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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경주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경순왕의 후손이라 전하는 김명종(金鳴鍾)을 파조로 하는 영분공파(永芬公派)와 김은열(金殷說)을 파조로 하는 은열공파(殷說公派)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고려시대 문인 김인관(金仁琯)을 파조로 하는 태사공파(太師公派), 고려 말 판도판서 김장유(金將有)를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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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사로(斯盧)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을 시조로 해서 경상북도 경주(慶州)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중시조는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이다. 이후 경주이씨를 주종으로 해 여러 본관으로 분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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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경천리 죽림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경천리 죽림 가마터는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조선 전기 분청사기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경천리 죽림 가마터는 완주군 경천면 경천리와 고산면 소향리 경계에 위치한 봉수대산 서북쪽 기슭 하단부 바람골 입구에 위치한다. 경천리 죽림 가마터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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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피목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고당리 피목 가마터는 피목마을에 있는 가마터로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운영된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고당리 피목 가마터는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가마의 운영 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 운주면 소재지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금산 방면으로 가면 한국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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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광산김씨(光山金氏)는 시조를 김흥광(金興光)으로 하고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김흥광은 김알지의 후예로 통일신라 말기 나라가 어려워질 것을 미리 알고 무진주 서일동[현 담양군 대전면]에 은거했다고 한다. 김길이 고려에 귀의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면서 할아버지인 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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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유기현(柳基賢), 유기섭(柳基燮)의 정려이다. 유기현[1814~1881]의 본관은 전주, 자는 치호(致浩)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유광참(柳光參), 증조할아버지는 유계운(柳啓運), 할아버지는 유여룡(柳汝龍), 아버지는 유상준(柳相峻)이다. 외할아버지는 부평이씨 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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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려.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1947년에 중수한 유지현(柳之賢), 유기창(柳基昌), 유한철(柳漢喆), 유기호(柳基灝) 처 평양조씨(平壤趙氏)의 정려이다. 유지현(柳之賢)[1768~1837]의 본관은 전주, 자는 선지(善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광은(柳光殷), 할아버지는 유봉운(柳逢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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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일대에 거주하였던 인의송씨 문중의 고문서. 완주군 구이동면에 살았던 인의송씨 가문의 『구이 인의송씨 문중고문서』는 모두 62건으로,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말까지 작성된 것들이다. 호적문서와 교지 및 교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호적문서에 따르면, 인의송씨 가문은 당시 전주부 구이동면 와동리, 덕천리, 지곡리 일대에서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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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입향조를 달리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의 후손 김도손이 처음 충청남도 홍성에서 완주군 비봉면으로 입향되었다. 삼현파(三賢派)란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을 뜻한다. 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의 왕위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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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두현리 남계정을 건립한 김진(金瑱)은 자가 이온(李溫)이고 호는 남계(南溪)이며 본관은 통천이다. 김진은 1527년(중종 22)에 태어나 25세에 과거시험에 급제해 생원이 된 후에 1574년(선조 7)에 합천에서 훈도(訓導)로 재직했다. 말년에 이곳 두현리로 낙향하여 남계정을 세우고 오직 학문과 후학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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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동성산 동쪽에 있는 조선시대 석성. 대아리산성은 완주군 동상면 대아저수지 서남쪽 산성동과 동성산 동쪽 골짜기를 휘감은 포곡식의 조선시대 산성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의 대아저수지 서쪽을 병풍처럼 감싸주는 험준한 산줄기가 완주군 고산면과 동상면의 경계를 이룬다. 이 산줄기 동쪽 기슭에 대아리산성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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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은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대아리 은천 가마터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일대에서 조선 후기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이다. 대아리 은천 가마터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후기의 백자를 생산하다가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아리 은천 가마터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저수지 우암교에서 대아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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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대원사 명부전에 있는 목조지장보살상과 그 권속 일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중턱에 있는 대원사는 1606년(선조 39) 진묵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대원사 명부전 안에는 수미단 위에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고, 좌·우측 벽을 따라 각각 다석대왕과 파관, 사자, 귀왕, 인왕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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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 위치한 대원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17세기 후반 목조삼세불좌상.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한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로 구성된 삼세불로, 완주군 모악산 대원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삼세불은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세 불상을 함께 일컫는 것으로, 시기마다 그 구성이 달라지는데, 대원사 불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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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김계헌(金啓憲)[1794~?]