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
농사에 필요한 물을 농지로 끌어대기 위해 설치한 인공 시설. 농작물이 자라는 데는 물이 필요하며, 특히 벼의 생육에 있어 물의 공급은 필수적이다. 더구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일은 작물의 생육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농토를 기름지게 하거나, 또는 땅의 온도를 높여 작물의 냉해를 막거나 경운(耕耘) 또는 제초 등의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물을...
-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것.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주나라 때의 『역경(易經)』에 나오는 “관국지광이용빈우왕(觀國之光利用賓于王)”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 나라의 사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왕을 알현하고 자기 나라의 훌륭한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관찰함이 왕의 빈객으로 대접...
-
진도군의 모든 원수는 저수지에서 취수하고 있으므로, 덕병리 역시 취수탑을 통한 취수형태를 취하고 있다. 진도군의 취수지는 4개의 수원지에서 취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회동수원지는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위치하고 있고, 제방의 규모는 길이는 232m이고 높이는 24.5m이다. 시설용량은 861㎦이고 급수구역은 진도읍 지역이다. 녹진수원지는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에 위치하고 있...
-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략을 피해 전라남도 진도지역 주민이 해남 금산(金山)으로 이주한 사건. 여말선초 왜구가 창궐했을 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진도 또한 끊임없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이에 진도군민의 생존대책의 자구책을 찾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1350년경 진도군민 전체가 해남 금산으로 이사하면서 군치소도 함께 옮겼다가, 1437년 진도로 다시 돌아온 사건이다. 고려 말부...
-
고려 후기의 무장(武將)·정치가. 김방경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서 대몽항쟁의 주력인 삼별초(三別抄)를 진압했고, 원의 일본 정벌 때 고려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본연(本然).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부상서·한림학사를 지낸 김효인(金孝印)이다. 김방경은 첫 부인으로 박익정(朴益旌)의 딸을 맞이하였다. 기거랑지제고중서사인을 지낸 박익정은 무인 집권...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도(凊道). 초명은 중룡(仲龍). 고려시대 시중(侍中)을 역임한 김여흥(金餘興)의 셋째 아들로 청도김씨의 시조이다. 선계(先系)는 김알지(金閼智)라 기록되어 있고,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悅)의 7세손이다. 1190년(명종 20)에 경상북도 청도군 하남면 대성리(大城里)에서 태어났다. 1218년(고종 5) 문과에 장원급제...
-
고려 후기의 무신. 1270년(원종 11) 원종이 몽고와의 화평 교섭에 의하여 출륙환도(出陸還都)를 결정하고 삼별초의 명단을 압수하였다. 이때 노영희는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배중손과 함께 궐기하였다. 이들은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반몽고, 반개경정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항전을 위하여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겼다. 진도에 근거지를...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저수지에 위치하였던 백조도래지. 둔전마을에 있는 둔전저수지가 1958년 준공되었을 당시 물고기가 풍부하여 백조 200여 마리가 찾아왔다. 백조도래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군내면 둔전마을 백조도래지를 천연기념물 제101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10여 년 뒤부터 물고기가 줄어들었고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된 뒤로 둔전저수지 옆으로 도로가 지나게 되면서 백...
-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습속. 민속은 민중들의 삶속에 일상적, 집단적, 유형적으로 되풀이되어 누적된 지식, 기술, 행위 등의 총체적인 문화현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따라서 민속은 공간적, 역사적, 시간적 조건에 의해 형상화된 민(民)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진도는 공간적으로 한국의 남해(南海)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島嶼)로서 천혜의 자연경관과 비옥한 농토가 많아 고려시대부...
-
고려 후기의 문신.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기세를 떨치고 있을 때, 고려 정부와 몽고는 삼별초를 회유하기 위해 몽고 사신 두원외(杜員外)와 함께 박천주(朴天澍)를 1271년(원종 12) 1월 6일 진도로 보냈다. 삼별초는 회유하러 온 두원외와 박천주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는 몰래 병선(兵船) 20척으로 관군을 습격하여 배 1척을 나포하고 군사 90명을 죽이고 두원외를...
