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전라북도 군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 3·1운동 당시 군산에서는 영명 학교 학생들의 교사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이어서 시내 각지에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1919년 3월 30일 제1차 만세 운동 관련자들의 공판을 앞두고 군산과 옥구 군중의 야간 시위는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노춘만은 1919년 옥구에서 독립 사상 고취를 위해 활동하다가 투옥되었다. 출옥 이후 1921년 상해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임시 정부 운동 자금을 조달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노춘만은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박영진·이중열·정대원 등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익산군[...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 출신으로 민족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한 운동가. 독립운동을 실천해 나가는 방법으로는 무장 투쟁·실력 양성·외교 독립론이 있었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 독립 전쟁·의열 투쟁·3·1 운동·노동·농민·학생·문화·형평 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에서도 전국적인 독립운동 흐름에 동참하면서 지역 문제와 연관되어 노동·농민·학생 운...
1903년(광무 7) 2월 군산시 구암동에 전위렴 목사가 설립한 교육 기관. 1903년(광무 7) 2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전위렴[Junckin,W.M]이 구암동에 설립하였다. 1904년 소학교와 중학교를 분리하여 중학교를 영명학교라고 칭하게 되었다. 1909년 특별과와 고등과를 병설하고 군산 영명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의 교사와 학생이...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인식은 보성 고등 보통 학교 대표로, 3·1 운동에 참여, 복역하였다. 중국 임시 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고, 독립자금 모집 및 정보원으로 활약하였다. 해방 후 임피 중학교 2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중공파(侍中公派) 성동파(城東派) 이태하(李泰河)의 3남 2...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홍만종은 옥구군[현 전라북도 군산시] 지하 조직인 국민 회사(國民會社)에 가입한 후 2회에 걸쳐 군자금을 수합하여 상해 임시 정부를 지원하였다. 1922년 4월 9일 옥구 대야에서 천도교 종의사(宗議士)로 종사할 때 같은 교인인 노춘만과 함께 옥구군 지하 조직인 국민 회사(國民會社)에 가입한 후 2회에 걸쳐 145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