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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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長壽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3월 20일 - 정장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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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정장수 경상북도 의서군 안평면 대사동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정장수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20일 - 정장수 대구 지방 법원 징역 6월, 1년 2월 옥고 |
몰년 시기/일시 | 1953년 4월 12일 - 정장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정장수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정장수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장수(鄭長壽)[1899~1953]는 1919년 3월 15일 대사 교회의 영수 이종출을 비롯하여 교인들이 계획한 만세 시위에 찬성하고 오후 7시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3월 16일에는 동민 1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기도동(箕道洞)에서 창길동(倉吉洞)까지 시위를 벌인 후 해산하였고, 3월 17일 15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안평면 괴산동(槐山洞)을 출발하여 창길동(倉吉洞)·화령동(花寧洞)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3월 19일에는 동민 400여 명과 함께 대사동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한 뒤 안평 주재소로 몰려갔으며, 봉양면(鳳陽面) 도리원(桃李院) 장터로 나아갔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20일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1년 2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정장수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