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진천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서 가리섬과 배넘이고개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의 두타산(頭陀山)은 해발 598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에 높은 지대가 없어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인다. 두타산은 지형과 관련하여 가리섬, 배넘이고개, 두타산 등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
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한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가사 문학의 대가로 국문학 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등의 가사 작품과 시조를 남겼다. 문집으로는 『송강집(松江集)』,...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峰)·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 증조할아버지는 강인(姜璘)이고,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다. 아버지는 강주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로 안동김씨이다. 아들은 강선(姜銑)과 강현(姜鋧)을 두었다. 강백년(姜栢年)[1603...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강주(降州)는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초기 제정된 이름이다. 995년(성종 14)에 지방관으로 자사(刺史)를 파견하였고, 1005년(목종 8)에 그것이 폐지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청주목에 소속되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1, 청주목(淸州牧)조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충비(忠婢). 개덕은 문백면 파재에 살던 유의직 집안의 종이었다. 유의직이 태어나기 5개월 전에 유의직의 아버지가 죽고, 또한 유의직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 최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개덕은 젖먹이 자식에게는 미음을 먹이고 유의직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후 개덕은 유의직이 성장하자 채지홍(蔡之洪)에게 학문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늦게 개밥을 주는 풍습. 개보름 쇠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개보름 쇠기란 대보름날 하루 종일 밥을 굶기거나 저녁 늦게 밥을 주는 것으로 진천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이 때문에 지금도 자주 굶는 사람에게는 “개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보름날 개에게 밥을 주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 활동 중인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는 1517년 루터(Luther)의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天主敎, 舊敎]에서 분리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파를 말한다. 이를 ‘예배당’, ‘기독교’ 등이라고도 한다. 개신교는 처음부터 각각 독자적인 교회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교파로 형성되어 오늘날에는 300...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국토의 70%가 산지인 한반도에서는 예부터 도보나 우마로 산을 넘어 통행할 수 있는 고갯길이 곳곳에 발달하여 중앙과 지방, 지역과 지역 사이를 그물코처럼 연결하였다. 오늘날에는 등산 기지 또는 관광지로서 가치가 크며, 철도의 통과에도 이용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북한의 함경산맥(咸鏡...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원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역사와 문화. 고대를 일컫는 데에는 역사학적·정치학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설이 있으나, 한국사에서는 흔히 원삼국(原三國)시대부터 후삼국의 병립기까지를 이른다. 원삼국시대[B.C. 1세기~A.D. 3세기경]는 삼국시대의 원초적인 단계로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성장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백제·가야·신라의 모태인 마한·변한·진한의...
-
918년부터 1392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고려는 건국 후 후백제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특히 고려와 후백제와의 대결은 양국의 접경지대인 보은·회인·문의·청주·제천·충주 일대의 충청북도 지역과 상주·김천·성주 등지의 경상북...
-
충청북도 진천군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조영된 무덤. 고분(古墳)은 사전적 의미로는 옛무덤 혹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을 말하며, 고고학에서는 개념을 한정하여 선사시대부터 삼국통일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성행하고 고분축조가 쇠퇴한 시기까지의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무덤 자체의 양식 및 규모와 부장된 유물의 양상을 통해, 만들어진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에...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고사를 지내고 떡을 먹는 풍속. 고사시루 해먹기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가정의 안녕을 빌기 위해 집집마다 고사시루를 준비하여 고사를 지내고 떡을 나누어 먹던 세시풍속이다. 이를 농사시루, 성주고사, 안택굿 등이라고도 일컫는다. 시루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는 시기는 대개 정월이나 10월이다. 고사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 고인돌은 종종 지석묘(支石墓)라는 한자어나 돌멘(dolmen)이라는 영어 이름으로도 불린다. 고인돌은 거석 기념물의 일종으로 무덤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계적으로 고인돌은 서유럽, 지중해 연안, 근동,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해안, 영국, 중부 유럽의 스위스 등 각지, 동양권에서는 남인...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 도끼로 과일나무를 세 번 찍고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과일이 풍성하게 열리도록 기원하는 풍속. 과일나무 장가들이기는 정월 초하룻날이나 대보름날에 백곡면 명암리나 문백면 문덕리 미래마을 등에서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움으로써 과일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이를 가수(嫁樹), 나무 시집보내기, 나무 장가보내기 등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 아버지는 둔곡(遯谷) 곽세익(郭世翼)이다. 곽휘지(郭徽之)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병환에 시달리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자기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이었고, 상을 당하자 시묘를 살았다. 어머니 상을 당하여서도 역시 묘소를 잘 지켰다. 상을 마친 뒤에는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한수재(寒水齋)...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충청북도 진천군은 상산팔경·평사팔경 등과 같은 산수가 어우러진 명승지, 만뢰산·두타산·덕성산·환희산 등의 명산, 백곡호·초평호 등과 같은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호수, 농원과 같은 휴식 공간, 골프장과 같은 운동 및 휴식 공간, 각종 불교·유교 문화재, 박물관 등 풍부한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토...
-
조선 후기 유수응(柳秀應)이 충청북도 진천에서 관촌(管村)의 저녁 안개를 묘사한 칠언절구의 한시. 산수가 수려한 곳에는 ‘팔경’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관촌석연(管村夕烟)」 역시 진천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벽오팔경(碧梧八景)의 하나이다. 현재 벽오팔경(碧梧八景)을 노래한 시는 4편만 전해지는데, 제1경은 「상산모운(常山暮雲)」, 제2경은 「관촌석연(管村夕烟)」,...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모임과 미사 및 공동체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교리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 5월 31일 진천천주교회의 공소로 광혜원공소가 설립되었고 1967년에 5월에 경당이 낙성되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2000년 11월에 만들어졌다. 대지면적 8,611㎡...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삼국시대의 진천 지역은 삼국이 접경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 영역 속에서 삼국의 교육 제도와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여 진다. 고구려는 각 지방에 사립 학교인 경당을 세워 평민의 미혼 자녀들에게 독서와 궁술을 익히게 하였으므로 고구려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구비문학. 구비전승(口碑傳承)은 진천 지역에서 일반 민중에 의해 글로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문학이다. 이를 구비문학·구전문학·구비전승문학·민속문학 등으로도 부른다. 구비문학은 말로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문학이다. 진천의 구비문학 역시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온...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 진천 지역 지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진천지사는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사업과 출산·사망 등과 관련된 보험급여사업의 실시를 통해 국민보건 향상 및 사회보장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3년에 제정된 「의료보험법」에 근거하여 1988년 1월 1일 농어촌 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충청...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술을 권하며 부르는 유희요. 「권주가」는 술을 대작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서, 진천군 문백면에서 채집된 「권주가」는 구가(舊歌)와 현행가(現行歌)의 두 종류가 있다. 특히 진천군에서 전승되는 「권주가」는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면 천만년이나 사오리다.”류의 사설을 가지고 있어서 현행가에 속한다. 충...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시대구분의 기준은 시간적 의미에서 보면, 고려 이전을 고대, 고려를 중세, 조선을 근세, 문호개방 이후 일제강점기를 근대, 그리고 해방 이후를 현대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자 한다. 물론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라는 용어는 단순한 시간의 전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회발전 즉 고...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계몽주의 교육. 근대교육은 근대 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 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종교적·도덕적인 이유로 사용을 금지하거나 꺼리는 표현. 어느 사회든 인간의 관계 속에서 입으로 내기에 꺼리는 말이나 기피하는 행동이 있게 마련이다. 금기어는 좁은 의미로는 언어 표현에만 국한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기피하는 현상이나 행동을 표현하는 말까지 포함한다. 좁은 의미로서의 금기어 중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불쾌한 것을 연상시키는...
-
고구려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충청도(忠淸道) 진천현(鎭川縣)」 조에는 금물노군은 고구려 지명으로 만노군(萬弩郡),...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에 있는 금연시범지정마을.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금연 분위기 조성 및 확산을 위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 취적마을이 2009년 2월 24일 금연 실천을 위한 금연시범지정마을로 선정되었다. 금연시범지정마을 행사로는 금연시범학교 현판식 행사와 더불어 주민 20명에게 금연 홍보 대사 배지와 위촉패를 수여했으며 금연 홍보 대사 축하...
-
삼국시대 충청북도 진천 서쪽 지역에 있던 백제의 성. 금현성은 550년(백제 성왕 28년, 고구려 양원왕 6년) 백제가 고구려 영토에 있던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고구려가 이에 대응해 함락시킨 백제의 성이다.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군 서쪽이라는 설이 있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과 전의면의 경계에 있는 금이성(金伊城)이라는 설도 있다. 금현성과 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기생이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는 유희요. 「기생 노래」는 진천군 문백면에서 전승되는 소리로서, 기생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여자로서의 굳은 절개를 강조하며 신세타령을 하는 토속민요이다. 장구 장단은 잦은 타령으로 빠른 템포로 노래하는데, 3분박 4박자의 리듬형을 보이고 있다. 「기생 노래」의 사설은 비록 기생일지라도 그 절개는 성벽처럼...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우리나라 중부 내륙에 자리 잡고 있는 진천군의 연평균 기온은 중부 지방의 평균 기온 10℃와 비슷하다. 1971~1990년까지 20년 동안의 최고 기온 극치는 1984년 8월의 36.7℃, 최저 기온 극치는 -24.7℃로 기온의 교차는 무려 59.8℃에 이른다. 기온의 교차가 가장 작은 수치는 1...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좋은 일이 있을 조짐으로 판단되는 현상을 표현하는 말. 사람은 누구든지 사회와 자연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 사회와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살게 된다. 다양한 사회 현상과 자연 현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길 기대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대를 어느 특정한 현상에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이 바로 길조어(吉兆語)이다. 이는 대부분이 “무엇 무엇을 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기선(金基先)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여든 살이 된 어머니가 실명하여 거동이 불편해지자 수레를 만들어 매일처럼 태우고 다니며 운동을 시켜 드렸다. 또한 날마다 천신께 어머니의 건강을 빌어 어머니가 아흔까지 장수하도록 하였다. 어머니가 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전라·충청·경상·해서 관찰사를 지낸 공평공(恭平公) 김영유(金永濡)의 6세손이다. 고조는 김홍필(金洪弼)이고, 증조는 숭의전참봉을 지낸 김자(金磁)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낸 김연경(金延慶)이고, 아버지는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였던 김립(金岦)이다. 김내현(金...
-
충청북도 진천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자수(字修), 호는 모암(慕庵). 아버지는 김천익(金天益)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김덕숭(金德崇)[1373~1448]은 지금의 황해도 개성[옛 송도]에서 태어났다. 고려가 망하자 송도판윤으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추자(楸子)마을에 정착하였다. 1393년(태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수은(樹隠) 김중한(金中漢)의 13세손이다. 김두석(金斗錫)은 평생 동안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자신의 나이가 예순이 넘은 노인이 되어서도 겨울이면 아버지의 옷을 따뜻하게 입혀 드렸고, 아버지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면서 간호를 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김두석의 효성을 관찰사에게 알렸다....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료인. 본관은 김해(金海). 고조는 김집(金鏶)이고, 증조는 김달한(金達漢)이며, 할아버지는 김상일(金相一), 아버지는 김태로(金泰魯)이다. 어머니는 전주유씨 유일양(柳逸養)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 권종우(權種雨)의 딸이다. 김만희(金萬熙)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독실하였으며, 김혁신(金赫信)의 문하에서 경사를 공부하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승(伯承). 아버지는 문천군수 김학민(金学敏)이다. 김병구(金秉九)[1809~1871]는 1840년(헌종 6) 성균진사에 장원급제하였다. 아버지가 여러 달 동안 병이 위중하여 입맛을 잃고 먹지 못하다가, 2월 한겨울 어느 날 살구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김병구는 살구를 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살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사눌(金師訥)은 부모님이 병중에 있을 때 변을 맛보며 치료했으며,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먹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이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6년간 시묘를 했다. 고을 원님이 김사눌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자 표창을 하려고 했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자 원님은 “산 아래 있는 사람이 산 위에 올라가 말하기를 자기가 제일 높다고...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문울(文蔚), 호는 절정. 아버지는 고려 후기의 무신 총랑 김광갑이다. 김사혁(金斯革)은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피난하는 등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이들을 막은 공으로 이등공신이 되었다. 부모와 처에게 봉작하고 아들에게 7품 관직을 주었으며,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였다. 1376년 왜구가 부여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鑛山). 아버지는 전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지낸 김질원(金質元)이다. 김상하(金尙夏)가 활동하던 시기는 광해군 대로 정치적으로 혼탁한 시대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적장자가 아니고, 명의 책봉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자를 바꾸자는 논의가 척신과 소북 세력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에 이이첨(李爾瞻...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按廉使) 김사렴(金士廉)의 13세손이다. 김상환(金相煥)은 부모님이 병들자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고, 병세가 위중하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이에 주위의 선비들이 영읍(営邑)에 김상환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저녁이나 15일 아침에 김을 싸서 먹으며 복을 기원하는 풍속. ‘백반에 김쌈 먹기’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 백반을 먹을 때 첫술은 김에 싸서 김쌈을 먹으면 복이 온다고 하는 세시풍속으로 복쌈의 일종이다. 복쌈은 김이나 취나물, 배춧잎과 같이 넓은 잎에 밥을 싸서 먹는 쌈을 모두 이르는 말인데, 원래는 김을 싸서 먹었다. 이를 복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열녀. 김업복(金業福) 처 이씨는 20세에 결혼하여 가난한 시집 형편에도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시아버지 김순악(金巡岳)이 괴질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하루를 더 연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끝내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너무나 슬퍼하여 주위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남편 김업복 마저 갑자기 병이 났는데...
