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8월 해방 후에 건국부녀동맹의 광주·전남지부로 결성된 여성단체. 해방 이후 여성의 권익과 지위 확보를 위해 조직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1958년 건립된 800석 규모의 극장. 장인섭, 장호승, 최수열 등이 합자해서 세운 영화관으로 3000만 원의 자본금이 투자되었다. 계림극장은 건립 당시 담양과 순창 방면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계림오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영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2001년 휴관한 뒤, 2008년 극장의 건물 또한 철거되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 인사들이 모여 수습대책회의 등을 했던 홍남순 변호사의 집. 홍남순은 1960년대부터 사회·민주운동을 펼쳤던 인권운동가였다. 홍남순은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유신시대 긴급조치로 끌려간 이들을 앞장서서 변호하였다. 홍남순의 집은 동구 궁동에 있었는데, 민주 인사들의 아지트이자 항상 양심수의 가족들로 붐볐다. 당시 경찰과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1980년 중...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건물. '관풍(觀風)'이라는 단어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로 '세상을 본다.', '시류를 본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관풍대(觀風臺)'는 허백련(許百鍊)이 지인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바람을 맞는다는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지인들의 방문을 위해 지은 별채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교 건물.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별관·체육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광주서석초등학교의 본관, 별관, 체육관[강당]이다. 광주서석초등학교는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설립된 광주 지역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이다. 1896년(고종 33)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란 명칭으로 광주향교(光州鄕校) 옆 사마재(司馬齎)에서 개교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옛 전라남도청의 본관. 광주 전라남도청 구 본관은 1930년에 완공된 건물로서 일제강점기 관공서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설계와 감리는 한국인 김순하(金舜河)가 소속된 전라남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담당하였고, 시공은 오쿠라[大倉] 토목주식회사가 맡았으며, 공사비는 3만 3,000원이었다.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내에 있는 학교 건물.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은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의 본관으로 전라남도지사 및 광주시장이 주축이 되어 1947년부터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진행되었다. 이때 전라남도지사로부터 박철웅이 일본 유학파이자 문교부 관계의 업무를 한 경험을 들어 업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광주 시민과 전라남도 도민의 성원 하에 7만 2000여...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조선대학교 설립 초창기의 중학교 건물. 광복 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인재 양성을 위한 기관을 세우기 위해 7만 2,000여 명의 회원들이 염원을 모았다. 6.25전쟁 등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민·관·군이 협력하여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46년 7월 조선대학원부속중학원이 설립되었고, 1948년 7월 조선대학교부속중학...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광주 조선대학교 의학대학 본관은 1957년에 지어져 대학 건물의 특성과 당시의 기술력을 알 수 있는 건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학교 건물. 광주중앙초등학교는 1907년 일본인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광주공립심상고등소학교에서 비롯되었다. 광복 후 광주중앙공립국민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52년 광주중앙국민학교로, 1996년 광주중앙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건립 시기와 관련하여 광주중앙초등학교 홈페이지에는 1933년 건축하였다고 기록한 반면, 일본인이...
-
경양방죽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를 건너기 위해 만든 흙으로 쌓은 다리가 있던 옛터. 광주 토교(土橋)는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경양방죽(景陽防―)과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던 동계천(東溪川)의 물줄기를 가로지르기 위해 설치한 교량이었다. 토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흙을 쌓아 만든 교량 시설로 물줄기는 관로를 통해 흘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군 공수방면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초등 교육기관. 본래 1896년(고종 33) 11월 광주향교의 부속 건물 사마재(司馬齋)에서 문을 연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를 흡수하여 1906년 11월 1일 공립으로 광주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개교 당시 수업연한 4년 1학급 50명 규모였으나, 1914년에는 7학급 342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1922년 제...
