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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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市外-公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25[대인동 7-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선화 |
건립 시기/일시 | 1976년 9월 - 시외버스공영터미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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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월 12일 - 시외버스공영터미널 옛터 5.18 사적지 제3호 지정 |
소재지 | 광주은행 본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25[대인동 7-12] |
소재지 | 롯데백화점 광주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25[대인동 7-11] |
성격 | 버스터미널 옛터 |
문화재 지정 번호 | 5.18 사적지 제3호 |
[정의]
1980년 5월 19일 5.18민주화운동 중 계엄군의 과잉 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곳.
[개설]
1980년 5월 19일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시외버스공영터미널과 가까운 소방서 부근에 장갑차를 몰고 출현하였다. 10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자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자기 친구가 공수부대원에 맞아 죽었다면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외쳤다. 청년이 직접 공중전화 박스와 가드레일을 부쉈고, 시민들이 합류해 시외버스공영터미널 후문 소방서 방향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청년 7~8명이 넘어진 공중전화 박스를 엄폐물로 삼아서 밀며 공수부대원 쪽으로 밀고 갔다. 공수부대원과의 거리가 50여 미터로 좁혀지자 일제히 돌을 던졌다.
계엄군 뒤쪽에 대기하던 장갑차가 정면으로 돌진해 바리케이드를 부숴버렸다. 시민들은 양쪽 길로 갈라졌다. 이때 군용 트럭 10여 대가 공수부대를 싣고 들이닥쳤다. 공수부대원들은 시위대의 후면 시외버스공영터미널 로터리 부근을 공격하였다. 방독면을 쓴 채 최루탄을 쏘아댔고, 시위대들은 주변 골목으로 흩어졌다. 공수부대원들은 시민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진압봉으로 심하게 구타하였다. 부상자 가운데 대검에 찔려 자상(刺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은 시위 진압에 몹시 잔인하였다. 대검으로 얼굴을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후두부를 구타하였으며, 대검에 많은 사람이 다쳤다고 하였다. 시외버스공영터미널에서 시신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때 공수부대원들에게 진압봉에 맞거나 대검에 찔려 죽은 이들이었다.
[변천]
시외버스공영터미널은 1976년 9월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대인동 5~7번지 1만 7686㎡에 건립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대합실만 해도 3305㎡가 넘었다. 1992년 7월 광주직할시 광산구 광천동 49번지 일대[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10만 700㎡에 시외·고속버스종합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이전하였다.
[위치]
광주도시철도1호선 금남로5가역 5번 혹은 6번 출구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광주은행 본점, 삼호회관, 롯데백화점 광주점 등이 있다. 그곳이 시외버스공영터미널 옛터이다.
[현황]
시외버스공영터미널은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유스퀘어광주종합버스터미널로 이전하였고, 부지에 광주은행 본점과 롯데백화점 광주점이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시외버스를 통해 광주 외곽으로 나간 사람들이 광주의 상황을 인근 지역에 전파하면서 전라남도 지역에 5.18민주화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