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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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있는 유인등대. 조도면 가사도 등대는 가사도 최남단에 위치하는 등대로서 1915년에 처음으로 점등하였다. 처음 점등할 때는 무인등대였으나 등대 주변에 많은 섬이 산재해 있고, 안개가 연간 1500시간이 넘게 발생하여 부산이나 제주에서 인천과 목포 방면으로 통항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광력증강이 필요하여 1984년에 유인등대가 되었다. 조도면 가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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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지형이 가새(가위)형국이라 가사도라 불렀다는 설과, 주변 섬들을 불의불형(佛衣佛形)의 모습으로 보아, 스님이 장삼 위에 걸치는 법복인 가사(袈裟)에 해당하는 형국이라 가사도라 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사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도』에는 ‘伽西’로,『대동여지도』에는 ‘加沙’로, 『진도읍지』에는 ‘伽士’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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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입향한 진주강씨 입도조. 본관은 진주. 시조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강희맹[1424~1483]이고, 조부는 강학손(姜鶴孫)[1455~1523]이며, 아버지는 강기수(姜期壽)[1481~?]이다. 진주강씨 진도 입도조로, 부인 창녕조씨와의 사이에 강극성·강극주·강극세 세 아들을 두었다. 할아버지 강학손이 무오사화 때 영광에 정착한 뒤에 그 후손들이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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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활동한 기업인. 본관은 신천이고 제주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모노가와[木北川]가 경영하던 진도의 만물상회에서 장사를 배웠다. 그후 진도읍 남동에서 진도산업주식회사라는 큰 잡화상을 운영하였다. 1935년 9월 목포에서 간행하던 월간지 『호남평론』에 진도 10대 기업인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의 아들 강연수(康連洙)[1928~ ]는 1961년 진도보건소장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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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 로마 카토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분파. 미국 북장로교 한국선교회는 1884년 9월 알렌(Horace N. Allen)을 파견하여 한국의 평안도 지역과 경상북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1892년에 한국에 도착한 미국 남장로교 7명의 선교사들은 호남 지역에서 활동했다. 미국 남장로교회 한국선교회 소속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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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위치한 동거차도와 서거차도를 포함한 크고 작은 섬들. 거차군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 있는 섬들의 무리를 말한다. 거차수도(巨次水道)의 서남쪽에 있는 서거차도와 동쪽에 있는 동거차도를 비롯하여 윗대섬[上竹島]과 아랫대섬[下竹島]·상송도·송도·항도 및 북도로 이루어져 있다. 동거차도는 거차군도의 도서 중에서 가장 크다. 이 해역의 섬들이 마치 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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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의 해창(海倉)이 있던 곳으로, 큰 선창인 해창과 구분하여 작은 선창을 고작(庫作)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1910년 경 진주강씨 강도민이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왔다. 1913년 고작리에 방조제가 완공된 후 목포까지 왕래하는 선착장이 세워졌다. 이후 밀양박씨, 광산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쪽은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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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에 속한 섬. 섬 주위에 미역이 많이 자생하여 곽도(藿島)라 하였다고 한다. 곽도에서 나는 천연미역의 질이 좋아 미역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섬 해안은 갯벌이나 모래사장은 없고 암벽으로 되어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2.5㎞ 이다. 1700년 경에 주민이 들어와 정주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동경 125°51′, 북위 34°11′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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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이 속한 관사도는 섬의 모양이 황새처럼 생겼으므로 관새섬 또는 관사도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대마도와 소마도에서 군마를 길렀는데 이 말을 관리하던 관청이 이 섬에 있었기 때문에 1789년에 실시한 인구조사 기록에는 관청도(官廳島)로 표기하고 있다. 군마를 키우던 막사의 흔적과 목장성이 남아있다. 1700년경에 연안차씨, 한양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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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사도리에 속하는 행정리. 관작리가 속한 관사도는 섬의 모양이 황새처럼 생겼으므로 관새섬 또는 관사도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대마도와 소마도에서 군마를 길렀는데 이 말을 관리하던 관청이 관사도에 있었기 때문에 1789년에 실시한 인구조사 기록에는 관청도(官廳島)로 표기하고 있다. 군마를 키우던 막사의 흔적과 목장성이 남아있다. 1700년경에 연안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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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있는 섬. 공식적인 섬 명칭은 광도이지만 섬의 모양이 보는 위치에 따라 변한다고 해서 광대도(廣大島)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섬 전체 모양이 사자 한마리가 앉아 하품을 하고 있는 형상이라 사자섬이라고도 부르며 또 다른 이름으로 광덕도라 부르기도 한다. 광도는 섬 전체에 소나무와 동백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도의 주봉은 신선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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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짐을 한 장소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기는 일. 교통은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재화(財貨) 등 유체물(有體物)은 물론 의사(意思)·정보 등 무체물(無體物)의 장소적 이동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그 중 유체물의 장소적 이동을 뜻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항상 일정한 지역적인 확대를 가진다. 