-
일제강정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욱정에 세워진 여자 고등보통학교. 1927년 4월 현준호(玄俊鎬) 등을 비롯한 지방 주민의 요청에 따라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5월에 개교되었다. 1928년 교사(校舍)를 신축, 이전하였다. 개교 당시에는 수업연한 4년에 50명이 재학하는 여성 중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5가에 있는 86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유일무이한 단관 극장. 1931년 광주좌(光州座)가 불에 타 없어진 뒤, 1930년대 중반까지 광주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제국관(帝國館)뿐이었다. 하지만 제국관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극장이었기 때문에 조선인이 경영하는 영화관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광주극장(光州劇場)이 1933년 법인을 설립...
-
일제 강점기인 1924년에 광주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설립 및 운영된 은행. 일제 강점기 이후에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무진업을 양성하기 위해 전국에 무진회사를 설립하는 '조선무진령'이 공포되어 광주에서도 설립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었던 광주문화방송 사옥. 1980년 5월 20일 「계엄일지」에는 금남로에 시민 7만여 명이 모였다고 기록될 만큼 많은 시민들이 모여 계엄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월 18일 무자비한 계엄군의 시위대 진압은 5월 20일까지 계속되었고, 성난 광주 시민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였다. 시민들은 "광주에서 물러가라"고 외쳤고, 손에 각자 삽· 낫· 곡괭이· 각목...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처음 광주우체사(光州郵遞司)가 있던 곳은 서문통[지금의 광주우체국 앞길에서 동구 황금동으로 가는 길]이었고, 옛 한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일본 우편국으로 강제 통합된 이후의 것일 수 있어 정확한 위치 비정은 어려운 형편이다....
-
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광주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광주 지역에 도입된 최초의 근대적 통신 사무 담당 기관은 1897년 설치된 광주우체사였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통신기관을 일본이 장악하게 되면서 우편 사무도 일본인들의 관리를 받게 되어 광주우체사도 역할과 명칭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
광주광역시 내를 통과하여 흐르는 국가 하천인 광주천 천변에 형성된 모래톱에서 열리던 장시. 광주작은장은 음력 2일과 7일에 열리는 큰장에 대비되어 음력 4일과 9일의 작은 장날에 열리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것이다. 광주작은장은 지금의 서석교와 광주교 사이 광주천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열렸다. 모래톱의 모습은 1917년에 제작된 「광주군 지형도」를 보면 규모와 형태를 잘 알...
-
1917년 광주 지역에 설립된 전기회사. 광주전등주식회사의 발기인은 당시 대구에 거주하던 오구라 요시노[小倉吉野]를 비롯한 일본인들과 조선인 일부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 회사령을 통해 조선인들의 근대 산업에의 진출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광주전등주식회사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최초의 공연장 겸 극장. 1916년 무렵 일본인 후지가와 다다요시[藤川忠義]가 그 당시 총공사비 800원을 들여 설립하였다. 영화 상영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연극과 연주회 등 공연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기념하기 위해 1959년에 건립한 기념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이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는 모습을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이 목격하며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1910년 조선총독부의 헌병 경찰(憲兵警察)을 주축으로 한 무단통치에 의해 일본군 헌병대가 전라남도 경무부와 함께 전라남도 광주군 성내면 남내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일대]의 옛 전라남도 관찰부(觀察府) 광주 관아(官衙) 안에 광주헌병대본부를 설치하였다. 총부지 847평[약 2800㎡], 건평 218평...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광주 시민과 시민군을 치료하고 돌본 곳으로, 피가 부족하자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을 하였던 병원.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돌본 곳이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 이후에는 광주적십자병원의 헌혈차가 시내를 돌며 헌혈을 호소하였고, 시민들은 이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헌혈을 하기도 하였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기권이 운영하던 문방구점이 있던 옛터. 김기권(金基權)은 1926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운동 조직인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인물로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김기권은 성진회가 해산된 이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 내에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1929년 학생소비조합 형태의 문방구점을 지금의 금남로공...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카페. 남국카페(南國-)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며, 대부분 지주와 고위 관리 등 유력인사들의 자제들이었다. 1942년 7월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큰 충돌이 있었다. 발단은 남 아무개가 김용구에게 시비를 걸며, 폭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유도 3단에 6년간 권투를 익힌 김용구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큰 한방을...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인사와 청년·학생들이 모여 격문과 현수막을 제작하고 시민 궐기대회를 준비하였던 장소. 녹두서점은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던 전남대학교 학생 김상윤이 만든 서점이다. 서점 이름은 시인 문병란이 지었다. 김상윤은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이후 대학생들의 의식화 작업을 하였다. 유신 통치 아래에서 사회적 모순을 인식할...
