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629 |
---|---|
한자 | 笑癡齋遺稿 |
영어공식명칭 | Sochijaeyugo |
이칭/별칭 | 『소치재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진 |
간행 시기/일시 | 1911년 - 『소치재유고』 간행 |
---|---|
소장처 | 경상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501[가좌동 900] |
간행처 | 원당 - 현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남효리[당시 남효동] |
성격 | 문집 |
저자 | 강명세 |
편자 | 강신화 |
간행자 | 강신화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21.0×28.0㎝ |
어미 |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 |
권수제 | 소치재유고목록 |
판심제 | 소치재유고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명세의 문집.
[저자]
강명세(姜命世)[1632~1708]의 자는 덕수(德秀), 호는 소치재(笑癡齋)·소치자(笑癡子)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문재(姜文載)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영남(尹英男)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에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마산리[당시 마안(馬鞍)] 서쪽 산기슭 아래에 작은 집을 짓고 학문하였다. 1677년(숙종 3)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양천익(梁天翼)과 함께 남계서원에 강익(姜翼)[1523~1567] 배향을 위한 소를 올렸다.
[편찬/간행 경위]
9세손 맏손자 강신원(姜信源)이 유문을 교정하여 1908년에 간행하려다 세상을 떠났다. 이를 9세손 종제 강신화(姜信華)가 1911년 3월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소치재유고(笑癡齋遺稿)』는 총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며, 반곽이 16.0×20.0㎝이다. 사주단변이고, 행마다 경계가 있다. 10행 20자이고, 주는 쌍행이며,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이다.
[구성/내용]
『소치재유고』의 권두에는 1907년에 황난선(黃蘭善)[1825~1908]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시로 읊은 것, 「학사루」, 「두류산」, 경상남도 함양의 풍광을 읊은 「함양일경」, 차운시 등이 실려 있다. 또 강익을 남계서원에 배향하길 청하는 소(疏), 양천익과 주고받은 편지 14통, 선조들의 세계(世系), 연보가 있다. 고유문(告由文)[중대한 일을 치른 뒤에 그 내용을 적어서 사당이나 신명에게 알리는 글]으로 강익을 배향할 때 지은 것과 태계(台溪) 하진(河溍)[1597~1658] 봉안문,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 고유문이 있다. 금재(琴齋) 강한(姜漢)[1454~?]의 묘표가 실려 있다. 부록에는 아들 강관후(姜寬厚)가 지은 「가장」, 유주목(柳疇睦)[1813~1872]이 지은 「행장」, 정종로(鄭宗魯)[1738~1816]가 지은 「묘비명」, 유사(遺事)가 실려 있다. 또 양천익, 김태하(金泰廈) 등이 지은 제문과 만사가 실려 있다. 권말에는 1911년 3월에 7세손 강준형(姜駿馨)과 9세손 강신화가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소치재유고』는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명세의 시문집으로, 17세기 초 경상우도 함양 지역 남명학파 인물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