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부(順富), 호는 죽우(竹友). 별좌(別坐)의 관직을 역임하였던 권경의(權敬義)의 후손이다. 권순도는 양산 출신의 인물로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다. 음직(蔭職)으로 주사(主事) 승승훈랑(陞承訓郞)에 올라 문묘(文廟)의 직원(直員)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과 더불...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군수를 역임한 문신. 권중은은 1906년(순종 즉위년)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에 양산 최초의 근대학교인 양성학교(養成學校)를 설립하였다. 양성학교는 권중은이 전경무관(前警務官) 전태준(全泰準)과 일본 헌병대장 마쯔오[松尾]로부터 의연금을 받아내고, 이 의연금을 바탕으로 전의관(前醫官) 최현근(崔現根), 정지모(鄭智謀), 사인(舍人) 안세...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김려택은 양산 지역 웅촌(현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살았다.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와 개, 쥐 등 세 가지 동물이 김려택의 효성에 감동하여 도와주었다고 한다. 김려택의 효행과 관련한 소문이 널리 알려져, 사후에 나라에서 호조좌랑의 벼슬을 내리고 정려를 세워주었다고 한다. 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 산...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부. 박씨는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시명(金時鳴)의 처(妻)이다. 박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섬긴 것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맛있는 버섯을 먹고 싶어 하였지만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뒤뜰의 뽕나무에 버섯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채취하여 드렸다. 버섯을 따면 그 자리에 또 다시 돋아나곤 하여 시부모님이 돌...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字)는 성보(聖甫), 호(號)는 만취당(晩翠堂).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들로 수문장(守門將) 김을생(金乙生)과 부장(部將) 김의상(金義祥)을 두었다. 김영호는 조선 중기 양산 지역 출신의 사람으로 임진왜란 당시 두 아들 김을생·김의상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宣武原從) 1등공신이...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김정해는 부모가 돌아가시자 6년 상을 치렀다. 남들은 3년 상도 잘 치르지 않는데 여기에 3년을 더하였으니 그 어려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원래 3년 상을 치르게 되어 있는 부모상을 6년이나 치렀으니, 이러한 행동 또한 예에 어긋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은 김정해의 효성이 남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양산 지역...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신안남은 조선 중기 양산 지역 화제(花濟)[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지역]에 살았던 인물이다. 문목공(文穆公)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동향(同鄕)인 최흥국(崔興國)과 시문(詩文)을 서로 주고받는 사이였으며, 임진왜란 때 동향인 백수회(白受繪)와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지만 뜻과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공집(公執), 호는 서벽(棲碧). 아버지는 우재(又齋) 엄석주(嚴錫主)이며, 엄국영(嚴國永)이 형이다. 엄신영은 음직으로 가감역겸기장군수(假監役兼機張郡守)에 임용되었으며,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관직을 그만두었다. 엄신영은 부모에게...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오택언은 1897년 6월 17일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 중앙학림(中央學林)의 학생이었다. 1919년 2월 29일 오택언은 서울에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인 한용운으로부터 독립선언문 3,000매를 받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배포한 후 군중을 규합하여 만세...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성능(聖能), 호는 해산(海山). 할아버지는 철종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하사받은 효자 이홍민(李洪玟)이다. 이철호는 성품이 너그럽고 강직하였다. 주사(主事)와 양산군수서리(梁山郡守署理)를 역임하였으며, 양산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진목(賑睦) 활동에 힘쓴 인물이다. 양산 지역 주민들이...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경인(敬仁), 호는 인수당(忍叟堂). 고려시대의 훈신(勳臣)인 이인복(李仁復)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하사받은 이석복(李錫馥)이다. 이홍민은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계모를 몸과 마음으로 극진히 섬겼으며, 평소에 남에게 화를 내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이에 양...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무겸(武兼). 증조부는 양산 지역의 문행(文行)으로 알려진 임영대(林榮大)이며, 임영대의 아버지는 양산 지역의 유일(遺逸)로 알려진 임경택(林景澤)이다. 임경택의 할아버지는 양산 사람으로서 사마시에 합격한 후 벼슬을 하지 않은 유생 임도(林度)이다. 임도의 증조부는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의 후손으로서 광해군...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선비.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경보(擎甫).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의 후손이다. 임도의 증조부는 광해군 때 정인홍의 미움을 받아 양산 지역으로 유배를 왔다가 인조반정 후 광주목사가 되었으나, 이괄의 난 때 적에게 사로잡혀 죽은 임회(林檜)이다. 임도의 손자는 양산 지역에서 유일(遺逸)로 알려진 임경택(林景澤)이며, 증손자는 양...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영백(榮伯), 호는 삼회(三悔).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후손이다. 임종하는 뜻과 행실이 굳고 지극했으며,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효성스러웠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봄과 여름에는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가을과 겨울에는 돌과 쇠뇌로 짐승을 잡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고기를 밥상에 올려...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우성(遇聖). 고려시대 밀직부사(密直副使) 장순(張純)의 후손이다. 장재문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님을 몸과 마음으로 잘 받들었다. 아버지가 병에 걸렸을 때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였다. 장재문이 하늘에 빌고 산에 기도를 드렸더니 날아가던 꿩이 갑자기 뜰로 뛰어들어 왔다. 이를 잡아서 아버지께 드렸더...
