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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788
한자 鄭國柱
영어음역 Jeong Gukju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양병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충신|효자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성별
생년 1555년(명종 10)연표보기
본관 초계(草溪)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개설]

예로부터 효자 가문에서 충신이 난다고 하였으니, 정국주는 나라가 위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충성을 바쳤으므로 그 효와 충이 아울러 장하다고 칭송을 받았다.

[가계]

본관은 초계. 정창(鄭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그의 맏아들로, 동생으로는 정국추(鄭國樞), 정국량(鄭國樑), 정국노(鄭國櫓), 정국빈(鄭國彬)이 있다.

[활동사항]

천성이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얼굴빛을 살피어 뜻에 순종하되 추호도 어김이 없었으며,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눕자 옷을 벗고 자는 일이 없었으며, 약을 달이면 반드시 먼저 맛을 보고 난 뒤에 드렸고, 대변을 맛보아 병의 증세를 살폈다. 또한, 매일 밤 아버지 대신 죽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8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정성껏 상례를 행하였다. 이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가고 동리가 비었으나 정국주는 동생 정국량과 함께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슬피 울며 무덤을 지켰다.

정국주의 지극한 효성에 감복한 왜적들은 동네 어귀에 ‘이곳은 효자가 있는 동리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글을 쓴 기(旗)를 세워 놓았다. 이에 그 동리는 물론, 이웃 마을도 전란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효행과 덕망으로 천거되어 나라에서 예빈시정(禮賓寺正)의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충청감사의 천거로 선조(宣祖)정국주를 포함한 5형제를 정려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정려가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5형제가 모두 효성이 지극하여 오효자(五孝子)로 불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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