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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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년 후백제 멸망 이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성남 지역 역사. 성남은 후삼국시대 한산주(漢山州) 또는 한주(漢州) 지역으로 궁예의 태봉에 속하였다가 왕건의 고려에 귀속되었으며, 삼국시대부터 정치 군사적으로 중시되어 온 곳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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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광산(光山)은 현 光州로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한다. 광산김씨는 고려조에서 8대 평장사를 배출하고, 조선조에서 왕비 1명, 상신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공신 7명, 문과 급제자 265명을 배출했다. 여말 선초에 김약채(金若采), 김약항(金若恒), 김약시(金若時)의 3형제 대에서부터 번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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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법정동. 금광동의 행정동은 금광1동과 금광2동이다. 주거 밀집 지역으로 신구대학교를 비롯하여 초·중·고등학교가 고루 분포하고 시장, 백화점, 공원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주거지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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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경기도 광주군 출신의 문신. 고려 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김약시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부인과 함께 광주의 금광리(金光里)[현재의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산골에 은거하였다. 그 후 김약시의 자손이 집성촌을 이루자 세상 사람들이 ‘광산김씨네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금광리라 칭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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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철종 9)~1894년(고종 31).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도순(道淳)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의 35세손이다. 부친은 김기석(金箕奭), 모친은 진천송씨와 함양박씨이다. 할아버지는 만포(晩圃) 김상식(金相植), 증조할아버지는 김인서(金人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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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순조 28)~1893년(고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공(士公)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35세손이다. 부친은 김의교(金義敎), 모친은 청송심씨이다. 조부는 김현일(金顯鎰), 증조부는 김재욱(金載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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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에서 1928년까지 활동한 무신. 자는 진옥(振玉)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의 35세손이다. 부친은 김기삼(金箕三), 모친은 고성이씨, 전주이씨이다. 조부는 첨추(僉樞)를 지낸 김상선(金相善), 증조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김낙서(金洛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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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철종 12)~1895년(고종 32).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윤일(允一)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의 35세손이다. 부친은 김기삼(金箕三), 모친은 고성이씨, 전주이씨이다. 조부는 첨추(僉樞)를 지낸 김상선(金相善), 증조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김낙서(金洛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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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의 별칭.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金光洞)은 1989년 5월 단대동의 일부를 금광동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인데, 원래 이 지역에 있던 자연 취락인 금광리의 지명을 살려 이름 붙인 것이다. 금광리에는 고려 말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김약시(金若時)가 은거하다가 별세하였는데, 그 자손이 벼슬에 오르고 집성촌을 이루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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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계통을 나타내는, 겨레붙이의 칭호. 성(姓)이라는 것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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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에 있는 이우 묘 및 묘갈 이우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97년(숙종 23)~1767년(영조 43)에 걸쳐 살았던 인물이다. 본관은 덕수, 자는 성빈(聖賓)으로, 증이조참판 이희함(李喜涵)의 아들이다. 1723년(경종 3) 생원이 되고 1751년(영조 27) 국제장원(菊製壯元)으로 급제하고 이듬해 정시급제하였으며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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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丹垈洞)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행정이 논골, 금광리를 병합 단대리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으며, 1971년 7월 창곡을 병합하여 단대동으로 되었다. 단대동은 1976년 10월 단대1동, 단대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다시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분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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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생(75세)으로 광산김씨이다. 600여년간 현재 중원구 금광2동에 광산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어 왔고, 본인도 여기서 낳고 살았다. 일제강점기 때 현 남한산성에 있는 남한산성초등학교에 다녔다. 당시는 송파, 중부면, 하남시 일대에 국민학교가 하나밖에 없었다. 신익희 선생도 남한산성초등학교 2회 졸업생이란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6㎞ 정도 된다. 중학교는 당시 중고등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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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로, 가족은 부인과 자녀 2남 3녀이다. 큰딸은 시집가서 외손녀가 중학교 다니는데 같은 집에서 동거한다. 다른 아들과 딸들은 분가하여 따로 산다. 결혼은 스물두 살에 했다. 부인은 광주이씨로 양주 출신인데, 당시 세살 아래로 열아홉 살이었다. 전통혼례로 처가에서 치르고 다음날 하루에 집에 못 와서 중간에 하남에 있는 친척 집에서 자고 왔다. 선산은 원래 금광2동 현재 신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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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丹垈洞)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행정이 논골, 금광리를 병합하여 단대리라 하여 중부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창곡을 병합하여 단대동으로 되었다. 단대동은 1976년 10월 단대1동, 단대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분동되었다. 그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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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이라고 짜놓고 생활한 적은 없고, 주식은 밥, 김치, 된장, 고추장이었다. 쌀은 뒤주나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였고, 채소는 겨울에 움집에 넣어 보관하였으며, 가정마다 메주를 만들어 간장과 된장을 담갔다. 간식으로는 조청이나 엿을 고아 먹었거나 배급 나온 흑설탕을 즐겼고, 손님이 오면 계란을 찌거나 닭을 잡아 대접하기도 하였다. 계절에 따른 음식으로 봄에는 쑥을 넣은 개피떡,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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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즉, 땅을 인식하고 그 땅과 다른 땅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 사람이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생활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 자연적 환경이나 지형의 특색, 또는 당시의 산업이나 사회제도 등의 인문적 특성을 반영하여 땅에 각각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명에는 사람들의 사상, 의지, 생활모습, 언어, 풍속, 도덕, 종교 등이 표현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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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같은 본관을 가진 성씨끼리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이란 동족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성씨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원시사회에서 씨족생활이 이루어지듯이 근대 도시사회로 발전하기까지 농업국가에서는 같은 씨족끼리 모여 살게 되어 있다. 우리 민족이 성(姓)을 가진 것은 아득히 먼 옛날이다. 그러나 왕족이나 귀족은 일찍부터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민이나 노예는 근대사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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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한숙의 묘표. 한숙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91년(숙종 17)~1708년(숙종 34)에 걸쳐서 살았던 인물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달부(達夫, 建夫)로, 한선경(韓善慶)의 아들이다. 재예(才藝)가 있었으나 천연두로 요절하였다. 부인인 유인(孺人) 광산김씨는 김응서(金應瑞)의 조카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