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논산시 노성면에서는 예부터 병사리에 있는 작은 마을들을 가랑지기 또는 가람지기라고 부르고 있다. 산골짜기를 다랑이 전답으로 개간하였는데, 이에 연원하여 가랑지기란 지명이 나왔고, 뒤에 이를 가람지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논산시 노성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명당과 노승 이야기. 「거북산 설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노성면 노티리에는 거북산이 있다. 부잣집 산소 앞에 두 마리의 거북이가 있었다 하여 거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옛날 노성면 노티리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항상 부자가 되기를 원하였는데 어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옥천말랭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노성면 노성중학교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에 ‘옥천말랭이’라고 하는 야산이 있다. 옛날 어느 해 옥천 지방에 가뭄이 극심하여 들의 곡식들이 타들어갔다. 논바닥은 거북 등과 같이 갈라지고 농부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비를 애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서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노성면 읍내리에 450여 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조선 중종 때 이산현 동헌 마당에 심어졌다. 그런데 이 느티나무는 노여움을 잘 탄다고 알려져 있다. 200여 년 전이다. 어느 노성현감이 부임하여 늘어진 느티나무 가지를 보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일원에서 행해졌던 합두레를 공연화한 두레 풍물놀이. 본래 「노성 칠형제 두레메기」는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서 일곱 마을의 두레조직이 두레계를 맺고 합두레를 먹었던 전통 민속놀이였다. 교촌리 향교골을 비롯하여 읍내리 고랭이·둥둥골·옥거리·주곡리 숯골·한천리 들말·안골 등이 바로 그 일곱 마을이다. 이들 7개 마을은 오늘날의 편제와는 무관하게 1914년 행정구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서 뒤주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노성면 노티리에 있는 가잿골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농부는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하였으나 식구가 너무 많아 항상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았다. 워낙 가진 것이 없다 보니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죽으로 겨우 연명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윤석간(남, 80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서 송죽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때의 일이다.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호암산 아래에 허대감이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서 살고 있었다. 허대감은 슬하에 자식이 없었는데 이곳에 내려와 딸을 얻었다. 늙어서 얻은 자식이라 허대감과 그의 부인은 외동딸을 애지중...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서 아흔아홉 칸 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윤대감과 아흔아홉칸집」은 2005년 논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논산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때에 지금의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노성초등학교가 있는 곳에 윤대감이라고 하는 큰 부자가 아흔아홉 칸이 되는 큰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윤대감은 재력도 풍부하고 세도도 당당하여 전국에서 그를 모르는...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파평윤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분재기. 「윤돈 화회문기」는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 입향조인 윤돈(尹暾)과 관련되어 당시 양반가의 경제 사정을 자세하고도 정확히 전해 주는 유일한 문서이다. 「윤돈 화회문기」는 총 세 부가 만들어져 재산을 상속받은 각각의 집안에 보관되어 왔으나 두 부는 모두 소실되고 한씨 집안에서 보관하던 한 부만이 전해져 오다가 뒤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효죽리에서 효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에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옛날 노성면 효죽리 마을에 부모를 지극히 섬기는 효자 한 사람이 살았다. 그는 가난하였지만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는 노쇠하여 거동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래서 그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할 때에도 항상 부모 걱정을 하였다. 하루는 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곡리의 명칭은 산수가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의 한자에서 유래된 설과 옛날 이곳에 갓을 파는 점포가 있어 갓점골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화하여 가곡리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중리(九中里)·노계리(魯溪里)·지장리(芝庄里)·중산리(中山里) 등을 병합하고 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 지역에 있는 산지·구릉 등의 고지로 둘러싸인 분지. 우리나라 분지는 대부분 암석경연 차이에 따른 차별침식의 결과나 단층선의 형성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곡리 분지의 경우 남쪽에 동~서 방향의 단층선이 발견되고 있으나 분지 형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듯하며, 지질구조상 좌우 사면의 지질 차이와 하천의 개석에 의해 형성된 분지로 추측된다. 