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4년 양산군민이 동래부로 넘어간 구포의 관할권을 양산군에 돌려달라고 의정부에 올린 진정서. 1873년 양산군이 담당했던 구포 관할권이 동래부로 넘어가자 1874년 양산 군민은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하여 의정부에 진정서를 올렸다. 의정부는 내용을 심리하고 결정 내용을 기록하여 양산 군민에게 돌려주었다. 1장이며 양산 군민이 집단으로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한 ‘...
-
1890년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작성한 출두리와 사덕리의 전답 양안. 양안은 군 단위 양전(토지 측량)의 결과를 기록한 일종의 토지대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1720년에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일시에 도별로 양전이 행해졌다. 이를 ‘경자양전(庚子量田)’이라 한다. 경자양전 이후로는 도별로 양전을 행한 적은 없고, 필요할 경우 군현별로 정부의 허가를 얻어 양전을 시행하였다. 군현의...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에서 화적에 맞서 가족을 지킨 여인. 1832년의 읍지에 실려 있지 않은 사실이 1878년 간행된 『양산읍지(梁山邑誌)』에 실린 것으로 보아 1832년부터 1878년 사이의 일로 보인다. 나수원의 누이 나씨는 신유년 여름 양산군에 화적이 침입했을 때, 처녀의 몸으로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오라버니와 조카의 목숨을 살렸다고 한다. 모든 군민들이 그...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의 남정을 파악한 고문서. 작성처와 작성 경위 등이 불분명하다. 1882년 당시의 지방제도인 면리제를 고려하면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에서 작성하여 상급 기관인 면과 군에 보고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표지에 ‘상북면소토리임자식남정성책’이라 기록되어 있고, 본문 머리에는 ‘광서 8년(1882년) 3월 소토리 임자식 남정성책’으로 기재되어...
-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의 이징석에게 발급된 사패교지. 사패는 국왕이 신하에게 토지나 노비를 하사할 때 내리는 교지를 말한다. 이징석이 여진족을 토벌한 공을 치하하기 위해 이조에서 세종의 하명을 받아 사패를 작성하였다. 선사지보가 2과 날인되었으며, 규격은 80.4×85.7㎝의 낱장 1매이다. 지질은 장지이며 사패의 앞부분이 훼손된 상태이다. 「노비사패교지」에...
-
조선 후기 경상도 관찰사가 작성한 향교 교육 운영 지침을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옮겨 적은 고문서. 조선 후기에 경상도 감영에서 도내 71개 군현에 공문서를 발급하였고, 이를 수급한 양산군은 공무에 참고하기 위하여 해당 공문서를 옮겨 적었다. 발급 및 수급 연월일은 미상이다. 감영에서 보낸 관문이라는 공문서의 필사본이며, 이러한 고문서를 등서라고 한다. 전체 고문서가 온전한 형태로 보...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이만집, 이태련, 이영서 등이 주동한 3·1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8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들고 시위행진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양산군수를 역임한 무신.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에 양산군수로 있으면서 양산 지역의 용당리 전투에서 왜적의 후미부대를 습격하여 수급 85급을 베는 등 무공을 세웠다. 그러나 사사로이 왜적과 화의를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아 처벌이 논의되었으며, 정상이 참작되어 북방의 수비군으로 강등되었다....