이 지역적인 확대, 즉 공간적 거리를 극복하는 행위가 교통이다. 교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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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리는 진도의 대표적인 갯벌이 있는 어촌마을이었다. 무안과 목포의 낙지잡이 전문가들이 와서 낙지를 잡아갈 정도였다. 고막, 바지락을 캐고, 운저리(표준어로는 문절망둑이 맞으나 이 지역에서는 운저리라 부름)을 잡아 읍내 장에 팔고 반찬을 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덕병에서 용인으로 잇는 원을 막았다. 그리고 2000년대에 덕병을 둘러싼 마을 한의와 내리를 막는 방조제가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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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진도의 역사는 민족사의 고난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진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이 일찍부터 시작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진도가 목포·해남에 인접한 다도해의 요충지로서 풍부한 농·수산물의 생산지인 때문이다. 이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대해 진도민의 저항 또한 거세었다. 또한 3·1운동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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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호리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금호도에서 유래되었다. 금호도는 금(金)섬이라고 불리다가 섬과 섬 사이의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금호도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섬에 보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삼별초 항쟁 당시 정4품 벼슬을 한 김시랑이 들어와 살았다고 해서 그의 성(姓)을 따서 김(金)씨섬이라고도 불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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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있는 섬. 나배도는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서 섬의 모양이 마치 나비(고양이를 일컫는 사투리)를 닮았다 하여 나비섬, 나부섬, 나배섬, 또는 나부도, 라배도, 접도, 접등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나배도라 하였다. 나배도의 남쪽에는 납섬(소라배도)이라는 섬이 있다. 섬 서쪽 끝에는 물치끝이라는 새부리처럼 생긴 여가 있다. 해안선 길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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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설치한 조선 전기의 수군진. 전라수영(全羅水營)은 영산강 하류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왜구를 방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조정에서는 1423년(세종 14) 전라수영을 목포(木浦)로 옮겼다. 그리고 목포의 병선은 황원(黃原)의 남면 주량(周梁)[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수영의 병선 3,4척을 매달 윤번으로 진도의 서쪽 소가포(所可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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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내병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지역으로 지형이 갈매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갈미섬, 갈매기섬, 구도(鷗島) 혹은 안에 있다고 하여 안갈미섬으로도 불린다. 또 두 섬이 나란히 있다고 하여 병도(竝島)라고도 불렸다. 1880년대에 나온 『대동여지지』에는 ‘내병도는 북섬(북끝)으로, 외병도는 징섬 또는 장기미’라고 씌어있는데, 진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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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있는 섬. 지형이 누룩처럼 생겼다하여 누룩섬 또는 눌옥도라고 칭했다고 한다. 1789년 조선시대에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늘옥도로 기록되었다. 눌옥도의 가장 높은 곳의 표고는 112.1m이며 0.9㎞길이의 자갈(몽돌)밭이 있다. 섬의 암석은 주로 응회암으로 구성되어있다. 1700년경에 밀양박씨 박종관의 5대 손인 박종찬이 맨 처음 입도하였다. 그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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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눌옥도리라는 지명은 지형이 누룩처럼 생겼다고 하여 누룩섬 또는 눌옥도라고 칭했다고 한다. 1789년 조선시대에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늘옥도로 기록되어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눌옥도리 하나뿐이다. 1700년경에 밀양박씨 박종관의 5대 손인 박종찬이 맨 처음 입도하였다. 그 후에 김해김씨, 경주이씨, 인동장씨 등이 입도해서 마을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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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에 속해있는 섬. 거차도의 동쪽이 되므로 동거차도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거차리로 변경했다. 마을 동서로 동육리와 동막리가 있다. 막그미 또는 막금이라고 불리는 동막리가 가장 큰 마을이다. 부속섬으로 동육리 북동쪽에 망도(網島) 또는 망태섬, 동육리 동쪽에 북처럼 생긴 북섬, 동막리 서쪽에 소나무가 무성한 솔섬(송도)과 아랫 솔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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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위에 있는 서거차도, 북도, 웃대섬, 상송도, 송도, 항도와 함께 거차군도를 이룬다. 거차군도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동거차도(東巨次島)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1700년 경 진주강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동거차리라고 하였다.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이다. 해안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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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뒷산에 신당을 모시고 있으므로 모실 또는 맹성리가 되었다. 맹골도라는 이름은 맹골도, 죽도, 곽도 등 섬과 간댓여, 아랫여, 웃여 등 많은 여가 대부분 바위섬들로 이루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 섬에 매가 많다 하여 매응골도라 부르기도 한다. 1800년 경 완주이씨 이동신의 선조가 입도하였고 같은 시기에 해주최씨 최형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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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명량해협은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명량해협은 이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이다.