의 본관은 김해, 자는 중여이다. 아버지는 김귀몽[1777~?]이다. 외조는 전주이씨 이준익이다. 김계헌의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계헌이 성장해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슬픔 속에서 상을 치렀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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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김언철(金彦哲) 처 옥야(沃野) 장씨(張氏)의 아버지는 장억기(張億紀)이다. 부인의 품성은 덕이 있고 정갈하며 시집 와서는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예로써 받들었다. 1597년(선조 31) 정유재란 때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원당동에 살았다. 옥야장씨 부인은 전주성이 함락된 뒤 일본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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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청명에 있는 임락풍·임락관·임락성의 효자 정려. 임락풍·임락관·임락성 정려[孝子 學生 林樂豊 林樂觀 林樂晟之閭]의 효자 정문은 외삼문으로 되어 있다. 조양임씨 삼형제는 나란히 효자이다. 임락풍은 1797년(정조 21) 출생해서 1866년(고종 3)에 세상을 떠났는데, 부인 우주황씨는 석노의 딸로 1794년(정조 18)생이며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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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세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동래정씨(東萊鄭氏)의 시조는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부산 동래(東萊)를 관향으로 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대족(大族)으로 성장한 동래정씨는 조선시대 문과자를 198명이나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기축옥사의 정여립이 동래정씨로 전주 출신이다. 동래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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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있는 윤언형 처 전주이씨 정려. 전주이씨는 고산현 이규홍의 딸로 1797년생인 유언형과 1819년 3월 3일 혼인을 했다. 그해 6월 25일 처가에 가던 중 고산천에서 남편이 목욕하다 익사하자 전주이씨는 21세의 나이로 애통해 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동년 8월 3일 치마에 돌을 감싸고 스스로 익사했다. 모든 사람이 전주이씨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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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190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마치리 원마치 가마터 지표에서 자기 조각에 비해 기와가 다수 확인되고 수습된 기와의 등면에 청해파문[파도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문양] 등이 타날[점토 안에 들어 있는 공기를 빼내고 토기 벽을 단단하게 두드리는 작업]된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 기와가마터가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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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만덕산에 있는 정수사의 중심 불전. 정수사는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만덕산 아래 평탄판 평지 위에 자리하며 사찰 앞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다.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은 정수사의 입구를 들어서 정면에 있다. 완주군 상관면의 정수사는 889년(진성여왕 2)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시대에도 법등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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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무등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 문화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큰돌[선돌, 고인돌, 칠성바위, 조탑]문화의 일종으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선돌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그 기능을 담당하는데 1기나 2기가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마을 수호, 생산과 풍요[기자, 성신앙], 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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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를 원조로 하고, 박언침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밀양박씨(密陽朴氏)의 시조 박언침(朴彦枕)은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 경명왕이 여덟 왕자를 각기 분봉할 때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밀성(密陽)을 본관으로 삼았다. 밀양박씨는 박언침의 8세에서 6파로, 그 아래에서 다시 6파로 나뉘어 크게 12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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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의 반곡서원에 소장된 고문서. 『반곡서원 소장 고문서』는 93건으로, 18세기 말에 작성된 1건을 제외하면 모두 19세기 초에서 말까지 작성되었다. 대부분의 문서가 반곡사[반곡서원]의 면역과 제향 및 담양국씨 효자 열녀 포창과 관련된 것들이다. 담양국씨와 관련된 문서들이 많은 것은 반곡사가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자신들의 선조를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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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문헌 기록 및 고지도 등에 백여리 원백여사지와 관련된 내용이 전하지 않아 조성 시기 및 연혁은 알 수 없다. 백여리 원백여사지는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원백여마을 북쪽에 있는 사방댐의 서쪽 골짜기에 있다. 이 골짜기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절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원백여마을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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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묵계마을 서쪽 화장골 입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사봉리 묵계 백자 가마터는 19세기부터 20세기 이른 시기까지 운영된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운영 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원사봉마을 서남쪽 학동산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묵계마을 부근에서 만경강 본류로 흘러든다. 학동산 동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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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누정. 삼기리 삼기정을 세운 최득지(崔得之)는 본관이 전주이고 호는 율헌(栗軒)이며, 1413년(태종 13)에 장흥교수를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가 1439년(세종 21)에 고산현감이 되었다. 삼기리 삼기정은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의 전주-대전을 잇는 7번 국도의 삼기교차로 우측 언덕 위에 있는 정자 건축이다.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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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상삼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 오희첨(吳熙瞻)[1755~?]의 본관은 낙안, 자는 사순(士淳), 호는 기암(奇巖)이다. 할아버지는 봉계 오명좌(吳命佐), 아버지는 오언박(吳彦博)이다. 오희첨은 고산면 삼기리 출신이다. 