-
조선 전기 양산군수를 지낸 문신. 전평원은 조선 전기인 1392년(태조 원년) 양산군수로 부임해 왔다. 이때 양산군의 읍성(邑城)은 고려 후기 1381년(우왕 14)에 있었던 왜구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폐허가 되어 있었고, 속현인 동평현(東平縣)[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일대를 가르키는의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의 이름]에서 양산군의 군정(郡政)을 보고 있었다. 전평...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지역에 자리잡은 유생. 조선시대 양산 지역의 유일(遺逸: 학식과 덕이 높았지만 관직에 등용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 중 한 명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원백(遠伯). 호(號)는 모성재(慕聖齋). 정재(正齋) 정지송(丁之松)의 후손이다. 정득은 타고난 바탕이 뛰어나게 총명하였고, 거동과 외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다. 지조를 굳게 지켰으며, 행...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효순(孝順), 호는 경와(耕窩). 정재(正齋) 정지송(丁之松)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양산 지역의 유일(遺逸)로 이름난 정득(丁得)으로 임진왜란 때 김해 지역에서 양산 지역으로 피난해 와서 정착하였다. 형은 양산의 유행(儒行)으로 알려진 정명희(丁鳴稀)이다. 정명석은 평소에 효성과 우애가 깊고 덕행이 높아...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우관(友寬), 호는 농암(農菴). 정재(正齋) 정지송(丁之松)의 후손이며, 양산 지역에서 유일(遺逸)로 이름난 정득(丁得)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양산의 유행(儒行)으로 알려진 정명희(丁鳴稀)이며, 아버지는 양산이 낳은 효자로 칭송되는 정남실(丁南室)이다. 정서언은 아버지 정남실(丁南室)의 효성을 이어받았고...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살던 정승우는 임진왜란 전에 왜구에게 잡혀서 일본의 비전주(肥前州)로 팔려갔다. 객지 일본에서 정승우는 72세 노모의 생사에 대한 걱정으로 식사 때마다 상에 올라온 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왜인이 이를 보고 정승우의 효성에 감동하여 양식과 배를 마련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고향에 돌아와서 살던 정승우는 임...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초명은 규열(奎烈), 자는 남서(南瑞), 호는 매촌(梅村). 조선 중기의 인물인 고암(顧庵) 정윤희(丁胤禧)의 후손이다. 정임교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강을 건너 묘지를 살피러 가는데, 얼어붙은 얼음이 저절로 녹아 배로 건너갈 수 있게 된 기이한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기여(琪汝).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 정언룡(鄭彦龍)의 후손이다. 정창수는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격일로 오한이 일어나는 학질에 걸렸는데 “이 병에는 사람고기가 제일 좋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단(壇)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고 나서, 몰래 방에 들어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미음과 섞어 먼저...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시중(時仲), 호는 노산(魯山). 조선 전기 예조참의를 지낸 정절(鄭節)의 8세손이며, 의능참봉(義陵參奉) 정희란(鄭希鸞)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정호의는 형 정호인(鄭好仁)과 안근(安瑾), 이몽란(李夢鸞), 최기(崔沂)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으며,...
-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소산(蘇山). 조선 전기 예조참의를 지낸 정절(鄭節)의 8세손이며, 의능참봉(義陵參奉) 정희란(鄭希鸞)의 큰 아들이다. 동생은 임진왜란시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정호의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양산향교 교임이었던 정호인[1554~1624]은 공자의 위패를 교동으로 옮겨 지켰으며, 일본에 포로로...
-
고려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평(思平), 호는 운암(雲巖). 아버지는 지방어사(知防禦使) 차종로(車宗老)이다. 차원부는 1320년(충숙왕 7)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고려 후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고, 학자로서의 명성이 포은 정몽주나 야은 길재와 함께 높았다. 이성계가 요동을 공격하게 되...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한업(翰業). 아버지는 사과(司果) 최혁수(崔奕壽)이다. 최현업은 집이 가난하여 아내와 함께 농사일을 하였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가 우물 속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곧바로 아이를 건져내고 아이의 목숨에는 관계가 없다고 거짓으로 말하여 부모를 안심시켰다. 다행히 얼마 후에 아이가 다시 살아나니...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강후(康候). 고려시대 문정공(文貞公) 최승로(崔承老)[927~989]의 후손이다. 최흥국은 1588년(선조 21)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서 서사원(徐思遠), 이윤우(李潤雨), 손처눌(孫處訥), 곽재겸(郭再謙), 박수춘(朴壽春) 등과 더불어 화왕산성(火旺山城) 전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