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간의 좁은 해협인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 시속인 11노트에 이르며 젊은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고,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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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박사배는 1912년 12월 3일 진도군 조도면 창리에서 박덕협(朴德俠)[조도면장]과 청주한씨(凊洲韓氏)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영양천씨(潁陽千氏)이며 아들 3형제가 있다. 1962년 향년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1929년 전라남도 목포상업학교 2학년 재학 중에 퇴학당하였다. 목포상업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사배는 1929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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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박종식은 1910년 12월 20일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서 박원배(朴元培)와 곽동순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창녕조씨 조순덕과의 사이에서 박창원(재미실업가), 박경원, 박지원(전 청와대 대변인,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등 3남 1녀를 두었다. 1948년 향년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으로 시작된 목포학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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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쓰이는 토박이 언어를 통칭하는 말. 진도 방언은 적어도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전라남도 전역에서 두루 쓰이는 방언, 전라남도의 하위 방언인 서남부 방언(무안, 목포, 영암, 신안, 완도, 진도, 해남, 강진, 장흥 등의 방언)에 속하는 요소, 그리고 진도 지역에서만 쓰이는 고유한 표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요소는 진도 방언에서 ‘전라남도 전역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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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위치한 나루. 벽파나루는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진도에서 가장 번창했던 나루로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와 해남군 황산면 옥동 삼지원(三持院) 사이 2.8㎞를 연결하고 있다.『옥주지(沃州志)』에 의하면 벽파나루에서 해남군 화산(花山), 영암군 송지(松枝), 제주도 등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1272년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항전할 때 벽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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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항구. 벽파항은 진도군과 해남군을 연결하는 항구이다.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 있는 울돌목은 진도군과 육지를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해협이다. 그러나 울돌목은 조류 속도가 빨라 육지와의 연결 항로로 부적합하였다. 그래서 벽파항은 진도대교(珍島大橋)가 건설되기 전까지 진도군과 해남군을 연결하는 가장 번창한 항구였다. 벽파리는 해변에 핀 벽도(碧桃)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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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도는 섬이면서 섬이 아닌 독특한 곳이다. 하지만 진도 문화의 형성 기저는 ‘바다’이다. 진도에 독특한 노래와 춤, 그리고 민속 문화가 형성되고 전승된 것은 섬이기에 가능했고, 지금 현재화되는 것도 섬때문에 가능하다. 전자의 섬이 육지로 가고 싶었던 섬이라면, 후자의 섬은 육지 사람들이 찾는 섬이라는 차이가 있다. 진도가 섬스럽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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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사고 팔아서 이윤을 창출하는 행위. 전라남도 진도군의 상업은 시장, 도소매업, 서비스업, 식품제조 및 가공업, 금융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시장은 5개소가 운영 중에 있으며, 도소매업은 839개소가 성업 중이다. 1. 시장 2005년도를 기준으로 전라남도 진도군의 시장분포를 보면, (표 1)에서와 같이 정기시장이 4개소, 일반시장이 1개소로 총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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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있는 섬. 하조도·나배도·옥도·대마도 등과 함께 조도군도(鳥島群島)를 이룬다. 작은 섬들이 마치 새떼처럼 많이 흩어져 있는 조도군도의 위에 있다는 뜻이다. 삼국시대 때는 제주도를 오가는 배가 정박하던 곳이어서 정주도(停舟島)라고도 하였다. 섬은 산지, 평지, 갯펄, 사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심하며, 섬의 남쪽에 발달한 간석지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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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있는 섬.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서 동거차도·항도·윗대섬·아랫대섬 등과 함께 거차군도를 이룬다. 다도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대흑산도의 흑산항과 함께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었다. 거차군도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거차도로 불렀다. 거차도는 백제시대부터 어획조업에 긴요한 지점으로, 무역선과 여객선이 ‘거차(去次)한다’는 뜻에서 ‘거차도’라 하였다는 설과 거차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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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물길이 거친 곳이라 하여 거차도라고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 백제시대 이래 무역선과 여객선이 거차(去次)한다는 뜻에서 거차도라 하였다고 한다. 서거차도리는 거차도의 서쪽에 위치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1600년대 말 한양조씨 조천배의 선조가 하조도 육동리에서 처음으로 들어왔다. 그 후 1700년대 초 밀양박씨·김해김씨·전주이씨·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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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과거에 해적들이 조세 운반선의 곡물 등을 노략질하며 살아 왔는데, 당시 해적 두목은 자신의 성인 성(城)씨와 이 섬이 남방에 있다는 점을 연결하여 ‘성남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설이 전한다. 