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곡, 명동마을은 행정지명이며, 속칭으로는 홈실마을로 부른다. 그리고 명동 바로 옆 마을 이름은 외홈마을이다. 명곡마을, 명동마을보다 왠지 정감이 가는 ‘홈실마을’. 이 이름은 과연 어떻게 유래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열쇠는 명동(椧洞)의 ‘명(椧)’자에서 찾을 수 있다. 명(椧)은 우리말로 ‘홈’을 뜻한다. 농사를 지을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사용한 홈(椧)이 일제...
-
명동의 푸르고 넓은 논에는 한창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도시화가 되어 땅값이 올라도 이곳에서 농사가 계속 될 수 있는 이유는 관개시설이 잘 되어서 농사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동이 처음부터 관개 시설이 완벽하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관개 시설이 되기 전에는 이곳에서도 물이 없어 가뭄으로 인해 고생이 매우 많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명곡마을 이자무 이장님을 만나...
-
명곡마을을 감싸는 산 가운데 오른쪽 신인 백호에 해당되는 야트막한 능선이 있다. 부드럽게 마을을 남쪽으로 감싸 돌면서 평지로 잦아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산이지만 이곳에서 옛날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이 일명 ‘명곡리 고분군’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주로 4~5세기의 토기류가 발굴되었다. 토기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용기이므로 당시에는 이...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명박홍남(朴弘楠)의 재실. 고령(高靈) 김성도(金聲燾)가 지은 「귀후재기」에는 우풍현(虞風縣)의 명곡촌(椧谷村)에 우뚝 솟은 정사가 있는데, 이것이 선무공신(宣武功臣) 훈련원 봉사 박홍남의 묘소 아래 재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후손 김장식(金長植), 김명수(金明守), 김정건(金正鍵) 등이 여러 친족들과 조상의 뜻을...
-
웅상은 지역적으로 회야강 상류 유역의 풍부한 수원과 비옥한 땅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농경사회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경작지의 확대로 가족단위 노동에서 마을단위 협업 노동력의 필요성에 의해 후대에 와서 ‘농청’이라고 하는 조직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장원놀이는 조선 후기 소농경영(小農經營)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을단위로 두레형식으로 조직된 농민단체에...
-
명동마을에서는 이 지역이 공장용지, 택지용지 조성으로 급속히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농경지가 사라지고, 공장들과 집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농경지가 사라져 농사를 짓고 살아오던 어르신들이 일손을 놓게 되었다. 생활의 터전이 없어진 어르신들은 마을 경로당에 모여 농요도 부르고 옛 일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한번 즐기며 후대에 남기고자 하는 뜻이 모아져 60~8...
-
명동마을 사람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도 유독 친목이 뛰어나다. 또한 마을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그들이 이렇게 될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을 한 데 묶어주고 그들에게 자부심을 부여해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 모두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웅상농청장원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망시논매기라는 웅상의 전통 놀이를 명동마을에서 맡아하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잘...
-
농청장원놀이는 명동마을의 자랑이며, 자존심이다. 이러한 농청장원놀이가 유지되고 전수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 많다. 그것은 바로 농청장원놀이만을 위한 일정한 공간이다. 놀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하며, 여러 소품들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농청장원놀이에 사용되는 소품으로는 입장식 소품, 보리타작과 관련된 소품, 모내기 소품, 농신제 소품, 품...
-
살다보면 이름이 똑같거나 비슷하여 혼동하는 실수를 누구나 한번쯤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곳 명동마을 또한 이름이 비슷하여 생긴 일화가 있다. 명동마을이 ‘명곡’이라고 불렸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양산대학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에도 같은 지명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느 명곡마을인지 잠시 당혹스러웠다.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소주동, 평산동, 서창동, 덕계동...
-
1998년 제30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웅상농청장원놀이는 2002년 4월 4일 경상남도 문화재(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언론과 대중매체는 많은 관심으로 이 놀이문화를 취재했다. 먼저 KBS의 현지(논) 녹화는 장원놀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양산의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힘이 되었다. 또한 SBS에서도 농경하는...
