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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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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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로(敬魯), 호는 청은(淸隱). 권용일(權用佾)[1884~1971]은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딱밭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장으로 일하던 18세 때 청풍의 일본군 헌병 주재소에서 할당하는 마초(馬草)의 감면을 요구하다가 질책을 받자 헌병들을 구타하고 주재소에 불을 지른 뒤 도망쳤다. 이후 행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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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김봉용(金鳳容), 자는 주서(周瑞), 호는 청은(淸隱). 문간공(文簡公) 김세필(金世弼)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김수명(金秀命)이다. 김상한(金商翰)[1848~1917]은 이기문(李基文)에게 배웠다. 어린 시절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유생 시절에 정국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려 3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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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해풍(海豊). 자는 춘백(春伯), 호는 집의당(集義堂). 김태원(金泰元)[1863~1932]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출사하여 별군직과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직후 김하락·구연영·조성학·신용희 등과 함께 이천에서 봉기할 때 선봉장을 맡았다. 백현(魄峴)·이현(梨峴) 등지에서 접전하여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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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독립 운동가 이용태의 문집. 이용태(李容兌)[1890~1964]의 호는 단암(檀庵)이다.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1939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제천에서 대종교 운동을 벌였다. 이용태의 문집인 『단암이용태선생문고(檀庵李容兌先生文稿)』에는 대종교 관련 글과 논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용태의 아들 이영재(李榮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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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철도 수화물 처리와 관련된 건물. 일제 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경영이라는 목적 하에 주요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철도 건설에 역점을 두었다. 특히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해서 건설한 중앙선은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경기도 등 동부 지역 일대의 지하자원 수탈과 만주~일본을 잇는 교통선을 개발하기 위해 1936년 착공하였다. 1941년 9월 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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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이거나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구한말 항일 의병의 본거지였던 제천 지역은 다양한 형태의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됨으로써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권 회복의 날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 국권 상실 직후에는 의병론자들이 개화론자들과 연대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나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 눌려 복벽(復辟)운동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이후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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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개되었거나 제천 지역 출신자가 전개한 민족 해방 운동.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제천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민족 운동들이 일어났다. 비타협적 무장 투쟁 노선의 원류가 된 의병을 비롯하여 3·1 운동이 일어났으며 학생 운동, 청년 운동 등의 사회 운동과 교육 운동도 일어났다. 3·1 운동은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던 이범우(李範雨)가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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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순국 열사.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함경도 고원에서 태어나, 일찍이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어 23세 때 영흥에서 강학하던 홍직필의 제자인 이사현(李思峴)에게 나아가 10년간 학업을 익혔다. 40대 이후에는 안변, 평강, 회양, 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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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경재(敬哉), 호는 관수재(觀水齋). 서상무(徐相懋)[1856~1925]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태어났다.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진압군을 일으켜 동학 수령을 체포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제천의 을미 의병에 참여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이끌고 만주 지역으로 건너간 이후 벼슬길에 올라 순릉참봉(順陵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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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한말 문인이자 의병장인 이소응의 문집. 이소응(李昭應)[1852~1930]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이다. 일명 의신(宜愼), 직신(直愼)이라고도 하였다. 춘천시 남산면에서 태어났다.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호좌의진의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중국 만주로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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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성(呂聲), 호는 퇴앙(退央). 아들로 의병 운동을 펼친 안승우(安承禹)가 있다. 안종응(安鍾應)[1845~1906]은 경기도 지평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에 두루 뛰어난 학자였으며, 척사론을 주장하는 화서학파와 일찍부터 교류하였다. 단발령 이후 지평 고을에서 이춘영(李春永)과 김백선(金伯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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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양동환(梁東煥)은 본관이 나주(羅州)이며, 을미 의병 당시 이강년(李康秊)과 의병을 일으켜 제천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 1909년(순종 3) 다시 의병을 일으켜 나주 어등산(魚登山)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여 대파하고 황룡강(黃龍江) 유역에서도 분전하였다. 그 후 만주로 건너가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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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다. 14세에 종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춘천의 가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 등 화서학파 거유들에게 차례로 배웠다. 