한편, 진도의 체도인 지산면 세포와 심동 사이에 옛날 성이 있어서 그 성의 남쪽에 있는 섬이라고 하여 ‘성남리’라는 설이 있다. 17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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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교파의 하나인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이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모이는 회당. 진도의 천주교 선교는 1870년경 제주도 선교를 담당했던 프랑스 신부가 범선을 타고 목포로 가던 중 심한 풍랑을 만나 상조도 동구리에 안착하면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신부는 천주교 설교 및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그 결과 프랑스 신부가 진도에 표착한 지 30년 후인 1900년~1904년에 동구리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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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조선 말엽 이곳에서 이웃 대마도와 함께 군마를 길렀다고 전한다. 일설에 의하면 ‘소마도’라는 이름은 대마도와 같이 섬의 생김새가 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대마도는 큰 말, 소마도는 작은 말을 의미한다. 1600년대 초에 상조도 율목으로 입도한 양주허씨 후손들이 소마도에 들어왔다. 조금 뒤에 해남 화산면에서 경주최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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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를 예방·경계 또는 진압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 근대적인 소방행정은 갑오개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4년 7월 14일 지금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경무청(警務廳)을 설치하고 행정경찰장정(行政警察章程)을 제정하여 치안업무뿐만 아니라 소방업무까지 관장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1895년 4월 29일에는 경무청 직제를 제정하여 경무청에 경무사관방(警務使官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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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있는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마을. 정보화 마을 사업은 농어촌이나 산촌과 같이 정보화에 소외된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 조성과 전자 상거래와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지역 주민의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2016년 7월 현재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마을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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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해 있는 섬. 섬 전체에 소나무가 자생하여 송도(松島) 또는 솔섬이라 한다. 조선시대 기록에 가사도가 소나무를 상납하였다는 내용까지는 나오지 않지만 송전의 후보지로 선정된 것으로 보아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또 자라기에 적합한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송도의 자연환경은 산지, 평지, 사빈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도 동쪽에 45.5m의 산봉우리가 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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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류·패류·어류 등을 인공적으로 길러서 채포하는 어업. 전라남도 진도의 수산양식업으로 대표적인 것은 김 양식, 고막 양식, 가두리 어업 등이 있다. 산업화와 함께 수산업의 경제적 지위도 낮아지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은 인근에 풍부한 어장을 보유한 도서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예로부터 어업을 경시해온 탓에 어업의 비중이 낮다. 최근에는 새로이 관광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어업 비중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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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리에 속해있는 섬. 독거군도에 딸린 섬으로 독거도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슬도는 거센 파도로 인해 가파른 바위섬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비아(飛雅)섬이라고 불렀으나 일제시대 때 일본 측량사가 비아를 비파로 잘못 알아들어서 슬(瑟, 거문고)도라고 적어버려서 이름으로 굳었다고 한다. 비아의 유래는, 섬이 까마귀가 나는 형국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아라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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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신천행은 진도의 판소리 선생으로 유명했던 신치선의 문하생으로서 자타가 공인하던 판소리꾼이었다. 1929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1043번지에서 아버지 신정희와 어머니 임선항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부인 하춘여와의 사이에 신임현·신의현·신삼현·신정자·신현자·신옥영 등을 두었다. 집안사람 중에서 국악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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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활동한 민속예술인. 신치선은 판소리 명인이면서도 진도에서 판소리를 가르쳤던 판소리 선생으로 더 유명하다. 1899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신창연(申昌連)과 나주임씨의 차남으로 태어난 뒤 유년기는 담양에서 보내고, 소년기는 목포에서 보냈다. 신치선은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정착한 뒤 판소리의 명인 신영희를 낳았으며, 의신면 초사리로 옮겨 1남을 더 얻었다. 현재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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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 거주지역. 한국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황해도 장연, 송화, 옹진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생긴 집단 거주지역이다. 2005년 현재 진도에는 실향민 350가구가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실향민회(회장 전송권)가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낙동강변까지 밀렸던 한국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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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해있는 섬.