齋)와 관련하여 은진송씨 후손들은 조선을 숭모하고 문중 발전에 유익한 제반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7...
-
경상남도 양산시 산막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화유씨 사당. 단종 절의신(節義臣)인 유자미(柳自湄)와 인종 절의신인 유광선(柳光先), 임진왜란 당시 공신이었던 유정, 유영춘, 유백춘, 유득춘, 유태영 등 일곱 명의 문화유씨 가문의 조상을 모셨다. 양산시내에서 국도 35호선을 타고 통도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산막공업지구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산...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의 정문 문루. 향교는 유교의 성현(聖賢)을 제사하고 지역 사회의 인재 양성과 교화를 위해 고려시대부터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공립 교육 기관이다. 향교의 구조는 교육과 제례의 두 공간으로 나뉜다. 강학하는 명륜당과 유생들의 기숙소인 동·서재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孔子)와 공자 제자 및 유현(儒賢)들을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동...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천은(川隱) 박기섭(朴基燮)이 여가 중에 대를 쌓았고, 선현들을 추모하여 풍호대(風呼臺)라 이름을 붙였다. 행양산군수(行梁山郡守) 동래진관(東萊鎭管)을 지낸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 이능화(李能華)의 「풍호대서(風乎臺序)」가 전한다....
-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재실. 1988년에 현재의 건물을 매입한 뒤 사당으로 중수 개조하여 1989년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 콘크리트 건물에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이다. 진주강씨 박사공파 13세손 강걸자로부터 23세손 강사진까지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11월 셋째 일요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경주김씨 재실. 경주 김씨 물금 제숙공파의 재실이다. 고려 공민왕 20년(1368)에 경주 김씨 51세손인 김옥근이 황산진에 정착,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이곳에서 400여 년간 65세손까지 거주하였다. 1998년 옛 집을 헐고 신축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있었던 정자 터. 효행과 교유 관계가 돈독했던 헌종 때의 안경록(安景祿)이 상북면에 정자 환벽정을 축성하고 말년을 보낸 곳이다. 현재 환벽정의 모습은 없어졌고, 안행탁(安行鐸), 군수 안종설(安鍾卨), 방운(傍雲) 윤필은(尹弼殷)이 지은 제영(題詠)이 전하고 있다. 그중 방운 윤필은이 찬한 제영을 통해 당시 환벽정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녹...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초계정씨 재실. 초계정씨의 시조 정배걸(鄭倍傑)의 27세손 이희중, 이희안, 이희민 등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재실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약 50명의 후손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었던 조선 중기의 정자 터. 1632년에서 1638년까지 양산군수를 역임한 조신준(曺臣俊)이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동표(李東標)의 기문이 있었다고 한다. 희청헌은 관사 서쪽의 춘설루 뒤편에 있었다고 한다. 조정융(曺挺融), 조신준(曺臣俊), 권만(權萬), 오하철(吳夏哲), 이만도(李晩燾)가 쓴 제영(題詠)이 전하고 있다. 현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