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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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所 |
영어음역 | So |
영어의미역 | Silla's Local Administrative District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갑동 |
[정의]
고려시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촌락 집단.
[개설]
소는 신라시대부터 존재했던 향(鄕)·부곡(部曲)과는 달리 고려조에 들어와 처음 발생하였다. 향·부곡이 농경에 종사한 반면에 소는 주로 왕실이나 관아에 필요한 수공업, 광업, 수산업 분야의 공물을 생산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7 여주목의 등신장(登神莊) 조의 기록에는, “고려 때에 또 소(所)라고 칭하는 것이 있었는데,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사소(絲所)·주소(紬所: 명주 옷)·지소(紙所)·와소(瓦所)·탄소(炭所: 숯)·염소(鹽所: 소금)·묵소(墨所: 먹)·곽소(藿所: 콩)·자기소(瓷器所)·어량소(魚梁所: 물고기)·강소(薑所: 생강)의 구별이 있어 각각 그 물건을 공급하였다.”고 한다.
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신분에 대해 종래에는 천민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향·부곡민과 함께 양인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다만 그들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업 제품을 생산하였기에 다른 지역보다도 중앙의 기관이나 권세가의 집중적인 수탈 대상이 되었고, 과중한 공물의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기록에 의하면 12세기 초 향·소·부곡 가운데 소지역의 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 지역에서 도망하였다고 한다. 나아가 12세기 후반 대규모 민중봉기는 향·소·부곡 집단이 해체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무신정권시대에 망이·망소이 형제가 고역에 견디다 못해 1176년 공주의 명학소에서 난을 일으켰다 진압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이 자취를 감추었다.
[저정소와 등수소]
논산 지역은 고려시대에 공주목의 통제를 받는 위치에 있었는데 공주목 관할 하에는 여러 소가 있었다. 즉 공주목 소속의 명학소·금단소·갑촌소·촌개소·복수소·박산소·금생소 등이 있었으며 한산군 소속의 안곡소, 임천군 소속의 고다지소·소라소·금암소, 회덕군 소속의 침이소, 니산현 소속의 저정소(猪井所)·등수소(登水所), 부여현 소속의 풍지소, 연기현 소속의 연천소 등이 있었다.
이 중 논산 지역의 소로는 저정소와 등수소가 있었다. 저정소는 니산현의 남쪽 14리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마본촌(馬本村)으로 개명되었는데, 지금의 논산시 노성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등수소는 니산현의 남쪽 13리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득윤촌(得尹村)으로 개명되었는데, 지금의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가 그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18 니산현 토산(土産) 조에 보면, “철(鐵)이 현 남쪽 천동(泉洞)에서 난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저정소와 등수소는 철을 생산하여 제품을 만드는 철소일 가능성이 많다. 소 역시 상위 군현의 통제를 받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들어진 철 제품은 니산현을 거쳐 공주목으로 수송되고 최종적으로는 중앙에 바쳐졌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