-
1946년 결성된 우익 여성운동단체인 독립촉성애국부인회의 광주지부. 해방 직후 최초의 여성운동단체였던 건국부녀동맹은 좌·우익 갈등의 심화로 좌익계열의 조선부녀동맹, 우익계열의 한국애국부인회, 독립촉성애국부인단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후 우익계열은 1946년 초, 한국애국부인회와 독촉중앙부인단을 통합하여 독립촉성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으며, 이 시기 광주 지역의 여성운동 단체 또한 이러한...
-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있던 광복 이후 광주 최초의 호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춘목암(春木庵)을 경영하던 조성순(趙成洵)이 1940년 전라남도 광주부 동정(東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개인주택을 신축하였다. 가옥의 내부는 고급 장식과 가구, 화려한 정원을 갖춰 광주 지역에 지어진 개인주택 중 손에 꼽히는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동명호텔은 광복 이후...
-
1936년 11월 1일 조선총독부령 시장규칙에 의해 전라남도 광주부에 개설된 제2호 공설시장. 명치정(明治町) 시장(市場)은 전라남도 광주부 명치정 2정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2가 일대]에 있었으며, 광주 상설 시장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명치정 시장은 광주천을 거점으로 열렸던 두 개의 오일장[큰 장, 작은 장]을 병합한 사정(社町) 시장[사동시장(社洞市場)], 사정 시장을...
-
1977년 4월 전라남도 광주시 무등산 덕산골에 있었던 무허가 판자촌 강제 철거 과정에서 박흥숙이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한 사건.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공업화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으로 인한 도시의 인구 집중 현상을 가져왔다. 충분한 주거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도시 인구 과밀은 곧 곳곳에 무허가 판자촌을 만들어냈다. 1971년 경기도 광주군 대단지 사건은 박...
-
1955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서 개관한 극장. 무등극장(無等劇場)이 들어선 자리는 그 이전부터 극장이 존재해 왔다. 무등극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로 나뉜다. 첫 번째는 1955년, 두 번째는 1967년이다. 1978년부터 무등극장을 인수하여 운영을 맡은 오권수 회장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1955년부터 무등극장으로 불린 것으로 정의하였다....
-
일제강점기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 있었던 초등 교육기관. 광주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한 뒤로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를 비롯한 기독교계 사립 학교가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사립배영학교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향사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서 문을 열었다. 1908년 비정규 교육기관으로 문을 연 배영학교는 본래 '향사리 주일학교'라는 명칭으로 무산 아동을 대상으로...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의 주검을 임시 안치하였던 장소. 1980년 5월 22일 오후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계엄군에게 맞아 죽었거나, 집단 발포로 사망한 시신을 상무관에 임시 안치하였다. 관 사이로 피묻은 시신들의 모습은 처참하였다. 얼굴이 깨져 완전히 뭉개진 시신, 내장이 터져 나온 시신, 손과 발이 잘리어진 시신 등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도 꽤 있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정봉서· 정덕방 부자와 추성전씨의 정려비. 서산정씨(瑞山鄭氏) 정봉서(鄭鳳瑞)와 정봉서의 아내 추성전씨(秋城田氏), 정봉서의 셋째아들 정덕방(鄭德邦)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 이다. 정봉서의 자는 현거(賢舉), 호는 만오(晚悟)이다. 정봉서는 여섯 살 때 모친상을 당해 예를 갖추었고, 부친상 때 삼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추성전씨는 남...
-
일제강점기인 1926년 광주 지역의 농림고등학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여 만든 항일 비밀 결사 조직. 조선의 독립, 사학과학의 연구, 식민지 교육체제의 철폐를 목표로 조직한 광주 지역의 반일학생운동단체이다....
