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자유(自由), 호는 죽암(竹岩). 아버지는 성균관 교수였던 능봉(菱峰) 고성겸(高性謙)[1856~1899]이며,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고경흠(高景欽)[1910~?]의 8촌 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 23-1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고순흠의 묘가...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4년 구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6학년 때 일본인 교장 나카야마[中山重義]가 조선어 사용을 억제하는 것에 항의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심상고등소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노동 현장에서 조선인에 대한 극심한 차별을 체험한 후 항일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42년 4월 중학교 동창 윤병윤(尹...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호는 해강(海岡). 가명은 김제민(金濟民)이며 호적상의 이름은 김신배(金申培)이다. 아버지는 김희수(金熙穗)이다. 일찍이 한문을 익혔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시즈오카[靜岡]에서 군밤 장수를 하면서 공부하고자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지 않자 귀국하여 민중 계몽 운동에 힘썼다. 1919년 3월 조천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고, 동지들이 체포되자...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31년 1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함덕리 출신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이 사망하여 1월 19일 시신이 고향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치룰 것을 결의하였다. 1월 22일 한영섭의 할아버지 한정권(韓程權)의 집에서 대흘리 장지까지 상여를 운구하면서 동지들과 함께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고 ‘한영섭 만세’를 삼창하였다. 또한 한영섭 추모비를...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일본 선박의 선원으로 강제 징용되어 상하이·홍콩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1940년 탈출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1940년 중국의 광시성 유림(柳林)과 계림(桂林) 전투에 참가하였다. 1942년 10월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비대원에 임명되었으며, 1943년 10월 2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의원으로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