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대 전라남도 순천 지역 농민이 일제 식민통치 하의 열악한 정치·경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일으킨 반일운동. 토지를 매개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민은 토지의 소유를 어떤 문제보다 중시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해 토지 수탈과 식민지 지주제를 축으로 무단농정을 추진했다. 그 결과 다수 농민은 소작인으로 전락해 각종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토지를 상실하거나...
-
근대시기 순천 출신으로 의병부대를 만들어 구국운동을 펼친 의병장. 강진원(姜振遠)[1881~1921]은 현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西面) 운평리(雲坪里) 당천(堂川)마을에서 태어났다. 강진원의 본관은 진주, 자는 승우(承宇), 혹은 형원(亨遠)이며, 호는 성산(聖山)이다. 이명은 강형오(姜炯吾/姜亨吾), 강형우(姜亨宇), 강승지(姜承旨), 강여명(姜汝明), 강의연(姜義淵)...
-
일제강점기 은성학교(현 순천매산중학교, 순천매산고등학교,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 고라복(高羅福)[Coit Robert Thronwell, 1878~1932]은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로서 순천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사립 은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지냈다. 고라복은 1907년 6월 미국 남장로교 맥클렌버그 노회...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3.1운동을 주도한 개신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곽우영(郭宇盈)[1874~1931]은 1919년 3.1운동 당시 목포부 기독교계에서 활동하면서 시위를 계획했다. 곽우영(郭宇盈)과 함께 시위 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상봉(徐相鳳)[1869~1920]·서화일(徐化一)·박여성(朴汝成)[1860~1908]·박복영(朴福永)[1890~1973]·강석봉(姜錫...
-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1910년대 세운 외국인 어린이 학교이자 서양식 근대 건물.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는 전라남도 순천시 매산길 53[매곡동 166-3]에 있다. 남장로회 순천선교기지[순천선교부] 에 세워진 외국인 어린이학교는 선교사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어린이 학교 기능이 사라진 뒤에는 여수애양원...
-
일제강점기 순천 송광사의 조계총림 초대 방장이며 국제선원을 한국에서 최초로 개원한 승려. 구산(九山)[1909~1983]은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읍[현재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아버지 소재형(蘇在衡)과 어머니 최성녀(崔姓女) 사이에서 육 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소봉호(蘇䭰鎬), 법명은 수련(秀蓮), 법호는 구산(九山)이며 별호는 석사자(石獅子), 아호는 타우자(...
-
1876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근대사회. 1860년대를 기점으로 동학의 발생, 흥선대원군 정권의 개혁, 양요(洋擾)와 제국주의의 침략, 여기에 대항한 반침략 민족운동의 발생은 근대사회의 주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개항은 조선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항 시기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의 수립과 세계자본주의의 침투 등 다양한 모습...
-
1876년부터 1970년 이전까지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 세워진 건물. 순천은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군사·행정·문화의 중심지이자 교통·지리적 요충지인 조선인의 전통적 주거지에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가 침투하여 형성되는 근대 도시 역사를 지닌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 도시들의 위상이 설정된 개항기 이후 당시 도시들의 근대 도시화 특성으로 대변되는 성벽 철거,...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종주(金鍾胄)[1864~1947]의 고향은 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하송리이다. 순천 지역 유림 출신으로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임병찬(林炳瓚)[1851~1916]이 조직한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에서 1914년 김승제(金承濟)·배영주(裵泳柱)·서인석(徐仁錫)·김영배(金永培) 등과 함께 낙안군 대표로 활동했...
-
개항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찬와(金贊臥)[1872~1908]는 전라도 순천군 쌍암면 무학리(舞鶴里)[현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무학마을]에 거주하였다. 김찬와는 1905년 말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일본의 행위에 격분하였다. 1908년 후반 순천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징발하는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같은 쌍암면 선학...
-
개항기 순천 출신으로 순창 지역 양경학 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김형주(金亨注)[1886~?]는 전라도 순천군 주암면(住岩面) 광천(廣川)[현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에서 살면서 상업에 종사하였다.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김형주는 순천 지역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중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목격하였다. 20대의 나이였던 1909년을 전후한 시기에 고향 순천을 떠나...
