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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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바위와 관련된 이야기. 「형제바위」는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바위에 관한 이야기로, 만선으로 귀가하던 우애 있는 형제가 빼섬 근처에서 죽게 된 이야기이다. 이 바위는 빼섬의 우측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어 사람들은 형제바위라고 부른다. 빼섬은 추도(抽島) 또는 배섬이라고도 불린다. 빼섬은 추도를 한글식으로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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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부터 7세기 중후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한국의 고대는 고구려와 삼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한 백제, 신라, 가야 등이 형성되어 발전한 시기이다. 원삼국 시대 보령 지역에는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있었을 것으로 비정(比定)된다. 이후 한강 유역에서 성장한 백제가 마한의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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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있었던 방어용 군사 기지. 남포진(藍浦鎭)은 고려 시대 우왕(禑王)[재위: 1374~1388] 때 왜구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남포현(藍浦縣)을 정비하고 방어하기 위해 1390년(공양왕 2)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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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의 명칭. 남포현(藍浦縣)은 신라 때 개칭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서림군의 영현(領縣)이었다. 1018년(현종 9)에 가림현에 이속시켰다가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 진성(鎭城)을 설치하였다. 대몽 항 쟁기에는 삼별초의 공격으로 감무가 잡혀갔으며,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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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역에 설치된 고려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고려 초에 신읍현(新邑縣)을 보령현(保寧縣)으로 변경하였다. 결성군(結城郡)의 영현(領縣)이었는데, 1018년(현종 9)에 홍주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1106년(예종 원년)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보령현의 위치는 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지역이며, 치소(監務)는 보령리 구성재에 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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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현 3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따르면 보원(寶院)은 현 동쪽 17리의 보원부곡(寶院部曲)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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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지역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백제 시대 설림군[서천]에 편제된 행정 구역의 하나로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일대에 설치되었다. 중심 치소(治所)는 웅천읍 수부리 수안마을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통일 신라기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대 남포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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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역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백제 시대 결기군(結己郡)[결성]에 편제된 행정 구역의 하나로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일대에 설치되었다. 중심 치소(治所)는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구성재 부근으로 추정된다. 통일 신라기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대 신읍현(新邑縣)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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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보령은 원삼국 시대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자리했을 것으로 비정(比定)되지만 그 실체는 분명하지 못하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기(泗沘期)를 전후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됨에 따라 설림군[서천]의 영현(領縣)인 사포현과 결기군[결성]의 영현인 신촌현으로 편제되었다. 고려 시대에 양광도로 편제된 보령은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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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오경춘(吳敬春)[1874~?]은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출신으로 1908년 4월 오양선(吳良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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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잔미산에 있는 조선 후기의 봉수대. 조선 전기의 기록에는 옥미봉 봉수대가 없고,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옥미봉 봉수대가 나타난다. 옥미봉 봉수대는 18세기에 신설된 봉수대이다. 옥미봉 봉수대는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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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청양군, 예산군 지역의 오일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보부상 조직. 원홍주 등 6군상무사(元洪州等六郡商務社)는 1851년 홍주와 홍주목 관할에 있던 청양·보령·결성·대흥 등의 보부상들이 설립한 단체로, 보상[봇짐장수]과 부상[등짐장수] 중에 보상이 중심이 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포구와 오일장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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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재(李景在)[1800~1873]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한산 이씨 입향조인 이치(李穉)의 형인 이질(李秩)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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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정착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정민(李貞敏)[1556~1638]은 이몽학의 난에 공을 세운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글솜씨가 뛰어났다. 만년에 보령 청라의 옥계리에 옥계정(玉溪亭)을 짓고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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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조 대 청백리에 녹훈된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문신. 이태중(李台重)[1694~175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강직한 성품으로 외직에 있을 때 공평무사한 목민관으로 활동하였으나, 영조(英祖)[재위: 1724~1776]의 심기를 건드려 귀양을 갔다.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는 고향인 보령[현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 농현]에서 강학하였다. 후에 그 성품을 인정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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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에 자리한 상설 재래시장. 중앙시장(中央市場)은 1929년 12월 영업을 개시하여 9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충청남도 보령시의 대표적 재래시장이다. 1851년 ‘원홍주등육군상무사(元洪州等六郡商務社)’라는 이름의 보부상 조직의 활동으로 보령에 장이 들어서면서부터 유래한 중앙시장은 일제 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 등 시대적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변함없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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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일대에서 양식하는 굴 특산물. 충청남도 보령시 북쪽 끝가락에 자리한 천북면 일대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자연산 굴 생산이 많았다. 천북면의 해안가 갯벌에서는 예로부터 맛이 좋은 굴이 생산되었으며, 1980년대부터 일찍이 양식 굴을 생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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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보령의 역참. 청연역(靑淵驛)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광시역(光時驛)·세천역(世川驛)·용곡역(龍谷驛)·급천역(汲泉驛)·순성역(順成驛)·흥세역(興世驛)·풍전역(豐田驛)·하천역(下川驛)·몽웅역(夢熊驛)·해문역(海門驛)과 함께 금정도(金井道)[조선 시대 충청도 청양의 금정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에 편제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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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보령, 홍성, 광천, 청양, 대흥, 결성 등 6개 군에 속한 보부상단이 상권을 관할하고 구호 역할을 하던 장소. 조선 후기 전국에는 1,000여 개의 5일장이 열려,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았다. 5일장을 찾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부상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조선 시대 지방 시장의 발달을 촉진시킨 사람들이다. 보부상들은 상호간의 협력 필요성 때문에 ‘상무사(商務社)’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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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7월 15일 보령 충청수영 소속의 충청수군이 원균의 지휘 아래 칠천량에서 싸운 전투. 임진왜란 중 명(明)과 일본의 화의(和議)가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선조 30) 1월 다시 조선을 침범하였다[정유재란]. 당시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모함으로 하옥되었고, 원균(元均)[1540~1597]이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로 있었다. 원균이 충청도·경상도·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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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봉화산에 있는 조선 전기 봉수대. 충청남도 보령에 속한 흥양곶 봉수대는 조선 전기 홍주(洪州)에 속한 봉수대였다.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오다가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서산-당진-면천을 거쳐 다시 제5거 중 양성(陽城)으로 전달하던 간봉(間烽)의 노선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