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에 제작된 『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조선 정부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고, 서양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필사본 회화식 채색지도책이자, 국가 주도로 제작된 전국 단위의 군현지도에 해당하는데, 영주 지역의 지도로는 「영천군지도」·「순흥부지도」·「풍기군팔면지도」가 있다. 고종의...
-
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 대한제국기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2월 일본과 강제로 체결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조선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은 안으로는 봉건사회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며, 밖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을 극복하여 자주적인 사회를 건설해야만 하는 반제 반봉건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
-
1899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편찬된 경상북도 순흥군의 읍지. 『경상북도순흥군읍지(慶尙北道順興郡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관찬 읍지로 개항기 변모해 가던 순흥군의 상황을 보여준다. 『경상북도순흥군읍지』는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이는 역대 조선 정부의 읍지 편찬 작업 중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당시 조선 정부...
-
1899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편찬된 경상북도 영천군의 읍지. 『경상북도영천군읍지(慶尙北道榮川郡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관찬 읍지로 개항기 변모해 가던 영천군의 상황을 보여준다. 『경상북도영천군읍지』는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이는 역대 조선 정부의 읍지 편찬 작업 중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당시 조선 정부...
-
1899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편찬된 경상북도 풍기군의 읍지. 『경상북도풍기군읍지(慶尙北道豊基郡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관찬 읍지로 개항기 변모해 가던 풍기군의 상황을 보여준다. 『경상북도풍기군읍지』는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이는 역대 조선 정부의 읍지 편찬 작업 중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당시 조선 정부...
-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회복운동. 계몽운동(啓蒙運動)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자강계열의 민족운동을 계승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자강계열의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단체로는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신민회 등이 있다. 또 계몽운동의 유형으로는 국권 회복을 위...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권석규(權錫奎)[1883~?]는 정미의병이 한창 일어나고 있던 1907년 9월부터 김성운(金成雲) 의진에 참여하였다. 여기에서 권석규는 영양군 일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권석규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권호균(權浩均),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 송대춘(宋大春)이다....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금달연(琴達淵)[1874~1914]은 순흥 지역에서 김낙임(金樂任) 등과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1907년 일본군 헌병분견소를 습격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1909년 순흥헌병분경소의 순사대에 체포되어 종신징역을 받고 옥사·순국하였다. 금달연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아버지는 금석주(琴錫周),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18...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낙임(金樂任)[1881~1914]은 의병장 이강년(李康年)[1858~1908]을 찾아가 종군시켜 줄 것을 청하였으나, 병약하여 거부당하였다. 이후 순흥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낙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사일(士一)이다. 아버지는 이강년 의진의 소모장을 지낸 김영시(金永詩)로 188...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두갑(金斗甲)[?~1909]은 이강년(李康秊)[1858~1908]이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7월 이강년이 체포된 뒤에는 의진의 지휘권을 인계받은 김상태(金尙台)[1864~1912]의 의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김두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출신이다....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봉정(金鳳政)[?~1909]은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재기한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이다. 이강년이 순국한 후에는 중군장이었던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김봉정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김봉정은 1905년 을사늑...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선이(金仙伊)[1878~?]는 1909년 5월부터 9월경까지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 가담하여 수십 명의 병사와 함께 경상북도 영천군(榮川郡)과 봉화군, 강원도 영월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선이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 덕거촌(德巨村)에서 출생하였다. 김선이는 1909년 김상태...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진(金聲振)[1857~1915]은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전해 듣고 통분하였으며, 1915년 단식·순국하였다. 김성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명옥(鳴玉), 호는 야옹(野翁)·어야(於野)이다. 김륵(金玏)[1540~1616]의 후손으로 1857년 11월 29일 지금의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서 출생하였...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수갑(金守甲)[?~1909]은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일어난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 투신하여 활동하다 이강년이 순국한 뒤에는 김상태(金相台)[1864~1912] 의진에서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수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출신이다. 김수갑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시백(金時伯)[1887~1950]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 중군장 김상태(金尙台)[1864~1912] 진영의 좌선봉에 이어 김상태 의진의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시백의 본관 김해(金海), 자는 삼궁(三弓), 본명은 김현세(金顯世)이다. 본적지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이며, 1887년 10...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재명(金載明)[1885~1977]은 1910년 경북 북부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5년형의 옥고를 치렀다. 김재명의 본관은 의성(義城), 이명은 김재명(金在名)이다. 아버지는 김정한(金鼎翰)이다. 김재명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소룡리에서 1885년 7월 13일 출생하였다. 의병활동 당시에는 예천군 승...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치순(金致順)[?~1909]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과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이다. 김치순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 거주하였다. 김치순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 되고,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침략이 갈수록 심해지자, 충청북도...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휘정(金輝珽)[1841~1901]은 1896년 순흥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항전하였다. 김휘정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정옥(廷玉)이다. 1841년 경상도 순흥도호부 도탄(桃灘)[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서 김낙표(金樂驃)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휘...