-
명동마을은 인접한 울산, 부산과의 교통이 좋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여기에 살면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살기 좋은 환경이라서 젊은 사람들은 회사에 다니면서 부모님을 모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이 많다. 그래서 이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아이들도 많고, 아이들 대부분은 다들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 명동마을 배복자 할머니께서는...
-
도시화되기 이전에 이곳 명동은 참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 회야강이 흐르고 대운산의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면서 마을 앞으로는 넓다란 논밭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참 살기 좋은 마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장님의 말에 따르면, 이곳 명동은 눈도 많이 안 오고 비도 많이 안 오고 바람, 태풍의 피해도 거의 없다고 한다. 다음은 이장님의 말씀이다. “여기는 참 좋은 게 눈도...
-
명동은 흥려박씨와 학성이씨가 어우러져 사는 집성촌이다. 명동마을의 이러한 내력을 보여주는 것이 흥려박씨 문중 사당인 귀후재이다. 이 사당의 구조는 콘크리트 목조건축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겹처마로 이루어져 있다.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집을 거쳐서 들어가야만 대문이 나온다. 정문에는 신덕문(愼德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신덕이...
-
어느 화창한 봄날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7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도로 저편 건너에서 풍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풍악소리뿐만 아니라, 풍악이 끝나면 타령 소리도 간간히 들려 왔다.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따라 조금씩 조금씩 따라가 보았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것은 넓은 들판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
-
명동마을을 둘러보는 일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과 같다. 마을회관에서 마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진짜 마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마을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마을을 아우를 수 있는 야트막한 산지 쪽에서 천천히 둘러봐야 할 것이다. 지금은 마을회관 주변에 깔끔하게 정비된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옛적에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 정관 신도시...
-
마을의 내면의 알기 위해서는 그 마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마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마을의 역사가 된다. 명동마을은 60세대 정도의 식구들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 일까? “우리 마을에는 박씨가 30세대 정도 됩니더. 옛날에는 박씨가 더 많았는데 나가는 사람도 있고 해서 세대가 많이 줄었습니더. 그래도 아직까지는 박씨가 많은...
-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소통의 자리이며 바로 옆의 경로당은 어른들의 공간이다. 이곳 마을회관은 농청장원놀이의 소품을 보관하면서 장원놀이 사무소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명동마을회관 앞에는 장원놀이 겸 노인들 게이트볼을 할 수 있는 조그만 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 앞에는 당산나무가 있고 교회가 바로 앞에 있다. 마을 노인들은 아침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이곳에 모인다. 이곳에 오면 여름에는...
-
박극수(61). 시인이며 수필가인 그는 한마디로 명동의 정신을 기록을 통해 계승코자 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마을에서 제일 먼저 들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돈이 아까워 새참도 먹지 않았다. 소출이 적어 경작하지 않는 산답(山畓)을 소작으로 얻어 밤을 지새우며 죽도록 일해도 동생들 학비며 기본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벅찼다. 빚은 자꾸 늘어만 가고, 모든 걸...
-
명동마을은 웅상농청장원놀이의 명성에 걸맞게 TV에도 여러 차례 방영될 만큼 유명한 마을이다. 전통놀이의 맥을 이어가는 마을로써 사람들에게 알려진 만큼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부산에서 방문할 때에는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두 개의 광역시를 사이에 둔 지역답게 도로변은 이미 도시화가 되었다.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덕...
-
명동에 위치한 양산가정폭력상담소(소장 홍혜숙)에서는 ‘아버지학교’를 개설하고 4월 29일부터 5월 27일까지 매주 화요일 5회에 걸쳐 교육을 실시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야 자녀가 행복해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이 교육은 아버지의 자아 이해, 배우자 이해, 자녀 이해, 가족체계 이해, 아버지 사명과 리더십 훈련으로 이루어졌...