-
1921년 7월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조명희가 발표한 희곡. 「김영일의 사」는 1921년 7월에 발표된 작품으로, 동경에 유학 중인 가난한 학생 김영일의 참담한 삶과 죽음, 즉 일제식민지 치하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고통과 저항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발표 후 동우회 순회연극단이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1923년 2월 동양서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총 3막으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용발(金龍發)은 아버지가 병환 중에 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 끓여 드시게 하니 차도가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게 하였다. 유림들이 여러 차례 영읍(営邑)에 김용발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효부. 본관은 정선(旌善). 승정원좌승지에 증직이 된 김우(金瑀)의 부인이다. 정선전씨(旌善全氏)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켜 부모를 효로 대하고,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집안의 화목에 힘써 인근의 본보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드리는 일을 거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
-
충청북도 진천 출신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장수. 본관은 김해(金海). 가야국 김수로왕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만로군 태수 김서현(金舒玄)이고, 어머니는 입종 갈문왕인 숙흘종(粛訖宗)의 딸 만명부인(万明夫人)이다. 김유신(金庾信)[595~673]은 609년(진평왕 31)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을 수양하였다. 629년(진평왕...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중(致中), 호는 효운(曉雲). 상촌 김자수(金自守)의 17세손이다. 김윤제(金潤濟)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총명하여 경사(經史)에 두루 능통하였다. 고종 때 궁내부에 들어가서 벼슬을 하였다. 하지만 서양 열강들의 이권 침탈이 격화되고 일제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되자 사직한 뒤 고향인 진천군 문백면 사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의조(金義祚)는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고, 병이 위중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되살아나게 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환에 동삼(童蔘)이 좋다고 했는데도 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안타까움을 호소하자 동삼이 생겼고, 물고기를 구할 때는 잉어가 냇가로 뛰쳐나와 효행에 보답하였다. 이렇게 구한 동삼과 잉어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후(而厚). 김익견(金益堅)[1599~166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에서 태어났다. 1624년(인조 2)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 이괄이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정치적 무고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의 군대가 한양을 점령하자 인조는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익견이 임금을 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열녀. 김재룡(金再龍) 부부는 어느 해 여름 큰비가 내려 장마가 지고 마을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물난리를 피하지 못하고 모두 물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저는 죽어도 좋지만 군자만큼은 살도록 도와주소서!”라며 침착하게 천지신명께 빌었다. 그러자 물이 곧바로 빠지기 시작하여 김재룡 부부는 살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우천(牛川). 안찰사(按察使) 김사렴(金士廉)의 7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철(金轍)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명(金碩鳴)이며, 아버지는 김효건(金孝騫)이다. 외조부는 이박(李璞)이며, 장인은 우희보(禹熙輔)이다. 김적(金適)[1564~?]은 1610년(광해군 2) 치러진 별시 을과에 1등으로 급제한 뒤 이조...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정길(金廷佶)[1581~?]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12세의 나이로 왜병에게 사로잡혔다. 포로가 된 그가 사흘 밤낮을 울자, 왜병의 장수가 사유를 물었다. 이에 김정길은 고향에 살고 계신 부모님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는데, 왜병 장수가 글을 아느냐고 묻...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영조 때 진천 출신의 이름난 효자인 모암(慕庵) 김덕숭(金德崇)[1373~1448]의 후손이다. 김종철(金宗喆)[1755~1817]은 타고난 재주와 슬기가 뛰어나고 성격이 엄정했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평상시에도 부모가 즐거워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고, 항시 부모 곁을 지켰으며, 절에 들어가 공부할 때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12세손이며, 판서 김유(金濡)의 10세손이다. 김창덕(金昌德)은 부모님이 병환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을 했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인근에서 하늘이 낸 효자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이에 군내 유림들이 감사에게 김창덕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10세손이며, 형은 김천주(金天柱)이다. 아들로 김성옥을 두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가 주동이 되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탄(坦)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무신란이 일어났다. 이인좌가 이끄는 반군은 청주성을 함락하고 신천영을 충청병사로 삼은 뒤 북진하여 진천에 이르렀다. 당시 진천현...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김태원(金泰元)이다. 김태원 처 이씨는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약에 타서 먹이었고, 북두칠성에 지성을 다하여 기도를 올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에 군(郡)에서 포상하고, 군의 유림들이 감사에게 진정서를 올렸다....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의(全義). 남편은 경주김씨(慶州金氏) 김태정(金台鼎)이다. 시아버지가 선천적으로 병이 있었는데 매우 심하여 백약이 무효하자,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달여 먹여 소생케 하였다. 여러 차례 지방 장관에게 추천되었으며, 암행어사로부터 상(賞)으로 비단옷을 받았다. 유림들이 글을 내어 감사(監司)의 포제(襃題)를 받았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왜적은 빠르게 북상하면서 여주와 양근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죽산과 용인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5월 2일 동대문에 주둔하였고,...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름철에 까마중 열매와 짚 대롱을 이용하여 부는 놀이. 까마중놀이란 까마중[때꽈리]을 따서 보릿짚이나 밀짚 대롱 위에 놓고 부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까막싸리몰이’, ‘앵두불기’라고도 일컫는다. 여름이 깊어 가면 텃밭이나 두엄더미에 까마중이 열린다. 까마중은 까맣게 익은 것은 따서 먹기도 하고 대롱 위에 놓고 불기도 한다. 대부분의 전래 민속놀이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나무꾼이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 「나무하러 가면서 부른 노래」는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서 나무꾼들이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가거나 풀을 베면서 부르는 임산노동요이다. 진천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나무하러 가면서 부른 노래」는 「초부가(樵夫歌)」라고도 한다. 협의로는 나무꾼들이 땔나무를 하며 부르는 소리를 뜻하고...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3월 3일 나비의 색깔을 보고 그 해의 길흉을 점치는 풍속. 나비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와 덕산면 구산리 및 문백면 문덕리에서 삼월 삼짇날에 산이나 들에서 가장 먼저 본 나비의 색깔을 보고 그해 자신의 운수를 점치는 동물점(動物占)의 하나이다. 이는 지역에 따라 나비 보고 운수보기, 나비 보고 점치기, 나비 색깔로 점치기, 나비 점보기, 나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월 초하루에 나이 수대로 숟가락으로 쌀을 떠서 송편을 빚어 그 나이만큼 먹는 풍속. 나이떡 해먹기는 백곡면 명암리와 문백면 문덕리에서 음력 2월 1일 아침에 나이 수만큼 숟가락으로 쌀이나 잡곡 등을 퍼서 떡을 빚어 먹는 풍속이다. 떡은 보통 송편을 빚으며 나이 수만큼 먹는다고 하여 나이송편이라 불렀으며, 장수와 복을 누리라는 의미에서 수복병(壽福...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 흉보기 좋아하는 여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남 흉보기 좋아하는 부인 이야기」는 대감 댁 부인 넷이 남이 들으면 그 사람의 단점이 될 이야기를 했는데, 이를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황대감 부인이 자신은 남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비밀을 밝히고 있는 재담(才談)이자 소화담(笑話談)이다. 2004년 진천상산고적...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달성(達成). 남편은 의령남씨(宜寧南氏) 남병덕(南秉德)이다. 남병덕 처 달성서씨는 남편이 직업 때문에 수백 리 밖에 나가 있음에도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하루는 서씨가 일찍 일어나서 시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어젯밤 꿈에 군자(君子)가 새 옷을 입고 문을 나서면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내 지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수백(壽伯).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1653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과 고부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한때 당파 싸움에 휘말려 파직되기도 했다. 다시 벼슬길에 올라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과 황해도우후(黃海道虞候)로 있다가 이산군수·박천군수·안동부진영장(安東府鎭營將)을 역임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영의정 충경공 남재(南在)이며, 아버지는 병조의랑을 지낸 남문경(南文景)이다. 아들로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남윤(南倫), 손자로 남흔(南忻)과 남칭(南稱)을 두었다. 남지(南智)[1400~1452]는 17세인 1425년(세종 7) 음보로 사헌부감찰이 되었으며, 그 후 경상도관찰부 경...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름철 꼴을 베거나 나무를 하러 가서 즐기는 놀이. 낫치기는 여름철 산에 나무를 하러 가거나, 가축의 먹이인 풀을 베러 가서 지치거나 심심할 때 젊은이들이 낫을 이용하여 상대방과 내기를 하며 즐기던 민속놀이이다. 이를 ‘꼴 따먹기’라고도 일컫는다. 풀을 한 아름씩 베어다 쌓아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낫을 던져 낫의 날 끝이 땅에 꽂히면 이기는 것이고...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노은정의 터. 노은정은 충청북도 진천의 평산신씨 입향조인 신잡(申磼)[1541~1609]의 후손 정묵재(靜黙齋) 신협(申俠)이 건립한 정자이다. 모정 또는 모정골이라고도 한다. 신협은 노은정 앞에 조그마한 연못을 판 후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이후 노은정은 신협의 후손인 신현복(申鉉福)...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농다리를 보존하기 위해 결성된 문화 예술 단체. 농다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에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2003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농다리보존회는 진천 농다리를 진천 지역의 유적지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유적지로 조성하여 보존하고자 2003년 7월 12일 비영리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농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농다리 전설」은 고려시대 임연이 효녀를 위해 일시에 농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 그리고 1995년 경기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문학연구』 제4집에 실린 이영옥...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하여 멀리 볼 수 있도록 지어진 누각이나 정자. 누정은 자연을 즐기는 공간인 동시에 자신을 정신 수양하는 장소이다. 이를 ‘누각’, ‘정자’, ‘누대’, ‘정루’ 등이라고도 한다. 누정은 자녀들과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자 문인들의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누정은 경관이 좋은 곳에 세우거나 또는 누정...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 달의 빛깔·모양·두께 등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알아보는 풍속. 달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1월 14일~1월 16일 사이에 망월(望月)[달맞이]을 하면서 달을 보고 그 해의 농사와 관련된 점을 치는 것이다. 이를 망월점(望月占)이라고도 한다. 달점치기는 보통 망월을 하는 정월 대보름날에 행해지는데, 지역에 따라 보름날을 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3월 3일에 마을 당산나무의 잎이 피는 모양을 보고 농사의 길흉을 점치는 풍속. 당산나뭇잎 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삼월 삼짇날에 마을 제사의 신체(神體)인 당산나무의 잎이 골고루 무성하게 잘 피었는지 아닌지, 어떤 방향으로 피는지, 한꺼번에 피는지 아닌지에 따라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이는 지역에 따라 당산나무 잎으로 점치...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신척리에 있는 철 구조물 제조업체인 대우에스티의 진천 공장. (주)대우에스티는 1980년 (주)대우건설 송포공장으로 출발하였다. 1993년 4월 문막공장을 신축하여 (주)대우건설 송포공장에서 분리되었다. 1996년 10월 충청북도 진천에 강교전문 진천공장을 설립하고, 같은 해 12월 문막 제2강교장을 준공하였다. 2005년 1월 대우건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에 대추나무 열매가 많이 열리도록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속.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백곡면 명암리와 덕산면 구산리 상구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가지가 벌어지도록 하여 그 해에 대추가 많이 열리도록 기원하는 세시풍속이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전국적인 풍속으로 ‘가수(嫁樹)’ 즉 과일나무 시집보내기...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대흥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쇄된 후 중창되었는데, 『상산지(常山誌)』 신편에 따르면 찬의 조중우가 충청북도 진천으로 내려와 머물렀을 때 절을 건축하여 영은사로 일컫고 승도 수인을 두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광무 11년, 즉 1907년(순종 1)조창호가 중건하였다고 하는데 그 관계는 알 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도시숲 공원. 도당공원은 1999년 9월 16일 착공하였다. 1999년에는 총 7억 7200만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둥근소나무 외 25종 3,069본[잣나무·느티나무·산벚나무·귀룽나무·무궁화·자귀나무·산딸나무·마가목·단풍나무·산사나무·배롱나무·백목련·모감주나무·자작나무·벽오동·회화나무·왕대·옥향·눈향나무·철쭉]이 식재된...
-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거나 진천 지역에서 벌인 항일 민족 독립운동. 1894년 7월 청일전쟁 전후 일제의 군사적 침략으로 조선이 반식민지가 되자 한민족의 국권 회복 운동은 항일 의병전으로 시작되었고, 1904~1905년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실력 양성을 위한 구국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진천의 의병전쟁은 전기 의병기[1894~1896]에는 소극적인 항일...
-
구한말·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거나, 진천 지역에서 국가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사람들. 진천은 한반도 중부권의 교통 요지로 구한말 국권 회복 운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3·1운동과 그 후의 무장 독립 전쟁, 그리고 문화 운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자 진천 지역에서도 무장 항일 투쟁이 전개되었다. 의병 투쟁 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모든 종류. 우리나라의 동물구는 구북구(Palaesartic Region) 중에서 동아세아구(East Asian Region)에 속해 있다. 동아세아구는 다시 개마고원 이동의 지역인 북동구(North Eastern Region)와 이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인 주부구(主部區)로 나뉘는데, 진천군을 포함한 충청북도는 주부구에 속한다...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동주원(東注院)은 조선시대 죽산현 관할의 원으로서, 원래는 경기도 죽산군 남면 동주원리에 있었다. 동주원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실원리에 소속되었다. 동주원 터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는 알 수...
-
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만노군(萬弩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에 처음 나타난다. 진평왕 때 김서현(金舒玄)을 고구려와의 접경 지역인 만노군 태수로 파견하였는데 여기서 김유신(金庾信)이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만명의 혼사장애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만명 소저 유폐와 탈출 이야기」는 만노태수로 임명을 받은 김서현(金舒玄) 장군을 따라가려던 만명(萬明) 부인이 아버지 숙흘종(肅訖宗)의 반대에 부딪쳐 외딴 방에 갇히게 되었으나 천우신조로 탈출하여 김서현 장군과 함께 만노로 떠났고 숙흘종도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혼사장애 극복...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정효창(鄭孝昌)이다. 말즐비(末즐非)[끝비]는 남편 정효창이 수군으로 있다가 사망하자 6년 동안 한결같이 상복을 입고 슬퍼하면서, 음식을 갖추어 시어머니에게 올린 뒤 남편 제사를 지냈다. 1527년(중종 22) 정려가 내려졌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 즈음에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 망월은 백곡면 명암리와 덕산면 구산리 등지에서 음력 1월 14일~1월 16일 사이에 만월(滿月)이 되는 날 저녁 마을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가까운 산꼭대기에 올라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풍속이다. 이를 영월(迎月), 달보기, 달맞이, 망월에 절하기, 망우리 등으로도 불렀다. 농군은 농사가 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초에 여인들이 빠진 머리를 모아 두었다가 태우는 풍속. 머리카락 태우기는 문백면 문덕리 미래마을에서 섣달 그믐날이나 설날 저녁에 그 해의 액을 막기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모은 머리카락을 문 밖에서 태우는 풍속이다. 이를 ‘머리카락 사르기’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원일소발(元日燒髮)이라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는 것을 꺼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서식하는 비둘기과에 속하는 조류. 몸길이 33㎝, 날개길이 19~20㎝, 부리 1.5~2㎝, 꼬리 12~15㎝ 정도이다. 암컷과 수컷 모두 이마와 머리꼭대기가 잿빛이며, 목과 뒷머리는 잿빛 갈색이다. 양쪽 목옆에는 잿빛 쥐색의 얼룩점으로 이루어진 몇 개의 가로띠가 있다. 어깨깃과 등은 시멘트 색을 띤 검은색이며, 각 깃털의 가장자리는 녹슨 듯한 붉...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명절에 즐겨 먹던 다양한 음식.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명절에 다양한 음식을 해 먹던 풍습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명절음식을 즐기던 풍습은 현대에 오면서 많이 축소되었으며, 지금까지 전승되는 대표적인 명절로는 설날·정월 대보름·단오·추석·동지 등이 있다. 진천 지역의 설날 음식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떡국이 주요 음식이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소의 목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걸어 주는 풍속. 목서리는 백곡면 명암리와 문백면 문덕리 미래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에 소의 질병을 막고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기를 기원하며 소의 목에 복숭아나무 가지나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걸어주는 세시풍속이다. 이를 목사리, 목도리, 소멍에, 소목사리 등으로도 일컫는다. 지역에 따라 복숭아나무 가...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분야. 무용은 인간이 취락 집단을 형성하면서부터 자연에 대한 외경(畏敬)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종교 의식이나 무속 행사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왕권 정치가 확립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무용 본래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궁중에서는 전문 무용가를 두고 궁궐의 연례(宴禮)에...
