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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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및 그 작품. 충청남도 보령시의 문학은 크게 조선 시대와 현대로 구분하여 파악할 수 있다. 보령에는 유교 유적으로 신도비, 중수기 등의 기록이 전하는데, 이들도 큰 범주에서는 문학의 범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문학은 개인 문집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보령에 전하는 개인 문집을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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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같은 본관을 가지고 오랫동안 세거해 온 성씨. 세거성씨(世居姓氏)란 특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세거하여 집성촌 또는 세거지를 형성하는 성씨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거에는 기원이 되는 특정한 지역에 들어오게 된 각 가문 입향조(入鄕祖)들이 있다. 다만 모든 가문이 입향조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입향조가 누구인지 알려졌다고 해도 생몰년을 모르거나 생몰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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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존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양주 조씨(楊州 趙氏)는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역임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추증된 조잠(趙岑)을 시조로 하고 16세기 문인인 조존성(趙存性)[1554~1628]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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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장가로, 아들 이무(李袤)가 남긴 글을 모아 엮은 문집 『석루유고(石樓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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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은거한 조선 전기의 문인. 이몽규(李夢奎)[1510~1563]는 조선 전기의 선비로 일찍부터 학문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전원생활을 동경하여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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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정착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정민(李貞敏)[1556~1638]은 이몽학의 난에 공을 세운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글솜씨가 뛰어났다. 만년에 보령 청라의 옥계리에 옥계정(玉溪亭)을 짓고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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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창수(李昌壽)[1710~1777]는 조선 후기 영조 때에 병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이창수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창암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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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문신. 조계원(趙啓遠)[1592~167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후 심양(瀋陽)에서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를 보좌하고, 소현세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묘책을 내어 세자를 구하였다. 말년에 보령 탑동에 머물며 조정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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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조영진(趙榮進)[1703~1775]은 충청남도 보령 탑동에 은거하였던 조계원(趙啓遠)[1592~1670]의 후손으로 임오화변(壬午禍變) 때 사도세자의 처형을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후에 대사헌, 형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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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조존성(趙存性)[1554~162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가서 조선에서의 명군 철수를 중지시켰으며, 명군의 군량미 수송에도 큰 공을 세웠다. 광해군의 생모 추존에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는데, 이때 외가가 있는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며 보령과 인연이 깊어졌다. 정묘호란 때에는 전주로 세자를 호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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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문인. 조창원(趙昌遠)[1583~164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할아버지가 충청남도 보령에 입향하였고, 아버지가 보령에 은거하면서 그 또한 보령에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셋째 딸이 인조의 계비가 되면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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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조선 시대 충청도의 해양 방어를 총괄하였던 성곽. 조선 시대 정3품의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가 주재하는 수영(水營)으로 성곽은 1510년(중종 5)에 석성으로 쌓았다. 이후 충청도 해역에 대한 방비, 조운선 호송 등을 담당하다가 1895년(고종 32) 폐영(閉營)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