-
고려후기 삼별초를 이끌었던 장군. 배중손이 역사에 뚜렷이 부각되는 것은 삼별초의 대몽항전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의 경력은 자세하지 않다. 왕정복고파와는 달리 대몽항전의 지속을 주장하였던 임연(林衍) 부자 계열에 속하는 무인으로, 임연 부자의 몰락 후에 대몽 강경파의 선봉에 서서 비타협적 항전을 계속한 인물이다. 배중손은 서반의 장군인 동시에 가장 유력한 삼별초의 지휘관이었던 까닭에...
-
고려 후기 대몽항전을 이끈 삼별초의 장수 배중손을 기리기 위한 사당. 고려 1270년(원종 11)에 몽고 침략에 대항하여 거병한 삼별초 항쟁의 지도자 배중손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제향일은 6월 15일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임회면 굴포리 마을에는 당(堂)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는 농악을 연주하고 배중손 장군과 삼별초군, 고산 윤선도 제를 모시는 전통이 있었다. 195...
-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1에서 10까지 숫자가 새겨진 엽전으로 하는 민속놀이. 살랭이놀이는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전승되는 남성 중심의 투전놀이에 속하는데, 살랭이노래라는 음영식(吟詠式)의 노래를 통해 놀이가 이루어진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는 사시랭이놀이라는 명칭으로 전승되고 있다. 살랭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알만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놀이의 방법을 통한 두 가지 추측이 있다....
-
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
영양소를 함유한 식품을 적절히 섭취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동. 좁은 의미의 식생활은 즐겨먹는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만을 말하나, 넓은 의미로는 식품의 종류, 이를 조리하는 방법, 조리기구, 음식, 식사예절 등 음식을 먹기 위한 모든 행동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식생활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식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지리적, 기후적...
-
고려 후기의 재상. 신사전(申思佃)은 무반으로 관직에 나아간 듯하며 1260년(원종 1)에 상장군에 올랐다. 1263년(원종 4)에 병부상서가 되었고, 이후 재추의 반열에 들었다. 1268년(원종 9)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가 되었고, 뒤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찬성사(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고, 1289년(충렬왕 15)에 생을 마감하였다. 1259년(원종 즉위) 고려와...
-
고려 후기 삼별초의 토벌에 참여한 몽고 원수. 1270년(원종 11) 몽고 원수 아해(阿海)는 전라도추토사로 임명된 김방경과 함께 진도로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 갔다. 아해는 김방경과 함께 삼견원(三堅院)에 주둔하면서 삼별초와 여러 날 대치하였다. 대치하던 중 반남 사람 홍찬(洪贊)·홍기(洪機)가 아해에게 “김방경과 공유 등은 비밀리에 반적과 서로 내통하고 있다.”고 고하였다. 이...
-
고려 후기의 문신. 1255년(고종 42) 판사천국사(判司天局事) 안방열은 몽고군에게 파괴당한 지릉(智陵)[명종의 능, 경기도 장단군]을 수축하였다. 1259년(고종 46) 술사 백승현(白勝賢)이 강화의 삼랑성(三郎城)에 가궐(假闕)을 지으면 왕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진언하였다. 왕이 안방열에게 가궐 건축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해 묻자 “백승현의 말은 믿을 수는 없으나 한번 시험해...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
고려 후기의 왕족으로 삼별초에 의해 진도에서 왕으로 추대된 인물. 왕온은 고려 현종의 8대손이다. 청화후 왕경(王璟)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로 왕서·왕염(王剡)·왕정(王珽)이 있다. 아들은 왕환(王桓)이다. 왕춘(王瑃)·왕희(王禧)·왕기(王祺)가 숙부이다. 승화후(承化侯)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고려와 몽고가 강화하기로 하고 왕실이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
-
북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성장한 몽고(蒙古)와 같은 유목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복대상은 남쪽의 농경민족이었다. 농경민족들이 지니는 풍부한 생산품이 그 구미를 돋우어 준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금(金)·송(宋)과 함께 고려도 몽고의 침략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을 치고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을 정복하기 위한 기지를 구하려는 목적도 몽고가 고려에 침략의...