-
충청북도 진천군의 여성 공무원들로 구성된 사회봉사 단체. 무한선율(無限旋律)은 충청북도 진천 지역 여성 공무원의 사회 참여 확대 및 지위 향상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를 위해 2003년 9월 설립되었다. 무한선율이란 음악 연주에 있어 연주를 끝내지 않고 자유롭게 계속되는 음률을 말하는 것으로, 진천군 여성 공무원들로 구성된 무한선율도 한마음으로 화합하며 지속...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7월 18일 전도사 민병억·박봉규·여정철·박영규 등이 문백면 계산리에서 처음 집회를 가졌고 1958년 1월 8일 봉죽리 바사리로 집회 장소를 옮겨 예배를 보다가 1959년 4월 9일 봉죽리 1-2번지로 예배 장소를...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및 그 작품. 충청북도는 한국 근대문학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작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괴산의 홍명희, 옥천의 정지용, 청원군 남이면의 김팔봉, 보은군 회인면의 오장환, 음성의 이무영, 그리고 진천 지역에서는 조명희(趙明熙)[1894~1938]와 조벽암(趙碧巖)[1908~1985]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온 신앙. 민간신앙은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종교적 또는 주술적 믿음 체계를 말하는데, 일반 종교처럼 교리나 교단이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예전부터 전승되어 오는 자연적 신앙을 의미한다. 자연적 종교란 인간 본연의 종교적 욕구에서 발생하여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믿어 온 신앙의 질서와 체...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주민의 생활인 동시에 생활의 계속, 또는 반복에서 이룩되어 전승되는 민간 공동의 습속. 민속(民俗)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마다 고유하게 전해 내려오는 생활양식이나 풍습·미신·속담·민담·전설·신화 등을 포함한 구전문학, 그리고 음악·무용 등의 문화 양식을 한데 묶어 이르는 말이다. 사회 집단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다른 사회집단, 더 나아가 집단이 속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이고 향토색이 담긴 놀이. 전통사회에서 놀이는 인간의 생계 수단과 관련이 있는 행위와 일에 해당되는 활동을 제외한 신체적·정신적 활동의 모든 것을 일컫는다. 특히 민속놀이는 오랜 세월 동안 민속사회에서 향토색을 지니고 민중에 의해 전승되어 해마다 행하여 오는 놀이를 말한다. 이를 전통놀이, 전통유희, 민속경기, 민속유희, 민속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민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진천군은 충청북도의 서북부에 위치하면서 동쪽은 음성과 괴산, 서쪽은 충남의 천안, 남쪽은 청원, 북쪽은 경기도 안성군에 접하고 있다. 동부와 남부에는 미호천과 그 지류인 회죽천, 백곡천, 초평천 유역에 넓고 비옥한 평야가 발달되어 있어 도내의 유수한 쌀 생산지로 꼽힌다. ‘생거진천(生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여흥(驪興). 영의정을 역임한 여흥부원군 묵헌공 민청(閔清)의 14세손이다. 민진동(閔鎭東)[1660~?]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영조의 즉위를 두고 소론을 중심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반란을 모의하자, 영조가 반란 모의 세력을 색출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이인좌 등이 1728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낙진당(樂真堂),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은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642년(인조 20)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82년(숙종 8) 참봉 벼슬을 내렸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언제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도덕을 실천하며 학문을 연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부모님 공양...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 풍속. 밀국수 먹기는 덕산읍 구산리에서 대개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에 새로 수확한 밀을 빻아 국수를 만들어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 풍속이다. 이를 유두면(流頭麵)이라고도 일컫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밀가루로 구슬 모양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6월조에는 “소맥(...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2월 1일의 날씨를 보고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 바람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와 문백면 문덕리에서 바람신[風神]인 영등할미가 내려오는 음력 2월 1일에 바람 부는 것을 보아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이를 풍점(風占)이라고도 한다. 비와 바람을 관장하는 영등할미가 내려오는 음력 2월 1일을 영등날이라고 부른다. 속설에 의하면 영등할...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반남(潘南). 좌의정 박은(朴訔)의 후손이다. 박건양(朴建陽)[1891~1948]은 어려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탓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장사로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폈다. 만년에 연로하신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자리에 눕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병수발...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평양조씨(平壤趙氏)로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의 후손 조한승(趙漢昇)이다. 박금년(朴今年)은 시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였고,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시아버지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극진하게 3년 상을 치렀다. 박금면의...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시절 항일운동을 하고, 1931년 상해로 망명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였다.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이 되어 해방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박기성(朴基成)[1907~1991]은 1924년 일본 동경에서 개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정찬진(丁贊鎭)·홍영유(洪永裕) 등과 함께 자유청년연맹(自由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박윤갑(朴潤甲)은 태어날 때부터 지극한 효심이 있었다. 열 살 되던 해 할머니가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의원이 뱀 기름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겨울철이라 뱀을 구할 길이 막막했다. 박윤갑이 안타까운 마음에 울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홀연 커다란 뱀이 나타나, 이를 잡아 달여서 먹이니 할머니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할머니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1897년(고종 34) 1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7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항일운동을 하였고, 졸업 후 『시대일보』·『동아일보』·『조선농민』의 기자, 이사, 간행자로서 항일문화운동을 하였다. 박찬희(朴瓚熙)[1897~1972]는 일본 동경 조도전대학 정경학과에 재학 중이던 1...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박형원(朴逈源)은 본관이 반남(潘南)으로, 타고날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려서도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었으며, 무슨 일이든 부모의 허락을 기다린 후에 행하였다. 부모님의 병환 중에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좋은 약을 구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병수발을 할 때는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정성을 다...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서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던 노래. 「방개 소리」는 백곡면 구수리에서 논을 김매기하면서 부르는 「논매기 소리」의 일종인 토속민요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는 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많이 채집된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는 「논매기 소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방아 소리」가 그 중 하나인데, 「방개 소리」는 이것의 변형이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7월 15일을 전후하여 농군이나 머슴이 백중장에 가서 놀도록 배려해 주던 풍속. 백중장 가기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7월 15일[백중]을 전후하여 논일 중 마지막 김매기가 끝나면 주인이 봄부터 여름까지 농사일에 지친 농군이나 머슴들을 위로하기 위해 용돈과 새 옷을 지어주고 하루를 놀게 했던 풍속이다. 때문에 백중날을 머슴의 생일, 머슴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병조판서 변준(卞儁)의 후손이다. 변영우(卞榮禑)는 어려서부터 행동이 의젓하였고, 효성을 다하여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중에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꿩을 구하기 어려워 울고 있자 꿩이 집안으로 날아들었다. 이 꿩을 잡아서 먹인 후 어머니의 병이 차츰 나아졌다. 서너 달이 지난 뒤 어머니가 다시 아픈데...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공터에 볏가릿대를 세우고 풍요를 비는 풍속. 볏가릿대 세우기는 문백면 문덕리 미래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마을의 단합과 풍농을 기원할 목적으로 마을 공터에 볏가릿대를 높이 세우는 세시풍속이다. 이를 볏가리, 노적가리, 볏가리장대, 화간(禾竿), 화적(禾積), 도간(稻竿) 등이라고도 일컫는다. 볏가릿대는 기둥을 만드는 재료와 명칭...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에 수수깡으로 보리나 콩 모양을 만들고 이를 타작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 보리타작은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월 14일 저녁에 잿간이나 두엄 더미 위에 수수깡의 흰 속으로 오곡과 지게·소·사람 등의 모양을 만들어 꽂아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그것을 꺼내 타작하는 시늉을 하며 재를 털면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모의농경(模擬農...
-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 관아에서 긴급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烽燧)는 사전적 의미로 높은 산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써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급히 전달하는 군사 통신 시설을 말한다. 봉수제의 유래를 보면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이미 상당히 정비된 봉수제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삼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에서 부흥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여송이 한 이인의 말을 듣고 부흥산을 파다가 낭패하였다는 전설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부흥산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충청남도 천안 방면으로 6㎞ 정도에 자리 잡고 있는...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敎祖)로 삼고 그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법(法)이라고 하므로 불교를 ‘불법(佛法)’이라고도 하고,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에서 ‘불도(佛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내용은 교조인 석가모니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달마(...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진천군에는 만뢰산(萬賴山)[611m]·두타산(頭陀山)[598m]·덕성산(德城山)[519m]·환희산(歡喜山)[402m] 등이 솟아 있고, 백곡천(栢谷川)과 초평천(草坪川) 등의 지류들이 남류하여 미호천(美湖川)으로 흘러든다. 진천군은 예로부터 살기 좋다는 뜻에서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려...
-
1919년 3월부터 4월 초까지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충청북도 진천은 구한말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으로, 반제국주의 항일 의식이 국치 이후에도 잠재하고 있었다.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 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독립만세운동이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진천 출신 조명희[중앙고보]와 홍순복[경...
-
고려 성종 때 별호로 제정된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옛 이름. 신라 말에 진천 지방의 유명한 산으로 상산(常山)이 있었고, 이 산에 세워진 사찰이 상산사였다. 진천의 명칭이 통일신라 이래로 자주 바뀌었고, 특히 후삼국시대에 들어서도 두 차례나 바뀌었음을 볼 때 당시 진천의 명산인 상산이 이 지역의 명칭으로 병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말부터 불려오던 ‘상산’이라는 지명...
-
1990년 상산고적회에서 간행한 충청북도 진천의 향토지. 『상산인맥지(常山人脈誌)』는 그동안 진천 지역에서 발간된 향토지인 『상산지(常山誌)』나 『진천군지』 등에서는 인물편의 내용이 다소 미흡한 점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진천군청 문화체육과에 소장되어 있다. 『상산인맥지』는 1권 1책이며 국한문 혼용체로 분량은 323쪽이다. 첫 부...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벼루. 벼룻돌은 함경북도 종성석, 평안북도 위원의 위원석, 평양 근처 대동강 변의 대동강석, 황해도 장산곶의 해주석, 충청남도 보령의 남포석, 충청북도 진천의 상산자석 등이 유명하다. 상산자석은 진천의 옛 지명인 상산에서 나는 붉은 돌이라는 뜻이다. 충청북도에서는 상산자석벼루 외에도 영춘공예특선단지의 단양자석벼루가 있는데, 특히 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사립 보통학교. 상산학교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여 당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 잡고자 설립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일본에게 박탈되자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구미 선진 국가의 교육 방법을 도입하여 문명인을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이상직(李相稷)은 같은 해 10월 28일 고향인 충청북도 진...
-
조선시대 신국이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바둑바위를 보고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진천 지역은 예부터 산수가 빼어나 통산별업팔경(通山別業八景)이니 노은팔경(老隱八景)이니 하는 명승지가 많았다. 이런 연유로 전국 팔도에서 풍류객들이 즐겨 찾으며 시를 읊었는데, 「상산기암(商山棋岩)」도 그 중의 한 편이다. 진천군에서 펴낸 『내 고장 전통 가꾸기』 ‘제영’ 편에 수록되어 있다....
-
2002년 상산고적회에서 간행한 충청북도 진천의 향토사를 기록한 책. 『상산지(常山誌)』가 처음 발간된 것은 1825년(순조 25)에 정재경에 의해서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6년과 1932년, 총 2회에 걸쳐 『상산지』가 발간되었다. 이는 예로부터 소중한 문화유산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진천군의 향토사를 기록한 것으로, 지역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넓은 의미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사회적 유통 활동을 촉진·조성하는 금융업, 운송업, 보험업, 창고업 등도 넓은 의미로는 상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상업은 단지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재화의 매매 활동만...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안리에서 상여를 메고 가며 부르는 의식요. 「상여 소리」는 상례(喪禮)할 때 상여를 메고 가는 향도꾼 혹은 상두꾼으로 불리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장례의식요이다. 「상여 소리」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지역에 따라 「만가(輓歌)」·「향도가」·「회심곡」·「향두가」·「행상 소리」·「옥설개」·「설소리」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에서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유래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와 1997년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출간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생거진천, 죽어서는 용인으로 가거라’라는 뜻인데,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충청북도 진천에 사는 허주부의 딸이 용인으로...
-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鎮川 死居龍仁)’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으로 가라는 말인데, 그만큼 진천군은 예부터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진천 지역에서도 특히 진천읍 삼덕리는 진천군 쌀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 마을이다. 우리는 삼덕리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시는 이상일 할아버지와 지숙현 할머니에게 ‘생거진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神堂). 서낭당은 진천군 일대에서 마을 입구나 고개에 위치한 큰 나무 밑에 돌무더기를 쌓거나 위패를 모신 건물을 지어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소원을 비는 장소이다. 이를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올리는 제사를 서낭제 또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한다. 그러나 성황(城隍)은 중국에서 성(城)을 보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서한순(徐翰淳)[1848~1909]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예의 바르며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뛰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마저 거르는 때가 많았으나 부모에 대한 봉양을 정성껏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는데 겨울에는 방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에도 시간이 어긋나지 않았다. 장성한 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금속기 발명 이전 돌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사용했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는 근대고고학의 성립기에 톰센[C. J. Thomsen, 1788~1865]이 삼시대법을 통해 제안한 데에서 유래한다. 이후 석기시대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로 나누고, 두 시대 사이에 중석기시대를 첨가하는 편년안이 완성되었다. 구석기시대는 최초로 인류가 등장하는 7...
