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1342
한자 洛圃影閣
영어공식명칭 NakpoYeongkag
이칭/별칭 매산영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말터길 39-12[초동리 463]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0~1872년 8월 - 낙포영각, 영정 조성
이전 시기/일시 1936년 - 낙포영각, 영정 이안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8년 - 낙포영각, 영정각 설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6~1987년 - 낙포영각 보수 공사
현 소재지 낙포영각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말터길 39-12[초동리 463]지도보기
성격 영정각
양식 한식 목조와가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5칸
관리자 안동김씨 문중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에 있는 낙포 김사형의 영정각.

[위치]

안의천 상류 좌안에 있는 마을회관 바로 뒤에 있다. 망덕산의 서사면 말단부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에는 작은 곡저평야가 조성되어 있다.

[변천]

낙포(洛圃) 김사형(金士衡)[1341~1407]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으로 고조부는 김방경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대간과 개성윤으로 제수되었고 태조 이성계를 추대하여 1등 공신이 되었다. 이후 문하시중에 제수되었고 상락백의 작위를 받았으며, 1396년에 도통처치사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그 뒤 좌정승을 지냈고 판문하부사와 영사평부사를 역임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영정의 조성시기는 1870~1872년 8월이며, 황해도 평산 엽동에 봉안되었다가 전라남도 영암으로 이안되었다. 이후 영정은 전라북도 고창군의 종손 김영필의 집에 봉안되었다가 1936년에 현재의 매각마을로 이안되었다. 1938년에 영정을 봉안하기 위한 영정각을 건립하였고 1986~1987년에 보수공사가 있었다.

[형태]

영정각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어 이를 계단상으로 정지하여 대지를 조성하였다. 영정각은 정당과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남북축 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정당은 높은 곳에 배치되어 있고 대문채는 낮은 곳에 배치되어 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정면에는 0.5칸의 툇간을 두었는데 시설은 하지 않고 기단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배면에는 마루를 시설하였다.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다음 시멘트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자연석 초석이며 기둥은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공포양식은 정면과 좌우 측면에는 2익공형식으로 익공에는 연꽃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배면에는 간단한 장여수장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도리는 둥근 굴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상부가구는 도리가 세 개인 3량가이다. 지붕은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고 한식 기와로 마감되어 있는데 막새는 사용하지 않았다. 영정각 전체에는 단청이 시문하여 건물의 위계를 표현하였다. 대문채는 3칸이며 중앙칸에는 두짝 판문이 설치되어 있고 양옆의 퇴칸에는 외짝 판문이 달려 있다. 지붕은 중앙칸이 높은 솟을대문으로 장식하였는데, 현재는 칼라강판으로 마감되어 있다. 대문체에도 단청이 시문되어 있다. 주변에는 돌담을 둘러 공간을 나누었다.

[의의와 평가]

낙포의 영정을 봉안한 낙포영각은 흔하지 않은 영정각이다. 후손들이 낙포를 기리기 위해 영정각을 2익공양식을 사용하고 단청을 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현재의 영정각은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영정각의 건축양식을 잘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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