오희첨은 어려서부터 항상 부모의 곁에서 모시며 날마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렸다. 이웃 어른들이 혹시 과일이나 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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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살았던 전주이씨 문중의 고문서. 『삼례 전주이씨 문중고문서』는 모두 71건으로, 현재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호적문서가 68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3건은 소지류이다. 작성 시기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까지 1백여 년에 걸쳐 있다. 당시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전라도 전주부 오백조면, 즉 오늘날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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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설치되었던 숙식 제공 편의 시설. 전통시대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적인 시설이었다. 교통 편의의 제공 외에도 빈민을 구제하고 백성을 진휼하는 기능도 있었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시대 승려나 불교신도들이 요로(要路)에서 가난한 여행자와 병든 사람들에게 숙식과 약품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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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남동마을 남쪽 구릉지에 있는 조선 후기 옹기 가마터. 성북리 백암 옹기 가마터 현지조사 때 옹기보다 시기가 앞서는 유물이 수습되지 않아 조선 후기 늦은 시기에 옹기만을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과 충남 논산시 행정 경계를 이룬 남당산[375.4m]과 작봉산[419m] 사이에서 남북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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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봉수대산에 있는 봉수대 터.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소향저수지의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봉수대산의 정상부에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소향리 봉수대산 봉수대는 2006년 완주군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에 따른 지표조사 통해 개략적인 현황이 파악되었는데, 봉수의 거화(炬火)와 관련된 지상 구조물은 거의 붕괴하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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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안남마을에 있는 숲. 마을숲이란 마을의 역사·문화·신앙 등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조성·보호·유지되는 숲을 말한다. 자생해서 이루어진 산림이나 목재를 이용할 목적으로 조성한 일반적인 숲과는 구별된다. 소향리 안남 마을숲은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제방림으로 조성된 숲이다. 소향리 안남 마을숲은 완주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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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송광사 명부전에 있는 지장보살삼존상, 시왕상 및 권속 일괄. 송광사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삼존상과 함께 시왕상 및 그 권속들이 봉안되어 있는데, 「시왕조성흘공기」에 따르면, 승명(勝明)이 1640년(인조 18) 시왕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수미단 위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한 지장보살삼존이 중앙에 있고, 시왕 중 제1, 3, 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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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송광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종남산 송광사는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물맛을 보고 이 주변에 절을 세우면 반드시 번창하리라 했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1622년(광해군 14)에 이 지방에 거주하던 승려 응호, 승명, 운정, 덕림, 득순, 홍신 등이 보조국사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사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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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 오백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일괄. 완주 송광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정면 측면 3칸 팔작지붕 전각인 오백나한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한 삼존상 3구, 16나한상, 제석상 1구, 인왕상 2구, 사자상 2구와 500구의 나한상이 있다. 특히 오백나한상은 1656년(효종 7)에 조성되었으나, 현재 봉안된 것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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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수선리 송수사지는 비봉면에서 화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왼편에 송수마을이 있는데 송수마을 남서편 ‘절골’이라는 골짜기에 위치한다. 수선리 송수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의 일원으로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13년 불교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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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설치되었던 숙식 제공 편의 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10개 원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전라도는 245개가 있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전주부를 중심으로 동쪽 30리[12㎞]에 위치한 신원(新院), 남쪽 40리[16㎞]에 위치한 상관원(上館院), 북쪽 30리에 위치한 허고원(虛高院), 북쪽 35리[14㎞]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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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 신원리 상리 백자 가마터는 복은저수지 동남쪽에 위치한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이다. 신원리 상리 백자 가마터 지표에서 다량의 소토부, 벽체 조각, 백자 조각 등이 수습되어 이 일대에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가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신원리 상리 백자 가마터 주변에서 다량의 백자 조각이 수습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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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거인마을 동남쪽 번갯골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신월리 거인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 늦은 시기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19세기 백자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신월리 거인 백자 가마터는 완주군 동상면 소재지에서 55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500m 남짓 가면 신월교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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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하검태마을 검태골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신월리 검태 가마터는 조선 후기 늦은 시기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백자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금남정맥 연석산과 운장산 사이 북쪽 기슭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는 용연천을 따라가면 동상면 신월리가 있다. 