-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선사는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이른다. 현재 진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않아서 당시의 구체적인 문화상을 가늠해 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유적은 미호천 주변의 초평면 연담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 1점이 발견됨으로써 신석기인이 이곳에 거주하였을 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이야기’의 학술적 용어이며, 민화(民話)·석화(昔話)·민간서사문학 등으로도 통용된다. 설화는 말로 구연된다는 점에서 어느 한 개인에 의해 글로 지어진 소설과는 구별된다. 서사문학이라는 점에서 주관적 정감을 노래한 서정민요나 교훈적 의미가 주가 되는 속담과는 다르고, 산문문학이라는 점에서 노래로 불리는 민요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군사상의 목적으로 흙이나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성(城)이란 보통 성벽(城壁)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매우 넓다. 처음에는 흙을 파서 도랑을 만들거나 흙으로 쌓았으나 사람들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나무로 만든 목책(木柵)과 돌로 쌓은 석축(石築), 벽돌로 쌓은 전축(磚築)이 생겼다. 전형적인 성곽은 네모꼴로 쌓은 성과 다시 그 바깥에 네모꼴로...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천주교도들의 의례 및 집회 장소.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은 1892년 지어진 서울의 약현성당[일명 중림동성당]이다. 이후 1898년에 명동성당[일명 종현성당], 1899년에 인천 답동성당, 1900년에 평양 관후리성당, 1902년에 대구 계산동성당, 1906년에 전라북도 화산성당이 차례로 지어졌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천주교는 1801년...
-
조선 전기 세종대왕이 행차하다 유숙하였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고을 이름.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청주의 초정(椒井)에 행차하다가 하룻밤을 머물다가 갔다고 하여, 북평(北平)을 성평(聖平)이라고 하였다. 1444년(세종 26)에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고자 물이 좋다는 청주 내수의 초정에 행차하기 위하여 서울을 떠났다. 세종은 죽산을 거쳐 진천을 지나다가 진천읍내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주기에 반복하여 거행하는 주기전승(週期傳承)의 의례적인 행위이다. 이를 세시(歲時), 월령(月令), 세절(歲節)이라고도 한다. 일 년 혹은 수년을 단위로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 의례이기에 시계성과...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전통주 제조업체. 충청북도 진천은 예로부터 물 좋고 평야가 넓어 쌀의 생산량이 많고, 품질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세왕주조는 진천군 덕산읍의 자연적인 배경으로 현재까지 3대에 걸쳐 양조 사업을 지속하여 좋은 술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세왕주조는 예로부터 약주라 불리는 전통 발효주를 제조·판매하기 위하여 설립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서 세종대왕과 성평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러 초정에 행차할 때 쉬어갔다는 성평의 지명유래담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성평마을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서울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진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와 초평면 연담리 사이에 자리한 소두머니[牛潭]에서 매년 10월 용신(龍神)에게 올리는 의례. 소두머니 용신제는 무당들이 소두머니에서 용신굿을 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앞세우고 농기구로 소박하게 거북을 만들어 마을의 안녕과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지는 데서 전래된 놀이이다. 이를 용신굿이라고도 한다. 어느 지역이든 물속에는...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알기 쉬운 격언이나 잠언. 속담(俗談)은 민중의 일상생활 공간에서 체득된 삶의 지혜나 예지가 비유적으로 서술된 비교적 짤막한 길이의 이야기로서 교훈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혹은 풍자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관용적 표현물을 말한다. 속담은 교훈과 풍자를 장황하게 전개하지 않고 짧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딱딱하거나 무겁게 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손세업(孫世業)이다. 이씨는 남편 손세업이 죽자 슬프게 곡을 하다가 상여를 보낸 지 3일째 되는 날 밤에 자결하였다.충청도와 진천군에서 포상을 하고, 왕에게 추천을 하여 1883년(고종 20) 정려가 내려져 정문이 세워졌다....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송소(宋玿)이다. 송광도(宋匡度)는 정용낭장(精勇郎將)을 지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따르면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어찌나 지극했던지 중국 황제에게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본래 진천군 산정촌의 묘 아래 있었으나 1636년(인조 14)...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7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송지백(宋之伯)이고, 아버지는 평리(評理)를 지낸 송소(宋玿)이다. 형제로는 전서(典書) 벼슬을 지낸 송광우(宋匡祐), 낭장(郎將)이었던 송광도(宋匡度)가 있다. 송광보가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지고, 그 후손들은 안성공파로 분파하였다...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를 지낸 송원겸(宋元謙)이다. 형제는 평장사 송순(宋恂)과 전리판서 송희(宋憘)가 있다. 송국첨(宋國瞻)[?~1250]은 1212년인 강종 즉위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司館)이 되었다. 1226년(고종 13)...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증(宋世曾)이고, 할아버지는 송찬(宋贊)이며, 아버지는 사섬시봉사(司贍寺奉事)를 지낸 송응일(宋應一)이다. 외할아버지는 박응현(朴應賢)이다. 아들로 송섬(宋暹), 손자로 송정필(宋廷弼)을 두었다. 송도남(宋圖南)[1576~1627]은...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예부상서를 지낸 송광보(宋匡輔)이다. 5촌 당숙인 송면(宋勉)의 양자로 들어갔다. 장인은 김유량(金有良)이다. 송반(宋盤)[1416~?]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문장과 시에 능숙하였다. 17세 때인 1432년(세종 14) 생원과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증조할아버지는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이고, 할아버지는 송원겸(宋元謙)이며, 아버지는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순(宋恂)이다. 아우인 송언상(宋彦祥)은 대장군으로 몽고침입 때 귀주성과 죽주성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인물이다. 이때 진천 출신으로 무인 집정의 최고 자리에 오른 임연이...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진천송씨의 시조로, 송인(宋仁)이 상산백(常山伯)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상산으로 하였다. 상산이 후에 진천으로 바뀌면서 진천송씨가 되었다. 아들로 송원겸(宋元謙), 손자로 송순(宋恂)·송희(宋憘)·송국첨(宋國瞻)을 두었다. 송인(宋仁)[?~1126]은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 두루지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려 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17세손이며, 송광보(宋匡補)의 10세손이다. 송재태(宋載泰)는 숙종이 죽음에 임박하여 병약한 경종의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노론의 영수 이이명과 독대하여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에 책봉되도록 하였다. 경종이 승하하자 영조가 노론의 뒷받침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소론은 정치적 주도권...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진천송씨의 시조인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송광도(宋匡度)이다. 아들로 송석동(宋石同), 손자로 송일창(宋日昌)과 송일녕(宋日寧)·송일안(宋日安)을 두었다. 송저(宋儲)[?~1445]는 문과에 급제하고 1417년(태종 17) 홍천현감이 되었다가 1422년(세종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4...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할아버지는 송응국(宋應國)이고,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송원(宋瑗)이다. 아들로 송하년(宋河年)을 두었다. 송주빈(宋周賓)[1551~1592]은 1583년(선조 16) 계미년 별시 병과에 10위로 급제하여 벼슬이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 항복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하자 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어떤 사물에 빗대어 묻고 알아맞히는 언어 표현 놀이. 수수께끼는 구비문학의 한 장르로서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어떤 대상을 정의한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수수께끼는 단순한 은유적 표현과는 다른데, 이는 수수께끼가 은유적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형식면에서 문답 형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제시된 은유적 표현을 통해 그 은유에 해당하는 대상이 무엇...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한천리에서 진천참숯을 활용한 공예품을 생산하는 업체.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참숯공예는 참숯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알려진 200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지역민들에게 숯의 효능을 일깨워 모두가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진천군 덕산읍 한천리에 숯광을 세워 숯을 생산하고 다양한 공예품을 생산하고 있다. 진천참숯의 가장 뛰어난 특징...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식물의 모든 종류. 식물 지리학자들은 식물 분포에 의거하여 전 세계를 37구계(區系)로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화일식물구계[華日植物區系]로 분류되고 그 중에서 한국구(韓國區)에 속해 있다. 충청북도는 식물 분포상으로 한반도 중부아구(中部亞區)에 속하고 군계(群系) 수준으로 보면 중부 한·온대림에 해당된다. 1. 식생의 개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충청북도 진천군은 농토의 대부분이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으로 예로부터 쌀농사가 주를 이루는 곡창지대이다. 따라서 벼농사를 가장 많이 짓고 있으며, 최근에는 밭작물인 오이, 수박, 고추 등도 활발한 농사 작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특산물의 재배로 인해 다양하고 새로운 음식 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평산(平山).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에 봉해진 충헌공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6세손이다. 신대기(申大驥)는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노력했던 신잡의 영향으로 그 역시 지방의 향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신잡이 진천으로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힘쓰고부터 집안에서 대대로 이에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뉴스, 정보, 오락, 광고 등을 제공하는 정기 간행물. 신문은 통상적으로는 신문사라 불리는 전문 기업이 일간 또는 주간으로 뉴스 보도를 중심으로 하여 발행하는 일반지(一般紙)를 가리키며, 매스커뮤니케이션 미디어[媒體]의 일종이다. 그러나 신문은 일반지 외에도 기사의 내용과 그 신문이 대상으로 삼는 독자 또는 발행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의 신문으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귀신이 신발을 신고 가지 못하게 신발을 엎어 놓거나 숨겨 놓는 풍속. 신발 감추기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이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신발을 마루 밑 또는 방안에 감추거나 문에 체를 걸어 놓는 풍속이다. 이를 ‘야광귀 쫓기’라고도 하는데, 전국적으로 분...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영희(申英熙)는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치옥(致玉), 호는 고송(孤松)으로 ‘신영희(申瑛熙)’라고도 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면서 진천군에서도 3월 15일과 4월 2일~3일에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신영희는 여기에 적...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몽계(夢溪) 한희적(韓希迪)의 후손인 한정준(韓廷儁)이다. 남편은 신의양(申義養)으로 1795년(정조 19)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선전관에 올랐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9세손이다. 신의양 처 청주한씨[1778~1804]는 남편이 죽자 장례를 마친 뒤 남편의 허리끈...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동천(東川), 자는 윤수(允壽)이다. 전통적인 무반 가문의 후예로서 구한말 시위대에서 근무하였다. 군대해산 뒤 만주와 북경, 상해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었으며,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신팔균(申八均)[1882~1924]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의 손자이며 한성부판윤...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외교가. 신헌(申櫶)은 1810년(순조 10) 출생하여 1884년(고종 21) 사망하였다. 근대로의 전환의 상징적 사건인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대표인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무관 가문의 하나인 평산신씨 문중에서 태어나서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외교가. 신헌(申櫶)은 1810년(순조 10) 출생하여 1884년(고종 21) 사망하였다. 근대로의 전환의 상징적 사건인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대표인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무관 가문의 하나인 평산신씨 문중에서 태어나서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신현구(申鉉九)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뜻을 따랐고, 언제나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애썼다. 또한 한 푼의 돈이나 한 말의 쌀이라도 반드시 어버이에게 여쭌 뒤 허락을 받고 사용했으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극진하게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묘를 했으며, 아침저녁으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묵정재(墨靜齋). 아버지는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낸 신한장(申漢章)이다. 신협(申俠)은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부모가 병이 나시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이고, 다리의 살을 베어 먹이기도 하였다.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쌍오정의 터.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 경주이씨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후손인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지은 정자이다. 쌍오정이란 이름은 이인엽의 할아버지인 이시발의 호 벽오(碧梧)와 증조부 이대건(李大建)[1550~1574]의 호 오촌(梧村)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경(洛卿), 호는 악포(樂圃).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기중(安驥中)[1865~?]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은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버이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거스르는 법이 없었...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현모. 민씨의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민경상(閔景祥)이다. 남편은 본관이 순흥(順興)인 안기중(安驥中)[1865~1892]으로, 안형(安逈)의 8세손이다. 아들은 안상욱(安商郁)으로 도회의원과 소수서원장·운곡서원장·묵정서원장·백진서원장과 군유도회장을 역임하였다. 민씨는 남편 안기중이 27세에 별세하자...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삼(文三), 호는 가산(可山). 진사(進士) 안형(安泂)의 9세손이다. 안상욱(安商郁)은 상중에 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 슬하에서 장성하였다. 할아버지가 병중에 누워 계실 때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병간하면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지어 왔고, 약을 달일 때는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병간했으며, 어머니가 다...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규(洛圭), 호는 다전(茶田).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철중(安徹中)[1869~?]은 성품이 온순하고 과묵하나, 과감하였고 재주가 뛰어났다. 12세에 “새들이 저 먼 봉우리에서 지저귀니 산 그림자가 사리지고, 지나는 길손이 다리를 밟으니 물소리가 들리는구나[原峀鳥穿山影去 短橋客踏水聲來]”라는 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0월에 길일(吉日)을 골라 가택신에게 지내는 고사. 안택고사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10월 중에 길일을 택하여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치게 된 것에 감사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가택신(家宅神)들에게 지내는 고사이다. 이를 지역에 따라 가을고사, 성주제, 성주굿, 성주받이굿, 안택, 안택굿, 도신(禱神), 지신제(地神祭), 상달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약수암은 1950년대 월만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현재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규모가 큰 대표적인 사찰로 중창되어 있다. 약수암은 대웅전·천불전·삼성각·종각 등 8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전각에 모셔진 불상은 모두 근래에 절을 중창하면서 봉안된 것이고, 이 중 천불전의 왼쪽 한 켠에...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양주문(楊周文)은 부모를 섬기는 데 효도를 다하였다. 부모를 뵙기 위해 비바람을 무릅쓰고 밤마다 10여 리를 걸어 다녔다. 밤에 눈길을 걸을 때는 호랑이가 따르며 지켜 주었다. 양주문이 세상을 떠나자 호랑이가 앞뜰에 와서 앉아 있었으며, 호랑이의 눈빛이 하늘에 비쳐 집안이 환하였다. 새벽녘에 닭이 울자 밤새 집안을 환하게 비추던 호...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체계. 충청북도의 언어는 크게 단양 방언권, 청주 방언권, 영동 방언권으로 구분되며, 진천의 언어는 음성, 괴산, 청주, 청원과 함께 청주 방언권에 속한다. 진천은 지리적으로 충청북도의 중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서쪽은 경기도와, 남서쪽은 충청남도와 인접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경기도 방언 및 충청남도 방언과 유사한 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치 집을 만들어 여치를 기르며 즐기는 놀이. 여치 집 만들기는 여름철에 흔한 밀짚이나 보릿짚을 이용하여 여치가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여치를 길러 보는 민속놀이이다. 여치는 보리나 밀을 타작하는 무렵에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즈음에 여치가 살 수 있도록 여치 집을 만들어 추녀 밑에 달아매어 놓고 여치의 울음소리를 듣곤 하였다. 집 주변의 시원...