-
1980년 5월 19일 5.18민주화운동 중 계엄군의 과잉 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곳. 1980년 5월 19일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시외버스공영터미널과 가까운 소방서 부근에 장갑차를 몰고 출현하였다. 10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자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자기 친구가 공수부대원에 맞아 죽었다면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외쳤다. 청년이 직접 공중전화 박스와 가드레일을 부쉈고...
-
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요릿집. 신광원(新光園)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 출신 이동채(李東彩)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옛 그랜드호텔 뒤편 주차장 자리]에 개업한 요릿집이다. 신광원은 광주 주요 인사들의 출입처이기도 하였다. 신광원에서 광주학생운동으로 체포된 학생들을 변호해주려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아온 변호사들을 위해 위로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1...
-
1966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 개관하였던 동아극장의 후신. 동아극장(東亞劇場)이라는 이름은 1925년 은행원 출신 최남(崔楠)이 인수한 '서울 동아부인상회'에서 비롯되었다. 최남은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전국에 체인점 형태로 점포를 열었다.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 있던 '동아부인상회 광주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번지에 있던 극장. 신영극장(新映劇場)이 개관할 당시 건물은 1930년대에 지어진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을 극장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평일에는 주로 영화를 상영하였고, 1950년대 중반 이후까지도 변사(辯士)가 있는 무성영화를 상영했다고 한다. 주말에는 쇼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1982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5가에 개관한 극장. 아카데미극장은 1982년 3월 대인시장 근처 시민관(市民館)을 운영하던 백정인이 인수하여 같은 해 9월 30일 개관하였다.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의 다른 극장들보다 비교적 늦게 건립되었으나, 최신 시설과 화제성 있는 개봉작을 통해 차별화 전략을 펼치며 관객을 모았다....
-
190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세운 가설 극장. 양명사(揚明社)는 190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세워진 창극을 공연하던 근대적 의미의 상설 극장으로 김인수, 정인준 등이 설립하였다. 극장주는 서울 출신의 이응일이었는데, 당시 징세청부인(徵稅請負人)으로 전라남도 광주에 왔다가 정착하였다. 이응일은 당시 유행하던 창극을 바탕으로 흥행하던 업종에 손을 댄 것이 양명사를 세우게 된 배...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열녀 창녕조씨의 비.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열행(烈行)과 정절(貞節)을 기려 세웠다. 비석이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은 조선시대 때 전라남도 광주군 지한면 주남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부동방면 월동리와 녹동리, 지한면 주남리를 합하여 지한면 월남리라 하였다. 1935년 효지면 월남리가 되었고, 1955년 전라남도 광주시 월남동이 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린 비. 1974년 열부 천안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전라남도 광주 지역 경찰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광주경찰서가 있던 자리.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는 1896년(고종 33) 5월 광주읍성 내 훈련청(訓練廳) 자리에 세운 전라남도경무서(全羅南道警務署)에서 출발하였다. 1905년에는 일본인 경무고문(警務顧問)이 배치되고, 통감부(統監府)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1907년에는 관련 법규가 만들어졌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기차역의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최초의 철도가 놓인 것은 1913년 10월 1일 목포~대전 간 호남선 철도 송정리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송정리역과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리[약 12㎞]였으며, 그 때문에 철도 연결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높았다. 그리하여 송정리역과 광주를 잇는 사철...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법원이 있던 자리. 대한제국은 1907년 통감부(統監府)의 강요에 의해 근대적 재판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판소 설치와 관련된 법률을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12월 23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광주지방재판소가 설치되었으며, 1908년부터 운영하였다....
-
일제강점기 각종 범죄자들을 수감하던 광주형무소가 있던 자리.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는 1907년 일제의 통감부(統監府)가 대한제국의 사법제도를 개편하면서 설치한 범죄자 수감시설인 광주감옥을 전신으로 한다. 1908년 7월 운영을 시작한 광주감옥은 본래 대한제국의 광주감옥을 인계하여 광주읍성 내의 충장로 일대에 있었으나, 1908년 대대적인 신축공사를 벌여 수인(囚人) 공장 등 목조...