-
조선 전기에 경상남도 양산에서 간행된 『삼강행실도』의 복간본.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 부자, 부부의 삼강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모은 도덕서이다. 초간본은 1434년에 간행되었으며 그 후 관련 사실이 추가되면서 여러 차례 재간행되었다. 1428년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여인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세종이 엄벌에...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었던 초중등 단계의 사설 교육기관. 서당은 조선시대 서민 자제의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원형은 고려시대부터 설립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변화하면서 발전하였으나 현존하는 서당은 없다. 교육 내용은 글의 뜻을 익히는 강독, 글을 짓는 제술, 서체를 익히는 습자의 세 가지였다. 서당의 인적 구성은 스승인 훈장, 학도 중 우...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선현제향(先賢祭享)과 교육을 위해 설치된 조선 시대 기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이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건립하여 운영한 것을 본받아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것이 사립 중등 교육기관인 서원의 효시이다. 그 후 풍기군수로 온 퇴계 이황의 건의로 백운동서원이 소수서원이라는...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의 이몽란에게 발급된 선무원종공신 3등 문서. 선무원종공신은 임진왜란 때 전투에서 공을 세우거나 군수품 보급에 기여한 인물을 의미한다. 1604년 호성공신, 청난공신, 선무공신 합계 18명을 포상할 때 누락된 인물 가운데, 1605년 4월 1,060명을 선별하여 호성원종공신, 청난원종공신,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하였다. 「선무원종공신녹권」도 그때 함께 발급되었...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인동(仁同), 장학석(張鶴碩)의 딸로 심상순(沈相舜)의 아내이다. 인동 장씨는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내장에 종기가 생겨 고통스러워하자 하늘에 빌며 자신이 대신 앓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숭어를 잡는 꿈을 꾸고는 병이 곧바로 나았다. 남편이 죽자 조용히 시체를 끌어안고 남편을 따라 죽었...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의 안근과 안시명이 무과에 급제하여 받은 교지. 문과와 무과에 급제하여 국왕이 내리는 교지를 홍패라 한다. 안근이 1594년 1월 25일, 안시명이 1603년 1월 각각 무과에 급제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교지가 발급되었다. 안근의 「무과교지」는 가로 43.5㎝, 세로 90㎝ 크기의 한지이고, 안시명의 「무과교지」는 가로 43.5㎝, 세로...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권농판사 안몽득의 9세손이고, 임진왜란 공신 안근의 5세손이다. 안만춘은 1675년(숙종 1)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부유한 양반가에서 출생하였다. 1710년(숙종 36) 무과에 급제하였고, 그 후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折衝將軍行龍驤衛副司果)에 올랐다. 안만춘의 남을 잘 돕는 선행과 관련한 전설이 있으며, 임진왜...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덕수(德叟).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다. 안명로는 1620년(광해군 12)에 태어났으며,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64년(현종 5) 양산군수로 재직할 때 조정에 『연기신편(演機新編)』이라는 병서를 올리며 병제의 개편을 요청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1668년(현...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의 교생 안시명을 참봉으로 임명한 교지. 「문관고신교지」와 더불어 「진사시급제교지」가 1977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진사시급제교지」는 1882년 양산의 유학 안효필이 진사시에서 3등급 56등으로 합격하였다는 내용을 담은 교지이다. 「문관고신교지」와 「진사시급제교지」 모두 가로 40㎝, 세로 50㎝ 크기이다....
-
조선 후기 양산군수가 경상도관찰사에게 양산군민이 보낸 소지 내용을 요약하여 올린 서목. 1832~1833년 경상남도 양산군의 양반들은 임진왜란 때 공훈을 세운 인물들을 조사하여 표창해 줄 것을 양산군수와 경상도관찰사에게 지속적으로 청원하였다. 본 서목은 1833년 양산의 유생 윤상헌과 정윤국이 올린 청원 내용을 양산군수가 경상도관찰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요약한 것이다. 1장으로 된...
-
조선 전기 양산이씨의 시조와 직계 자손과 관련된 고문서. 조선 전기의 고문서여서 일부만 보전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훼손이 많이 된 상태이다. 보물 제1001호로 지정된 「양산이씨 종가 소장 고문서」는 양산이씨의 시조(始祖)인 이전생과 이징석, 이팔동, 이몽란 등 직계 자손과 관련된 16점의 문서를 통틀어 지칭한 것이다. 이전생의 문서는 이전생을 가선대부공조전서(嘉善大夫工曹典書)에...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작성한 관내 1-2개 리의 전답 양안. 조선시대 각 군현은 관내의 토지를 면리 단위로 조사하여 양안이라는 토지대장을 작성하여 부세 업무와 토지소유권 확정의 기초 자료로 삼았다. 본 양안은 양산군이 관내 1-2개 리의 전답 등 토지를 조사하여 작성한 것이지만 불완전한 상태여서 어느 면의 토지인지 작성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필사본 2책으로 구성되...
-
1881년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천주교인. 우병연은 대구 사람으로서 사학죄인(邪學罪人)으로 지목되어 쫓기던 천주교인으로서 1881년(고종 18) 봄 동래부의 왜관에 들어가 이토라는 일본인 집에 거주하다가, 이토가 천주교를 배우러 대구로 가자고 하여 함께 대구로 가던 중 양산 지역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농악 예능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호인 농악은 지역적 특징에 따라 경기농악, 영동농악, 호남우도농악, 호남좌도농악, 경남농악, 경북농악의 여섯 가지로 나뉘며, 그 가운데 경남농악의 중심은 함안, 진주, 삼천포였다. 하지만 이영우가 삼천포농악을 계승하여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삼천포농악이 양산농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영우(李永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