-
일제강점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의병. 남두희(南斗熙)[1850~1924]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우익장으로 활약하였다. 남두희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중(極中), 이명으로 남두희(南斗凞)를 사용하였다. 1850년 1월 29일 지금의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에서 남태치(南泰雉)와 선산김씨(善山金氏)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
1864년 간행된 조선 전기 영주 출신 문신인 권두문의 시문집. 『남천집(南川集)』은 권두문(權斗文)[1543~1617]의 시문집으로 1864년(고종 1)에 간행되었다. 권두문의 자는 경앙(景仰), 호는 남천(南川),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572년(선조 5)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평창군수·봉상시주부·사섬시정·통례원정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 있는 개항기 서당. 도강서당(道岡書堂)은 일제강점기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동진(金東鎭)[1867~1952]이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김동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이다.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했으며, 김흥락(金興洛)에게 학문을 배웠다. 부석면행정복지센...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서재승(徐在承)[1876~1915]은 1907년 정미의병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고문 끝에 총살당하였다. 서재승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서(聖瑞), 호는 죽림(竹林)이다. 1876년 11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서 서목렬(徐穆烈)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재승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1871년 흥선대원군이 외세를 배척하고자 세운 비석. 순흥 척화비(順興斥和碑)는 1871년(고종 8) 4월 신미양요를 겪은 직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명에 따라 한양 종로를 비롯하여 전국 주요 도로변에 건립된 척화비 가운데 하나이다. 순흥 척화비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1991년 5월 14일 경상북도...
-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근대교육을 배우려는 움직임과 학교 설립 운동.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의 요체는 ‘실력’과 ‘힘’을 길러 일본제국주의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으로는 언론계몽운동, 민족산업진흥운동, 국채보상운동, 신문화운동, 신문학운동, 국학운동, 민족종교운동, 해외독립기지건설운...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신봉균(申鳳均)[1866~1907]은 1895년 경상도 풍기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8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주흘산(主屹山)에서 적군과 교전하였다. 그러나 후기의병 시기인 1907년 10월 유인석(柳麟錫)[1842~1915] 의병장의 행방을 추궁하는 일본군에 항거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신봉균의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학암(鶴庵)...
-
1871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에서 제작한 읍지와 읍사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8)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에 따라 제작되었다. 이때 경상도 관내 각 고을의 읍지(邑誌)가 ‘영남읍지’라는 제목으로 합철되었으며, 여기에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3개 고을의 읍지도 수록되어 있다. 1871년 신미양요 직후 의정부에서는 군사적 필요...
-
1895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에서 제작한 읍지와 읍사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95년(고종 32) 지방행정구역 개편 직전 진행된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에 따라 제작되었다. 이때 경상도 관내 71개 고을 중 66개 고을의 읍지가 ‘영남읍지’라는 제목으로 합철되었으며, 여기에 영천군·순흥도호부·풍기군 3개 고을의 읍지도 수록되었다. 1895...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가옥. 영주 구은 고택(榮州九隱古宅)은 김성수(金聖秀)가 건립하였다. 김성수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이응(尼應), 호는 구은(九隱)이다. 김성수는 1905년 순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이산면행정복지센터 정문에서 이산로를 따라 4.1㎞ 이동 후, 석포교를 건너 ‘우금촌 두암 고택’, ‘만취당’, ‘구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영주 내림리 모은정(榮州內林里慕恩亭)은 정태용(鄭泰鎔)이 건립한 정자이다. 정태용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우서(禹瑞), 호는 서암(西庵)이다. 증 참판 정내기(鄭來基)의 아들이다. 15세 때에는 송진규에게 나아가 『서경(書經)』을 공부하였다. 1885년(고종 22) 12월에 가감역관에 임명되었다...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19세기 말 세워진 전통가옥. 영주 석포리 까치구멍집은 19세기 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산면행정복지센터 정문에서 이산로 동쪽 방면으로 약 4.4㎞ 이동 후, 석포2교를 건너 이산로654번길을 따라 396m 직진 후 왼쪽으로 난 밭길을 따라가면 번계마을이 나온다. 영주 석포리 까치구멍집은 번계마을 초입 야산...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지동리에 있는 1868년 건립된 정자. 영주 일우정(榮州逸愚亭)은 전규병(全奎炳)[1840~1905]이 건립한 정자이다. 전규병의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여명(汝明), 호는 우엄(愚广)이다. 허전(許傳)[1797~1886]과 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1813~1872]의 문인으로 1862년(철종 12) 생원시에 합격했다. 전규병이...