지질...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논산천에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각시붕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출현하는 한국 고유종으로, 강원도의 동해안으로 유입하는 하천을 제외한 전체의 담수 수역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약 30~60㎜이다.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몸높이는 높고 체형은 약간 긴 타원형이다. 옆으로 본 모양은 마름모꼴이거나 긴 달걀 모양이다. 머리는 작은 편이고, 눈은 크고 머리의 앞쪽...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윤증 종가에서 대대로 전해 오는 전통 간장. 교동 전독간장은 윤증(尹拯, 1627~1714)의 종가에서 몇 백 년 전부터 전해 오는 장류이다. 교동(校東)이라는 명칭은 노성향교가 고택 옆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향교의 동쪽에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붙여졌으며, 전독간장은 항아리(독)째 전해져 내려와 붙여진 이름이다. 교동 전독간장은 햇장을 담가 묵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 그리고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해 장승에게 지내던 마을 제사. 교촌리 장승은 사람의 출입이 빈번한 주막거리 근처의 장승배기와 노성면 내리와의 경계 지점에 한 쌍의 부부 장승으로 세워져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전라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큰길이었다. 마을에서는 주막거리에 위치한 장승을 ‘윗장승’, 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파평윤씨가 모여 사는 마을. 파평윤씨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문거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많은 학자·정치가를 배출하고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 가운데 노성 지역의 파평윤씨를 ‘노종 5방파’라고 칭한다. 17세기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인이 노·소론으로 나누어질 때 파평윤씨 집안을 중심으로 소론의 중심지가 되었던 지역이 노성현이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마을에 노성향교가 있어서 향교말 또는 교촌(郊村)이라 불렸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읍내면(邑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新村)·죽촌(竹村)·천아동(天牙洞)의 일부와 하도면(下道面) 주막리(酒幕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교촌리라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주변에 거북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거북바위 또는 구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화곡면(禾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미동(美洞)을 병합하고 구암리로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노성면 구암리가 되었다. 구암리의 북부·서부·동부 및...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권석효의 선정비. 권석효 선정비는 현감으로서 선정을 베푼 권석효를 치하하기 위해 계묘년 6월에 건립되었다.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정도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면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권용규의 영세불망비. 현감 권용규의 공적을 후대에 알리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임술년 3월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논산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정도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의 논산천에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10㎝이다. 몸은 길고 원통형에 가까우며 옆으로 약간 납작하다. 입은 주둥이 밑에 붙어 있으며 꼬리자루가 다른 물고기에 비해 특히 납작하다. 전체적인 모양은 몰개나 참몰개처럼 배가 볼록하지 않고 비교적 날렵하다. 주둥이는 약간 뾰족하고 위턱이 아래턱보다 약간 길다. 입 언저리에는 1쌍의 입수염이 달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 장선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수의 처 완산이씨 정려. 완산이씨는 고령인 남편 김수(金檖)가 죽자 뒤를 따라 죽었다. 이 사실을 알고 조정에서 1772년(영조 48) 정월에 정려를 내렸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시 탄천면으로 통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6㎞쯤 가면 공주시와 논산시의 경계 지점에 호암리 장마루마을이 있으며,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1...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관 김수문의 신도비 귀부. 김수문(金秀文)은 명종 때의 무관으로 자는 성장(成章), 호는 양촌(陽村)이고, 본관은 고령으로 김임(金銋)의 아들이다.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영달만호(永達萬戶)가 되어 야인들과의 전투 후 종성(鍾城)에서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는 제주목사로 공을 세워...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고령.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이고, 어머니는 훈련원 참군 노승주의 딸이다. 