-
1894년 전라남도 순천 지역 동학농민혁명군이 전개한 반제반봉건 운동 1893년 5월 보은집회에 동학교도와 농민이 모였는데, 순천의 동학교도 50여 명도 참석했다. 순천의 동학교도는 백산봉기에도 참가했고, 1894년 6월 하순 순창을 거쳐 순천으로 돌아왔다. 이로부터 순천 지역의 동학농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순천 지역은 영호도회소를 중심으로 전라남도 동부 지역 동학농...
-
일제강점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목사. 라덕환(羅德煥)[1904~1971]은 순천 지역에서 기독교 목사로 활동하던 중 1940년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1971년까지 목사로 활동했다. 라덕환은 전라남도 영광군의 사립 영광강습소에서 소학교 6년 졸업 과정을 수료하고 경성 피어선 성경학원을 거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학기를 수료했다. 이후...
-
일제강점기 순천 지역에서 비밀결사대원으로서 군자금을 모집한 순천 출신 독립운동가. 문재교(文在敎)[1879~1957]는 1879년(고종 16) 전라남도 순천군 해룡면 연향리[현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연향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문병호(文炳浩)이다. 문재교는 1918년 6월 13일 순천군 해룡면 선학리[현 순천시 해룡면 선학리]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종사했다. 당시...
-
개항기 순천 출신으로 순천 지역 조규하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박동규(朴東奎)[1866~1908]는 전라남도 순천군 송광면(松光面)[현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장안(長安)마을에 거주하였다. 박동규는 일본을 물리칠 방안을 고심하다가 전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러던 중 1906년 6월에 전라북도 태인[현 전...
-
일제강점기 순천 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박항래(朴恒來)[1861~1919]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판결문에 의하면 재산이 없어 생활이 매우 곤궁한 양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이기도 했다. 한편, 유생으로서 그 성품이 곧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인물임을 판결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일제의 총독 통치에 대한 강한 불만...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에 있는 순천 송광사에서 수도한 승려. 법정(法頂)[1932~2010]은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아버지 박근배(朴根培)와 어머니 김인섭(金仁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속명은 박재철(朴在喆)이다. 법정은 목포상업고등학교를 졸업 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학년을 수료하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22세 때인 1954년 통영 미래사(彌...
-
일제강점기 순천매산고등학교를 설립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 변요한(變要翰)[John Fairman Preston, 1875~1975]은 1910년 무렵부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선교사이고, 현재 순천매산고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은성학교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순천매산고등학교의 설립자로 대우받고 있다. 변요한은 미국 조지아주...
-
1919년 3월 1일 이후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만세운동. 당시 국제정세의 변화에 민감했던 한민족은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민족대표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1919년 5월에는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었다. 이 확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학생과 청년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연간 집회횟수 1,542회, 집회...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국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정기(徐廷基)[1897~1964]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장천동에서 태어났다. 서정기는 1919년 3.1운동 당시 23세의 사립 중앙(中央)학교 4학년 학생으로서 경성부 와룡동(臥龍洞) 57번지[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서병조(徐丙祚)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후 1919년 4월 서정기의 집에서 공흥문(孔興文...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성동준(成東準)[1912~1980]은 1944년 일본 규슈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학병으로 강제 동원되어 중국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주재 일본군 60사단에 배치되었다. 을종 간부 후보생으로 훈련받던 중 저장성[浙江省] 진화[金華]에 주재하고 있던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의 초모(招募)...
-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미국 남장로회가 1925년경 세운 서양식 근대 건물. 순천 구 남장로교회 조지와츠 기념관은 순천선교기지[순천선교부] 설립을 위해 재정을 지원했던 조지 와츠(George Watts)를 기념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산중학교 매산관에 남학교와 삼풍아파트 자리에 여학교가 처음 설립되었을 당시에도 큰 도움을 준 조지 와츠의 이름을 따 영문...
