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의병장으로 진도에 유배된 문신. 1895년 을미사변 후 벼슬을 버리고 충청남도 정산으로 우거, 운둔하였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켰다. 홍주성 점령 후 일군에 패하여 재기를 도모하던 중에 붙잡혀 진도로 유배되었다.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민영상(閔泳商)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