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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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대유(大有), 호는 남계(南溪)이다. 정렬공(貞烈公) 경복흥(慶復興)의 7세손이며 좌랑(佐郞) 경신직(慶臣直)의 아들이다. 학식이 고명하고 만고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청원군 남일면 모산(茅山)에서 살았다. 조선 세조 임금 때에 조정(朝廷)에서 불렀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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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서원. 1613년(광해군 5)에 청안현(현 괴산군 청안면 석곡리)에 구암서원(龜巖書院)으로 창건하였고, 1955년에 현재의 분평동 251-5[안뜸로47번길 28] 뒷산에 이건하여 재창건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에는 구암서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구계서원(龜溪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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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소한(素閑)이다.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최유해(崔有海)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고, 부인은 이합(李柙)의 딸이다. 권두추(權斗樞)의 동생이고, 함경감사를 역임한 권익관(權益寬)의 아버지이다. 16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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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이다. 벼슬은 집의(執義)를 지냈다. 품성이 질박하고 성실하여 실속이 없으면서 뽐냄이 없었다. 4세에 모친을 여의고 농사를 지어 정성껏 부친을 모시는데 조금도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 상을 일찍 당한 것이 한이 되어 부친상 때에 상청(喪廳)을 함께 배설하여 삼년상을 치렀다.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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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여윤(汝潤)이다. 진사 김낙서(金洛瑞)의 아들이며 지평(持平) 김욱(金頊)의 아우로 청주 출신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進士)가 되었다. 1615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된 뒤 폐모론(廢母論)에 가담하지 않아 승진이 늦어 7~8년 뒤 겨우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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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이다. 할아버지는 남식(南烒), 증조할아버지는 남타(南柁)이다. 아버지는 남일성(南一星)이고, 어머니는 권박(權瞨)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을 거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659년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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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재(訥齋) 박증영(朴增榮)과 강수(江叟)·박훈(朴薰)[1484~1540] 부자의 시문집(詩文集)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 박훈의 현손인 박정용(朴廷龍)[1599~1673], 박정린(朴廷麟)[1607~1655], 박정표(朴廷彪)[1618~1662] 3형제와 사촌인 박정해(朴廷獬)[1607~1687]가 눌재와 강수의 유고를 모아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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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교 향교는 오늘날의 국립 고등 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학(鄕學), 학관(學官), 재관(齋官) 또는 교관(敎官)으로도 불리었다. 향(鄕)은 수도를 제외한 행정구역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며, 교(校)는 학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향교는 지방의 학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성균관과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 시대의 교육 중추를 맡아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한 곳이 바로 향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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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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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예종조에 이조정랑을 지낸 민수(閔粹)의 8세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 일대에서 난(일명 무신란)을 일으키자, 청주목사(淸州牧使)이던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해 버렸다. 이 때 민진수는 일문종당(一門宗黨)과 인근 친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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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주지역의 효자·학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중신(仲申)이며, 호는 백음(栢陰)이다. 청원군 내수읍 비상리 출신이다. 세종 때 예문관제학을 지낸 변효문(卞孝文)의 4세손으로, 아버지는 변충남(卞忠男), 할아버지는 변승종(卞承宗), 증조할아버지는 변심(卞鐔)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성장하였으나 어머니를 봉양함이 지극하여 생전의 봉양과 사후의 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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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예보(禮甫)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의 동생인 변시익(卞時益)이다. 벼슬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변단(卞摶)으로 조봉대부경릉참봉(朝奉大夫敬陵參奉)을 지냈다.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吏曹參判兼同知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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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양백(養伯)이며, 호는 사익재(四益齋)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 변준(卞寯)의 현손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홀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하늘에 빌었더니 어머니의 병이 쾌차하여 고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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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관료. 무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이괄(李适)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벼슬이 가자되었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字는) 사눌(士訥)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장사랑(將仕郞), 군공(軍功)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장례원(掌隷院判決事)에 증직된 변충남(卞忠男)이고, 할아버지는 청주에 낙향한 변경수(卞景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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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근술(近述), 호는 입재(立齋)·남곡(南谷)이다. 청주 출신으로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송흠학(宋欽學)의 아들로 송흠락(宋欽樂)에게 입양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세(宋煥世), 할아버지는 송택규(宋宅圭), 외할아버지는 이낙배(李樂培)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으로 청주에 거주하였다. 1848년(헌종 14) 증광시(增廣試)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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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성백(誠伯), 호는 문도재(聞道齋)이다. 