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읍지』3[규장각한국학연구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230
한자 大丘府邑誌三[奎章閣韓國學硏究院]
영어공식명칭 Daegu-bu Eupji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류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99년 이후 - 『대구부읍지』 간행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권책 2책
규격 30.8×19.4㎝
권수제 대구부읍지

[정의]

1832년 간행된 읍지를 1899년에 전사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편찬/간행 경위]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는 1832년(순조 32) 5월에 이임된 관찰사 박기수(朴岐壽)가 기록된 영선생과 1831년 신묘식을 기준으로 한 호구 등으로 볼 때, 1832년경 간행된 『대구부읍지』를 등사 저본으로 하였으며, 1899년(광무 3)에 작성된 ‘읍지보궐초건책(邑誌補闕草件冊)’을 합하여 편찬되었다.

[형태/서지]

『대구부읍지』의 표제와 내제는 모두 ‘대구부읍지’이다. 읍지는 등사하여 청사진으로 찍어낸 후 첨필하여 제작되었는데,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간행연도는 분명하지 않다. 읍지의 크기는 세로 30.8㎝, 가로 19.4㎝이다.

[구성/내용]

『대구부읍지』 1책은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학교(學校),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단묘(壇廟)‚ 총묘(塚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2책은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영선생(營先生)‚ 읍선생(邑先生)], 과거(科擧), 인물(人物), 제영(題詠), 비판(碑板), 읍지보궐초건책(邑誌補闕草件冊)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관방, 진보, 도서, 목장은 항목이 있지만 해당사항이 없어 ‘무(無)’라고 기록되어 있다.

군명 조에는 경상감영의 설치 연혁을 수록하였고, 산천 조에는 연구산(連龜山)·침산(砧山)·팔공산(八公山)·팔조령(八助嶺)·금호(琴湖)·신천(新川) 등의 위치가 실려 있다. 풍속 조에는 “사대부는 순수하고 질박함을 숭상하며, 백성들은 농사와 길쌈을 생업으로 삼는다”라고 적혀 있다. 방리 조에는 동상(東上)·서상(西上)·달서(達西)·성서(城西) 등 34개 면의 부(府)에서의 거리와 소속 동리를 부기하였다.

호구 조에는 1831년 신묘식 원호 1만 3194호, 인구 5만 6962명, 남자 2만 4794명, 여자 3만 2168명을 수록하였다. 전부 조에는 양안에 기록된 밭 7,807결 23부, 논 4,976결 54부 4속 등 토지 결수와 전세·대동·균세·요역으로 구분하여 조세 정보를 기록하였다. 성지 조에는 달성(達城)과 부성(府城)의 규모와 시설, 남문루 상량문 등을 실었다. 임수 조에는 신천수(新川藪)·칠성암수(七星巖藪)의 위치와 유래 등을 설명하였다.

학교 조에는 향교·연경서원(硏經書院)·표충사(表忠祠)·낙빈서원(洛濱書院), 불우 조에는 동화사(桐華寺)·용연사(龍淵寺)·용천사(湧泉寺)·운흥사(雲興寺)·부인사(夫仁寺), 누정 조에는 하목당(霞鶩堂)·전귀당(全歸堂)·농연정(聾淵亭) 등이 실려 있다.

제언 조에는 송라제(松羅堤), 대동제(大同堤), 산대제(山大堤), 대불상제(大佛上堤) 등 저수지의 위치·둘레·수심과 지인보(知仁洑), 신보(新洑), 개보(介洑), 선하보(船下洑) 등 방보(防洑)의 위치를 기록하였다. 장시 조에는 읍장[2·7일], 화원장[3·8일], 하빈장[5·10일], 풍각장[1·6일] 등이 있고, 고적 조에는 동수(桐藪), 공산성(公山城), 용봉사(龍鳳寺), 선사(仙槎) 등을 수록하였다.

환적 조는 영선생과 읍선생으로 구분하여 역대 부임자의 이름 및 이부임 시기를 기록하였다. 인물 조에는 대구 출신 명사를 비롯하여 효자(孝子), 효부(孝婦), 열녀(烈女), 절의(節義)로 구분하여 주요 행적을 기록하였다. 책의 끝부분에는 ‘광무3년기해오월일 읍지보궐초건책’이라는 제목으로 1899년경 간행된 읍지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여 기재하였고, ‘상백서옥(想白書屋)’ 도장이 마지막에 찍혀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부읍지』는 1832년경 편찬된 『대구부읍지』를 후대에 등사한 읍지로 19세기 전반 대구도호부의 현황을 비롯하여 역사, 행정, 재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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