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와 진도군 지산면 사이에 있다. 취락은 섬 좌우의 봉우리를 배후로 북사면에 위치한다. 가사도에 딸린 섬으로 주지도(손가락섬)와 쌍을 이루고 있다. 섬 정상부가 발가락처럼 생겨서 발가락섬이라고도 하였다. 양덕도의 자연환경은 산지와 산록완경사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지는 해안에 소규모로 존재하며 산지사면은 급경사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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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의 여귀산에 있는 봉수대의 터.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정세를 중앙에 알리던 제도였다. 조선시대 봉수는 전라도에 43개가 있었는데 진도에만 여귀산, 굴포, 삼당산, 첨찰산 등 다섯 곳이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진도의 경계에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알 수 있다. 삼당산봉수와 굴포봉수는 여귀산의 보조봉수로서 여귀산봉수에 연락했고, 여귀산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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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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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본에 따라 동작과 대사를 통하여 표현하는 예술 형태인 연극과 스크린 상에 움직이는 영상(映像)을 이르는 영화를 총괄적으로 아우르는 말. 연극은 삶의 근원적·총체적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에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인데 반하여, 영화는 제작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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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옥도리에 속해있는 섬. 섬 모양이 ‘구슬 옥(玉)’자 같이 생겼다 하여 옥도라고 하였다. 옥도의 자연환경은 산지, 평지, 사빈, 자갈해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빈은 옥도리 마을 앞에 소규모로 나타난다. 자갈해빈은 1.5㎞에 달하며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기반암 노출이 심해 식생의 발달이 어렵다. 기반암은 화산쇄설성 역암과 사암, 응회암, 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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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이 있는 옥도는 섬 모양이 구슬 옥자 같이 생겼다 하여 옥섬 또는 옥도라고 하였다. 1600년대 초에 김해김씨 김진삼이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전주이씨, 인동장씨가 이주해서 마을을 이루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옥도리라 하였다. 1972년에 거주인구가 316명에 달하기도 했다. 마을이 있는 옥도는 산지, 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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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지형이 파도 속에 떠 있는 갈매기처럼 생겼다하여 ‘갈미섬’이라 부른다. 1800년경 무렵 김해김씨 김병구의 선조가 맨 처음 입도하였다. 1816년 9월 9일에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가던 영국 함대 3척이 진도 해역을 지나간 뒤 외병도를 샴록(Shamrock:토끼풀)아일랜드로 이름 지어 표기했다.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서, 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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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의 긴 화맥은 제자와 집안의 대물림으로 오늘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남도라는 지역과 조선 말기라는 지리적,시간적 범위를 넘어 20세기 근,현대로 이어진다. 대원군에게서 미방(米舫)이라는 호를 하사받은 김익로(金益魯)[1845~1915]는 소치와 초의에게 그림을 배웠다. 소치의 넷째 아들 허형은 일찍 타계한 형의 호인 미산(米山)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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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4년에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서 태어나 2020년 2월 13일 사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어린이들과 자주 싸웠을 만큼 일본을 싫어했다. 15세가 되자 마을에 계를 만들어 항일운동 의지를 고취하고 신사 참배 거부를 주지시켰다. 1941년 4월에는 한형술·이기창 등으로부터 고성국민학교 학생들이 신사 참배 차 간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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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상의 인문적 여러 요소를 분성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연구하는 분야. 진도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를 비롯해 유인도 44개(430.82㎢), 무인도 185개 등 총 229개의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430.82㎢, 해안선 길이 650.0㎞에 달하는 서남해의 관문 지역이다. 총 15,719세대에 인구는 36,619명이다. 행정구역은 1읍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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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십일시마을에는 총 3개의 다리가 있다. 가장 중요한 다리는 십일시교로 1932년 진팽선(珍彭線)에 놓였다. 연장 36m, 교폭 6m의 혼응토조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한동안 십일시마을과 진도읍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1994년에 새로 건설된 다리는 본래 다리가 있던 곳에서 약간 옆으로 이동하여, 연장 30m, 교폭 10.5m로 개축되었다. 또다른 다리는 홍수가 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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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십일시마을에 형성된 장시는 10일에 한 번씩 열렸으나 장시가 번성하면서 4일에도 장이 열린다. 장이 번성한 이유는 임회면과 지산면, 조도면 사람들이 주로 이 시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곳 주변 사람들에게 진도읍시장은 거리가 멀뿐더러 교통도 불편했다. 따라서 외부에서 상인들이 많이 들어왔고, 우시장도 크게 번성하여 시장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로 우시장이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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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석교초등학교를 다닌다. 