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1079 |
---|---|
한자 | 衣生活 |
영어공식명칭 | Cloth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목진호 |
[정의]
경기도 시흥 지역의 의복과 관련된 생활문화.
[복식]
시흥 지역의 복식에는 남녀의 평상복(平常服)과 노동복(勞動服), 의례복(儀禮服) 등이 있다. 남자의 평상복은 여름과 겨울로 구분되는데, 여름에는 고의적삼[여름에 입는 홑바지와 저고리]을 입거나 외출 시 모시로 된 조끼와 두루마기를 입는다. 겨울에는 명주나 무명 옷감으로 만든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를 입고 토시를 끼며 두루마기를 걸친다. 여자의 평상복은 속옷으로는 고쟁이·단속곳·속속곳·속치마를 입었으며, 그 위에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추울 때는 마고자나 배자(褙子)[추울 때에 저고리 위에 덧입는, 주머니나 소매가 없는 옷]를 입고 외출 시 두루마기를 입었다. 여름에는 흰색의 모시나 면사, 안동포나 삼베로 된 적삼을 입었다. 봄과 가을에는 숙수[무늬 없이 평직(平織)으로 짠 천], 숙고사(熟庫紗), 자미사(紫薇紗), 명주로 된 옷을 입었으며 겨울에는 짙은 색 공단(貢緞)이나 명주 양단(洋緞) 등을 입었다.
노동복으로는 남성의 경우 여름에 굵은 삼베로 지은 등걸이 적삼과 잠방이를 입었고, 여성은 넓은 허리띠의 치마와 동그래저고리를 입었다. 요즘은 현장에 따라 노동복의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제공하는 유니폼을 제외하면 여성의 경우 여름철에는 스커트에 블라우스, 겨울철에는 바지와 스웨터를 입는다. 남성의 경우는 간편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는다.
의례복으로는 혼례복(婚禮服), 상복(喪服), 제례복(祭禮服), 특수 의상 등이 있다. 혼례복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복식이 나뉘는데, 신랑은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두루마기 위에 도포를 입고 사모(紗帽)를 쓰거나 비단신을 신는다. 신부는 다홍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고 원삼(圓衫)이나 활옷[전통 혼례 때에 새색시가 입는 예복]을 입고, 다홍색의 띠를 두르며 큰머리에 화관족두리를 쓰고 비단 꽃신을 신는다.
상복으로는 남성의 경우 바지와 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짚으로 만든 요질(腰絰)[짚에 삼을 섞어서 굵은 동아줄처럼 만들어 허리에 띠는 띠]을 허리에 두르고, 굴건(屈巾)을 쓰고 삼으로 만든 신을 신는다. 여성은 삼베나 깃광목[잿물에 삶아 바래지 아니한 광목]으로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짚으로 엮은 수질(首絰)[짚에 삼 껍질을 감은 둥근 테]과 요질을 하고 삼으로 만든 신을 신는다. 제례복으로는 기제사 때 남자는 바지와 저고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다. 여자는 옥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거나 흰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기도 한다.
특수 의상으로 삼 저고리와 수의(壽衣)가 있다. 삼 저고리는 갓난아기가 입는 옷을 말한다. 깃과 섶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고름도 달지 않으며 솔기가 나지 않도록 바느질하여 무명실을 몇 겹으로 꼬아 붙여서 고름 대신 쓴다. 수의는 망자의 옷이다. 이 옷은 베나 광목을 써서 만드는데 남자는 속적삼, 바지, 속바지, 저고리, 마고자, 두루마기, 심의(深衣)를 입는다. 여자는 속속곳, 바지 단속곳, 속저고리, 속치마, 겉치마, 저고리, 원삼을 한다. 조발랑[주머니], 악수(幄手)[손을 감싸는 헝겊], 면모(面帽), 버선, 신 등은 남녀 모두 동일하게 착용한다.
[방적]
시흥 지역의 방적(紡績)은 무명 짜기와 명주 짜기, 베 짜기와 모시 짜기로 나뉜다. 무명 짜기는 일년생초인 목화를 심어 목화씨와 목화를 분리시켜 솜을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이 과정은 두 과정으로 나뉜다. 먼저 활로 틀어서 솜을 부풀게 하여 통으로 꼬치를 만들어 물레에 돌려 실을 뽑는 과정이다. 다음에는 뽑은 실을 말뚝에 박아 타래로 만들고 바디에다 끼워 큰 솥에 넣고 삶아 건져 실에 풀칠을 하여 말린 후 도투마리에 말아서 틀에 짜는 과정이다. 명주짜기는 봄·가을로 누에를 쳐서 고치를 따고, 실을 뽑아서 손으로 추려 실을 모아 꾸리를 만든 다음 틀에 넣어 명주를 짜는 것을 말한다.