신월리 신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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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구수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신월리 구수 가마터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운영된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백자를 굽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완주 동상초등학교에서 55번 지방도로를 따라 진안군 주천면 방면으로 가면 구수교가 나오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금남정맥 장군봉 서쪽 기슭 말단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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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에 있는 정우홍의 정려. 정우홍은 하동정씨로 1713년(숙종 39) 정진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모를 공양하는데 효성이 지극했다. 정우홍이 11살 때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대변의 맛을 보면서 병간호를 했으며, 19세 때에는 아버지가 값자기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고 하자 막연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타까워하자 꿩 한 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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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일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가마터. 완주 안덕리 장파 가마터 A, B에서는 지표에서 다량의 백자 조각이 수습되어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C에서는 분청사기가 수습되어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덕리 장파 가마터는 모악산[793m]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서쪽 사면부에 조성된 장파마을 인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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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승탑. 부도(浮屠)라고 불러온 승탑(僧塔)은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이룬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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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설치되었던 교통편의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앵곡역은 고려시대에 ‘장곡역’으로도 불렸으며, 전통시대 전라도의 주요 교통로로 기능하다가 1896년에 폐지되었다. 앵곡역이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 권94 「지채문 열전」, 4권 「세가」로, “삼례역(參禮驛)에 이르자 박섬(朴暹)이 아뢰기를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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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는 고려 때 진사 송유익(宋惟翊)이다. 송유익은 나라에 공훈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다. 시조 송유익의 4세손 송송례(宋松禮)가 상장군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하사받았다. ‘여량(礪良)’은 여산(礪山)의 옛 이름으로, 이때부터 여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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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일대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시설. 전통시대 역(驛)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중추적인 교통·통신시설이었다. 역제의 기원은 신라 소지왕 대에 설치한 우역(郵驛)의 설치에서 시작한다. 삼국시대 중앙집권국가를 구축하는 중에 지방통치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도로가 발달하였다. 또한 지역 간 물자와 문화의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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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 오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구석린 효자각. 구석린은 1676년(숙종 2)에 고산면 오산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리 뛰어나 부모님을 편안히 모셨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예로써 안장한 다음 묘 옆에서 여막을 짓고 3년을 모셨다. 돌아와서 바로 모친상을 당함에 다시 아버지 묘 옆에 안장하고 3년을 시묘했다. 그동안 구석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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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장구리에 있는 대각사에 보관된 보조국사 지눌이 찬술한 불교서적.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은 고려 선불교(禪佛敎)의 중흥자인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이 찬술한 책이다. ‘목우자’는 지눌의 호이며, ‘수심결’이란 마음을 닦는 요결(要訣)이라는 의미이다. 『완주 대각사 목우자수심결』은 1책이며, 목판본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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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장구리의 대각사에 보관되어 있는 불교 서적. 『완주 대각사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은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범부(凡夫)의 자리를 벗어나 성인(聖人)의 지위에 들어가기를 권하기 위해 지은 불서(佛書)이다. 2016년 12월 9일에 『완주 대각사 몽산화상육도보설』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39호로 지정되었다.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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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 있는 동학농민군 최후 항전지와 유적지. 1894년 11월, 공주 우금치와 청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후 전라도 진산과 고산 등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동학농민군 중 일부가 대둔산 정상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항쟁을 했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일본군과 관군이 연합해 1895년 2월 17일 총공세를 감행했으나, 이때 25명에 이르는 동학농민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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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송광사 중심 불전.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송광사 가람 중심에 있으며, 우화루가 정면에 있고 우측에 명부전, 좌측에 적묵당이 있는 4동 중정형의 북쪽에 위치한다. 송광사 개창 비문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송광사는 17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2층의 완주 송광사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 천왕전,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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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에 있는 사천왕상. 완주 송광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사천왕상이 2구씩 배치되었다. 오른쪽 앞쪽 상은 칼을 들고 있고 뒤쪽 상은 비파를 들고 있다. 왼쪽 앞쪽 상은 오른손에 용을 들고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으며, 뒤쪽 상은 오른손에 당을 왼손에 탑을 받쳐 들고 있다. 각각의 천왕들은 한쪽 다리로 악귀를 밟고 있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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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삼세불. 