김임은 논산시 노성면 일대의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만석의 거부로서 사람들이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선비로서 풍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에 있다. 1513년(중종 8)에 호조판서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임의 신도비. 김임의 본관은 고령, 자는 평경(平卿)으로 김수문의 부친이다. 김임은 노성에 거주하면서 1513년(중종 8) 진사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는데, 당시 만석꾼으로서 인근 30리가 그의 소유지였다. 이에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선비로 살면서 객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풍류를 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서 음력 4월 8일 무렵 두레 일꾼들을 위해 벌이는 잔치. 두레는 한해 농사를 협업하여 짓고자 조직한 마을 일꾼들의 조직이다. 큰 마을에서는 김매기 철이 되면 두레를 짜서 김을 맸다. 이때 농민들은 풍장을 치며 고된 노동의 시름을 잊었다. 김매기가 끝나게 되면 큰 잔치를 벌이고, 농신에게 풍년을 빌며 하루를 즐기기도 하였다. 이때 일꾼을 지휘하는 연장...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두사면장 남정로의 영세불망비. 남정로 불망비가 자리 잡고 있는 읍내리는 무정리·남산리·홍문리·상반리·왕림리·죽촌의 일부와 요동과 고랑리 일부를 병합한 구역으로, 이에 두사면장 남정로의 불망비가 현재의 위치에 세워진 경위를 유추할 수 있다. 두사면(豆寺面)은 대동리, 대산리, 중산리, 소산리, 고랑리의 5개 리를 관할하는 작은 면으로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있던 계몽운동단체. 3·1운동 이후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문화계몽운동 확산은 민립대학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전국적으로 일어난 구습 타파의 열풍에 따라 논산 지역에서도 청년단체나 논산학우구락부 등의 순회강연회를 통하여 계몽운동이 확산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서도 1922년 12월부터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에서 두레로 김을 매거나 두레먹이 할 때 행해지던 풍물놀이. 노성두레풍장의 연원은 분명치 않다. 다만 두레의 김매기가 조선 후기 이앙법의 확산과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상기할 때 18세기 이후의 산물로 추정될 뿐이다. 이러한 두레풍장의 전통은 6·25전쟁을 전후로 두레가 사실상 소멸되면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노성두레풍장전승보존회가 결성되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공자의 영정이 봉안된 사당. 노성 궐리사는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闕里村)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궐리사는 강원도 강릉과 충청북도 제천, 경기도 화성에도 있었으나 현재는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와 경기도 화성 지역에만 남아 있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400m 정도 가면 북쪽으로 향하는 소로가 있다. 이 길로 약 450m...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두레풍장을 전승·보존하기 위한 단체. 여름철 농촌에서는 어느 정도 논매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마을 단위로 모임을 갖고 두레날을 잡는다. 두레는 과거에 마을 단위로 일꾼들이 한데 모여서 집단 노동을 하는 조직체이다. 두레 조직을 할 때에는 우선 그 동네의 어른으로 일을 잘 알고 마을에서 존경받는 이를 뽑아 ‘좌상’으로 삼는다. 두레날은 마을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머스크멜론을 주품종으로 생산하는 특산 과일. 노성멜론은 10여 년 전부터 재배에 나섰으나 수해와 재배 기술의 낙후로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다. 2004년 이전까지 농가별로 생산한 멜론을 출하했지만 일조량이 적당치 못하고 품질이 균일하지 않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후 노성농업협동조합으로부터 재배기술을 전수받고 전라남도 담양의 선진지를 견학...
-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노성이란 지명은 조선 전기에 니성현(尼城縣)을 노성현(魯城縣)으로 개칭한 데서 시작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열야산현(熱也山縣), 통일신라시대에는 니산현(尼山縣)으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니성현(尼城縣)으로 바뀌었다. 본래 노성현의 소재지로 읍내면이라 하여 교촌, 신촌, 죽촌, 천재동, 송아, 송당, 월명, 왕림, 상반, 무정, 남산, 홍문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노성면 읍내리는 조선시대 노성현의 읍취락(邑聚落)이었기 때문에 읍내(邑內)란 명칭이 유래했다. 노성현의 구읍취락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예전 기능을 이미 상실하였다. 노성은 본래 백제 때에는 열야산현이었는데, 당나라가 노산주(魯山州)로 고쳤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니산으로 고치고 웅주(현 공주)에 귀속되었다....
-
1893년 노성현감의 탐학 행위에 반발하여 충청남도 논산 지역 농민들이 일으킨 민란. 노성민란은 전운소(轉運所)에서 운송하다 남은 미곡 400석 중 200석을 전 노성현감이 착복하였는데, 1893년에 부임한 신임 현감 황후연(黃厚淵)이 농민들에게 이 200석을 대신 물게 하자, 이에 반발하여 일어난 봉기이다. 농민들은 장두(狀頭) 유치복(兪致福)이 중심이 되어 여러 차례 민회(民會...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노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노성산성 봉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조선시대 읍지들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에 의하면 “봉화가 관아의 북쪽 산성에 한 군데 있다. 서쪽으로 은진 노산(蘆山)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공주 효포산(曉浦山)에 신호를 보낸다.”