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8년(고종 5) 일본의 태정관에서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결정한 문서. 1868년 일본 메이지 정권이 수립된 이후, 1869년(고종 6) 일본 메이지 정부 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보내 정세를 몰래 살펴보도록 했는데, 그때 조사 항목 중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로 되어 있는 전말’을 조사해 오도록 지시하였다. 그 지시 사항과 조사 복명서(復命書)는 일본...
-
1905년(고종 42)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사실을 알린 고시.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은 내부 회람용이란 도장을 찍어 관보에 게시된 바 없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고시하였는데, 독도를 일본 땅에 편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회람본일 뿐이었으며, 공식적으로 고시된 사실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몇몇 사...
-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부에서 제작한 일본과 한국의 행정 관할 구역을 구분한 지도. 1946년 1월 29일 발표된 연합국사령부지령(SCAPIN) 제677호 「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상·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 데에 대한 각서」에는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 지역에 ‘Liancourt Rocks’(Take island)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관할 지도에도 ‘Take’라는 이름으로 독도가...
-
1594년 중국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로 독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 「왕반지여지도」는 1994년 중국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만든 지도 서적인 『중국고대지도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지도는 1594년에 처음 제작된 이후 1603~1626년 사이에 증본되었으며, 이번 자료는 증본된 것으로 추정된다. 독도를 가리키는 우산도의 ‘우(于)’를 ‘정(丁)’으로 잘못 읽어 ‘정산...
-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국왕에게 올린 보고서. 1906년 3월 28일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울릉군수 심흥택은 다음 날 바로 강원도관찰사에게 보고하였고, 그 내용은 강원도관찰사 서리 춘천군수 이명래가 1906년 4월 29일자로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호외’에 수록되어 있다. 심흥택은 강원도관찰사에게...
-
1890년 9월 오성일을 울릉도도감으로 임명하는 임명장. 1882년 이규원(李圭遠)[1833~?]이 울릉도를 개척한 이후 도장(島長)에 전석규(全錫奎)가 임명되었다. 1884년 전석규가 비리로 파면되자 같은 해 삼척영장이 울릉첨사를 겸하였고, 얼마 후 평해군수가 울릉첨사를 겸하였다. 1888년 2월에 첨사제를 도장제로 바꾸어 평해군 월송진(越松鎭)에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어 울릉...
-
1905년 독도의 일본 편입을 결정한 일본 정부 문서. 1904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의 시마네현에 거주하는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어업가가 독도 근해 지역의 물개 어로 독점권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일본 농상무성에 이를 교섭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기회를 틈타 독도에 해군 감시 망루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이에 일본 해군성 수로부장은 나카이 요사부로...
-
일본에서 간행된『자유신문』1882년(고종 19) 8월 2일자에 실린 독도 기사. 1882년 8월 2일에 일본에서 발행된 『자유신문』으로 당시 일본이 조선의 임오군란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것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싣고 있다.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밖으로는 무력적 위협을 가하고 안으로는 평화 담판으로 보상금을 요구한다. 토지를 할양받는 것은 영원한 원한을...
-
일본이 울릉도라 주장하는 삼봉도가 독도임을 증명하는 전경사진이 실린 일본 간행 전보신문 1906년 5월 27일자 기사. 『전보신문(電報新聞)』 1906년 5월 27일자 기사에는 러일전쟁의 전장지로 독도를 소개하고 있으며, 그 지형을 설명하면서 동도와 서도 그리고 관음도(觀音島)라 하여 3개의 섬을 열거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옛 기록에 나타나는 삼봉도(三峯島)는 울릉도를 가리킨다고...
-
1785년 일본의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한반도 지도. 하야시 시헤이[林子平]는 누나가 센다이번[仙台藩] 영주의 측실로 들어간 것이 인연이 되어 형과 함께 센다이번에서 일하였다. 센다이번에서 교육과 경제정책에 관해 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그만두고 전국을 걸어서 여행하였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알리며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해국병담(海國兵...
-
1617년 오오야 가문에서 발행한 안용복을 납치하여 에도 막부로 보낸 내용을 적은 문헌. 「죽도도해유래기발서공」에는 “당인(唐人)[조선인]을 에도 막부에 인도하고, 에도 막부는 즉시 심문하였다. 조사가 끝나 순차적으로 무엇인가를 내려 주고 귀국시켰다(唐人江府江御引渡 則江戶表御穿鑿 相濟順 御贈歸)”는 기록이 있다. 이외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내용이 광해군과 효종 시절의 일이 3번 언...
-
1883년 3월 1일 일본 태정대신이 발급한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는 문서. 일본에서 송도(松島)[竹島]라 부르고, 조선에서 울릉도(蔚陵島, 鬱陵島)라 부르는 곳에 일본인들의 도항(渡航)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각 지방관에게 하달(下達)하여 이를 준수토록 한 지령이다. 문서의 크기는 19.5×29.5㎝이다. 1882년 4월 조선 정부는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 이규원(李圭遠)...
-
1880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독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된 고지도. 지도의 전체 크기는 92.5×71㎝이고, 독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분 복사본은 36.5×26㎝이다. 「청국여지전도」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영토를 색으로 구분하여 조선은 흰색으로, 일본은 붉은색으로 표시하였다. 문제가 되고 있는 죽도(竹島)[지금 울릉도]와 송도(松島)[지금 독도]는 조선과 같은 흰색으로 그려져...
-
1832년 독일의 클라프로트가 제작한 것으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이 문자로 명시된 지도. 독일학자 클라프로트(J. Klaproth)[1783~1835]는 베를린 태생의 역사학자 및 언어학자로, 대부분의 서구 언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능통한 당대 제일의 동양학 학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베를린,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등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양학 관계 자료의 정리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