청주 출신으로 청주 입향조(入鄕祖)인 참봉(參奉) 송세량(宋世良)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찬성(贈贊成) 송응기(宋應期)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송방조(宋邦祚)로 송시열(宋時烈)의 부친인 송갑조(宋甲祚)와 형제이며, 아버지는 송시염(宋時琰)이다. 1659년(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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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덕구(德求)이며, 호는 천곡(泉谷)이다. 아버지는 평강, 용안 등의 현감을 지낸 송복흥(宋復興)이고, 할아버지는 송전(宋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승은(宋承殷)이다.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로 기묘명현인 묵재 이문건(李文健)의 손녀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 10여세에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15세에 승보시(陞補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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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신도비.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국한 송상현의 신도비이다. 흥덕구 수의동의 강촌마을 묘소 아래 진입로 왼편에 있으며, 1984년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280㎝, 폭 90㎝, 두께 26㎝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었으며,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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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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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송시열(宋時烈)의 불천위(不遷位)를 모신 사당.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의 불천위(不遷位)를 모신 사당이다. 불천위란 큰 공훈이 있다고 국가가 인정한 인물의 신위(神位)로 4대 봉사(奉祀)가 지나도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서 영구히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 불천위를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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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 府使 宋象賢 忠烈祠)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5에 위치한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선조 28년(1595) 동래에 있던 묘소를 지금 위치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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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는 예부터 깨끗하고 수준 높은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청주를 교육의 도시로 일컫는 데는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청주가 역사적인 교육도시라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청주백화점 뒤뜰에 우뚝 솟아 있는 국보 제41호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을 주목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명문이 교육도시 청주의 역사를 웅변으로 나타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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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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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무경(茂卿), 호는 치당(痴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연택로(延宅老)이다. 할아버지는 연재희(延再熙), 증조할아버지는 연응복(延應福)이며, 어머니는 유장(柳莊)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조양(趙暘)의 딸 평양조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배속되었다. 사헌부 감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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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항서원(莘巷書院) 이정골마을 뒷산 산자락에 서향(西向)으로 위치한 신항서원(莘巷書院)은 조선 선조 3년(1570) 창건되었다. 아산현감 경연(慶延)·문도공 동부승지 강수 박훈(朴薰)[1484~1540]·문간공 형조판서 충암(冲菴) 김정(金淨)[1486~1521]·문충공 대사헌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 등 이 지방 출신 선현 4인을 모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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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며 성리학, 주자학의 정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상의 변천사, 인물, 유적 모두를 포괄하는 용어. 유교가 우리나라에서 불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념의 철학사상으로 부흥되는 것은 고려 귀족사회의 모순이 첨예화되는 13세기 후반부터이다. 지방 중소지주출신의 관료,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집단은 위화도회군 이후 조선 태조(太祖)를 도와 조선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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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의 도를 닦는 학자. 청주에서는 1570년(선조 3)에 신항서원이 호서에서 두 번째로 세워질 정도로 사림들이 자리잡혀 갔고 임진왜란 때 청주읍성의 수복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유림(儒林)은 유학의 도(道)를 닦는 학자로써 흔히, 사림(士林)을 일컫는다. 사림이란 용어는 고려말(高麗末)·조선초(朝鮮初)의 시기에도 간혹 쓰였으나, 중종조 무오사화 이후 사화가 거듭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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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춘(伯春)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아버지는 이형(李泂)이며, 어머니는 최대년(崔大年)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정언 등을 역임하고, 1689년에 지평(持平)이 되어 송시열(宋時烈), 윤증(尹拯)의 시비를 분별할 것을 상소하자 왕이 가납하였으며, 홍문록(弘文錄)에도 올랐다. 이어서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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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1633~1709]의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는 윤보(潤甫)이며, 호는 송곡(松谷)이다. 이경항(李慶恒)의 아들이다. 1651년(효종 2) 생원시를 거쳐 1660년(현종 1)에 성균관 유생으로 과제(課製)에 1등하여 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고, 그해의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문장에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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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이다. 관찰사 이동직(李東稷)의 아들이며,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응교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특진된 뒤 승지·대사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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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후(仲厚)이고, 청주 남일면 고은치(현,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 부인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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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문원(聞遠)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부친은 승의랑(承義郞) 증좌승지 이경회(李慶會)이고, 조부는 풍천도호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형으로 이인량(李寅亮)이 있고, 동생으로 신항서원의 사액을 청한 이인빈(李寅賓)과 이인정(李寅貞)이 있다. 부인은 순흥안씨이며, 경상우병사와 함경도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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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안(子安)이다.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주된 거주지는 서울이었다. 