석교초등학교는 1919년 11월 15일에 석교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했다. 1909년에 개교한 진도초등학교에 이어 진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학교이다. 십일시마을에는 1964년 12월 19일에 설립된 석교중학교가 있으며, 1982년 3월 10일에 설립한 석교고등학교가 있다. 많은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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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발달하면서 진도 역시 광주, 목포 등 도시와의 연결이 편리해졌다. 이와 함께 농수산물은 대도시로 직접 출하되고, 유통업자들이 자가용을 이용해 생활필수품을 소비자의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면서 장시의 기능이 현저히 쇠퇴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군 단위의 농수산물집하장은 소량 다품목 생산에 의존하는 영세한 소농의 생산물을 공동 출하하고, 규격 상품화를 촉진하며, 생산자의 조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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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의 자연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규명하려는 지리학의 한 분야. 자연환경은 암석권, 대기권, 수권, 생물권으로 구성된다. 암석권은 지질환경, 대기권은 기후 환경, 수권은 담수와 해수의 영역으로 구성되고, 생물권은 크게 식물과 동물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암석권, 대기권, 수권이 상호 접촉하는 부위에 지형과 토양이 형성되고 변화하며 이곳에 생물의 생활권이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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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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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를 드나드는 교통편은 팽목(진도)-관매, 팽목-창유(조도)-관매, 팽목-진도의 여러 섬 경유-관매, 목포-관매[도중에 여러 섬을 경유]의 네 가지 교통편이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편은 팽목에서 조도를 거쳐서 관매도를 오가는 배편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음은 팽목과 관매 사이에 진도의 대마도, 소마도, 관사도, 조도 등을 경유하여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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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상품이 자연산 미역이다. 잭원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가공한 뒤 20가닥(1속)으로 묶어 상인에게 넘긴다. 주로 목포상인들을 통해서 유통된다. 자연산 미역을 넘기면, 상인들이 판매하고 일정한 소개료를 제한 뒤 주민들에게 판매대금을 송금한다. 특별한 계약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 믿는 신뢰관계로 유통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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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의 총면적은 5.73㎢로, 동경 126° 03′와 북위 34°14′에 위치하며, 진도 본섬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진도 본섬 팽목항에서 남서부로 직선거리 약 17㎞ 정도 떨어져 있는데, 뱃길로 1시간 30분 거리이다. 관매도는 15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군도의 중심 섬인 하조도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5.6㎞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섬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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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닻배의 구조 닻배는 배에 수많은 닻을 싣고 다닌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정선(碇船)이라고 한다. 정선망은 물 속에 병풍처럼 길게 그물을 펼쳐 고기를 잡는 자망의 일종으로, 그물의 아랫부분에 무게를 주고 그물을 일자로 펼치기 위해 소형 닻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 닻들을 배에 싣고 어로활동을 한다고 하여 닻배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관매도 닻배제작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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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무신. 1866년(고종 3) 서양 세력들이 조선을 침범하기 시작하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은 진도군이 남해의 요해지라 하여 군(郡)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정삼품 당상관의 부사(府使)를 배치하였다. 진도부사는 유사시에 영광·함평·영암·해남 등 4개 군현의 군수, 임자·지도·다경·목포·어란·미진·마량 등의 수군만호, 진도 안에 있던 금갑·남도 등 9개 수군만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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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따르는 일체의 총체적인 행위. 종교는 오랜 옛날부터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인간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첨단과학이 종교적 현상을 부정하는 오늘날에도 종교는 많은 사람들의 내적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간은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힘을 빌려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불안, 죽음, 고민 등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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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에 있는 유인등대. 부산과 인천 간을 항해하는 10,000톤 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이 외해인 매물수도를 통항하고, 목포 방면에서 출어하는 어선이 동지나해 및 흑산제도 해역 항해시 맹골군도 해역을 통항하기 때문에 죽도 정상에 광력이 높은 유인등대를 설치할 필요가 있어 죽도등대를 세우게 되었다. 해양 국제항로의 중요 표지관리소로 1907년 9월에 조선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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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가 인지마을의 경제적 발전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섣불리 대답하기 곤란하다. 