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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99
한자 李相岳
영어공식명칭 Lee Sangak
이칭/별칭 성담(聖膽),긍남(肯南)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9월 20일연표보기 - 이상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이상악 조선국자제조주식회사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이상악 흥농조합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이상악 경북무진주식회사 설립에 대주주로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41년 11월 27일연표보기 - 이상악 사망
출생지 대구 - 대구광역시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자본가
성별 남성
본관 경주(慶州)
대표 경력 경북무진주식회사 이사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자본가.

[개설]

이상악(李相岳)[1886~1941]은 1886년 9월 20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여러 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경제인으로 활동하였다.

[가계]

이상악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성담(聖膽), 호는 긍남(肯南)이다. 할아버지는 이동진(李東珍)이고, 아버지는 이일우(李一雨)이다. 동생은 이상무(李相武)·이상간(李相侃)·이상길(李相佶)이다.

[활동 사항]

이상악은 1906년 대구농공은행이 설립될 때 70주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경제활동을 시작하였다. 1923년 대구의 유지들과 함께 대구구락부를 창립하였으며, 1928년 중외일보사에 투자하였다. 1929년에 서병원의 조양무진주식회사에 자본을 투자하여 210주를 보유하였다. 1930년에 자본금 8만 원의 조선국자제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39년에는 자본금 32만 원의 회사로 키웠다. 1936년 아버지 이일우가 사망하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광성초자공업주식회사와 대동주조주식회사의 감사, 경북상공주식회사와 대구약주양조주식회사의 이사를 맡아 경영에 참여하였다. 1938년에는 자본을 투자했던 조양무진주식회사가 대구무진주식회사·포항무진주식회사·김천무진주식회사 등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 무진회사와 합병하여 자본금 200만 원의 경북무진주식회사가 되었을 때, 총 4만 주의 주식 중 2,381주를 보유한 대주주가 되었다.

이상악은 기업경영뿐 아니라 지주경영에도 힘썼다. 1928년 자신 소유의 농지가 있는 청도군에서 수해가 발생하자 각북면 면사무소를 통하여 보유하고 있던 곡식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으며, 1930년에는 흥농조합(興農組合)를 만들어 소작농의 안정화를 도모하였다. 이때 이상악은 ‘후덕한 지주’로 불렸다고 한다. 이상악은 1941년 11월 27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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