-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우물 터. 연보정(蓮寶井)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원형 우물로서,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사용했던 우물이라 전한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鉉)이 만노군태수로 부임하여 살던 곳으로, 큰 담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후대에 담안밭이라고도 불렸다. 이외에 김유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곡산(谷山). 진사 연정희(延廷禧)의 8세손이다. 연정기(延廷夔)는 아흔 살의 아버지가 천식증이 생겼는데, 의원이 술이 좋다고 하자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매일처럼 술을 구해다 드렸다. 겨울에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냇가에 나가 하늘에 빌어 잉어 세 마리를 구해다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를 원하여 사방으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는 한마디로 ‘절개가 굳은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절을 지켜낸 여성을 뜻한다.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영제원은 고려·조선시대 진천현 소속의 원이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는 영제원(永濟院)이 진천현 동쪽 14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오갑리...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9년 신민회 계열의 항일비밀청년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또한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에도 노력하였다. 오상근(吳尙根)은 1909년에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항일 비밀청년결사 단체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남형우(南亨祐)·안희제(安熙濟)·신팔균(申八均)·신채호(申采浩)·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참찬관(參贊官) 오대남(呉大男)의 고손자이다. 오형(吳珩)[1710~?]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봉양에 뜻을 두고 극진하게 모셨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시묘를 살았다. 마을 사람들이 오행의 효행에 감탄하여 마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방어 시설. 옥성리 보루는 9세기 이후 충청북도 진천과 청주 사이의 옛길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옥성리 보루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 입구에 있는 해발 91.8m의 독립된 봉우리에 위치한다. 태산천 동측에 솟아 남북의 교통로를 차단한 위치에 축성되어 있으며, 국...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유계열(柳癸烈)은 남편 이규창(李奎昌)이 전사하자 시부모를 위안하고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시어머니가 괴질에 걸리자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에 기도하여 3개월이 지나자 차도를 보았다고 『진천군지』와 『진천향토지』 등에 기록이 전하고 있다. 1902년 군수로부터 표창을 받았으며, 1903년 2월 전국선행자표창위원회의 표창을 받았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유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증자(曾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또한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광전(光前), 호는 쌍청(雙淸) 또는 청당(淸堂). 문간공(文簡公) 유권(柳權)의 14세손이고, 정신공(貞信公) 유승(柳陞)의 11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유종수(柳宗壽)이며, 아버지는 유헌민(柳憲民)이다. 유기문(柳起門)은 1589년(선조 22) 생원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1601년(선조 34) 식년 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양숙(養叔), 호는 물재(勿齋).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6세손이다. 유득배(柳得培)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특히 『소학(小學)』의 강론에 힘썼다. 덕성이 중후하고 문장이 뛰어나 고을에서 이름이 났다. 향공(鄕貢)으로 천거되었으나, 요절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씨의 남편은 본관이 문화(文化)이며, 이름은 유만엽(柳萬葉)이다. 문화유씨의 시조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게 한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다. 이 공로로 고향인 유주(儒州)를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으면서 유주, 즉 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지역인 문화를 관향...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화(子和), 호는 물기재(勿欺齋). 아버지는 유심원(柳心源)이다. 유수응(柳秀應)은 1864년(고종 1) 증광진사시에 3등 98위로 입격하였으며, 수직으로 동지(同知)에 올랐다. 전심으로 경학을 연구하였으며, 유고(遺稿)가 있다고 전해진다. 『상산지(常山誌)』에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정수(静叟) 문정공(文貞公) 유인숙(柳仁淑)의 7세손이다. 유심(柳甚)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집에 있을 때도 항상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어 군내 유림들이 고을의 효자라 하여 여러 차례 고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8세손이다. 유심원(柳心源)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어른스러웠는데, 일찍이 15세 때부터 부모님께 어른으로서 하는 효도를 행했다. 할머니가 70세가 되어 괴질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을 잡아먹는 메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자, 그물을 들고나가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메기 한 마리를 잡아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경명(景明), 호는 태소재(太素齋). 할아버지는 의정부우참찬을 지낸 유명웅(兪命雄)이고, 아버지는 공릉참봉 유묵기(兪黙基)이다.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군수 이명승(李明升)의 딸이다. 유언순(兪彦淳)[1715~1748]은 7세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음에도 장례를 치르는 태도가 어른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유인영(柳寅暎)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지만, 병자년 그해 가뭄이 극심해 냇물이 모두 말라 물고기를 구할 수 없었다. 집을 떠나 멀리 큰물에 가면 물고기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병석의 아버지를 홀로 두고 멀리 갈 수 없어 하늘에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이튿날 집 앞 냇...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유재창(柳在昶)이다. 1924년 4월 12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두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유재복(柳在福)[1924~?]은 1943년 9월 진천에서 오상근(吳相根)과 같이 징집을 피해 도피하다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산동성...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사헌부집의 유창국(柳昌国)의 6세손이다. 유진풍(柳鎮豊)[1773~?]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그날 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물고기를 구해 주었다. 유진풍은 이 물고기를 어머니에게 공양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이에 유림에서 여러 차례 영읍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문화(文化). 고려 고종 때의 대사성 유경(柳璥)의 후손이다. 유창국(柳昌國)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진천 만노산성(萬弩山城)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성에는 인근 7읍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피난민이 통솔자가 없는 무질서 상태에 있었다. 이에 유창국은 포의(布衣)의 신분이었으나 조감(趙...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유아 교육 담당 기관. 충청북도 진천 지역 유아 교육 기관은 공립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으로 나눌 수 있다. 2009년 현재 진천 지역에는 공립 유치원 15개와 사립 유치원 1개가 있으며 30개 학급에 원아 수는 총 525명이고 교원 수는 37명이다. 진천 지역 유치원은 1981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여 진다. 1981년 3월...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유풍노(柳豊魯)는 철종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어영군초관(禦營軍哨官)으로 있다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를 맞아 광성진(廣城鎭)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신미양요 때 미군이 강화도 광성진에 침입하자 수비사령관 어재연(魚在淵) 장군 휘하의 어영군초관으로 군병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먼저 총격을 가하여 군함 몇 척을 물리쳤으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효자 유희원(柳希源)[1769~?]의 동생이다. 유학원(柳学源)은 형 유희원처럼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를 잘 섬기고 형의 뜻에 잘 따라 주변 사람들이 일문쌍효(一門䉶孝)라 칭송하였다. 유림들이 영읍에 유학원의 효행에 대한 글을 올려 동몽교관(童蒙教官)이 증직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최준(崔濬)이고, 오빠는 최유연(崔有淵)이며, 남편은 유형국(柳亨國)이다. 유형국 처 해주최씨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살면서 1636년(인조 14) 한양에 있는 친정으로 근친을 갔다가 병자호란을 만나자, 승지를 지내던 오빠 최유연이 왕자와 비빈을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갈 때 함께 행렬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진주군(晋州君) 유번지(柳藩之)의 후손이다. 유환익(柳煥益)은 집안이 곤궁하여 낮에는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집안일을 하며 부모 공양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혼자 거동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음식을 직접 떠서 드시게 하였다. 병수발을 든 지 십여 년이 지나 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유학원(柳学源)의 형이다. 유희원(柳希源)[176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책을 보면서 밤을 밝힌 채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엄동설한에도 하늘에 기도하여 잉어를 구해다 봉양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죽과...
-
1950년 발생한 남·북한 전쟁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개된 7월 7일~10일의 싸움. 좌익과 좌우 합작파의 반발 속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는 경제난까지 겹쳐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까지 일어나고 지리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1950년 봄까지 좌익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치달았다. 19...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칠원(漆原).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알려진 윤석보(尹碩輔)의 10세손이다. 윤범국(尹範國)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 조씨가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생선이 제일 좋다고 말하였다. 추운 겨울이라 냇가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물고기를 구할 길이 없자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병한(尹炳漢)은 본관은 칠원(漆原), 호는 중암(重岩)이며, 1873년(고종 10) 3월 20일 충청남도 당진군 순석면 갈산리에서 출생하여 1932년 10월 4일 사망하였다. 대한제국 육군 참위인 윤병한은 일제가 강제로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 항일전에 참여하다가, 한일병합 후 고향인 진천으로 돌아와 농민 계몽운동...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에 윷을 가지고 한 해의 운수나 풍흉을 점치는 풍속. 윷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초[음력 1월초]에 윷놀이를 하여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속이다. 한자어로는 사점(柶占)이라고 한다. 윷점은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 윷을 논 후 승부로 점을 치는 방법과 한 사람이 여러 번 윷을 던져 나온 결과로 점을 치는 방법이 있다. 집단적인 놀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있는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곳. 충청북도 진천군은 예로부터 생거진천이라 할 정도로 살기 좋은 농촌마을로 생거진천 쌀과 함께 자연에서 나는 각종 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다양한 향토 음식점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백곡저수지와 초평저수지 일대에 형성된 음식점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과 자연 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1269년(원종 10)에 진천임씨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을 제거하고 최고 집정자가 되자, 왕이 임연의 고향인 진주[창의현(彰義縣)]을 고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시켰다. 지방관으로 지의녕군사(知義寧郡事)를 두었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양광도 진주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259년(고종...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에 입는 전통 의복. 진천 지역에는 각종 의례복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각 지역민들은 비교적 관혼상제에서 활용한 의례복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현대에도 전통적인 의례복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혼례복과 상복·수의(壽衣) 등을 중심으로 진천군 의례복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에 비해...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전개된 항일 국권회복운동. 의병항일전은 외세 침략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항쟁이며 생존권을 위한 저항으로 그 원류는 인간 본연적인 데 있으며, 한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고려·조선 때 대거란전이나 대몽항쟁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 등의 오랜 전통이 개항기에 들어와서 부활한 것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항일전의 사상적 맥락의 하나는 민족적...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평소 의복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옷감을 사용하여 계절별로 의복을 구성하여 입었으며, 남자와 여자가 착용하는 의복의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복식에 사용된 옷감은 삼베, 무명, 명주 등...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 호는 청허당(淸虛堂) 또는 청허자(淸虛子).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6세손으로 문간공 이정(李挺)의 넷째 아들이다. 이거이(李居易)는 1348년(충목왕 4)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관직이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경선(李慶善)은 1624년(인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2년(인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성균관박사·저작·전적 및 호좌좌랑을 지냈다.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재직하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달부(達夫), 호는 추월재(秋月齋). 고려 태조 때의 공신인 이희능(李希能)의 6세손이다. 이공승(李公升)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문장이 탁월하였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며, 뒤이어 우정언(右正言)을 지냈다. 1148년(의종 2)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서 사신이 되어 금...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이씨의 나이 20세 때 남편 이근석(李根錫)이 죽었다. 그 후 이씨는 머리도 덥수룩하게 하고 옷도 좋은 옷은 입지 않는 등 몸단장에 신경 쓰지 않고 시부모만을 기쁘게 해드리며 극진히 효도하였다. 5~6년이 지나서 시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불과 3개월 만에 시어머니마저 죽었다. 이에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시동생에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덕수(李德壽)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님이 병환 중에는 직접 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살폈으며, 병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낸 뒤 그 피를 먹여서 살려냈다고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가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몽량(李夢良)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경상도병마우후에 이르렀다. 경상도병마우호로 근무하다가 선전관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명의 신종(神宗)이 사신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금은을 하사하였는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민회(李敏會) 처 최씨(崔氏)는 23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바로 남편을 따라가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있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있는 4년동안 지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드렸으며 산나물을 먹고 싶다 하자 눈 쌓인 산에 들어가 나무의 눈을 얻어 국을 끓여드리고, 또 물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자...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릉(子陵), 호는 행원(杏園, 杏院). 증조할아버지는 부정(副正) 이신(李晨)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이금(李嶔)이며, 어머니는 사맹(司猛) 최윤태(崔允泰)의 딸이다. 이부(李阜)[1482~1555]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사현(李思賢)은 어려서부터 효자라고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살았으며, 효행으로 복호(復戶)[조선시대 충신, 효자, 군인 등 특정한 대상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를 받았다. 학문에도 뛰어났으며,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과도 가깝게 지냈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유(舜有) 또는 민정(民庭). 1878년(고종 15) 3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3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이상직(李相稷)[1878~1947]은 백부 이용우(李用雨)의 손에서 자라다가 이교중(李敎重)에게 입양되었고, 이상설(李相卨) 또한 이용우에게 입양된 관계로 그는 이상설을 종형이라 부르면서 숙식과 수학을 같이하고 추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가헌(可軒). 할아버지는 만오공 이후연(李厚淵)이다. 이석하(李錫夏)는 18세 되던 해 할아버지 이후연의 뜻에 따라 청야(青野) 임익상(林翼常)의 문하에 들어갔다. 공부를 하면서 책에서 본 것이나 실제로 본 좋은 행동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썼으며, 선행이나 좋은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어진 일을 하는 데 전력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중어(仲魚) 이타(李鼉)의 후손이다. 이성문(李成文)[1703~1728]은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용맹하고 효성스러워 고을에 이름이 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이 의병을 모집하여 방어하려는 계책을 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남편은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킨 이성문(李成文)이다. 이성문의 처 경주정씨[1707~1731]는 어릴 때부터 천자(天姿)가 정숙하였고 혼인해서는 시어머니께 효를 다하여 봉양하고 남편을 예로서 섬기었다. 남편이 난을 막으러 나갈 때는 힘을 다하여 충성하라고 하였다. 남편이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뇌연(雷淵), 자는 문계(文階)·태초(太初), 호는 연재(衍齋). 세종의 별자(別子)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위현감 이의화(李義和)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유언(兪彦)의 손녀이다. 이승연(李升淵)[1767~1829]은 유서 깊은 가정에서 시(詩)와 예(禮)의 교육을 받아 선행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농한기의 긴 겨울밤에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놀이. 이야기 듣기는 진천군 일대에서 정초와 대보름 사이에 아이들이 사랑방에 모여 밤참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는 놀이이다. 농사일을 주로 하던 옛날에는 봄에 농사일을 시작하여 곡식이 무르익는 여름을 지나 가을에 오곡백과(五穀百果)를 거두는 수확의 계절이 되고 김장을 담그면 겨우살이 준비가 끝나게 된다. 이...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긍확(肯穫), 호는 송애(松厓).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사(李思)이고, 할아버지는 이공순(李公淳)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인로(李仁老)이며, 외할아버지는 박지생(朴枝生)이다. 부인은 이안민(李安民)의 딸이다. 형으로 이치(李菑)가 있다. 이여(李畬)[1503~1544]는 일찍이...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 할아버지는 음죽현감(陰竹縣監)을 지낸 이계보(李季寶)이며, 아버지는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역임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영남(李英男)[1563~1598]은 1563년(명종 18)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22세인 1584년(선조 17) 별시(別試) 무과에서 병과(丙科) 제1...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영호(李榮鎬)[1899~1974]는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자, 진천군 일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윤병한(尹炳漢)·정관옥(鄭寬玉)·오은영(...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장(子張).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고손이다. 이인(李仁)은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 송두리에서 태어났다.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향천(鄕薦)을 받아 참봉(參奉)과 주부(主溥)의 벼슬을 받았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매산(梅山).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다. 생곡(生谷) 이인환(李仁煥)이 형이며, 동생으로는 이인욱(李璘煜)·이인찬(李寅燦)·이인희(李寅熹)·이인식(李寅烒)이 있다. 이인혁(李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지제교(知製敎)·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고, 어머니는 심대복(沈大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경연(李慶衍)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으로 매산(梅山) 이인혁(...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春吉), 호는 사암(思庵). 문정공(文貞公) 이공승(李公升)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聰郞) 이창우(李昌祐)이고, 아버지는 낭성군(琅城君) 이계함(李季瑊)이며, 어머니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叅理) 김련(金聯)의 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通禮副使) 김계초(金繼貂)의 딸이다. 아들로 이거이(李居易)가 있다...
