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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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化南 |
영어공식명칭 | Kim Hwan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924년 01월 13일 - 김화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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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94년 12월 01일 - 김화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김화남 대통령표창 수훈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90년 - 김화남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구교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
활동지 | 중국 호남성 - 중국 호남성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346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복군 단원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화남(金化南)[1924~1994]은 1924년 1월 13일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부터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중국에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화남은 1944년 3월 일본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한 후 탈영하여 중국 제9전구 제4군 제101사단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제9전구 내의 한국 사병을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로 편성함에 따라 제3구대 제1분대에 편입되어 조국 독립을 위한 공작 활동에 참여하였다.
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0년 9월 17일 군사 및 외교 활동을 위해 조직한 항일 군대이다. 중국 군사위원회에 예속되어 있던 광복군은 1944년 8월에 임시정부로 이관되어 임시정부 통수부(統帥府)가 통할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격감하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1943년부터 학도병 제도를 시행하였다. 1944년 무렵에는 학도병으로 중국에 끌려온 많은 한국인들이 부대를 이탈하여 중국군에 합류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현지 중국군 지휘관은 재량에 따라 탈영한 한국인들을 공작 임무에 활용하고 있었는데, 광복군에서는 중국군 제9전구에 속한 한국인을 광복군에 편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1945년 1월을 전후하여 학도병 출신 한국 병사들이 세 차례에 걸쳐 광복군에 합류하게 되는데, 중국 제4군 101사단에서 활동하던 김화남은 제3진으로 김충홍(金忠弘)·임기열(林基烈)·윤치하(尹致夏)·허정국(許禎國) 등과 함께 계동에 있던 사령부에 집결하였다. 제3진으로 모인 한국 청년은 40여 명에 이르렀다. 이후 김화남은 광복군 제1지대 소속으로 1945년 8월 15일 해방 전까지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화남은 광복 후에 귀국하여 1994년 12월 1일 사망하였다.
[묘소]
김화남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346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화남의 공적을 기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