베 짜기는 삼을 심어서 자른 뒤 삼을 익힌 후 껍질을 벗겨 잿물로 주물러 물을 뺀 후, 손으로 길고 가늘게 갈라서 연결하고 꾸리를 만들어 물레에 걸어 실을 만든 뒤 수직기에 걸어 짜는 것이다. 모시 짜기는 모시나무의 껍질을 벗겨 잿물에 빤 다음 손으로 가늘게 잘라 비벼 연결시킨 후, 꾸리를 만들어 물레에 걸어 실을 만들고 꾸리를 삶아서 틀에 넣고 짜는 것을 말한다.
[염직]
시흥 지역의 염직(染織)은 염료와 염색법의 발달과 기계화로 가정에서 염색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전에는 가정에서 염색을 해 왔다. 염료로는 소나무 껍질, 도토리 물, 먹물, 치자나무 열매를 사용했다. 소나무 껍질은 물에 담근 다음 옷감을 넣어 주물러서 물을 들이는데, 자줏빛을 낼 때 사용했다고 한다. 도토리 물은 도토리 껍질을 깐 다음 물에 담가 두면 밤색 물이 우러나오는데, 여기에 옷감을 담갔다가 빨면 연한 검은색을 낼 수 있다.
먹물은 회색빛을 낼 때 사용하고, 치자나무 열매는 명주옷에 주로 사용한다. 이 열매를 물에 타면 주홍빛을 내는데, 옷감을 담가 두면 노르스름한 물이 든다. 무명의 표백은 콩깍지를 태운 다음 물에 타서 가라앉힌 후 잿물에 여러 번 삶아 내는 방법을 썼다.
[바느질]
시흥 지역의 바느질은 통솔 바느질법과 바느질 용구로 나눌 수 있다. 바느질법으로는 박음질, 감칠질, 시침, 쌈솔, 통솔 등의 바느질법을 이용하여 손수 바느질하여 입었다. 요즘은 시장에서 옷을 구입하여 입기 때문에 직접 바느질해서 입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바느질 용구에는 바느질 상자, 바늘꽂이, 바늘쌈, 실 상자, 가위, 골무 등이 있어서 시집갈 때는 반드시 챙겨 가는 전례가 있었다. 바느질 상자도 자개로 된 나무 상자나 오동나무 등으로 만든 뒤 색칠해서 만들었다.
바늘꽂이는 작은 통 속에 머리카락을 넣은 다음 바늘을 꽂아 쓰는 것이고, 바늘쌈은 바늘을 기름종이에 싸서 넣어 두고 쓰는 것이다. 실 상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실을 넣어 두는 것으로 종이 상자에 색종이를 붙여 만들었다. 가위는 바느질용으로 바느질 상자에 넣어 두고 사용한다. 골무는 보통 오른손 식지(食指)[집게손가락]에 꽂고 바느질을 할 때 쓰는데, 여러 개를 줄지어 끼워 두고 쓴다.
[세탁]
세탁으로는 여름철 시골 개울가에서 아낙네들이 하던 빨래가 있다. 빨래하던 곳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놓아둔 돌과 빨래를 삶던 화덕도 있었다. 예전에는 잿물을 광목 빨래할 때 사용했는데, 요즘은 고형 비누나 가루비누, 또는 중성세제 등으로 바뀌었다. 빨래에는 잔대뿌리와 쌀겨도 사용되었다. 잔대뿌리는 옷을 같이 넣어서 뿌리를 부숴 가면서 빨래를 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쌀겨는 채로 친 다음, 양잿물을 끓는 물에 녹여서 함께 겨를 개어 놓고 비누처럼 썼다. 이 비누를 겨 비누라 했다.
다듬이질은 빨래의 마지막 단계로 나무나 돌로 된 것을 집에 갖춰 놓고 사용하였다. 보통 광목이나 포플린 등의 면직물로 된 이불 빨래를 빨아 말린 후, 밥을 불려 풀주머니에 넣어 이불 빨래에 풀을 먹여 말리는데 마르기 전에 깨끗한 헝겊으로 싸서 밟고 다듬이 판에 놓고 다듬이질을 하여 이불 홑청을 만들었다.
[현황]
시흥 지역에서 옷감을 생산하기 위해 목화 생산 외에 모시나 삼을 기르거나 누에치기를 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옷감들은 주로 장시(場市)에서 구입했으므로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기타 농작물과 바꾸어 구입하였다. 옷감과 솜, 실 등의 구입은 사천장[지금의 시흥시 신촌동] 쇠퇴 이후인 1960~1970년대 도일장[지금의 시흥시 거모동]이나 안양장[지금의 안양시 안양1동], 그리고 인천 배다리[지금의 인천광역시 동구 금창동과 송현동 일대]나 부천군 소사읍[지금의 부천시] 등지의 장시를 이용했다.
오늘날 옷감은 재래시장에서 한복을 맞춰 입을 때 구입하거나 기성복을 주로 사서 입는 경우가 흔하다. 과거 일상복으로 쓰인 옷감은 광목과 인조견(人造絹) 등이었고, 이를 어리장수[어리처럼 생긴 그릇에 잡화를 담아서 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나 상점 등에서 구입한 물감으로 염색해서 입었다. 하지만 현재 시흥 지역에서는 직접 옷감에 염색하지 않고, 기성 제품을 사서 입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