-
임진왜란시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호는 회헌(晦軒). 이정영(李廷英)[?~1592]은 1592년(선조 25) 음죽현감으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을 맞았다. 4월 일본이 15만 8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침범해 왔다.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북상하며 4월 24일 상주에서 이일의 군을 격파하고, 16일에는 조령을 넘어 이튿날 충주로 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주(光州). 대사성 이중호(李仲虎)의 7세손이자, 이조참판 이발(李潑)의 6세손이다. 이정휘(李廷徽)는 어머니가 종기가 심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5~6개월 동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뽑았으나 병세에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서 낸 피를 먹여 완쾌하게 하였다. 그 후 모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지극정성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이종연(李鍾淵)의 처 박씨는 시아버지가 종기로 자리에 눕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서 낫게 하였으며, 담종이 생겨서 3개월 동안 거동을 못하자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이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상장제용(喪葬祭用)을 마련하여 무사히 장례를 치렀다. 얼마 후 남편이 죽자 따라 죽으려고 물 한 모금...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교육자. 이종춘(李鍾春)[1925~1988]은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 동성리 33번지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 24일 고창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46년 8월 14일 경성사범학교 부설 중등교원양성소 국문과를 수료하였다. 1952년 9월 30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 2월 28일 서울대학교 대학원 부설 교수연...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인재(麟齋).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이자성(李自成)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가정(稼亭) 이곡(李穀)이다. 외할아버지는 권중달(權仲達)이며, 아버지는 문하시중에 오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종덕(李種德)이 있다. 부인은 이춘부(李春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치영(稚英). 진사(進士) 이몽길(李夢吉)의 후손이다. 양성이씨(陽城李氏)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문종 대에 벼슬길에 올라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갑자보(甲子譜)』 세록(世錄) 편에 의하면 능란한 외교술로 거란[契丹]과 외교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증조할아버지는 행원(杏園) 이부(李阜)이다. 이집(李楫)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날을 보내어 효자로 소문이 났다. 커서는 부모의 대변 맛을 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날마다 묘소에서 슬프게 곡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다. 이필용(李必容)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상을 당했는데, 갑자기 집 안에서 불이 나서 사당(祠堂)까지 불이 번지고 말았다. 이에 이필용이 큰소리로 천신(天神)을 부르자, 세찬 바람이 그치고 불꽃이 잦아들어 비록 사당은 불탔으나 신주(神主)는 온전하였다. 어느 날, 이필용이 볼일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장서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대(載大)이며, 호는 담헌(澹軒)·소금산초(小金山樵)·무우자(無憂子)·금산병부(金山病夫)·담옹(澹翁)·담헌거사(澹軒居士)·담암(澹庵).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셋째 아들인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아버지는 문형(文衡)이었던 이인엽(李寅燁)이고,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인천부...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육영독지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찬서(纘書).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청주이씨는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호신(李鎬臣)[1868~1943]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수성가하였으며, 많은 사회사업을 하였다. 특히 교육 부문에 힘썼는데, 처음 상산초등학교가 지금의 삼수초등...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양씨는 16세에 이호주(李鎬周)에게 시집을 갔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양씨는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에게 순종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시부모와 남편이 연이어 세상을 뜨면서 20세 때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씨가 절개를 지키며 아들 하나를 데리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웃 마을의 장씨(張氏)가 양씨가 과부로 사는 것...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졸재(拙齋).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13세손이다. 만오(晩悟) 이후연(李厚淵)이 중손(中孫)이다. 이호중(李昊中)이 공주 외가에 있을 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는데, 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너의 모친 병이 위독하니 빨리 집으로 가서 잉어를 구해 드려라”고 말하였다. 그 길로 집으로 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만오(晩悟).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으로, 졸옹(拙翁) 이호중(李昊中)의 중손(中孫)이다. 이후연(李厚淵)은 신와 정재경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학문의 중심점을 캐어서 연구하였고 지식과 견문이 넓었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깨달은 바도 투철하여 정재경이 큰일을 맡을 만한 인물[大受...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6세손이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이희(李熺)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서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가난한 생활을 하였어도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떨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항상 부모의 모든 것을 친히 보살폈다. 부모의 상을 당하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중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도시와 교통이 편리함에 따라 종래의 미작 농업은 고품질 상품 생산과 원예 농업으로 전환되었고 공업화가 촉진되었으며 풍부한 관광 자원과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이점 등으로 배후에 풍부한 관광 시장을 지니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은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인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물설화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인물의 유형에는 ‘영웅적 인물’, ‘평범한 인물’, ‘모자라는 인물’ 등이 있다. 어떠한 유형의 인물이든 민중에게 각인되어 역사적·교훈적 의미를 부여하면 구비전승의 대상이 된다. 인물설화도 대부분 특정한 지역이나 사물과 관련되어 있다. 진천 지역...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성요. 「임 그리는 노래」는 진천군 초평면과 광혜원면에서 전승되는 소리로서 멀리 떠나서 소식이 없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성들의 가창유희요이다. 대부분 여성들이 혼자서 음영(吟詠)하며, 일반적으로 3분박 4박자의 리듬을 보이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수문마을의 주민 최권식[남, 60]...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이다. 임경석(林慶錫)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여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빠뜨린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죽만 먹으면서 3년 상을 치렀으나, 슬픔이 지나쳐 몸을 상하게 되어 마침내 세상을 떠나니 군(郡)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희는 상산임씨(常山林氏)[진천임씨(鎭川林氏)]의 시조로 지금도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를 중심으로 많이 살고 있다. 임경언(林慶彦)[1761~?]은 아버지가 종기를 앓고 있을 때 침과 뜸이 효험이 없자 독혈을 빨아내고 밤에는 소금물로 씻기를 한 달여 동...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남편은 평택(平澤)이 본관인 임경운(林景雲)이다.임경운(林景雲) 처 이씨(李氏)는 20세에 남편이 사망하자 여러 날 음식을 먹지 않아서 사경을 헤매다가 시부모를 생각하여 눈물을 거두고 시부모를 위로하며 정성을 다하였다. 시부모께 음식을 드리고 조금도 슬픈 얼굴을 하지 않고 남편 장일에는 제사에 쓸 물건과 모든 예절을 스스로 돌보고 정성을 다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봉의(林鳳儀)이다. 임경원(林慶源)은 도암(陶庵) 이재(李滓)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공부에 독실(篤實)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양호(養浩)라는 당호를 써 주었다. 『진천군지』에 임경원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슬하에 가문의 쌍효(雙孝)라 불리는 임호철(林昊喆)과 임우철(林禹喆) 형제를 두었다. 임광언(林光彦)[1794~?]은 어렸을 때부터 단정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침착하고 무게가 있었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등 남다른 점이 있었다. 9세 때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발을 구르며 통곡하다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임씨(常山林氏)의 시조인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광윤(林光潤)[1734~?]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이 같은 효행이 알려져 고을에서 천거를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군(郡)의 유림들이 모두 안타까워하였다. 족보에 임광윤의 효행에 대한 이야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은진(恩津). 조선 후기 호조참판을 지낸 남편 임대철은 본관이 상산(常山)이며, 1845년(헌종 11)에 별세하였다. 임대철(林大喆) 처 은진송씨(恩津宋氏)[?~1845]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기 전날 밤에 베 끈으로 목을 매어 향년 30세의 나이로 남편을 따라갔다. 감사 이승수가 은진송씨의 절개에 대한 글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득여(得汝), 호는 영서거사(穎西居士). 판서 임방(任埅)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임종주(任宗周)이다. 임로(任魯)[1755~1828]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의 명리화색(名利貨色)에는 일절 욕심이 없었다. 1777년(정조 1) 음서로 관직에 나갔으나 아버지가 당대의 세도가 홍국영(洪...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증조할아버지는 충신 임현(林賢)이다. 임봉거(林鳳擧)는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박학하고 학문을 즐기었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도덕을 실천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모든 행동이 민첩하고 독실하였으며, 듣고 보는 것이 많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할아버지는 임유원(林有元)이고, 아버지는 임재(林榟)이다. 임봉래(林鳳來)는 어머니가 병이 들자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였고, 상을 당하여서는 극진한 예를 다하였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더불어 삼세효자(三世孝子)로 불렸다. 고을 사람들이 여러 번 관에 천거하였으나 정려는 내려지지 않았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아들로 임경원(林慶源)을 두었다. 임경원은 도암(陶庵) 이재(李縡)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두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믿음이 두텁고 성실하다고 크게 칭송하면서 당호(堂號)를 양호(養浩)라 붙여 주었다. 임봉의(林鳳儀)는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에게 수학하였는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상산(常山). 사헌부집의를 지낸 임수경(林秀卿)의 6세손이다. 아들로 임현(林賢)이 있다. 임수전(林秀筌)[?~1592]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기상이 늠름하고 재질이 비범하여 6세 때 ‘인생천지간(人生天地間) 충효이자선(忠孝二字先)’이라는 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권신. 본관은 상산(常山)[진주(鎭州), 현재의 진천]. 초명은 승주(承柱).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며, 어머니는 이씨로 진주(鎭州) 주리(州吏)의 딸이다. ‘상산’이라는 본관은 상산임씨의 시조인 임희가 상산백(常山伯)에 봉작된 것에서 유래한다.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임연(林衍)[?~...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또는 상산(常山). 아버지는 효자 임광언(林光彦)이며, 임호철(林昊喆)의 동생이다. 임우철(林禹喆)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였다. 어버이를 모시는 데 형 임호철과 더불어 지극하여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을 섬기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아들은 임재(林榟)이고, 손자는 임봉래(林鳳來)이다. 임유원(林有元)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하였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하였다. 아들 임재와 손자 임봉래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삼대(三代)가 모두 효성스럽다고 불렸다. 고을 사람들이 효성에 감복하여 여러 차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진천임씨(鎭川林氏)[상산임씨(常山林氏)]의 시조인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을엽(林乙葉)은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 꿈속에서 천신(天神)이 얼음에 채운 물고기를 알려 주어 아버지를 봉양하였고,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도 숲 속에서 산신령을 만나 산돼지를 얻어 끓여 드렸다. 사람들은 지극한 효성이 영신(...
-
충청북도 진천으로 낙향한 후 도학을 연마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치은(稚殷), 호는 현계(玄溪) 또는 청서(靑墅)이다. 녹문 임성주(任聖周)의 문인인 영서(穎西) 임로(任魯)의 아들이다. 1789년[정조 13]에 태어났으며, 1835년[헌종 원년] 음사(蔭仕)로 가감역(假監役)을 시작으로 벼슬에 나가 전라도 창평(昌平)현령·금천(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산(常山). 중시조 임연(林衍)의 16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유원(林有元)이고, 아들은 임봉래(任鳳來)이다. 임제(林梯)는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서 태어났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 아버지 임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희는 상산임씨의 시조로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구산동]를 중심으로 많이 살고 있다. 임정석(林鼎錫)[179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병환이 갑자기 위독해져서 약을 쓸 수 없게 되어 목숨이 위태로웠다. 이에 자신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증조할아버지는 임광언(林光彦)이고,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난 임우철(林禹喆)이다. 임정수(林正洙)는 일찍이 어버이를 섬기는 법도를 알아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법도에 맞게 행동했다. 어릴 때 도적이 집에 들어와 어버이를 위협하니 내실에서 그 소식을 듣고 나와, 칼날을 무릅쓰면서 어버이를 막...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진천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의 제1번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산포 침략을 시작으로 1598년(선조 31) 11월 노량해전(露粱海戰)을 끝으로 사실상 종결될 때까지 무려 7년간 한반도를 전화(戰禍)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한 중세 동북아시아 세계의 국제전적 교전이었다. 전쟁의 전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채근(林彩根)은 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고,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는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상례에 어긋남이 없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임수전(林秀筌)이다. 임현(林賢)[?~1619]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임수전이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 참전하여 비명에 돌아가신 것을 애통하게 여겨 남쪽을 향해 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전사한 경기도 죽산 봉성(鳳城)을 지날 때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호는 극재(克齋)이다. 임형(林灐)는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효성이 지극하여 향천(鄕薦)을 세 차례, 도천(道薦)을 한 차례 받았는데, 이에 대하여 1932년 진천군에서 펴낸 『상산지(常山誌)』「학행(學行)」 편에 ‘임형호극재상산인수업우전재임선생지문유효행삼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호근(林浩根)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이 들자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난 임광언(林光彦)이고, 동생으로 역시 효자인 임우철(林禹喆)이 있다. 임호철(林昊喆)은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또한 어버이를 모시는 데 지극하여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근심하면서...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호족이자 권신. 본관은 진천(鎭川). 임희(林曦)는 진천임씨[진천은 상산 또는 진주]의 시조로 고려 2대 왕인 혜종의 장인이다. ‘상산’이라는 본관은 임희가 상산백(常山伯)에 봉작된 것에서 유래한다.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임희(林曦)는 신라 말기 진천 지방에 자리 잡았던 호족으로 일찍이 왕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충청북도 중앙 서단을 차지하고 있는 진천군은 중부 내륙의 분지 지형으로, 진천 편마암 복합체가 넓게 분포하며 대륙성 기후를 띠고 있다. 토지의 비옥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지형상의 제약도 있어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며, 곳곳에 있는 산악 지대의 주능선 비탈면에는 신갈나무 군락이 드넓게 발달해 있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가지고 즐기는 놀이. 자치기는 겨울부터 봄 사이에 아이들이 서로 모여 편을 가른 다음 마을의 공터에서 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가지고 치고받는 민속놀이이다. 팀별로 경기를 할 수 있는 놀이라서 단결력을 기르고, 개인별로는 순발력·민첩성 등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놀이이다. 자치기라고 하는 것은 어미자[막대기]...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름철에 잠자리를 잡으며 즐기는 놀이. 잠자리잡기는 여름철에 어린이들이 맨손 또는 잠자리채를 이용하여 잠자리를 잡는 놀이이다. 이를 ‘나마리잡기’라고도 일컫는다. 초여름에는 개울가나 도랑가에 작은 잠자리가 모이는데 암놈은 노랑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고, 수놈은 회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다. 암놈은 ‘쌀나마리’[잠자리의 사투리], 수놈은 ‘똥나마리...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 판관 장승(張丞)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사종(張嗣宗)이고, 아버지는 장근(張謹)이다. 장필무(張弼武)[1510~1574]는 1543년(중종 38) 무과에 급제하여 부산진첨절제사·제주목사·만포진첨절제사를 지냈다. 종사관(從事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온성판관으로 나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옥천(沃川).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인 전승업(全承業)의 고손자이다. 유학자로 학문이 뛰어나고 경학(經學)에 몰두하여 여러 차례 향천(鄕薦)을 받았다. 이에 관한 내용이 『상산지(常山誌)』와 『진천군지』 등에 실려 전하고 있다....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정(致正), 호는 명와(明窩).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17세손이다. 정규해(鄭糾海)는 타고난 품성이 청렴결백하고 강직하였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셔 소문이 났다. 회당(晦堂) 윤응선(尹應善)[1854~1924]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높았다. 공부한 것을 토대로 정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시습재(時習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6세손으로, 아들 정창환(鄭昌煥) 역시 효자이다. 정도(鄭棹)는 화재가 나서 불이 사당에까지 번지자 천신에게 기도를 올려 불이 꺼지게 하였고, 선대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서 꿩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히 꿩이 떨어지는 등 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고산(孤山). 조선의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7세손이며, 남대(南臺) 집의(執義) 정흠(鄭欽)의 현손이다. 정방광(鄭邦絖)[1471~1513]은 경기도 안성에서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방동으로 이전한 입향조(入鄕祖)인데, 정봉남과 정황남이 그의 증손이다. 정봉남(鄭鳳男)[1560...