-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1910년대 세워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프레스턴이 사용한 서양식 근대 주택. 프레스턴(John Fairman Preston)[1875~1975]의 한국 이름은 변요한(邊要翰)이다. 프레스턴은 미국 남장로회 소속으로 1903년 한국에 건너와, 1940년까지 약 40년간 목포, 광주, 순천 등에서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동송리에 있는 1933년 세워진 경전선 철도의 폐역 역사. 원창역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 남해안을 따라 지나는 경전선의 무정차역이다. 원창역을 지나는 경전선은 1930년에 남조선철도주식회사[남조선철도 또는 남철]가 사설 철도로 운영한 광여선[광주-여수] 구간이 1936년 전라선의 전체 구간 개통과 함께 국유화되면서 바뀐 이름이다....
-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미국 남장로회가 1930년대 건립한 서양식 근대 교육시설. 매산중학교 매산관은 미국 남장로회 순천선교기지[순천선교부] 건축물 중 학교 건물이다. 개교 당시 매산학교[순천매산중학교 전신]는 상황에 따라 두 개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매산학교’[1921년 이전에는 은성학교]라 했고, 선교사들의 대외적인 활동을 알리는 보고나...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봉림리에 1933년경 세워진 금융조합의 창고. 순천 별량농협 창고는 일제강점기에 별량지소 금융조합이 설립되면서 금융 업무의 하나인 보관 업무를 하려고 세운 창고이다. 순천 별량농협 창고 전면의 도로는 과거 부산과 목포를 연결한 국도 2호선 구간으로 당시 일본이 동학군들을 강제 동원하여 건설하면서 일명 ‘폭도도로’로 알려져 있다. 현 순천...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군 순천읍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1940년대에 건립한 일본식 근대 주택. 순천 옥천동 일본식 가옥은 일제강점기 순천읍내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당시 이름은 ‘순천읍영주택’으로, 지금의 주거문화를 상징하는 아파트와 달리 소규모 연립주택 단지이다. 주택 단지의 남쪽에 있는 옥천현대아파트가 한천을 생산했던 일명 ‘간땡공장’인 원동산업주...
-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1913년대 세워진 코잇 선교사가 거주했던 서양식 근대 주택. 코잇(Robert Thronwell Coit)[1878~1932]의 한국 이름은 고라복이다. 코잇 선교사는 1913년 4월에 가족과 함께 순천으로 이주했다. 당시 공사 중이던 가옥 서재에서 생활하던 중 위생환경 미비로 두 자녀를 전염병으로 잃었다. 당시 코잇 선교사 가...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봉순(安奉舜)[1894~1947]은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으로, 1940년 1월 중국 관내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9월 광복군으로 편입 후 제2지대에서 본부 요원으로 활약했다. 1942년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중앙전시간부훈련단(中央戰時幹部訓練團) 제4단 내에 특설된 한청반(...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벌교 지역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안용갑(安鏞甲)[1889~1947]은 순천군 동초면 신기리[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안용갑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것을 듣고, 만세 시위에 뜻을 같이했다. 이후 1919년 4월 3일 안용갑은 전평규(田平奎)[1875~1949] 등과 함께 순천군 동초면 신기리의 김천근(金...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벌교 지역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안호형(安鎬塋)[1873~1948]은 현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으로 일찍이 대한제국 말기에 이병채(李秉埰)[1875~1940]·안규휴(安圭休)·안주환(安周煥)·오병원(吳炳轅)·김진두(金鎭斗)·안태섭(安兌燮)·안용술(安鏞述)·안덕환(安德煥)[1897~1958]·안규인(安圭仁)·안규진(安圭晉)[1898~197...
