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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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一八最初發砲地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중앙로 302[계림동 239-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선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월 12일 - 5.18 최초 발포지 5.18 사적지 제2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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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광주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중앙로 302[계림동 239-1] |
성격 | 옛터 |
문화재 지정 번호 | 5.18사적 제21호 |
[정의]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고등학교 인근에서 계엄군이 모는 장갑차와 시민들이 충돌하자 계엄군이 최초로 발포한 장소.
[역사적 배경]
1980년 5월 19일 사직공원 부근에 공수부대원의 시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선대학교에 주둔하던 계엄군의 일부가 출동하였다. 계엄군은 장갑차를 몰고 동구 계림동 일대를 돌면서 위협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의 도로에서 장갑차에 돌을 던졌는데, 장갑차의 앞과 양옆에 달린 감시경을 깨버렸다. 장갑차가 방향을 잃고 보도블록 위에 올라서며 시동이 꺼져 버렸다. 시민들이 장갑차에 다가서며 포위하자 장갑차에서 제11공수여단 63대대 작전장교 차정환 대위가 고개를 내밀며 현장에 있던 『동아일보』 취재 기자를 불러 도움을 청하였다.
군중 속에 있던 조선대학교 학생 위성삼이 짚단에 불을 붙여 장갑차 뚜껑에 올려놓았다. 그때 장갑차 뚜껑이 열리고 M16 총구가 나오더니, 군인 한 명이 고개를 내밀며 공포탄을 쏘았다. 총소리에 놀란 군중들은 흩어졌다. 누군가 "공포탄"이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때 또 한 발의 총성이 들렸고,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김영찬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장갑차는 시동을 걸고 그곳을 빠져나갔고, 김영찬은 주위에 있던 공중보건의 정은택 등의 도움으로 50m가량 떨어진 외과병원으로 옮겨진 후, 응급수술을 받고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어 깨어났다. 김영찬은 최초의 총상 환자로 기록되었다.
[위치]
광주도시철도1호선 금남로4가역 4번 출구에서 나와 한미쇼핑사거리와 계림오거리를 지나 산장입구사거리 가기 전에 광주고등학교가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고등학교 정문 인근은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최초 발포하여 시민이 사살 또는 부상당했던 곳이다. 또한, 계엄군의 과잉 진압에 시민들이 분노하여 투쟁이 더 거세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