-
일제강점기와 현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안동김씨는 17세에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의 16세손인 정순형(鄭淳亨)과 결혼하였다. 그 후 안동김씨는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순종으로 받들었는데, 1년도 못 되어 시아버지가 죽고, 다시 2년 뒤에는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동김씨는 즉시 남편을 따르려 했으나 시조부모와 시어머니가 손을 잡고...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일(延日). 본명은 정영택(鄭永澤), 호는 학주(學輈), 자는 성장(性長)이다. 1873년(고종 10) 12월 3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서 출생하였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을 하다 합방이 되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사변 뒤에는 상해에서 동아국제연맹을 조직,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광복후에도 남북통일기성회 회장으...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효자이자 유학자인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이다. 정우섭(鄭友燮)은 학문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한 학자로서 1932년 『상산지(常山誌)』를 저술하였다. 상산(常山)은 진천의 다른 이름이니, 『상산지』는 곧 진천의 읍지(邑誌)이다. 현재 『상산지』는 1825년(순조...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교육가.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죽계사 창건기를 쓰고 『상산지(常山誌)』를 서술한 송강의 8세손인 정재경(鄭在褧)의 고손이다. 정운하(鄭雲夏)는 고종 대에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 연구에 힘써 박학 통달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점이 이루어지자 사설 서숙을 세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효자 정봉남(鄭鳳男)이고, 아버지는 정훈이다. 동생은 정익경(鄭益慶)이다. 정이경(鄭履慶)은 학문이 높고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고, 효행 또한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자 밤에 천신(天神)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린 뒤 손가락의 피를 내어 병을 낫게 하였다. 진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지촌(芝村) 정흠(鄭欽)의 후손이다. 정익성(鄭益誠)은 경학을 깊이 연구하고,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워 여러 번 고을에서 천거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공실(公實), 호는 신와(愼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누항(陋巷) 정용환(鄭龍煥)이며, 조암(照庵) 정해필(鄭海弼)과 『상산지(常山誌)』를 쓴 정우섭(鄭友燮)이 그의 손자이다. 정재경(鄭在褧)[1780~?]의 아버지가 그림 속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천당(聽天堂).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옥(鄭在玉)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자세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독실하게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정산(貞山) 김정묵(金正黙)은 “백수(白首)로 경서를 깊이 탐구하였으며, 집에 깊이 파묻혀 시정(市井)에 나오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늙어서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잉수재(仍樹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응(鄭在應)은 일찍부터 문경공(文敬公) 송환기(宋煥箕)의 제자로 들어가 유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만년에는 쌍계산(雙溪山)에 들어가서 서재를 짓고 ‘잉수재(仍樹齋)’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다. 그 때문에 잉수재라는 호가 붙었는데, 그곳에서 오로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소은(素隱).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형(鄭在衡)은 오로지 경학(經學)을 숭상하였으며,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품이 침착하고 효행이 지극하였다는 기록이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전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학문에 더욱 힘써 여러 번 향공(鄕貢)에 천거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시조인 지백호(智伯虎)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정봉남(鄭鳳男)이고, 할아버지는 정이경(鄭履慶)이다. 시조 지백호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좌명공신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효자 정도(鄭棹)이다. 정창환(鄭昌煥)이 소년 시절 어느 날 마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호랑이가 마당으로 들어오자 이불로 어머니를 가리면서, “우리 어머니를 해치면 안 된다.”고 큰소리로 꾸짖으니 호랑이도 머리를 끄덕이고 물러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민주주의는 국가의 최고 의사가 국민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국민 중의 능동적 국민이 직접 국가 의사를 결정하거나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국민의 대표를 의미하는 국가 기관으로 하여금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정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진천군에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육육당(六六堂). 증조할아버지는 정인환(鄭寅煥)이다. 정해용(鄭海容)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글과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진천군지』에 정해용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조암(照庵). 할아버지는 효자이자 유학자인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이고, 아버지는 정선(鄭鍌)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 홍대욱(洪大勖)의 딸이다. 정해필(鄭海弼)[1831~1887]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에서 양육되었다. 효행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효자 정봉남(鄭鳳男)이다. 정혁경(鄭爀慶)은 10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을 만나자 급히 어머니를 업어 보호하고 대신 자신이 죽기를 청하며 다투니, 왜군이 경외하여 차마 해치지 못하였다.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시묘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혁경...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회촌(晦村). 조선의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7세손이며, 남대(南臺) 집의(執義) 정흠(鄭欽)의 현손이며, 입향조인 정방광(鄭邦絖)의 증손이다. 형은 정봉남(鄭鳳男)이다. 정황남(鄭凰男)은 백원서원(百源書院)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형 정봉남과 함께 어머니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산행와(山行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이다. 정회(鄭淮)[1805~?]는 일찍이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를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방안을 따뜻하게 하거나 서늘하게 하는 일까지 친히 보살폈다. 어머니의 비위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려고 애를 썼고, 아침저녁으로 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평양(平壤). 호는 백파(栢坡). 대제학 조정수(趙廷壽)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이다. 조감(趙感)[1604~168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9세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유배 보냈다가 죽인 이른바 폐모살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평양(平壤). 호는 백파(栢坡). 대제학 조정수(趙廷壽)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이다. 조감(趙感)[1604~168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9세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유배 보냈다가 죽인 이른바 폐모살제(...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양(平壤).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의 후손이며, 손자로 조한욱(趙漢旭)을 두었다. 조재숙(趙載琡)은 철종 때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 경사에 널리 통한 학자이자, 교육가였다. 늘 집안을 효(孝)와 우애로 다스리고 사람을 예로 대하였다. 또한 노계의숙(蘆溪義塾)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 평양조씨 시조 조춘(趙椿)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고려 때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송나라 상장군(上將軍)이 된 인물이다. 조춘은 상원(祥原)에 정착하여 4세손까지 내려오다가 5세...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2월 6일에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풍속. 좀생이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2월 6일 저녁 서쪽 하늘에 모여 있는 좀생이별[작은 별무리]을 보며 별과 별 사이의 거리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이를 ‘좀생이보기’라고도 한다. 좀생이별보기는 농사점(農事占)의 하나로 달의 옆을 따라가는 작은 별들인 좀생이의 모양과 달의 거리를 통해 길...
-
조선 후기 유수응(柳秀應)이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뱃머리의 넓은 들을 노래한 칠언절구의 한시. 예부터 산수가 수려한 곳에는 ‘팔경’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주두광야(舟頭曠野)」 역시 진천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벽오팔경(碧梧八景)의 하나이다. 현재 벽오팔경(碧梧八景)은 4편만 전해지는데, 제1경은 「상산모운(常山暮雲)」, 제2경은 「관촌석연(管村夕烟)」, 제3경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전반적인 주생활 행위를 의미한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생활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진천 지역에 현존하는 주거 형태는 주로 19세기~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그 양식은 토담집과 일반적인 주거양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중원도는 995년(성종 14)에 설치된 10도(道)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지방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를 통하여 중앙 집권화를 굳히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국가체제 정비에 나서게 되었고, 그 결과 983년(성종 2)에 12목(牧)을 설치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이웃마을과의 경계에서 횃불을 밝히거나 깡통을 던지며 승부를 벌이는 편싸움. 쥐불싸움은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와 문백면 사양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논둑이나 밭둑의 쥐를 쫓고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쥐불을 놓다가 이웃마을과 마주치는 곳에서 쥐불을 놓던 횃불 또는 쥐불놀이 깡통을 던지며 싸움을 하던 민속놀이이다. 이를 ‘쥐불’,...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지명설화는 설명적 전설에 해당되는 지명유래 전설과 역사적 전설에 해당하는 지명 전설이 있다. 설명적 전설인 지명유래 전설은 자연물이나 인공물의 특수한 형상이나 특징으로 인하여 암석·교량·산악·못 등이 명명된 내력을 설명하는 설화이며, 여기에 수록된 각 편 가운데 17편으로 가장 많다. 지명설화에는 「살구우물...
-
충청북도 진천 군민들 스스로가 또는 주민의 대표자를 통해 행사하는 정치와 행정. 지방자치란 중앙 집권적 행정 체제의 지방 분권적 행정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의 중요한 점은 중앙 집권의 폐해나 중앙 정부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이 지방 자치 단체의 여러 가지 시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데 참여하여 각각 그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살리면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지신(地神)을 위로하는 민속놀이. 지신밟기는 진천군의 각 마을에서 음력 정월 초이튿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농악대를 조직하여 마을의 공동우물, 마을 어귀의 큰 나무 등 마을의 소중한 곳과 각 가정을 돌며 지신[땅을 맡은 신령]을 달래어 가정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다. 지신밟기 놀이가 가장 왕성하게 진행되는 시기는 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물질. 충청북도 중앙 서단에 자리 잡은 진천군은 진천도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천도폭은 행정구역상으로 주로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군에 걸쳐 있고, 충청남도 천안시와 충청북도 음성군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진천군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진천 편마암 복합체는 진천군·청원군 일부와 충청남도 천안시, 경기도 안성시 일...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차령산맥이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시의 경계를 이루며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진천군은 차령산맥 남단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1. 북서부 지역 진천군 북서부는 변성암류가 분포하는 험준한 지역으로 광혜원면 구암리 북쪽으로 덕성산(德城山)[519m], 백곡면 양백리 서북쪽으로 서운산(瑞雲山)[...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고려 태조가 궁예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청주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진천에 군사를 파견하여 청주 세력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청주를 진압하였던 전초기지였다는 의미에서 진주(鎭州)라고 명칭을 변경하였다. 진주는 고려군이 청주세력을 ‘진압(鎭壓)한 곳’, 혹은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
-
조선 후기 및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교 학파의 하나. 강화학파(江華學派)는 정제두(鄭齊斗) 이후 가학(家學)으로 양명학을 전수해간 일련의 관료 유학자들이며 하곡학파(霞谷學派)라고도 한다. ‘강화학(江華學)’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양명학의 정립자인 하곡(霞谷) 정제두가 강화에서 가학으로 학문을 전수했던 것에 착안하여, 후대의 연구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강화학파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매년 5월 한국문인협회 진천지부 주관으로 개최되는 군민백일장. 진천군민백일장은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 축제로, 진천 문학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지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생활 속 문학을 향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포석조명희문화제(抱石趙明熙文化祭))와 생거진천 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청소년 문화 축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찹쌀·멥쌀·보리·밀가루 등을 발효시킨 민속주. 막걸리는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로,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하며 알코올 함량이 6~7도로 비교적 순한 술이다. 1925년에 한천교 건너편에 있는 구말장 자리에 양조장이 생기면서 막걸리를 빚기 시작하였다. 1929년 대홍수가 나자 지대가 높은 덕산으로 양조장을 옮겨 지금의 자리에서 막걸리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상공인 권익 보호 단체. 진천상공회의소는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상공업 환경 개선 및 발전을 꾀하고, 회원 기업의 권익을 대변하여 상공업계의 어려움을 타개하며, 상공업 진흥 및 교류 확대와 각종 정보 제공을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003년 11월 6일 진천상공회의소 발기인대회를 열고, 같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모임과 미사 및 공동체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교리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6월 1일 진천성당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부지는 10,909㎡이었고 건물은 성당과 사제관 등 463㎡ 규모였다. 그 후 부지와 부속 건물들을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아가씨에 관해 부른 대중가요. 「진천아가씨」는 경관이 수려하고 인심이 좋아 살기 좋은 진천 지역에 살고 있는 아가씨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이다. 「진천아가씨」를 부른 가수 조미미는 1964년에 「떠나온 목포항」이라는 노래로 데뷔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78년 5월 16일 비정규 LP앨범으로 발매되었으며,...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탱화. 「진천영수사영산회괘불탱」은 석가모니불이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 1977년 12월 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55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진천영수사영산회괘불탱」은 17세기 영산회상도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진천중앙교회는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성령이 충만한 교회, 말씀이 흥왕 하는 교회, 기도에 힘쓰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와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4년 1월 17일 진천읍 교성리 1구 190번지 엄학용의 집에 가정 제단을 쌓고 첫 예배를 시작한데 이어 6월 5일...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엿. 우리나라는 예부터 엿기름으로 발효시킨 곡물에서 얻어진 전분에 열을 가해서 진득진득할 때까지 고아 만든 조청이나 엿으로 식생활에 필요한 당분을 얻어 왔다. 엿기름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이 트게 한 다음 말린 것으로, 가루로 만들어 물과 함께 혼합하여 일정 온도를 유지해 주면 천연 발효제가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쌀로 만들면 쌀엿이 되고 옥...