라고 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바른 인성을 갖추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창의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개성을 추구하고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정서가 순화되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근면·협동’이다. 1964년 1월 11일 3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3월 31일 개교하였다. 같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서 양식으로 생산되는 참게. 노성참게는 1959년대 초반에 작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이 지역의 특산물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연원이 오래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제 제22대 문주왕이 늦가을 지금의 상월면 지경리에 사냥을 나왔을 때 이곳의 백성들은 왕의 행차에 놀라며 무엇을 진상할까 고심하다가 노성참게를 받쳤다고 한다. 왕은 게를 맛보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 돕고 바른 예절을 실천하는 학생, 기초와 기본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학생,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 개성 있는 학생, 아름다움을 느끼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08년 5월 사립 명신학교로 노성면 교촌리에서 개교하여 10년 동안 사립학교로 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노성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위(四聖位)를 모셨으며,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동국 9현을 모셔 모두 5성 20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춘추의 제향시에는 주로 성동면,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지역 유림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노성향교의 대성전. 노성향교는 노성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고 유도를 연찬(硏鑽), 강론할 목적으로 노성산 아래향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이다. 노성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5성위를 모시고 있다.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터. 영조 연간에 편찬된 『노성군읍지(魯城郡邑誌)』와 1759~1765년 사이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아사(衙舍) 38칸, 객사(客舍) 31칸, 현사(縣舍) 3칸, 작청(作廳) 6칸, 군기(軍器) 6칸, 관청(官廳) 13칸이 있었다. 그러나 1895년에 발간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아사 15칸, 책실(冊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북서쪽에서 발원하여 석성천에 합류하는 하천. 노치천은 구릉지 곡간의 충적지를 흐르는 하천으로, 현재는 유로직강화가 되어 있어 하천의 양안에 인공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2010년 말 현재 노치천의 유로 연장은 3.8㎞이고, 유역 면적은 7.95㎢이다. 본류는 국가하천 금강이며, 제1지류는 지방1급하천인 석성천이다. 노치천은 노성면 북쪽에서 시작되어 북동~남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티마을 뒷산이 삿갓 같이 생겼다 하여 삿갓재라고 하고, 갓재 또는 갈재라고 하던 것을 ‘갈’음이 갈대를 연상시켜 갈대 노(蘆)자를 써서 노티라고도 표기하고 티를 고개 치(峙)자를 쓰되 읽기는 ‘티’로 하여 노티리가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화곡면(禾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목동(木洞)·성동(聖洞)을 병합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노티리 사지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장마루에서 호암리 방향으로 약 1.8㎞ 거리에 위치한 노성면 노티리 가재마을(호암산의 서향사면)의 동쪽 끝(호암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산 중턱을 정지하고 조성한 것으로 보이나 현재 사역으로 추정되는 면적은 약 990㎡(약 300평)이며 이들은 모두 밭으로 개간되었지만 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 2구 두레 조직에서 사용하던 농기. 노티리 1구와 노티리 2구에는 각 마을별로 두레가 조직되어 벼농사를 마을 공동으로 협업하였다. 각 두레 조직에는 조직의 깃발이라 할 수 있는 농기(農旗)가 있었다. 노티리 1구의 농기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여 있었고, 노티리 2구의 농기에는 용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 ‘신농유업(神農遺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논산 노성산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노산성(魯山城)은 석성인데 둘레가 1,950척이고 높이가 8척이며, 그 안에 우물이 4개 있다.”고 하였고, 뒤이어 “성산봉수(城山烽燧)는 남쪽으로 은진현(恩津縣)의 황화산(皇華山)과 응하고 북쪽으로는 공주의 월성산(月城山)과 응한다.”고 되어 있다. 노성산성은 노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명재 윤증의 고택. 논산 명재 고택은 논산시청에서 약 6㎞ 북쪽 지점의 노성면사무소 인근 교촌리 노성산 남쪽 기슭에 노성향교, 노성 궐리사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논산 명재 고택은 조선 후기 숙종 대에 건립되어 후대에 수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안채와 사랑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멸실되었던 사당은 1983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환 선생 고택 내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1543~1593)의 아들로 동부승지와 이조참의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아들은 윤선거이고, 손자는 숙종 대 소론의 거두였던 명재 윤증이다. 