-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이자 순천을 비롯한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서 토벌군에 의하여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동족상잔결사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봉기했다. 군인의 봉기는 미군정에서 이승만 정권...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안규홍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오윤칠(吳允七)[1878~1909]은 전라남도 순천군 송광면(松光面) 신평(新坪)[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에 거주하였다. 오윤칠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윤원(允原), 호는 석강(石崗), 이명은 충섭(充燮)이다. 을사늑약을 비롯한 일제의 침략이 자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 무렵...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강진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오응삼(吳應三)[1864~1909]은 순천군 초천면(草川面) 호산(虎山)[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호동리]에서 살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을 상실한 대한제국은 국가의 상징인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했으며, 얼마 되지 않은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비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일반 국민들도 일본의 제국주...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청년근로보국대 작업 중 배일 언동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오태순(吳太順)[1929~1984]은 1929년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오태순 후손으로는 인천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 오항[2019년 현재 59세]이 있다. 오태순은 1945년 6월 28일 청년근로보국대원으로 강제동원되어 여수 요새사령부에 배치되었다. 작...
-
근대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유성준(劉成俊)[1873~1944]은 구례 지역과 그 인근을 중심으로 활동한 동편제 소리꾼이다. 유성준은 대대로 음악을 해온 세습 예인 집안 출신으로서, 농악대 상쇠 유경학의 아들이자, 판소리 명창 김정문(金正文)[1887~1935]의 외삼촌이며 판소리 명창 김영운(金永雲)[1917~1972]의 외할아버지이다....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유흥주(劉興柱)[1870~1952]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하송리에서 태어났다. 유흥주는 순천 지역의 유림으로서 1919년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일반인의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김종주(金鍾胄)[1864~1947]와 함께 1919년 4월 13일 낙안읍성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김종주와 더...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강진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이기춘(李己春)[1879~1909]은 전라남도 순천군 초천면(草川面) 덕산(德山)[현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두고리 덕산마을]에 거주하였다. 대한제국은 190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집요한 침략정책에 의해 허울만 남은 국가로 전락했다. 망국적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신문기자이자 사회운동가. 이창수(李昌洙)[1886~?]는 1886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태어난 후 1920년대에 순천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창수는 전라남도 영암군 명남학교를 중퇴한 후 면작조합의 주사, 금융조합의 서기를 지냈다. 1920년대 순천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동아일보사 순천분국장, 조선일보사·시대일보사의...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과 전남노동협의회 재건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910~1938]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낙수리 출신으로 이명은 이헌준(李憲俊)이다. 이형우는 1929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에 같은 학교 학생 20여 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하고 항일학생 비밀결사인 광주고보 독서회를 조직했다. 1929년 11...
-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선교사. 인애자(印愛子)[Lois F. Linton, 1927~ ]는 1954년부터 미국인 선교사인 남편 인휴(印休)[Hugh Dwight Linton, 1926~1984]와 함께 전라남도 섬 지역 선교 활동을 시작하고, 순천 지역에 결핵 진료소, 결핵 요양원, 재단법인 순천기독결핵재활원을 세워 무료로 결핵 환자를 치료했다....
-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개신교 선교사. 인휴(印休)[Hugh Dwight Linton, 1926~1984]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 선교사 아버지 윌리엄 린튼(William Alderman Linton)[한국명 인돈(印敦), 1891~1960]과 어머니 샬롯 벨(Charlotte Bell)[한국명 인사래, 1899~1974] 사이의 셋째...
-
근대 순천 지역에서 낙안군수를 지낸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임병찬(林炳瓚)[1851~1916]은 전라북도 옥구군 서면 상평리 남산[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남산마을]에서 태어났다. 임병찬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이다. 임용래(林榕來)와 개성왕씨(開城王氏) 사이에서 출생했는데, 임병찬의 집안은 옥구의 대표적인 향리(鄕吏) 출신이...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의 작가. 임학수(林學洙)[1911~1982]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 출신으로 10대 초반에 서울로 유학하여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1925년 6월 ‘나의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소년소녀웅변대회에 참가했다. 1930년 7월 순천유학생회 임원으로 전라남도 지역에 수해가 발생하자 수해구제위원으로 활동했다. 경...
-
근대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안규홍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장재모(張載模)[1883~1945]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신평(新坪)에서 살았다. 장재모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수환(樹煥), 호는 은선(隱先)이며, 이명은 성수(聖樹)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은 20세기에 이르러 더욱 가속하였다. 일본은 고종에게 헤이그특사사건의 책임을 물...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보성 벌교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전평규(田平奎)[1875~1949]는 1875년(고종 12) 5월 28일 전라도 순천군(順天郡) 낙안면(樂安面) 신기리(新基里)[현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전평규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것을 듣고, 만세 시위에 뜻을 같이했다. 1919년...