-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에 있는 1900년경 건립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영주포교당(榮州布敎堂)은 ‘홍법사(弘法寺)’라고도 불린다. 영주포교당은 현재 영주 지역 불교의 종합교육장으로, 지역 사찰의 구심 역할은 물론, 생활 불교와 대중 불교의 활성화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영주포교당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영주 지역 포교당...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가옥. 영주 수도리 김위진 가옥(榮州水島里金渭鎭家屋)은 김휘윤(金輝潤)[1866~1872]이 건립하였다. 김휘윤의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사흠(士欽), 호는 조은(釣隱)이다. 아버지는 김낙호(金樂灝)이다. 김휘윤은 천석꾼으로 전국 곳곳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자금을 대주었고, 문...
-
개항기에 편찬된 경상북도 영천군의 읍지. 『영천읍지(榮川邑誌)』는 개항기 영천군에서 편찬한 관찬 읍지이다. 조선 후기 영천 지역의 인적 관계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다. 『영천읍지』의 편찬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1899년(광무 3) 읍지 상송령에 의해 발간된 『영천군읍지』와 비교해 보면 구성과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예를 들어 제언(堤堰) 항목에서 1786년(...
-
개항기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유림이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전개한 운동. 위정척사운동(衛正斥邪運動)은 “중화(中華)의 명맥을 보전하여 조선이 금수가 되는 것을 막고, 세계의 중심은 화맥을 계승한 조선에 있다.”라는 위정척사론의 기치로 19세기 후반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유림이 집단으로 전개한 상소운동이다. 특히 영주 지역 유림은 1881년(...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석오(尹錫五)[1870~?]는 1908년 2월부터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 소속의 이용구(李容九)[1868~1912] 부대에 투신하여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을 하였다. 1909년에는 충청북도 제천에서 김상태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윤석오는 다른 이름으로 ‘윤석오(尹石...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영구(尹永九)[?~1909]는 1907년 정미의병기에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순국하였다. 윤영구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윤영구는 1907년 이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 참여하여 충청북도 제천·영...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영석(尹永錫)[?~1909]은 정미의병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당하였다. 윤영석의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윤영석은 1907년 고종 황제가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으로 군대마저 해산되자, 충청북도 제천에서 창의한 이강년 의...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우석(尹遇錫)[?~1909]은 정미의병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당하였다. 윤우석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정미7조약에 따라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이에 반발한 많은 군인이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이때 이강년은 제...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이교영(李敎永)[1873~1911]은 1907년 문경 지역 김상한(金商翰)[1842~1917] 부대의 좌익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에는 소모장 이명상(李明相)[?~1909] 휘하에서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 등지에서 항일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교영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에서 살았다. 의병활동을 전개하는 동안 이경영...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장복규(張復圭)[1826~1896]는 1896년 1월 서상열 의진(徐相烈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나, 태봉전투(台峰戰鬪)에서 패전한 후 체포되어 총살당하였다. 장복규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성삼(聖三), 호는 사이재(四而齋)이다. 아버지는 장원진(張元鎭),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세조 때 적개공신에 녹훈된 연복군...
-
1894년부터 1909년까지 영주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민중의 자발적인 무력 항전. 한말 의병운동은 189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직전인 1909년 말까지 펼쳐졌는데, 그 특성에 따라 전기의병[1894~1896], 중기의병[1904~1907. 7.], 후기의병[1907. 8.~1909.]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의병은 1894년에 일어난 갑오의...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가옥. 해우당 고택(海愚堂古宅)은 1879년(고종 16)에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낙풍(金樂灃)[1825~1900]이 건립하였다. 김낙풍의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성발(聖潑), 호는 해우당(海遇堂) 또는 대은(大隱)이다. 김낙풍은 평생을 거의 서울에서 지냈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사귄 이들이 모두 명류(名流...
-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홍사구(洪思九)[1878~1896]는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스승 안승우(安承禹)[1865~1896]를 도와 제천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896년 제천 남산전투에서 순국하였다. 홍사구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우용(又容), 호는 하포(下浦)이다. 아버지는 홍성유(洪聖裕)이며,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홍훈(洪薰)의 종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