다만 문화적인 영향면에서 본다면, 진도의 민속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마을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점과, 많은 명인들을 배출한 마을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인지마을의 문화적 위상을 무형문화재가 높였다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지리에 있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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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면 인지리는 지산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진도의 7개 무형문화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형문화재의 본산이라고 할만하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는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을 비롯해,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진도만가가 해당되고, 간접적으로는 강강술래, 다시래기 등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진도북놀이 등의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가 해당된다. 직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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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만가는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연행되는 상여소리를 말한다. 진도만가(珍島輓歌)라는 이름은 1975년 남도문화제에서 입상하는 시기를 전후해서 이를 연구하거나 관여했던 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원래 진도에서는 상여소리라고 했는데, ‘상여소리를 한다.’ ‘상여운구를 한다’, ‘생애(喪輿) 나간다’ 등의 동사(動詞)적 개념으로 사용해 오던 말이다. 대체로 진도만가는 두 가지 유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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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에 속하는 17개 군(郡) 중의 한 군. 진도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430.6㎢로 전라남도 면적의 3.6%를 차지한다.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231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의 대부분은 진도군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진도군에는 진도읍·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지산면·조도면, 가사출장소·거차출장소 등 1개 읍, 6개 면, 2개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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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도에 설치된 도호부. 조선은 1413년(태종 13)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종래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로 고치고 종3품의 도호부사를 두었다. 1415년에는 군 가운데 1,000호 이상인 것은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본래 중국에서는 군사적인 성격이 강하여 주로 변경에 설치되었으나 고려·조선시대에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도호부의 수는 후기에 갈수록 증가해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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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의례에서 불려지는 노래. 「진도 만가(珍島 輓歌)」는 1975년 남도문화제에서 입상을 했을 때 이를 연구했던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원래 진도에서는 「상여 소리」라고 했는데, ‘상여소리를 한다’, ‘상여운구를 한다’, ‘상여(喪輿) 나간다’ 등의 동사(動詞)적 개념으로 사용해 오던 말이다.「진도 만가(珍島 輓歌)」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씻김굿의 길닦음곡을 차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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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도군이 진도부로 승격되면서 설치된 진관(鎭管). 조선시대 군제는 무관 지휘의 육군인 병마절도사와 수군인 수군절도사가 있고 그 휘하에 첨절제사진, 만호진 등 조직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각 고을의 문관 수령도 주(州)의 목사나 부(府)의 부사가 그보다 직급이 낮은 고을의 군수를 거느리고 전쟁에 임하는 편제로 운영되었다. 조선 중기까지도 진도군은 장흥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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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민속놀이 보존·전승 단체. 농악 및 민요, 무용, 민속놀이 등을 보존·전승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한국국악협회 진도지부장이던 허옥인의 요청에 의해 농악단으로 출발했다가 1982년에 박석근을 중심으로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게 되었다. 이후 활동 영역을 넓혀 전국을 무대로 토속공연을 개최하는 단체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주로 진도 내에서 토속무용과 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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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위망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지만 기일세조(起一世祖)는 고려 중엽 사람 강계용(姜啓庸)이다. 그의 10세손이 사평공(司評公) 강학손(姜鶴孫)[1455~1523]으로 무오사화 때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해 전라도 일대의 중조(中祖)가 되었다. 강학손의 아버지는 세조 때 형조판서를 지냈고 익대공신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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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있는 항구. 공식명칭은 창유항으로 어류포항으로도 불린다. 하조도에 있는 중심 항구로서 하조도는 조도군도뿐만 아니라 조도면의 행정·상업의 중심지이다. 창유항은 지방어항으로서 1972년 3월 7일에 지정되었다. 창유항 개발 기본계획은 선착장, 방파제, 물양장, 호안의 연장을 합해 전체 727m이다. 창유항을 경유하는 선편은 모두 3편으로 목포에서 출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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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교파. 진도에 천주교가 처음 전래된 시기는 1870년경이다. 제주도 선교를 담당했던 프랑스 신부가 범선으로 목포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조도(上鳥島) 동구리(洞口里)에 안착하여 설교를 하면서 공소를 개설한데서 비롯되었다. 1900년부터 1904년에 걸쳐 동구리공소, 창유리공소, 지산면 인지리공소가 개설되었다. 당시 공소는 민간 가옥을 구입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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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청등도리에 속해있는 섬. 모양이 등처럼 생겼다 하여 청등섬 또는 청등도, 청등리라고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등도로 통일하였다. 