-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고등학교 인근에서 계엄군이 모는 장갑차와 시민들이 충돌하자 계엄군이 최초로 발포한 장소. 1980년 5월 19일 사직공원 부근에 공수부대원의 시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선대학교에 주둔하던 계엄군의 일부가 출동하였다. 계엄군은 장갑차를 몰고 동구 계림동 일대를 돌면서 위협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의 도로에서 장갑차에 돌을 던...
-
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와 집회가 열리고, 이후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가 개최되었던 곳. 1980년 5월 14일부터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첫 가두 진출을 하였다. 오후 2시 50분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등 대학생들과 몇몇 고등학교 학생들 및 시민 1만여 명이 전라남도청 앞 광장[지금의 5.18민주광장]에서 '민족민주화 성회'를 시작하였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문사 사진기자 등이 촬영한 흑백 필름 및 사진. 현재 흑백 필름 및 사진 자료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있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1980년 당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등으로 구성된 자료. 『5.18민주화운동기록물 - 시민들의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수첩』은 시민들이 작성한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등 시민들의 기록물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과 지역 병원들의 진료비 청구 서류. 『5.18민주화운동기록물 -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부상자 진료비 청구서)』은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에 부상자를 치료한 병원에서 작성한 진료비 청구서 자료이다. 당시 전남대학교 병원, 조선대학교 병원, 광주기독병원, 적십자병원, 개인 병원 등에서 병원의 진료비 청구서와 청구목록, 진...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이 1907년부터 1923년까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근대적인 병영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97년(고종 34) 6월이다. 대한제국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휘하의 광주지방대(光州地方隊)가 편성되어 참령(參領) 우기정(禹冀鼎) 이 지휘하는 1개 중대 규모의 군대가 광주에 주둔하였다. 당시 이들이 주둔했던 곳은 옛 전남도청 맞은...
-
1910년 8월 각 도에 자혜의원을 설치한다는 볍령에 따라 1910년 9월 26일 광주에 설립된 병원. 일제강점기 광주 지역의 주요 의료기관 중 하나로 1910년 관찰도 서기청 일부 건물에서 빈민 구제와 치료를 목적으로 설립한 의원이다. 전남대학교병원의 전신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전남대학교 학동캠퍼스 내에 있는 건축물.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은 1951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본관으로 완공된 붉은 벽돌조 3층 건물이다....
-
1945년 8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결성된 청년단체. 1945년 8월 해방 직후 패주하는 일본인이 전라남도 도청의 서류, 집기 등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지키기 위해 결성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옛 전라남도청의 회의실. 옛 전라남도청에서 평의원 회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1932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모더니즘 양식을 지니고 있다. 설계와 감리는 한국인 김순하(金舜河)[1901~1966]가 소속된 전라남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담당하였고, 공사 청부인은 노모토[野本榮太郞], 실내장식은 다카시마야[高島屋] 경...
-
초등교원 양성을 위해 1923년 전라남도가 설립한 공립사범학교가 있던 옛터.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전남사범학교]가 폐지된 1929년은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재학생들도 광주고등보통학교 및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당시 항일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바 있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근대 건축물. 전남지방경찰청 민원실은 1944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벽돌 조적조 벽체와 목조 트러스 구조로 설계되었다. 책을 펼쳐서 엎어높은 모양의 박공지붕으로 구성된 절충주의 양식 건물이다....
-
옛 전남도청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 흔적이 발견된 곳. 1980년 5월 21일 집단 발포 전에는 계엄군의 저지선이 전일빌딩과 건너편 광주관광호텔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5월 21일 집단 발포 당시에는 전일빌딩 옥상에 배치된 계엄군의 조준 사격이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새벽에 시민군은 옛 전남도청과...
-
1961년 전라남도 광주시 삼성동에 개관하여 2012년까지 운영되었던 극장. 일제강점기 당시 제일극장(第一劇場) 자리에는 광주부립도서관이 있었다. 광복 후에는 '신성다방'이라는 시인 박용철의 아내 신정희가 운영하는 공간이 옆자리에 생겨 문인들이 자주 찾았다. 이후 극장으로 사용된 건물은 영암 출신의 사업가가 '월출상회'라는 양품점을 운영하던 곳이었다. 이를 충장로에서 잡화상점 '영...