완주 송광사 대웅전 내부에 있는 소조삼세불은 복장에서 조성기가 발견됨에 따라 1641년(인조 19)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세불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그 왼쪽에 약사여래를, 오른쪽에 아미타여래를 배치하였다. 조성기는 조성 시기뿐만 아니라 이 삼세불이 당시의 주상과 왕비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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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에 위치한 조선 후기 누각. 완주 송광사 종루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불전 사물을 봉안한 건물로 평면 형태에 의해 십자각(十字閣)이라고도 한다. 1996년 5월 29일에 보물 제1244호로 지정되었다. 전주에서 진안 방향으로 26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소양면을 지나 북쪽 지방도를 타고 가면 대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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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영구의 신도비. 완주 송영구 신도비는 좌대[기물을 받쳐서 얹어 놓는 대]와 이수[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가 잘 갖추어져 있고 조각 수법도 정교하고 뛰어나며, 특히 당대의 명필인 송준길의 서체로서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송영구[1556~1620]의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인수(仁叟),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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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종형 사리탑과 금강계단. 금강계단(金剛戒壇)은 불사리(佛舍利)를 안치한 곳으로 수계(受戒) 의식을 집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완창리 안심사 사적비(事蹟碑)에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잘 나타나 있다. 완창리 안심사 사적비에 ‘안심사에 전해 오던 부처님의 치아 1개와 10과의 사리를 보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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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에 위치한 정수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아미타삼존불.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머리 부분이 큼직하고 하체가 넓고 정삼각형에 가까워 상체가 비교적 큼에도 안정적 비례를 보여준다. 다만 다른 무염파 불상과 비교하면 무릎 폭이 좁은 편이다. 머리에는 유계 표현이 거의 없고, 나발이 촘촘하여 반달형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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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에 있는 조선시대 화암사의 중심 불전.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앙식 건물로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아미타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고, 화려한 닫집이 불상 위쪽에 마련되어 있고, 닫집 주위로 목조비천상을 조각해서 현수하므로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건물 내외부 포벽에 좌불도가 그려져 있고, 내부 상벽에 나한도와 화조도가 그려져 있다.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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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화암사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누정. 보물 제662호인 완주 화암사 우화루(花巖寺 雨花樓)는 정면은 높은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놓은 2층의 구조이나 뒷면은 평범한 단층 구조를 가진 공중누각식(空中樓閣式)의 형태로서 자연적인 지형과 조화를 이루어 선인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화암사의 ‘화암(花巖)’이란 유래는 사찰 앞의 반석(磐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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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현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완창리 현동 분청자 가마터는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분청사기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완창리 현동 분청자 가마터는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현동마을 입구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2006년 안골에서 또 다른 가마터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완창리 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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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 석장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용복리 석장 가마터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후기 백자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용복리 석장 가마터는 완주군 경천면 소재지에서 17번 국도를 따라가면 경천교육공무원 양성학원이 나오고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사기점골 입구 남쪽 기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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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원용암마을 일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분청사기 가마. 원용암 유적은 전주-남원 간 고속국도 구간에 포함되어 2003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진행되었으며, 발굴조사는 2007년 전북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분청사기 가마 2기와 폐기물 퇴적층이 확인되었다. 원용암 유적은 완주군 상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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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사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나한상. 위봉사 나한전 십육나한상 일괄은 원래 위봉사 보광명전에 봉안되었던 것인데, 1991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나한전을 새로 지은 후 옮긴 것이다. 완주 위봉사 십육나한상은 79~85㎝ 내외로 크기가 약간씩 다르지만, 방형의 바위 위에 네모난 대좌가 있고 그 위에 앉아 있는 나한상으로 구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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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위봉사 보광명전의 석가삼존불 뒤에 장엄된 후불도. 석가, 약사, 아미타로 구성된 삼세불도는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한 불화의 종류이다. 삼세불도는 대체로 중앙에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를, 그 좌측에 약사불의 그림을, 그 반대편에 아미타불의 그림을 배치하는 것이 통례이다. 연등불, 석가불, 미륵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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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사 보광명전에 봉안된 석가삼존불. 완주군의 위봉사 보광명전에 봉안된 석가삼존불이다. 결가부좌하고 항마촉지인을 맺은 석가모니불을 보존으로, 좌협시는 오른손으로 정병을 들고 있는 입상의 문수보살상이, 그 반대편에는 보현보살상이 있다. 특이하게도 본존은 목조이고 좌우협시는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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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터. 은교리 신월 가마터는 지표에서 다량의 옹기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은교리 신월 가마터는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위치한 신월마을을 동쪽에서 감싸고 있는 구릉지의 서쪽 사면부에 해당한다. 