스승인 유중교가 말년에 강학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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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원평(原平), 호는 도진(桃津). 유치경(兪致敬)[1848~1901]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다. 장담에서 개최된 유중교의 강학에 참석하면서 문하에 출입하였다. 유중교의 시문집인 『성재집(省齋集)』 발간에 앞장섰다. 1895년(고종 32)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신석원·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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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효백(孝伯), 호는 외당(畏堂). 유인석(柳麟錫)의 육촌 형이다. 유홍석(柳弘錫)[1841~1913]은 단발령 이후인 1896년(고종 33) 초 춘천에서 이소응(李昭應)·유중락·유봉석 등과 봉기하여 가평과 춘천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춘천 의진이 무너진 후로는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세하여 유인석 휘하에서 서무를 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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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의 문집.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유중교(柳重敎)에게 수학하였다.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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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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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준(李容俊)[1907~1946]은 본관이 광주(廣州)이며, 1925년 3월 제천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군청에 근무하다가 신간회에 가담하는 등 민족 운동을 하였다. 1930년 『동아일보』 봉천지국(奉天支局) 보급원으로 만주에 갔다. 이듬해 원심창(元心昌)의 권유에 따라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종사할 것을 결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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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용태(李容兌)[1890~1964]는 호는 단암(檀菴)이며, 충주시 산척면 광동 출신으로 어려서 봉양으로 이사하였다. 임의상(林宜常)·이소응(李昭應) 등 화서학파 학자들에게 배웠으나 나라가 망한 후로는 구학문으로 나라를 건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개혁에 뜻을 두었다. 24세 때 근좌면 면서기로 공직에 나섰으며,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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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만여(萬汝), 호는 실곡(實谷). 이필희(李弼熙)[1857~1900]는 단양의 품달과 여주에 살았다. 무인 집안 출신이었으나, 유중교(柳重敎)를 만난 후 유학에 전념하였다. 을미년(1895)에 단발령 조치가 내려진 후 장담에서 처신을 두고 의병을 일으킬 것인가, 망명할 것인가, 자결할 것인가를 두고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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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문(敬文), 호는 청사(晴史).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후손이다. 이형구(李馨久)는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충주의 하곡에 살던 이기진(李起振)의 추천으로 의병 운동에 가담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다시 제천으로 돌아와 방어 전선을 펼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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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890~1958]는 광복단(光復團)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다. 3·1 운동 후 창립된 광복단은 원래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祺中)·유창순(庾昌淳)·한훈(韓焄) 등이 조직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서 비롯한 것으로, 박상진(朴尙鎭)·양제안(梁濟安)·우재룡(禹在龍)·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 등이 가담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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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는 옷. 일상복은 의례가 아닌 일상생활이나 작업할 때 입는 복식이다. 이를 평상복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일상복은 대부분 서양식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복과 양복이 혼용을 이루었다. 그러나 점차 한복은 주로 결혼식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입는 옷이 되었고, 서양식 옷이 일상복을 대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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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정병철(鄭炳喆)의 자는 수봉(壽鳳)이다. 평민 출신의 의병으로 능력을 크게 인정받은 경우이다. 단발령 이후에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방에 소토장으로 파견한 서상렬(徐相烈)의 휘하에서 중군 참모로 활동하였다. 좌부장(左副長)으로 제천 본진과 연락을 담당하였고, 조령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유격장 이강년(李康秊) 휘하에서 부총(副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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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 아들로 주현구(朱鉉九)와 주현삼(朱鉉三)을 두었다. 주용규(朱庸奎)[1845~1896]는 1845년(헌종 11) 함흥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이다. 스승이 장담으로 이주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제천으로 이주하여 장담의 선비들을 이끌었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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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에서 대랑동을 거쳐 서울 청량리역과 경주시 경주역 간을 연결하는 철도. 중앙선은 제천에서 충북선, 태백선과 교차하고, 경상북도 영주에서 경북선, 영동선과 교차하며, 경부선과 직접 연결된다. 특히 험준한 산악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차령산맥을 넘기 위한 치악산의 금대터널은 기차의 등판 능력을 감안하여 환상선(環狀線)으로 굴착하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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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채찬(蔡燦)[?~1924]은 일명 백광운(白狂雲)이라 불렸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일이 이어지자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 소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10년 국권 피탈 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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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옥(元玉·原玉), 호는 성운(醒雲). 홍선표(洪選杓)[1872~?]는 연풍[현 충청북도 괴산군]에 살았으며,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의 호좌의진에 이조승(李肇承), 이기진(李起振), 정화용 등과 함께 종사로 참여하였다. 영남의 의병을 북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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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황학수(黃學秀)[1879~1953]는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부위로 근무하던 중 1907년(순종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귀향하여 동명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