-
2007년 조항범이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명에 대한 어원과 유래에 대해 조사하여 엮은 책. 『진천군 지명유래집』은 진천 지역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땅이름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자가 직접 진천군 7개 읍면 곳곳을 찾아다니며 많은 지역민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기존 자료들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이다. 진천군 지역에 산재하는 지명을 조사하여 정리한 뒤,...
-
1919년 3월과 4월에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전개된 3·1운동.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 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1운동이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에 파급되었다. 충청북도 진천 출신 재경 조명희[중앙고보]와 홍순복은 서울에서, 박승하[청주농업학교]는 청주에서 각기 재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일원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1919년 3월 15...
-
충청북도 진천군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진천현(鎭川縣)은 조선왕조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전국적으로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하면서 폐지되었다. 1413년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즉 군현제 개혁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의 읍격(...
-
조선 후기 정기회가 충청북도 진천에 있는 창랑정에 올라 세상의 혼탁함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창랑정(滄浪亭)」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율산(栗山) 정기회(鄭基會)가 지은 한시이다. 창랑정에 올라 매화와 소나무 등 사군자와 물을 예로 들고, 혼탁한 세상에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던 옛 지인(知人)의 삶의 태도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정 깊어지니 이 마음 너그러워...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과 함께 최의를 제거하고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임연의 고향인 진주(鎭州)를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켜 그의 공훈에 대해 포상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지 양광도 청주목 진주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종 46년 임연의...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매년 하반기 한국다우코닝 주관으로 개최되는 행사. 실리콘 및 솔루션 제공업체인 한국다우코닝(주)은 세계적으로 ‘과학’, ‘수학’, ‘어린이 교육’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과학 실험을 위한 설비가 전무한 인도 푸네 지역 학생을 위해 실험실을 만들어 주고, 미국에서는 화학 박사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平康). 순당(蓴塘) 채진형(蔡震亨)[1579~1659]의 후손이다. 채진형은 본래 서울에 살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꿈속에서 피난가라는 계시를 받고 피신하여 진천 땅 어느 곳에 정착하고,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찾은 마을이므로 마을 이름을 몽촌(夢村)이라 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을 이룰 당시 심었던 은행나무는 수령 310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 할아버지는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1683~1741]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인천채씨(仁川蔡氏) 시조 채선무(蔡先茂)는 고려 중엽 벼슬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이르렀는데 인천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또는 지비자(知非子). 증조할아버지는 채흥선(蔡興先)이고,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다. 아버지는 진사 채진형(蔡震亨)이며,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아버지 채진형이 우거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이 가문의 근거지이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강(平康). 1910년(순종 4) 10월 21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서 출생하였다.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뒤 상해로 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 복역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경도신문사 기자로 독립운동을 하다 다시 체포,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채수복(蔡洙福)[1910~1945]은 1930년 1월 16일 서울 협성실업학...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채영용(蔡領用)이다.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는데, 8세 때 “달이 동산 위에 떠오르니 그 모습이 태극과 같구나[月出...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로마 교구의 주교인 교황을 으뜸으로 삼는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천주교는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이다. 이를 ‘구교’, ‘가톨릭교회’ 등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1791년 신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으로 선교의 어려움을 겪다가 1882년 한미수호...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철을 이용해 도구를 제작·사용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철기시대라는 명칭은 인류 선사문화의 발달을 석기-청동기-철기문화의 순서로 정리한 톰센[C. J. Thomsen, 1788~1865]의 삼시대법[Three Age System]에서 연원한다. 그러나 삼시대법은 선사시대에나 적용된 것이므로 문자를 사용하거나 당시의 모습을 알려줄 문헌이 많이 남아 있...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사용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시대라는 명칭은 인류 선사문화의 발달을 석기-청동기-철기문화의 순서로 정리한 톰센[C. J. Thomsen, 1788~1865]의 삼시대법[Three Age System]에서 연원한다. 금속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술적 진보 외에도, 청동기시대가 되면 세계 몇몇 지역에...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속해 있던 행정 구역. 청주(淸州)는 919년(태조 2)에 청주로 이름 붙여졌고 983년(성종 2)에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했을 때 청주가 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 후 1018년(현종 9) 8목으로 정리되었을 때도 청주목(淸州牧)은 충청권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신라 말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 호족이라 불리는...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 있는 닭고기 가공식품 제조업체. (주)체리부로는 최고 품질의 닭고기를 생산함으로써 국민 건강에 기여하고, 아울러 농가의 안정적인 수입 기반을 마련하고자 설립되었다. 1991년 9월 (주)체리부로식품으로 법인 설립되었다. 1993년 2월 진천공장을 준공하였고, 1999년 한국육계유통(주)을 설립하여 수도권 부분육 전문 가공공장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충절공(忠節公) 최영유(崔永濡)의 8세손이다.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시조는 최세기(崔世基)이다. 고려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그가 화순의 옛 이름인 오산(烏山)에 봉해짐으로써 화순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최세기와 같이 몽골군의 침입 때 공을 세우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부(崔傅)를 함께 시조로 삼기도 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며, 효자 최사립(崔斯立)의 증손이다. 최사립 이후 최면성에 이르기까지 자손이 모두 효행으로 이름을 얻었다. 최면성(崔勉誠)은 사마시(司馬試)의 양과, 즉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대의 혼란기를 맞이하여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6세손이다. 아들은 최덕순(崔德恂)이고, 손자는 최기(崔基)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사립(崔斯立)은 군수를 지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중종 때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아들인 최덕순도 군수를 지냈고 효성이 지극하여 선조 때에 정문이 섰다. 손자 최기는...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의 여섯째 아들이다. 최유경은 1406년(태종 6) 참찬의정부사가 된 뒤 사임하고 진천군 초평면 죽정마을로 내려와 스스로 죽정(竹亭)이라 부르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냈다. 최사흥(崔士興)은 효성이 지극하여, 충청도 대흥현감무로 있을 때 부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버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 증조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응교(應敎)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되었다....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할아버지는 선부전서 상호군을 지낸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 박씨로 군부정랑을 지낸 박윤류(朴允鏐)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이 되어 각도의 의염(義鹽...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지군사(知郡事) 최극함(崔克咸)이다. 최제두(崔濟斗)가 태어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제두는 10세에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할머니가 마마를 앓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약과 함께 마시게 하였는데, 손가락을 끊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였다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효자 최주민(崔柱旻)이다. 최종운(崔宗運)이 태어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종운은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너무 어려서 상을 치르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다가 어머니의 사갑(死甲)을 맞던 해에 3년 복을 추복(追服)하였다. 또한 아버지의 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최기(崔基)이다. 최주민(崔柱旻)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작은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어 완쾌하게 하였고, 손수 약맛을 보아 봉양하였다. 숙종(肅宗) 때 정려가 내려졌다. 최주민의 할아버지 최기, 고조할아버지 최덕순, 증조할아버지 최사립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평산(平山). 남편 최혼(崔焜)은 지사(知事) 최극성(崔克誠)의 손자로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신씨는 남편 최혼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는 등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죽자 만 1년 뒤 기제사를 마친 후 곡기를 끊고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1699년(숙종 25)...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댄스 스포츠 동호회. 춤사랑한마음동호회는 진천군의 여성 단체로서 주로 댄스 스포츠를 연습하고 공연하고 있다. 댄스 스포츠는 일반 사교댄스와는 다른 춤으로 운동량도 많아 에너지 소비가 크기 때문에 여성들의 다이어트 운동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춤사랑한마음동호회는 명칭 그대로 춤을 사랑하고 춤을 배워 운동 효과도 높이며 다양...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진천군 관할 교육 행정 기관. 충청북도 진천교육지원청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2년 5월 24일 「교육법」 제20조에 의한 진천군 교육위원회의 구성에 이은 6월 4일의 시·군 교육자치제 실시와 더불어 7월 1일 진천군 교육구 개청식이 거행 되었다. 같은 해 8월 8일...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 있는 장류 제조업체. 예로부터 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널리 애용되어 온 건강식품 중의 하나이다. (주)콩세상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콩과 작두콩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힘을 합하여 설립한 향토 기업이다. 1999년 10월 콩세상식품으로 설립되었다. 2001년 5월 통신판매업으로 신고하였고, 2003년 3월 (주)콩세상으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원 터. 태락원 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진천현 관할의 옛 원(院)이 있던 자리이다. 원은 고려·조선시대에 역과 역 사이에 두어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던 공공 여관이다. 마을 노인의 말에 의하면 “옛날 장사꾼들이 청주장을 보고, 진천장으로 가다가 묵어가던 곳이었으며,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이 원...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성된 흙. 진천군의 토양은 내륙 평탄지의 토양, 하천 범람지의 토양, 낮은 구릉지와 산기슭, 낮은 구릉지 곡간지의 토양, 구릉지·산악 지대 토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토지의 비옥도가 떨어지고 지형상의 제약도 있어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륙 평탄지의 토양은 39.60㎢로 군 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인이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며 부르는 민요. 「팔자요」는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서 전승되는 노래로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여인의 풍모와 심정을 형상화한 여자탄식요이다. 이를 「신세한탄 노래」·「세월한탄 노래」라고도 일컫는다. 혼자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음영(吟詠)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설은 3·4조 내지 4·4조로 되어 있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었던 옷. 충청북도 진천 지역은 현대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평상복의 기본적인 형태는 특별한 점이 없다. 따라서 전통적·계절별로 지역에서 사용했던 옷감과 의복의 구성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써 평상복의 구성과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진천 지역에서 주로 평상복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전통적으로 바지·저고리·치마·속곳·두...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의례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활하다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삶의 중요한 단계마다 치러야 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이를 통과의례(通過儀禮)·일생의례·생활의례 등이라고도 한다. 즉 관혼상제의 의례를 말하는데, 조선시대부터 숭상된 유교의 바탕 위에서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번잡스러운 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있는 산지와 산지 사이에 발달한 넓고 평탄한 지형. 평야(平野)는 지질학적 척도에서 수백 년에서 수만 년에 걸쳐서 안정된 지역이나 침강하는 지역에 주로 형성된다. 평야는 기복이 작고 낮은 평지로 크게 침식 평야와 퇴적 평야로 나누어진다. 침식 평야는 대륙적 규모로 서서히 상승 또는 침강하는 곳에서 대규모로 형성되고, 신기 조산대에서는 일반적으로 소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름철에 풍뎅이를 놀리며 노는 놀이. 풍뎅이놀이는 여름철에 아이들이 숲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뎅이를 잡아서 목이나 다리를 비틀어 놓아 바로 날아갈 수 없도록 하거나, 풍뎅이를 젖혀[몸을 뒤집어] 놓은 다음 날아가려고 날개를 흔들며 빙빙 도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풍딩이놀이’라고도 일컫는다. 풍뎅이는 참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이론. 풍수라는 말은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는 뜻의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나온 말이다. 바람을 감춘다는 말[藏風]은 생기가 바람을 만나면 부산(浮散)하므로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득수(得水)란 지중에 수기(水氣)가 있으면 생기가 있고, 생기가 축적되면 지상의 복을 가져오니 득수가 필요하다는 뜻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하(河)는 원래 중국의 황허 강[黃河]을 일컫는 고유 명사였다가 나중에 보통 명사가 되었다. 천(川)은 유수가 흘러내리는 상태를 나타낸 상형 문자이다. 하와 천은 엄밀한 구별은 없으나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는 가항 하천[河: river]과 보통의 강(江)[川: river, stream],...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행(景行), 호는 동우(東愚).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의 15세손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출생한 한경석(韓景錫)[1878~1945]은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 묘소 아래에 여막을 짓고 지냈다. 농사를 짓고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모친 봉양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언제나 유순한 마음으로 모친의...
-
신라가 삼국통일 후 설치한 9개 주의 하나. 한산주(漢山州)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와 「지리지(地理志)」,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한산주는 삼국통일 후 신라가 설치한 9개 주의 하나로 오늘날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기생첩을 데려온 남편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부녀요. 「한양낭군가」는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서 전해지고 있는 한양에 간 낭군이 첩을 데려와 속을 썩이자 결국 죽음을 택했다는 노래로, 내용이 짧으면서도 묘미가 있는 옛 여인의 서사민요이다. 「한양낭군가」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불리는 「진주낭군가」와 사설의 내용이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시집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이중 바닥재 시스템 생산 전문 업체. 1987년 12월 법인을 설립하여 1990년 7월 충청북도 진천에 공장 등록을 하였다. 1996년 12월 해광빌딩을 준공하여 서울 사옥을 이전하였고, 2000년 12월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하였다. 2003년 9월 송석범 대표 이사가 취임했으며 2004년 총자본금을 50억 원으로 증자하였다. 20...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이용하여 지역 특유의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향토음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진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물들을 주로 활용하여 만든 것으로 진천 지역의 특색을 담은 음식이다. 둘째, 진천 지역의 사람들이 만들긴 하였지만,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산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지역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전근대 시기 중앙 집권적 수취(收取) 체제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도지·시지·군지, 마을지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사정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지역 연구자의 애향심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를 조사·연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 관...
-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35년간의 일제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 국제정세는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국가건설을 어렵게 만들어갔다.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세...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협탄원(脇呑院)은 고려시대에 처음 설치되었던 원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 진천현 서쪽 36리에 협탄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원 제도가 점차 쇠퇴하면서 협탄원 역시 폐지되고 대신 이곳에 개인이 운영하는 서수원(西水院)...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1889년(고종 26) 8월 3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범바위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만주에서 한족회 간부로 독립운동을 하다, 서울에 대한통의부 지부를 설치해 독립운동을 하였다. 홍경식(洪景植)[1889~1961]은 1910년 일제가 나라를 강점하자 부친인 전 참판 홍승헌(洪承憲), 전 참판 정원하(...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독립운동가. 개항기 소론 양명학 계열의 문신으로 일제의 강점 이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한 우국지사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문일(文一), 호는 문원(文源). 정조 때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의 5세 종손으로, 고조할아버지 홍낙원(洪樂源)과 증조할아버지 홍경모(洪敬謨)가 모두 이조판서를...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환갑의 부모가 자식에 대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 유희요. 「회갑 노래」는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에서 회갑이 된 부모가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소망을 사설로 엮어서 부르는 토속민요이다. 이를 「환갑 노래」라고도 일컫는다. 회갑 때에 회갑을 맞이한 사람이 부르던 소리로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민요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늘 같은 우리 가장 땅...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이거나 진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효 사상은 뿌리가 깊다. 특히 유가(儒家)에서는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 하여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가족제도 아래서는 가장 우선시되며 근원적인 것이 효 사상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
-
통일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흑양군(黑壤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신라의 한주(漢州)에 속한 지역으로 처음 나온다.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개칭한 것이며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