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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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鶴山烽燧址 |
이칭/별칭 | 성산 봉수(城山烽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배성수 |
성격 | 봉수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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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959년 - 문학산 봉수 미군 부대 기지 건설로 훼손 |
소재지 | 문학산 봉수 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산 정상에 있었던 봉수의 터.
[개설]
봉수란 봉(峰)과 수(燧)로 급보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 방법으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전달하던 것이다. 야간에는 횃불이 잘 보이지만 주간에는 잘 보이지 않아 대신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대략 3,927m[1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었다.
문학산 봉수(文鶴山 烽燧)는 문학산 마루에 높이 3m의 고분형 축산(築山)을 하여 만들었다. 때문에 문학산의 모양이 마치 배꼽처럼 생겼다 하여 문학산을 배꼽산으로 불렀다. 한편 문학산 봉수는 문학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산 봉수(城山烽燧)라고도 했다.
문학산 봉수는 노선과 성격상 남쪽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질애 봉수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의 축곶 봉수에 보내는 역할을 하였던 제5거 직봉 노선의 연변 봉수이다. 제5거 직봉 노선은 전라남도 여수 돌산도 봉수에서 시작하여 목포 유달산 봉수, 부안 호리산 봉수, 아산 대합산 봉수, 화성 홍천산 봉수와 인천 문학산 봉수 등 우리나라 남서해안을 따라 올라와 한성의 목멱산 봉수로 전달되는 봉수로를 말한다. 대응 봉수와의 직선 거리는 오질애 봉수와는 10.75㎞, 축곶 봉수와는 11.5㎞의 거리를 두고 있다.
[변천]
조선 시대 서남해안을 따라 서울로 전달되는 제5거 직봉 노선에 속해 있는 문학산 봉수는 인천 연안으로 침입하는 적들을 경계하고 그 상황을 한성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설치한 봉수이다. 조선 초기 이 봉수대는 인천 연안으로 침범하는 왜구를 감시하고 경보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신미양요 때에는 작약도 앞바다에 정박해서 강화도를 오가던 미국 함대를 감시하기도 하였다.
[위치]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에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으로 넘어가는 삼호현 정상에서 동쪽 방향으로 오르면 문학산 주봉에 이르고 주봉의 정상에 문학산 봉수 터가 있다.
[현황]
1959년 문학산 정상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기지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정상을 깎아내면서 문학산의 높이가 해발 234m에서 213m로 낮아졌다. 그리고 산 정상에 있던 봉수대도 역시 파괴되었다. 현재 문학산 주봉의 정상부에는 공군 레이더 기지가 들어서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