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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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檀君影堂遺墟碑 |
영어공식명칭 | Haenam Dangunyeongdang Memorial Sto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명금길 15[금풍리 4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968년 -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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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0월 15일 -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7년 -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 단군전을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 43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346으로 이전 |
현 소재지 |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명금길 15[금풍리 43]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단군|이성술|이문수|이종철 |
재질 | 돌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2m[높이]|0.6m[너비]|0.2m[두께] |
소유자 | 이청우 |
관리자 | 이청우 |
문화재 지정 번호 |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에 있는 1968년에 건립된 단군영당 유허비.
[개설]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海南檀君影堂遺墟碑)는 현재의 해남 성내리 단군전으로 단군 영정을 모시기 전에 단군을 모시고 있었던 화산면 금풍리 자리에 세워진 유허비다. 1968년에 건립한 것으로 이성술이 짓고 이문수가 글씨를 썼다. 현재 이청우가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건립 경위]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는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에 있던 단군전이 단군전건립기성회가 조직되어 1957년 해남읍 구교리 346으로 이전하자 1968년 금풍리에 세워졌다.
[위치]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는 해남읍에서 완도로 가는 국도 제13호선으로 가다가 군도 제8호선을 따라가면 화산면 금풍리 신풍마을 뒷산에 있다.
[형태]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는 비좌와 비몸, 한옥지붕형의 비갓을 갖춘 일반형 비석이다. 높이는 2.2m이다.
[금석문]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는 앞면에 단군영당 유허비(檀君影堂遺墟碑)라는 큰 글씨를 새겨 놓았다. 비문은 옆면과 뒷면에 있는데 경주이씨 이성술이 비문을 짓고 광주이씨 이문수가 비문 글씨를 썼다.
[현황]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는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 신풍 마을 뒷산에 옛 단군전 사당 앞에 세워진 비석이다. 단군 신위 봉안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단군영당의 영정은 화산면 금풍 출신의 당시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이던 이종철에 의해 모셔졌다. 1920년대 이종철이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수학여행 때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三聖祠)를 방문하여 보니 일제의 만행으로 단군 성조의 존영과 사당이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종철은 1922년 고향에 돌아와 경주이씨 문중에 건의하여 영정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로 모셔와 뒷산에 전각을 세웠다. 그런 다음 구월산에 있는 진영과 기타 제기 일체를 가지고 와서 1923년부터 개천절과 어천절(御天節)에 제향하였다. 이후 광복이 되자 삼성사라는 사우를 세우고 제향하다가 1957년 마을이 어려워 사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해남군민이 ‘단군전건립기성회’를 조직하여 1957년 해남읍 구교리로 단군전을 이전하게 되었다. 원래 단군전 자리에는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를 세웠다.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 옆에는 ‘백운의문비(白雲義門碑)’가 있는데 이종철의 생애를 기록한 돌 비석으로 1994년에 세워졌다.
[의의와 평가]
해남 단군영당 유허비는 근대 일제강점기 단군전의 건립 경위와 이전 내력에 대해서 알 수 있어 해남 지역 향토문화사적 가치와 함께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