-
이조기(1887~1983, 명곡 출생)는 홈실댁으로 불리워졌다. 명동 본마을 이름이 홈실인 것처럼 그이 일생에는 홈실 마을 사람들의 옛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며 홈실댁은 명곡에서 1887년에 출생하여 열다섯 살 되던 해 이웃한 백동마을의 26세의 늙은 총각(당시 평균 결혼연령 20세)에게 시집갔다. 그 시절 결혼은 당사자의 의사...
-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직선으로 뻗어 있는 마을길이다. 본래는 모두 논과 밭이었던 곳이 도로와 주택으로 뒤집힌 후 마을의 모습은 많이 변화되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증언은 농촌 마을이 주택지구가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시집왔을 때는 저 앞에 전부 다 노랬습니더. 장승나무 있는데 거기...
-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마을사람들에게는 전깃불에 얽힌 기억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이 마을은 1960년 초까지만 해도 호롱불에 의해 방안의 어둠을 부분에만 밝혔다. 어두운 호롱불 밑에서 길쌈을 하고, 베를 짜고, 새끼를 꼬고, 짚신을 삼고, 가마니를 치고, 멍석(등시기), 봉태기, 바지게, 소쿠리, 우장(우의)를 매고, 생활 요구를 만드는 등 밤에 이루어진 모든 일은 호롱...
-
명동마을에는 총 세 그루의 당산나무가 이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명동마을 초입부에서 산 길 쪽으로 가다 보면 명곡슈퍼 회관 앞에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은 나무가 보이는데, 이 나무가 바로 명동마을의 첫 번째 당산나무이다. 양산시에서 지정한 보호수로 나무의 나이가 자그마치 700년이나 되는 높이 19m, 둘레 5.3m인 느티나무이다. 마을 입구에 당당하...
-
장이쌀 제도라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8월에 추수하고 다음해에 봄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배고픔에 시달리는 시절을 보내야만 하였다. 일명 보리고개라는 것이다. 가을 벼농사가 끝이 나면 보리를 심는다. 이듬해 4월쯤에는 장독에 쌀이 동이 났어도 보리를 수확하기까지는 한 달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곳간에는 먹을...
-
냉수 한 모금으로 입과 목을 축인 김필연(75) 할머니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벽면에 허리를 붙이고 “흠- 흠-”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금세 구성진 가락을 뽑아낸다. ▶ 면면히 이어져 오는 구성진 우리의 소리 “한강에 이 모를 부아 그 모찌기도 난감하네. 하늘에다 목화 심어 이 목화 따기도 난감하네. 만장 같은 이 모자리 장기판 만치 남었구나. 장기야 판은 있다마는 장기...
-
우리나라의 특징은 각기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방언, 즉 사투리이다. 지역마다 문화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지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사람의 이동이나, 물자,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명동마을도 지형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명곡리 고분군은 명동 북서쪽 7번 도로 울산 방향의 오른쪽 낮은 독립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의 인근에는 웅상초등학교가 있으며, 구릉 하단에는 웅상고철이라는 고철 수집소와 오뚜기 식품 공장이 있다. 유구의 양상은 지표 조사에서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 사면에 흩어져 드러난 할석, 석곽의 흔적, 토층 단면...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동은 가매소 북쪽에 있는 들을 칭하는데, 명곡마을이 처음 생긴 곳이다. 명곡마을에서 분리되면서 이름이 바뀌어 명동이 되었다. 삼한시대에 명동 지역은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西面)으로 명명...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수령 7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양산시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흔하게 자생한다. 높이 26m에 달하며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원줄기가 갈라지는 나무가 많고 나무껍질은 오랫동안 평활하지만 비늘처럼 떨어지면 껍질눈이 옆으로 발달한다. 높이 12m, 가슴 높이 둘레 5.85m, 지름 1.86m,...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동에서 분동되어서 명동1마을이라 칭했다. 명동1마을 지역은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이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될 때 양산군 웅상면으로 편입되었다.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명곡(椧谷)마을·외홈마을·소정(蘇亭)마을·남천(南川)마을·교동(校洞)마을을 병합하여 명곡리라 하였다. 2005년 1월 1일 명...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본래 명동이던 것이 명곡으로 개칭되었다가, 양산시 중앙동의 명곡동과 이름이 같아 다시 명동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이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될 때 양산군 웅상면으로 편입되었고,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명곡(椧谷)마을·외홈마을·소정(蘇亭)마을·남천(南川)마을·교동(校洞)마을을 병합하여 명곡리라 하...
