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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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藍考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사현 |
저술 시기/일시 | 1880년 - 『석람고』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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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시문집 |
저자 | 김광제 |
규격 | 20.0㎝[세로]|18.2㎝[가로]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광제의 시문집.
[개설]
『석람고(石藍考)』는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김광제(金光濟)[1866~1920]가 어린 시절부터 지은 시를 모아서 엮은 시문집이다.
[저자]
김광제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홍제(弘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에 이르렀다. 1896년 이세영(李世永)[1869~1938], 황재현(黃載顯)[1848~1903] 등과 함께 남포에서 의병을 일으켜 남포성을 공격하였다가 실패하고 서울로 빠져나갔다. 1905년에 배일 및 내정 부패를 규탄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1907년 대구 지역 내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부사장 서상돈(徐相敦)[1850~1913]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國債一千三百萬珤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적으로 배포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유학생들과 제2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국내외에 배포하고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사망 후 마산에 안장되었으나, 1927년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평리로 이장하였고, 이곳에 1947년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 행사를 거행하였다.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형태/서지]
『석람고』는 필사본으로, 책 크기는 세로 20.0㎝, 가로 18.2㎝이고 면수는 47면이다.
[구성/내용]
『석람고』에는 김광제의 나이 17세인 1880년에 지은 시부터 모두 126수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석람시고(石藍詩稿)』와 같이 서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시가 많으며, 관직에 나아가기 전 젊은 날의 평안한 일상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시를 통해 그와 교류한 인물들이 진사 이세제(李世宰)[?~?], 참봉 조동규(趙東奎)[1874~?], 윤상구(尹相求)[1904~?] 등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석람시고』와는 별도의 시문집처럼 보이지만, 1888년 3월, 1889년 2월에 지은 시 등 일부 시기가 중복되는 시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