아버지는 통훈대부 사복시정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이고,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자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낸 이덕수(李德洙)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부인은 나주임씨이다. 동생으로 이기직(李基稷)과 이광직(李光稷)이 있다. 16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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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에 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문중의 사당. 1634년(인조 12)에 세운 전주이씨 문중의 사당(祠堂)이다. 영모당(永慕堂)이라는 명칭은 “후손들에게 선인의 글을 익히고 선인의 예를 배워 행하며 ‘추원영모(追遠永慕)’하는 정성으로 대대손손 효도를 기리게 한다”는 의미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주이씨 경녕군(敬寧君) 후손의 세거지(世居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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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능(聖能)이며, 호는 기주(棋洲)이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5대손으로 형조판서 정광성(鄭廣成)의 아들로, 어머니는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정치화는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동생으로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이다. 부인은 오위장 남정(南瀞)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아들을 얻지 못하여 형 정태화의 막내아들 정재륜(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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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오(受吾), 호는 뇌봉(雷峯)이다. 부원군 지용기(池湧奇)의 8세손으로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지경청(池景淸)이고,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지란(池蘭), 증조할아버지는 지영수(池永洙), 외할아버지는 송수(宋璲)이다. 부인은 윤직방(尹直方)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재취한 부인은 성산이씨 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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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지(受之)이다.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涌寄)의 후손으로, 사과(司果) 지경담(池景湛)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영변통판으로 300여 군사를 이끌고 운산의 적을 기습, 패주시켰다. 이 전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하는 자의 참소로 의주에 충군(充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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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서원.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청주목 서주내면 유정리 안말마을(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번지[이정골로 115-8])에 건립되었다. 신항서원의 창건당시의 이름은 서원이 위치한 마을이름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 사액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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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위치한, 신항서원의 건립경위와 제향인물에 대해 기술한 비. 청주지역의 사림들이 주로 호서(湖西)지방의 훌륭한 유학자들의 신위를 신항서원에 모셔놓고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상당구 용정동의 안말마을 뒷산자락의 평지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방형 받침돌[대좌] 위에 높이 190㎝, 폭74㎝, 두께 40㎝의 오석(烏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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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향교. 최초 창건은 고려 시대인 987년(성종 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태조 때 교육제도가 정비되고 전국의 각 지방에 향교가 설치될 무렵 재정비되면서 규모를 새롭게 하였다.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5성(五聖), 송조 6현(宋朝六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한다. 원래는 동·서무에 나누어 제향하다가 현재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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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지어진, 청주 또는 청주의 유적을 대상으로 지은 시 작품. 청주는 국토의 중심부로 땅이 비옥하여 호걸이 많이 나고 사대부가 살만 한 땅으로 여겨졌다. 그에 걸맞게 이곳을 지나는 시인이나 청주지역의 문사가 남긴 한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이어진 한시는 주로 청주 공북루(拱北樓)의 제영시(題詠詩)가 다수를 차지한다. 1362년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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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한식일(寒食日)에 지내는 제사. 한식일은 대개 음력 3월에 들기도 하나 대개 2월에 든다. 이 날은 조상의 묘에 과일과 떡 등을 차려 놓고 ‘한식차례(寒食茶禮)’를 지내며, 조상의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文化洞)의 송시열(宋時烈) 종가에서는 사당을 모시고 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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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도지역의 정치, 사상적 흐름을 주도했던 지성인 집단. 사림은 주로 15~16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성리학적 교화와 학문적 심화를 주도했던 핵심세력이었다. 사림은 크게 기호사림과 영남사림으로 분류되어 학맥과 학문 성격이 비교되었고, 아직도 호서사림의 특성이 온전하게 정리되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호서사림은 특히 호란이후 산림인사들의 초치와 북벌론의 강조, 예학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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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원구(元九), 호는 만주(晩洲)이다. 청주 판교리(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 증조할아버지는 홍해(洪瀣), 외할아버지는 남충원(南忠元), 장인은 김발이다. 아들로 홍일우(洪一宇) 등 4형제를 두었고, 동생으로 홍석주(洪錫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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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만계(晩溪)로 청주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홉 살 때 병든 어머니께서 민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마침 장마로 물이 넘쳐 강가에 그물을 치고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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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문백(文伯)이다. 효자로 정려된 증참판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부인은 박이환(朴而煥)의 따님인 상주박씨(尙州朴氏)이다. 천성이 효성이 깊고, 부모병환에 축문을 지어 손바닥을 불을 놓아 하늘에 빌었다. 부모의 상을 당해 여막(廬幕)에서 거처하며 애도함이 도에 지나칠 정도였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학문이 고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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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군실(君實), 호는 만은(晩隱)이다. 홍일운(洪一運)의 아들이며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부모가 여러 해 된 이질로 누워 계신 가운데, 그는 십리쯤 떨어져 살았으므로 문병차 밤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늘 범이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고 한다. 부모 병환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구하였다. 묘소앞의 여막(廬幕)에서 삼년 상을 치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