청등도의 자연환경은 산지, 산록완경사면, 해식애, 자갈해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은 두 개의 산봉우리로 이어지는 산지를 배후산지로 하여 북쪽 산록완경사면에 위치하며 하조도와 마주하고 있다. 청등도 서쪽에 청등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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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행정지명. 청등도리는 청등도의 법정리이자 행정리인데, 최고 인구는 1978년에 129명이었다. 청등도는 산지, 산록완경사면, 해식애, 자갈해빈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은 두 개의 산봉우리로 이어지는 산지를 배후산지로 하여 북쪽 산록완경사면에 위치하고 하조도와 마주하고 있다. 마을 남서쪽에 산봉우리가 있는데 좌측은 남자봉우리, 우측은 여자봉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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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에 있는 나루터. 진도군의 육지와 조도를 연결하는 진도 제일의 나루터이다. 15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는 생활권이 목포와 진도로 나뉘어져 있다. 진도군에 속한 조도면 사람들은 진도군을 자주 드나들어야 했으므로 팽목나루는 진도군과 조도를 통하는 관문 나루로 이용되었다. 팽목나루에서 12㎞ 거리에 있는 하조도로 건너 다시 30여 개 섬으로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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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리에 있는 항구. 팽목항은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로, 현재 항만법에 의한 연안항으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는 목포에서 팽목을 걸쳐 제주도를 연결하는 항구였으며, 현재는 진도 근해에 있는 섬, 특히 팽목과 조도를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지 역할을 하고 있다. 팽목항은 1996년 12월 해양수산부에 연안항 지정신청을 내어 1998년 2월 해양수산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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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있는 섬. 조도면에서 가장 큰 섬으로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이다. 상조도와 연도되어 있다. 면단위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섬이 소속되어 있다. 과거 영국 배들이 이 섬을 지나면서 이 섬을 암허스트(Amhust) 섬이라고 이름 지은 적이 있다. 작은 섬들이 마치 새떼처럼 많이 산재해 있고, 상조도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하조도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하조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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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위치한 등대. 하조도가 위치한 장죽수도(長竹水道)는 여수·부산-목포·군산·인천 사이를 왕래하는 1만 톤급 이하 선박의 주요 뱃길이다. 따라서 하조도 북동쪽 끝에 광력(光力)이 높은 유인 등대를 설치하게 되었으며, 1909년 2월 1일 조선총독부 체신국 관리하에 최초로 점등하였다. 1945년 12월에는 미군정청 운수부 해사국에 소속되었다. 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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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한순자는 1941년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송현리에서 태어났다. 확실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어린 시절부터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있는 강씨 집안으로 들어가 살다가 외지로 나갔다. 부친이 판소리를 즐겨하는 동호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다. 슬하에 아들이 한 명 있으며, 한순자를 제외한 집안사람 중에서 국악분야에서 활동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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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있는 바닷길. 바다에는 해류와 조류가 있다. 해류는 바다 속에 있는 강을 따라 따뜻한 곳에서 찬 곳을 향해 흐르는 흑조라는 물줄기이다. 조류는 바람과 달의 인력과 다른 천체들의 끌어당기는 인력에 의해 움직이는 물줄기이다. 조류는 육지에 가까울수록 연안수인 강물의 영향을 받아 심해 무조점이라 이르는 극점을 향해 하루 두 차례 물이 쏠렸다가 원위치 가까이 돌아가는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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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조선 시대에 진도군의 해창(海倉)이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1800년대 김해김씨 김흥백(金興伯)이 처음 입거한 후 밀양박씨·경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포리를 병합하여 해창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73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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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허건은 조부인 소치(小癡) 허련(許鍊)과 부친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이어 남종문인화를 현대적 화풍으로 승화시켜 ‘신남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일구어낸 화가로서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남농(南農)으로 전라남도 진도 출신이다. 19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 허련의 손자이자 미산 허형의 5남 중 넷째아들이다. 1926년 결혼한 부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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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미산(米山). 19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아들이다. 허련의 나이 44세에 넷째아들로 태어났고, 초명은 허결(許潔)이었으나 후에 허형(許瀅)으로, 만년에는 다시 허준(許準)으로 개명하였다. 허형은 어렸을 때 아버지 허련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화업을 이어갈 큰아들 허은(許溵)이 일찍 세상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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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해있는 섬. 진도군 조도면 독거군도의 주도(主島)이며, 북쪽에 슬도(瑟島)·죽항도(竹項島), 서쪽으로는 청등도(靑藤島) 등이 인접하고 있다. 독거군도에서 나오는 독거돌미역은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올릴 정도로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거친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형성된 해식동이 있다고 해서 혈도(穴島), 공도(孔島), 구멍독거라 부른다. 또한 지형이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