-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출신의 작가. 정채봉(丁埰琫)[1946~2001]은 순천 출신으로 아버지 정용석과 어머니 허정순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마저 일본으로 이주하고 소식이 끊어졌다. 이후 할머니에 의해 어렵게 성장하였고 김순희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정채봉은 한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로 딸 정리태 또한 동화작가로 활동...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한국독립당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경한(趙擎韓)[1900~1993]의 본관은 옥천(玉川)이다. 아버지는 조운이고,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조경한은 1900년 순천군 주암면 한곡리 한동마을[현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부터 한학을 배웠다. 1918년부터 만주[중국 동북 지역...
-
개항기 순천 출신으로 의병부대를 만들어 활약한 의병장. 조규하(趙圭夏)[1877~1908]는 순천군 송광면(松光面) 대곡(大谷)[현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주암호 부근] 출신이다. 조규하의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공삼(公三), 호는 송죽당(松竹堂)이며, 이명 혹은 일제가 잘못 기록한 이름은 ‘규화(圭和)’, ‘휴하(休夏)’, ‘서화(書華)’ 등이다. 조규하...
-
일제강점기 순천 지역의 학생, 노동자, 농민 등의 청년이 일으킨 반일운동.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회의 중추세력인 청년은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진영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원동력으로 인해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들의 선도적인 역할이 바로 순천 지역에서도 있었다. 3.1운동 이후 문화 통치 아래 부분적으로 결사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1920년 순천에서는 청년...
-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오적암살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동식(崔東植)[1850~?]은 순천에서 태어나 사헌부감찰을 지낸 후 1904년 6월 일제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반대하여 황무지 개척권의 부당함을 알리는 통문을 돌렸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 직후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면서 조약 체결에 찬동한 박제순(朴齊純)[1858~1916]·이지용(李址鎔)[1870...
-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으로, 순천을 비롯한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서 토벌군에 의하여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 여수 순천10.19사건에 대해 여순반란사건, 여순항쟁, 여순봉기, 여순군란 등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으며, 1995년 국사교과서에 ‘여수 순천10.19사건’으로 편수 용어가...
-
1906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이전 시기까지 전라남도 순천에서 전개된 항일투쟁. 한말 의병은 1894년 이후 약 20년 동안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활동했다. 처음에는 1895년 10월 일본이 자행한 명성황후시해사건(明成皇后弑害事件)에 반대하여 복수토적(復讎討賊)을 표방한 의병이 일어났다. 그 후 일본의 강요에 의해 체결된 1904년의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기독교 민족운동을 주도했던 정치가. 황두연(黃斗淵)[1905~1984]은 1905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전주신흥학교 고등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법학전문학교 제3년을 수료한 황두연은 전주신흥학교 졸업 후 사무원으로 일했던 순천 안력산 병원[알렉산더 병원: 현재 매산고등학교 은성관 자리] 사무원으로 일했다. 19...
-
전라남도 순천시의 황현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매천 황현의 초상화 및 사진. 매천(梅泉) 황현(黃鉉)[1855~1910]은 전라남도 광양 지역에서 태어났다. 조선 말기 시인이며 문장가이자 유교 지식인으로서 조선 말기와 한말의 사회상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자 자결로서 항거한 우국지사이다. 황현 초상 및 사진은 황현이 자결하기 1년...
-
일제강점기 순천 송광사를 재건하고 해방 후 가야총림 방장과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었던 승려. 효봉(曉峰)[1888~1966]은 평안남도 양덕군 쌍룡면 반성리 금성동 이병억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세속의 이름은 이찬형(李燦亨)이다. 법호는 효봉 외에 포운(泡雲)과 선옹(船翁)이 있고 법명은 원명(元明), 학눌(學訥)이다. 효봉은 12세 때인 1899년에 사서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