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목
-
조선 중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하홍도의 문집.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이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南冥學派)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인조반정 이후 벼슬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퇴하고 깊은 산속에 머물며 정자를 지어 영귀대(詠歸臺)라 하고 학문에 힘썼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사후에 남명학파가 약 50...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하동 문학을 현전하는 작품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략 조선 시대 선비들이 하동을 유람하고 지은 한문학 작품, 지역민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구비 문학, 그리고 근현대 하동 출신 작가들에 의해 전개되었던 현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폭포.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입적하자 고려 21대 왕 희종(熙宗)이 지눌이 머물던 암자에 ‘불일(佛日)’이라는 시호를 내려 암자 이름을 불일암(佛日庵)이라 하였는데, 그 가까이 있는 폭포이므로 불일폭포라 하였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남쪽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화개천 계곡 상류에 있는 폭포로 높이는 약 60m에 이른다. 이 지역은 높이...
-
1884년 겸산 김성렬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불일암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 「유청학동일기(遊靑鶴洞日記)」는 김성렬(金成烈)[1846~1919]의 『겸산집(兼山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김성렬은 1884년(고종 21) 5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였다. 1877년(고종 14) 가을에도 하동군의 청학동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쌍계사(雙磎寺)와 칠불...
-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장소를 희구하며 살고자 한다. “낙토(樂土)에서, 낙토에서 이제 나는 살고 싶네…… 낙국(樂國)에서, 낙국에서 이제 나는 살고 싶네.”라는 민초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미 중국의 옛 고전인 『시경(詩經)』에 담겨 있듯이, 이상향을 바라는 인간의 염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이상향에 관한 다양한 장소 관념과...
-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1. 지리적 위치 하동군은 북위 35° 19′에서 34° 55′, 동경 127° 56′에서 127° 35′에 걸쳐있으며, 경상남도에서 가장 서남쪽에 위치한다. 면적은 675.5㎢로서 경상남도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동서 간 28㎞, 남북 간 44㎞이다. 지리적 입지는, 북쪽으로 백두대간의 종점인 지리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종천서원(宗川書院)은 본래 하동군 옥종면 종화리에 있었는데, 훼철된 후에 안계리 안계마을에 있는 모한재(慕寒齋)에 서원의 현판이 옮겨져 걸려 있다. 매년 음력 3월 10일 모한재에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석채례(釋菜禮)를 지내며, 목판을 비롯하여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남구만(南九萬)의 친필...
-
1640년 미수 허목이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학동 일대를 유람하고 쓴 유람록. 「지리산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는 허목(許穆)[1595~1682]의 『미수기언(眉叟記言)』 권28 하편에 수록되어 있다. 허목은 1640년(인조 18) 9월 3일 쌍계사(雙磎寺)와 불일암(佛日庵)을 유람하고서 「지리산청학동기」를 지었다. 허목의 자는 화보(和甫)·문보(文父),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청언(淸彦), 호는 국헌(菊軒)이다.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1603~1651]이다. 하홍달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아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며, 할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 하덕원(河德元)...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하홍도(河弘度)를 기리는 사당. 모한재(慕寒齋)는 겸재(謙齋) 하홍도[1593~1666]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며,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을 비롯한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다. 겸재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특...
-
옛날부터 진주에서 이름난 마을을 꼽을 때 “첫 번째가 안계(安溪)요, 두 번째가 원당(元堂)이요, 세 번째가 사월(沙月)이다.”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했기 때문에 진주의 으뜸가는 명촌(名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안계마을이 그런 명성을 얻은 것은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옥종면지...
-
우리나라는 예부터 한 지방의 명승, 곧 아름다운 경치를 묶어서 ‘팔경’(八景) 또는 ‘십경(十景)’이라 부르는 전통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해도 단번에 ‘팔경’이니 ‘십경’이니 하는 명칭이 붙지는 않는다. 이는 오랜 세월 문화적 평가가 누적되고 사람들이 그 의미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붙여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팔경이란 명칭은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
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학부(學夫), 호는 니곡(尼谷), 초명은 하성로(河性魯). 하홍도(河弘度)의 동생인 하홍달(河弘達)의 8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 하달성(河達聖)은 호가 국헌(菊軒)인데, 성품이 강개하고 절개가 있어 종천서원의 치욕을 설욕했다. 증조할아버지는 하석봉(河錫鳳)이고, 할아버지는 하재원(河在源)이다. 아버지는 하상호(河相灝)이며...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학자. 하홍도(河弘度)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로 진양 하씨이다. 진양 하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사직(司直)을 지낸 하진(河珍)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9세를 내려와 하즙(河楫)이 현달하여 진주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시호는 원정(元正)이다. 11대조는 하윤원(河允源)으로 역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10대조는 하자종(河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