-
진도의 삼별초정권은, 이를 나위조차 없는 일이지만, 반몽(反蒙)을 기치로 내세웠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배중손이 노영희 등과 더불어 변란을 일으키고서는,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 외치기를 몽고 군사가 크게 이르러 인민(人民)을 마구 죽여 대니, 무릇 나라에 힘이 되고자 하는 이는 모두 격구장(擊毬場)으로 모여라’라고 하였다. 잠깐 동안에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들었...
-
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
삼별초(三別抄)는 최씨 무인정권에 의해서 창설된 군사조직이었다. 야간순찰과 같은 공적(公的)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 시초는 최씨정권의 제2대 집권자인 최이가 수도의 치안을 빙자해서 창설한 야별초(夜別抄)라는 특수부대였다. 무인의 일당인 악소(惡少)의 무리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막아 그 정권을 공고히 할 목적에서였다. 이 야별초가 후에 소속 군인...
-
삼별초는 반개경정부(反開京政府) 그리고 반몽고(反蒙古)의 노선을 표방하며 거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앞서 같은 해 5월 23일에 재상들이 회의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하자 삼별초는 그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을 처음 드러냈었다. “재추(宰樞)가 모여 옛 서울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날을 정하여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딴...
-
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
지표상의 인문적 여러 요소를 분성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연구하는 분야. 진도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를 비롯해 유인도 44개(430.82㎢), 무인도 185개 등 총 229개의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430.82㎢, 해안선 길이 650.0㎞에 달하는 서남해의 관문 지역이다. 총 15,719세대에 인구는 36,619명이다. 행정구역은 1읍 6면...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일대의 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 백제 때는 매구리현(買仇里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제도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첨탐현(瞻耽縣)으로 개칭되면서 뇌산군(牢山郡)[嘉興縣]의 영현이 되었다. 첨탐현(瞻耽縣)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임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임회현은 폐현되어 진도현에 합해졌다. 『삼국사기(...
-
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유리와 군내면 덕병리 해안 일원의 백조도래지. 백조는 오리과 고니속에 속하는 철새로 고니라고도 한다. 학명은 Cygnus columbianus jankowskii ALPH0x8040RAKY이다. 고니는 큰고니보다 작지만 매우 흡사하다. 온몸이 백색이고 얼굴에서 목까지는 등갈색이다. 부리의 앞 전반은 흑색이고 기부쪽은 황색이다. 황색 부분의 선단은 둥글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1270년 (원종 11) 배중손과 노영희 등이 몽고에 굴복한 고려 정부에 반발하여 삼별초와 그 지지자들을 이끌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이곳에서 부서(部署)를 정하고 관부(官府)를 열었으며, 궁궐과 성곽을 쌓고 몽고 침략자와 개경 정부에 반기를 들어 승화후 온(承和侯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왕실과 대립되는 정권을 세웠는데, 이...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진도 남도진성의 남문 밖에 세워진 2개의 다리. 쌍운교와 단운교는 진도 남도진성의 남문 밖을 흐르는 개울인 세운천을 건너는 2개의 무지개다리이다. 진도 남도진성은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고와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쌍운교는...
-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보호 및 육성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토종개. 진도개는 한국의 대표적인 토종개로 문화재보호법과 한국진도개보호육성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른 인공육종견들에 비해 충성심이 강하고 영민하여 미래적 가치가 풍부하다. 진도군에서는 진도개시험연구소를 설치하여 보호·육성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인을 찾아 충청도 대전에서 진도까...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몽고 승려. 진도에서 태어났으나 1271년(원종 12) 진도 삼별초 토평 때 몽고에 잡혀가 스님이 되어 원나라 황제의 스승이 되었다. 1294년(충렬왕 20) 7월 고국의 부모를 찾아 고려 개성에 왔을 때 고려 관리들이 조복을 갖추고 성문 밖에 나가 맞아들여 숙능사에 머물게 했다. 부모가 진도를 떠나 충청남도 서산에서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