은교리 신월 가마터는 가마가 조성되기에 알맞은 경사를 갖추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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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상리에 있는 유석진의 효자각. 유석진은 기계유씨로 고산현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 성보의 손자다. 원래 운제현 사람으로 고산현의 관리였다. 부친인 천을(天乙)이 괴질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어 기절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니, 유석진이 기도로서 하늘에 도움을 구하고 널리 약을 구하며 간병하고 있을 때, 한 의원이 말하기를, 살아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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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의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 의암리 계월 백자 가마터 지표에서 수습된 분청사기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의암리 계월 백자 가마터는 조선 초기에 조성,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의암리 계월 백자 가마터는 완주군 소양면과 상관면을 나누는 묵방산[해발 527m]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하단부에 있다.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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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의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의암리 민목 백자가마터 지표에서 백자 조각, 분청사기 조각 등이 수습되어 유적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조성,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의암리 민목 백자가마터는 상관면 의암리의 묵방산[해발 527m]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하단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마가 조성되기에 알맞은 지형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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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이치에서 1592년에 조선 관군과 왜군의 전투가 벌어진 장소.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의 이치에서 1592년 7월 10일 이후 일본군이 금산에서 철수하는 9월 17일 사이에 조선 관군과 왜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이다. 이치는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15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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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인동장씨(仁同張氏)의 시조는 고려 초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이다. 관향 인동현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면 일원이다. 인동장씨가 전주에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건국 후 장강(張綱) 때부터로 보인다. 장강은 전주에 세거한 인동장씨 장령공파 1세로 중시조가 된다. 장령공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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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창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는 고려 건국 때 태조를 도운 공으로 태사(太師)에 오른 이도(李棹)이다. 조선 초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으로 후백제를 정벌하러 금강에 이르렀을 때 물이 범람하자 이도가 태조를 보호해 강을 건넜으며, 이 공으로 인해 ‘도’라는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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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습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류씨(全州柳氏)는 시조가 다른 류혼파(柳渾派), 류습파(柳濕派), 류지파(柳池派) 등 3파가 있다. 현재 류습파가 많아서 전주류씨 하면 대체로 류습을 시조로 하는 전주류씨를 말한다. 『전주유씨족보』[1952]에 의하면 오늘날 전주류씨는 문화유씨에서 분적된 계통으로 류습이 고려 말에 전주로 이거해서 봉정대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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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태종무열왕 10세손인 군윤(軍尹)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고, 통일신라 문성왕(文聖王)[재위 839~857]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라고 하는데,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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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를 본관으로 하고 전라북도 완주군에 거주하는 세거 성씨. 전주최씨(全州崔氏)는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를 달리하는 4계파가 있다.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와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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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신리에 정여립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사상가로 1589년에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事)로 죽은 인물이다. 정여립 관련 설화들이 전라북도 완주군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아마도 정여립의 생가터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인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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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임정언(林廷彦)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임국주(林國柱), 임광후(林光后) 등 임씨 삼충(三忠)을 기리는 정문(旌門)이다. 임정언의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자는 사미(士美), 호는 한정당(閒田堂)이다. 참판 임각(林恪)의 후손이며, 고조할아버지는 상주목사 임중형(林仲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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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전라북도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 전라북도 완주군은 조선시대 전주부[전라북도 전주시]의 외곽 지역과 고산현이 합쳐진 것으로 1935년에 전주군에서 분리되었다. 전라도로 들어오는 관문 삼례역이 위치했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라도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아 호남을 보존했던 웅치전투와 이치전투의 현장이다.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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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조선시대 역로와 삼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위치하였던 삼례역은 고려 전기로부터 조선 말기까지 운영되었던 역참이었다. 삼례는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북쪽으로 30리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전라도에서 지리적으로 교통의 요지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전라도의 수부인 전부의 북쪽 관문의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삼례역은 중앙과 전라도를 연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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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미를 시조로 하고 임사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우리나라 임씨는 평택임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평택으로 와서 뿌리를 내렸다는 임팔급(林八及)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고려 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 임세춘(林世春)을 1세 조로 하는 계열과 고려 말 삼중대광(三重大匡) 임언수(林彦修)를 1세 조로 하는 파가 있다. 