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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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보령 지역 근대 장시의 변천과 중심지 이동.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1차산업[농업, 어업, 임업] 위주의 자급자족적 경제가 주를 이루었다. 국토의 70%가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로망이 열악한 관계로 상공업의 발달이 어려웠고, 일부 고을의 관아 또는 지방 거점 고을에만 시장이 열려 물물교환 행위만이 간간히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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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개국 공신으로 충청남도 보령에 묻힌 문신. 김생려는 태종(太宗)[재위: 1400~1418] 대의 문신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백성들과 형제같이 지내는 등 선정(善政)을 배풀어 김종서 장군의 6진 개척에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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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 죽현마을과 오천면 원산도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부잣집 마당에 벼나 수수 등을 매단 장대를 세우고, 2월 초하룻날에 쓰러뜨리며 풍년을 소망하는 의례. 충청남도 서산, 당진, 홍성, 연기, 예산, 아산, 천안 지역에서는 볏가릿대 세우기 풍속이 있었다. 1921년에 간행한 『조선의 연중행사』, 1924년에 간행한 『조선의 향토오락』에 해당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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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궁촌동에 있는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용터미널. 최근 버스종합터미널은 일반적으로 고속버스, 시외버스 등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새로운 대단위 주거지, 고속도로 나들목, 철도역 등으로의 접근도가 모두 높은 곳에 새로이 이전하여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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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에 있는 인공호수. 보령호의 보령댐은 충청남도 서부지역의 상수도 급수난 해결, 서해안시대 산업화에 따른 공업용수 확보, 웅천천 하류지역 홍수조절 등의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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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쓰이는 음성이나 문자로 표현되는 의사소통 수단. 언어란 사회적 현상으로, 같은 언어 집단에 의해 음성 혹은 문자를 매개로 전달되는 상호 작용의 수단이다. 언어 집단은 동일한 언어 활동을 함으로써 하나의 언어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작용하고 동일한 사회 생활을 영위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 공동체는 상호 간의 언어는 물론 문화 유형, 관습 및 제도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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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남포면, 미산면, 성주면, 청라면 등에 있는 흑색 사암이 산출되는 광산. 옛 남포현 지역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흑색 사암이 산출되었는데, 이를 남포석(藍浦石) 또는 오석(烏石)이라고 한다. 흑색 사암은 견고하고 잘 깨어지지 않으며, 광택이 난다는 특징이 있어 묘비석, 기념비, 상석 등으로 인기가 높다. 조선 후기 보령오석으로 만든 남포벼루는 사대부들의 필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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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일규(吳日圭)[1915~1960]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하여 보령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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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소도읍의 버스터미널은 일반적으로 도시 수준에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전국 주요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종합터미널과 달리 상대적으로 시설 규모가 작고, 버스 노선이 제한적이며, 고속버스 운행을 제외하고,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함께 운행되고 있다. 웅천터미널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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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장가로, 아들 이무(李袤)가 남긴 글을 모아 엮은 문집 『석루유고(石樓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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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무(李袤)[1600~1684]는 붕당정치 속에서 남인 관료로 활동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권이 바뀌자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였다. 유배 후에 보령에 돌아와 사망하였으며, 후손이 보령에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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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과 서천의 서원에 향사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산보(李山甫)[1539~159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호종(扈從)하고 전후에는 기근을 해결하고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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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북인의 영수로서 조정의 요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에 이른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어린시절 친가의 세거지였던 충청남도 보령에 거주하였고, 이산해의 후손들이 한산과 아산 일대에 정착하여 세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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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이인빈(李寅賓)[1625~1695]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경신환국(庚申換局)과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환국으로 조정에서 배제되었을 때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으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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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충남선 개통과 경남철도주식회사의 무창포해수욕장 개발. 대한제국기부터 계획되었던 한국의 철도는 부설 주체와 운영 방식이 노선마다 달랐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군사적, 경제적 목적에서 한반도의 철도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던 일본은 경부철도를 매수하여, 경의철도·마산철도와 함께 통감부에서 운영하게 하였다. 따라서 철도 부설은 대한제국이 일본자본주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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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보령시를 거쳐 전라북도 익산시를 연결하는 철도. 장항선(長項線)은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경부선 천안역에서 시작하여 보령시를 거쳐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호남선 익산역을 연결하는 길이 152.8㎞의 한국철도공사 소속 철도노선이다. 장항선은 보령시 구간을 통과하면서 대천역, 웅천역, 청소역 등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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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에서 활약한 조선 후기 문신. 정엽(鄭曄)[1563~1625]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임진왜란 때 수원을 방비하고, 이괄의 난에는 인조(仁祖)[재위: 1623~1649]의 공주 파천을 제기하였다. 충청도관찰사 재임 중 화암서원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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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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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천주교가 조선에 널리 수용되기 시작한 18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18~19세기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천주교 교세는 크지 않았다. 보령 지역은 충청남도 일대에서 가장 늦은 1962년에 이르러서야 대천성당이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대천성당이 본당으로 설립되면서 보령 지역에서도 천주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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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준공한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에 있는 저수지.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향천리에 자리한 청천저수지(清川貯水池)는 사업비 4억 5300만 원의 예산으로 1952년부터 건설하여 1962년 준공한 저수지이다. 면적은 280㏊, 최대 담수량 2,080만 톤, 몽리 면적(蒙利面積)[논밭 따위가 저수지, 보, 양수장과 같은 관개시설에 의하여 물을 받게 되는 면적]은 2,63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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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보령, 홍성, 광천, 청양, 대흥, 결성 등 6개 군에 속한 보부상단이 상권을 관할하고 구호 역할을 하던 장소. 조선 후기 전국에는 1,000여 개의 5일장이 열려,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았다. 5일장을 찾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부상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조선 시대 지방 시장의 발달을 촉진시킨 사람들이다. 보부상들은 상호간의 협력 필요성 때문에 ‘상무사(商務社)’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