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
-
“내 집은 깊은 산중에 있어 매번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면 푸른 이끼는 들에 깔리고 떨어진 꽃은 길바닥에 가득하다. 사립문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없고 소나무 그림자는 길고 짧으며 새 소리는 오르내려 낮잠도 만족한다. 이윽고 샘물 길어와 솔가지 주어다 차를 다려 마신다. 생각나는 대로 주역, 국풍, 좌씨전, 이소, 태사공서와 도연명과 두자미의 시, 한유와 소식의 글 수 편...
-
우리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거하듯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것은 마치 유아기에서 노년에 이르는 인체의 변화와도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 번성이 있으면 절정에 이어 쇠락이 따른다. 조선왕조의 끝자락인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60년 남짓한 시기를 미술사학자들에 따라서는, 3분법에서는 18세기와 함께 후기에 포함시키거나, 세분한 4분법에서는 조선 말기 화단으로 분류한...
-
조선말기 무신. 1866년(고종 3) 서양 세력들이 조선을 침범하기 시작하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은 진도군이 남해의 요해지라 하여 군(郡)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정삼품 당상관의 부사(府使)를 배치하였다. 진도부사는 유사시에 영광·함평·영암·해남 등 4개 군현의 군수, 임자·지도·다경·목포·어란·미진·마량 등의 수군만호, 진도 안에 있던 금갑·남도 등 9개 수군만호를...
-
조선 말기의 문관이며 서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관지(款識)에는 수치(叟痴), 노치(老癡), 칠십노치(七十老癡), 팔질노치(八耋老癡), 석치(石癡), 연옹(蓮翁) 등을 사용했다. 중국 당나라 남종화와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로 개명(改名)하였다. 마힐은 왕유의 자를 따른 것이다. 허균(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