조양임씨(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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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죽림리 외정 백자가마터는 지표에서 다량의 백자가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가마가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죽림리 외정 백자가마터는 외정마을을 동남쪽에서 감싸고 있는 야산의 북사면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마가 조성되기에 알맞은 지형을 갖추고 있고 산지가 가까워 땔감 등을 손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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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죽절리 내주 기와가마터 지표에서 등면에 청해파문[파도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문양]이 타날[점토 안에 들어 있는 공기를 빼내고 토기 벽을 단단하게 두드리는 작업]된 기와가 다수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죽절리 내주 기와가마터는 조선시대에 조성,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죽절리 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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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 봉서사에 있는 조선 중기 승려 진묵대사의 사리탑. 진묵대사[1562-1633]의 이름은 일옥이며, ‘진묵’은 그의 호이다.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는데, 이 화포리란 곳은 옛날에는 불거촌(佛居村)으로 부처가 살았던 마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7세에 출가해 주로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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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晋州姜氏)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로 모시는 성씨이다. 강이식 장군은 수나라 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을지문덕과 함께 대승을 거두었다. 후손인 진(縉)이 진양[진주의 옛 이름]에서 벼슬살이함에 따라 진주를 본관으로 했다. 진주강씨는 증직으로 이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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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은 충청북도 청주 방정리(方井里) 무농평(務農坪)을 개척해서 부농이 되었다. 928년(태조 11)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한란은 왕건을 군례(軍禮)로 맞이하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 하루 동안 왕건의 10만 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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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전하는 콩쥐팥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콩쥐팥쥐 이야기」는 2015년 11월 20일 무형문화유산온라인지식사전 누리집에 「콩쥐팥쥐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최초 입력되었다. 조선 중기 전라도 전주부 서문 밖 삼십 리[12㎞]에 살던 최만춘이라는 퇴직 관리와 아내 조씨는 뒤늦게 딸 콩쥐를 얻는다. 그러나 콩쥐가 태어난 지 백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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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坡平尹氏)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 윤신달(尹莘達)[?~973]은 고려의 태조 왕건을 도와 건국 후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다. 윤신달의 5세손이 윤관이다. 판도공파[윤승례]와 소정공파[윤곤]에서 대대로 많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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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海月里)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해월리산성은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원암(元岩)마을에서 원등사(遠燈寺)로 가는 중간 지역에 있으나 축성 시기가 불분명한 석성(石城)이다. 해월리산성은 문헌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2016년에 보고된 『웅치·이치 전적지 기초자료 정밀조사』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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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설치되었던 숙식을 제공하던 편의 시설. 전통시대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적인 시설이었다. 교통 편의의 제공 외에도 빈민을 구제하고 백성을 진휼하는 기능도 있었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시대 승려나 불교신도들이 요로(要路)에서 가난한 여행자와 병든 사람들에게 숙식과 약품을 제공하면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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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에 있는 오재효와 오인한의 정려비. 오재효[1858~?]의 본관은 동복이고 자는 양여이며, 호는 송암이다. 임진왜란 공신 오세우의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연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 아들 오윤탁, 손자 오인한, 증손자는 오병근이다. 사망한 날은 7월 24일인데 정확한 해는 모른다. 오재효의 묘는 소양면 유상의 아래 자좌[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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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300번지 일원에서 발굴된 고려~조선시대의 가마 유적. 화심리 유적은 오케이골프장 부지에 포함되어 전북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었다. 지표조사는 2003년, 발굴조사는 2005년 실시되었는데, 조사 결과 분청사기 가마 1기와 소형 숯가마 15기, 가마와 관련된 폐기물 퇴적구 등이 조사되었다. 화심리 유적은 은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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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 지표에서 수습되는 백자의 기종 및 가마 도구, 번조 방법[질그릇이나 사기그릇, 도자기 등을 불에 구워서 만드는 일] 등으로 볼 때, 가마터는 조선시대[19세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은 만덕산[765m]에서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하단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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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위치한 완주 화암사 극락전에 있는 불화.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는 전각이다. 종도리[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따라 1605년(선조 38년)에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 내부에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불화가 6점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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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화암사 명부전에 있는 소조지장보살상과 그 권속 일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 명부전에는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으로 이루어진 소조지장삼존불과 더불어 시왕상 10구, 판관상 2구, 사자상 2구, 동자상 2구, 인왕상 2구 등 총 21구가 봉안되어 있다. 화암사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좌상은 조선 후기 전형적인 지장보살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