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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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愚寒遺稿 |
영어공식명칭 | Uhanyugo (Collection of poetry and prose work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봉곤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인 우곡 임상우와 그의 아들 한천재 임낙풍의 시문집.
[저자]
임상우(林尙愚)[1761~1823]의 자는 민첨(民瞻), 호는 우곡(愚谷)이며, 본관은 조양(兆陽)이다. 부친은 광흡(光洽)이며, 모친은 문화유씨 시곤(時坤)의 딸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총명리에서 태어났으며, 단정하고 총명했다. 18년 동안 부친의 병을 간호했으며, 형제들이나 친척, 이웃과도 화목하고 어려울 때 구휼했다. 만년에 ‘우곡(愚谷)’이라는 정자를 짓고 『주역(周易)』 등의 서적을 읽으면서 지냈다. 임낙풍(林樂豊)[1797~1866]은 임상우의 아들로서 호는 한천재(寒泉齋)이다. 임낙풍 역시 부친 못지 않게 효성을 다 했다. 항상 부친의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한 번은 서울에 일이 있어서 올라갔다가 흉몽을 꾸고 즉시 돌아와 보니 부친이 위독하였다. 한겨울이었는데 부친이 잉어를 먹고싶어 하므로, 두 동생과 함께 연못에 가서 지팡이로 얼음을 깨서 잉어 두 마리를 잡아서 드시게 했다. 두 동생 역시 형제간에 우애가 깊고 부모님께 효도했다. 1885년(고종 22) 조정에서 삼형제의 효행을 기려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려 정문(旌門)을 세움]를 내렸다.
[편찬/간행 경위]
『우한유고』는 임상우의 현손 임학수(林學洙)와 임창수(林昌洙) 등이 임상우와 임낙풍의 글을 모았고, 1919년 이병은(李炳殷)에게서 임낙풍의 묘갈명을, 1932년 최병심에게서 임상우의 묘갈명을 받았다. 이어 소학규(蘇學奎)에게서 서문을, 최병심(崔秉心)에게서 발문을 받아 1932년 시문집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우한유고』는 2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지면의 둘레를 검은 선으로 두름]이고, 계선(界線)[본문의 각 줄 사이를 구분하는 선]이 있다. 반엽은 10행 20자이며 주는 쌍행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며, 반곽의 크기는 26.8×19.2㎝이다.
[구성/내용]
『우한유고』는 서문, 목록, 오언절구, 칠언절구, 칠언율시, 잡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가 대부분이며, 잡저는 사경사상지도(四經四象之圖), 사경편차강령설(四經編次綱領說), 부록으로는 임상우의 현손 임창수가 지은 가장(家狀), 이병은(李炳殷)이 지은 행장, 최병심이 지은 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 『한천재집(寒泉齋集)』 역시 시가 주류인데, 주변 경물이나 동식물을 읊조린 것이 대부분이다. 부록에는 「정려상량문(旌閭上樑文)」, 「정려기(旌閭記)」, 「삼효정기(三孝亭記) 」, 이병은이 지은 묘갈명, 현손 임학수가 지은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우한유고』는 농촌에 거주하는 선비들의 일상 생활을 보여주고 있으며,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이웃과 교유하는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