-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좌익 계열 여성운동단체였던 조선부녀총동맹의 전라남도 지부. 조선부녀총동맹 전라남도 총지부의 설립목적은 조선부녀총동맹의 전체 강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부녀총동맹의 강령은 첫째, 조선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완전 해방을 기함, 둘째,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건설과 발전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를 기함, 셋째, 조선 여성의 국제적 제휴를 도모하고 세...
-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주남마을에 주둔하며 화순행 버스에 발포하여 시민을 살해하였던 곳.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은 퇴각 명령을 받고 주남마을에 재집결하였다. 조선대학교 뒷산을 넘은 제11공수여단 61대대와 63대대는 5월 22일 새벽 2시 40분경 무등산 산등성이에서 머무르다 아침 8시 30분경 주남마을에 들어섰다. 그러나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증심사계곡에 갇혀...
-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한식집. 춘목암(春木庵)의 최초 경영자인 이춘실(李春實)은 1917년 마산에서 광주로 옮겨 와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의 콜박스 사거리 근처에서 우동집을 운영하였다. 이춘실은 황금동 80번지 일대에 부지를 마련해 춘목암을 개업하였다. 그러나 192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춘실의 여동생 이진(李珍)과 이춘실의 남편 조성순(趙成洵)이...
-
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에 있던 1957년에 건립된 극장. 태평극장(太平劇場) 대표 신성용(申成龍)은 농약 판매 사업을 했다고 한다. 신성용 등 6명이 주주로 참여하여 극장을 건립하였다. 동방극장[무등극장·무등시네마 전신], 광주극장, 신영극장[대한극장으로 개칭], 남도극장에 이어서 건립되었던 극장으로 알려진다. 2002년 5월 휴관한 뒤, 2008년에 건물이 철거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830번지 일원에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천 정비를 위해 만들어진 방사형 거리. 학동팔거리(鶴洞八距離) 지역은 1930년대 생활이 어려운 자들의 자립을 조선총독부가 경제적·사회적 수단을 동원해 돕는 명목으로 물리적 생활공간[갱생지구]을 마련해 준 곳이나, 실질적으로는 부랑자들을 관리 감독하기 쉬운 주거공간 체계로 흡수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공동우물을 중심으로 원심...
-
1950년대 무등산 자락에 허백련이 세운 화실. 허백련(許百鍊)[1891~1977]은 허련(許鍊)의 후손으로 호가 의재(毅齋)이며, 한국 남종화의 전통적 화풍과 그 정신세계를 이은 대가로 대한민국 '국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후학 양성으로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켰다. 춘설헌(春雪軒)은 허백련이 1956년 오방정(五放亭)을 물려받아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신축한 화실...
-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에 있던 1961년에 건립된 극장. 현대극장(現代劇場) 건립자는 최승남, 최승호 형제이다. 최승남, 최승호 형제는 1950년대에 중앙극장을 임대하여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다. 또한 6.25전쟁 이전부터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소주 공장, 북구 누문동 광주제일고등학교 부근에 동천양조장, 서구 양동에 태평양조장 등을 운영하고 있었을 만큼 경영 경험이 많...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효열부 남평문씨의 비. 홍한주(洪翰周)의 아내 남평문씨(南平文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웠다. 홍한주의 호는 해옹(海翁)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현감과 군수를 지냈으며, 문집으로 『해옹시문집(海翁詩文集)』이 전한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청년 문화의 산실이었던 흥학관이 있었던 자리. 흥학관(興學館)은 1921년 광주의 부호 최명구(崔命龜)가 희사한 돈으로 최명구의 동생인 최종윤이 지역 청년들의 문화, 체육 활동 진흥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흥학관 설립을 맡은 최종윤은 1920년 광주청년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1921년부터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의 총무와 기자로 활동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