-
농청장원놀이는 처음부터 명동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므로 어느 마을에도 이와 비슷한 놀이는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 놀이문화의 계승의식 여부에 따라 현재의 농청장원놀이가 재현되는 것이다. 양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양산의 여러 마을에서 농청장원놀이의 재현을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사람동원이나 재정 등의 이유로 계승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은 마을...
-
2006년 3월 “양산의 한 소리꾼이 세상을 하직했다.” 제하의 기사가 양산신문에 실렸다. 웅상농청장원놀이 논매기노래 기능보유자인 이유락(李有洛) 옹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하직하였음을 알리는 기사이다. 그는 1921년에 명곡리 512번지에서 출생하여 지난 2006년에 작고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같은 또래 친구들은 학교에 가는데 월사금 50전(당시 쌀...
-
경상남도 양산시 서창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17년 6월 ‘면제 및 동시행규칙’이 공포됨에 따라 동년 10월 외흠마을은 웅상면 명곡리에 편입되었다. 1991년 웅상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웅상읍 명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평산동·덕계동·소주동·서창동의 4개 동으로 분동됨에 따라 외흠마을은 서창동에 속하게 되었다. 외흠마을은 동쪽으로...
-
명동마을 앞을 유유히 흐르는 하천은 회야강이다. 회야강은 우리나라의 하천 중에 북쪽으로 흐르는 몇 안 되는 강이다. 물길은 사람의 마음을 잇는다 하였다. 이 강이 울산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명동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울산 사람들과 같은 물을 먹는다는 동질적인 의식을 내재하도록 하는 데에 바탕이 되고 있었다. 이 강은 웅상읍의 주진리 원효산에서 출발하여 덕계천과 합류되어 울산...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서 한 해 농사일을 마치고 행하던 민속놀이. 예로부터 양산시 명동(구 양산시 웅상읍 명곡리) 지역에서는 삼한시대 두레의 유풍이라 할 수 있는 농청 조직을 통하여 힘든 농사일의 능률을 향상시키고, 조직을 통한 협동심을 고취하여 왔다. 웅상농청장원 놀이는 웅상 지역 마을마다 전승되어 왔던 놀이로, 농사일의 과정에서 농청을 총지휘할 우두머리와 소임자를 선...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능력 있는 어린이, 기본 예절을 바르게 실천하는 어린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창의성 있는 어린이, 씩씩한 기상을 지닌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7년 5월 5일 4년제 보통학교로 설립을 인가 받아 9월 10일 웅상국민학교로 학교 문을 연 뒤, 1930년 3월 20일 제1회 졸업식 때...
-
한창 먼지를 풀풀 날리며 공사가 진행 중인 화성 파크드림 아파트 건설 현장. 이렇게 명동마을에도 점점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아파트 건설현장을 지나면 산으로 오르는 작은 샛길이 하나 보인다. 마치 도시에서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 같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길은 바로 시명골로 가는 입구이다. 샛길 입구에는 시명사, 청룡사, 기원정사, 시명골 쉼터 등 각각...
-
농청장원놀이는 1999년 남해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30회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81명이 출연하여 양산 망시논매기 장원놀이라는 이름으로 최우수상을 차지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것은 양산 웅상읍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대동놀이로 농청이란 농사 두레를 통해 보리타작과 논매기를 끝낸 후 농사를 잘 지은 집을 장원으로 선정하면 장원으로 선정된 집에서 낸 술과 음식인 ‘장원 턱’을 나눠...
-
김종순(55) 씨는 농청장원놀이가 1998년 제30회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할 때 부녀회장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감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내 누구한테 맞아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을 기다.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드라.(김종순, 명동마을 주민, 55세. 2008년 9월 3일)” 그녀는 명동에서 6년 째 웅상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