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B01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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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순하 |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에 다부동전투는 다부동에서 우리나라 군인들이 미군과 더불어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한 전투이다. 55일간 벌어졌던 다부동전투는 적군 17,500여 명과 아군 10,000여 명의 사상자를 낳았던 곳이기도 했다. 이같이 치열했던 전쟁을 겪은 후 다부동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마을 사람들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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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이 떨어져가 집이 좀 기울어졌더라고, 다 탔어요. 다섯 채를 제외하고…… 다른 피난 간 사람들도 다 들어왔는데, 움막같이 집을 지어가지고 그래 살았다고. 말도 못해. 돼지우리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았나 몰라.”
“시체 구덩이었어. 남아 있는 집이 어딧노? 다 타고 없지. 여기저기 시체는 떠다니지, 집은 불에 타고 없지. 말도 못해. 지금 같으면 살 수 있겠어요?”
다섯 채를 제외하고 모두 타버린 집들과 이곳저곳에 떨어진 포탄 자국이며, 굴러다니는 시체들을 정리하는 데만 해도 수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다 부서진 가옥은 움막 같은 모양으로 임시로 집을 지었고, 조금이라도 흔적이 남아 있는 가옥에서는 천으로 지붕을 만들어 살았다. 그렇게 시체들을 모아 묻었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를 복구했으며, 사람과 차들이 다닐 수 있게 길을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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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
본격적으로 마을이 정비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후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새마을부녀회장을 지냈던 정순덕 할머니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주었다. “그때 1968년부턴가 시작이 되가 이제 71년, 72년도에 새마을사업이 됐잖아. 그래가 불붙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하게 되는데…… 그래서 인자 부녀회원들 조직해가지고 절미운동하고, 공동생활하면서 풀밭도 메고 퇴비도 하고 저 산에 가서 잔나무도 숨고…….”
초기 새마을운동은 지붕 개량과 마을 정비, 도로 개선 등이 주를 이루었다. 왜관에 위치했던 군부대에서 만든 자갈길을 정비하면서 구역을 나누었다. 다부동에서는 당시 부녀회원들이 새마을운동에 앞장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마을 환경이 정비되자 생활에 필요한 여러 시설들을 짓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영양센터’였다.
영양센터는 원래 마을회관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것으로, 마을회관은 1970년에 지금의 다부슈퍼 자리로 이전했다가,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생긴 후 칠곡군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자리에 건물을 짓고 새마을회관이란 이름을 달고 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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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회관
영양센터는 구판장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방앗간의 개념이 더 컸다. 쌀이나 고추 등을 빻는 기계가 있어 개별적으로 원하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 사용을 했으나 운영이 잘 되지 않자, 방앗간 자체를 세를 주어 관리하게 했고, 결국 화재가 일어나 없어졌다고 한다. 당시 영양센터에서 나온 이익금을 부녀회원들이 공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기존에 방앗간을 운영하던 마을 사람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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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센터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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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자리
새마을운동 당시 마을 사람들은 주로 벼농사를 지었지만, 일부에서는 담배농사나 누에(양잠)를 키우기도 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주차장 자리에는 담배창고와 담배밭도 있었다.
1968년도부터 1972년까지 다부동에서는 담배농사를 많이 지었으나, 사람 손이 많이 가고 노동력에 비해 소득이 적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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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창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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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생 씨 소유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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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소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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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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