윤환 선생 고택은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 있던 신라의 행정구역. 니산현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에 폐합된 옛 고을로 일부 부여군에 편입된 지역이 있으나 대체로 논산시 노성면·상월면·광석면 일대이다. 백제 때에는 열야산현이었으나 신라 때 니산현으로 고쳤다. 조선에 들어와 현이 되었으며, 1800년에 노성으로 고쳤다. 1895년 공주부 관할 아래 노성군으로 있다가 1896년 충청남도에 속했다. 1...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이곳에 팥절이라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팥절을 한문화하여 두사(豆寺)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산리(大山里)·중산리·소산리와 대동리(大洞里)의 일부, 읍내면 송아리(松牙里)의 일부, 득윤면(得尹面) 사동리(沙洞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두사리라 하여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불망기념비. 무후지고혼 불망기념비는 충·효·열 삼강(三綱)을 행하고 죽은 인물 중 자손이 없어서 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논산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4㎞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약 3㎞ 가다가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가다 보면 노성 궐리사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민동호의 선정비.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가다 보면 노성면사무소가 보인다. 민동호 선정비는 노성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노성교회 아래 노성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던 조선 말기 도순사 민영상의 영세불망비. 『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록에 의하면, 민영상이 자신이 관할하는 평택(平澤)과 직산(稷山) 두 고을의 백성이 곤궁하고 어려움에 처하자 세금 감면을 요구하였다고 되어 있어, 이러한 공적으로 불망비가 세워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1889년(고종 26) 2월 10일자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민영상 불...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공충도관찰사를 지낸 민치상의 선정비. 민치상(1825~1888)은 1867년 공충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뒤이어 1870년 11월까지 공충감사(公忠監司)를 잉임(仍任)한 기록이 있다. 민치상 선정비가 신미년에 건립되었으므로 민치상의 재임 시기와 신미년을 대조하면 1871년(고종 8)을 선정비의 건립 연대로 짐작할 수 있다. 논산시에서 공...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 통훈대부참봉 박상규의 기념비. 1905년(고종 42) 4월 8일자 대한제국기 관보인 「궁정록사」에 의하면, 박상규는 개성 대흥산성 목청전 행궁 영건 때 활동한 인물로 기념비의 조성 시기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노성면 교촌리 궐리사 외삼문 서편으로 20m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농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을 올려놓았...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남식은 1919년 8월 조병채(趙炳彩), 김영진(金瑛鎭), 윤태병(尹太炳), 윤상기(尹相起) 등과 중국 길림에서 활동 중이던 북로군정서를 도와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대한건국단을 조직하였다. 대한건국단은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단원들이 함께 모여 다니지 않고 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사리에는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들의 묘소가 많이 있다. 이 묘소를 지키는 묘막을 병사라고 하는데, 묘막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병사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접지산리(接枝山里), 내촌리(內村里)·유봉리(酉峯里)·대병리(大丙里)·소병리(小丙里)를 병합하고 병사리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두레 조직에서 사용하던 농기. 농기는 두레 조직을 갖고 있던 거의 모든 마을에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서는 병사리와 노티리의 농기가 현존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병사리 두레는 인근에서 큰 두레로 유명했다. 병사리 두레에서는 큰 기와 영기(令旗), 두 개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두레가 해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윤증이 살던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윤증 고택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의 입지 형태는 노성면 교촌리 남쪽으로, 개잣들이 펼쳐지고 들 가운데로 노성천이 흘러 지나간다. 북편으로 약한 구릉이 솟아 니산(尼山)이 되고, 니산 자락이 주택의 배면을 형성하고 있다. 니산 자락이 남으로 흘러 마을의 계면부를 형성하면서 서쪽에 노성향교를, 동...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성산 동남쪽 자락에 있는 마을로 여기에 있던 산신당을 속칭 속당이라 하였는데, 점차 송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내촌, 소골, 소라실, 쇠지기, 송당, 월명동 등을 병합하여 송당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가 되었다. 북부는 해발 고도 20...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송당마을에 있는 시대 미상의 고분군. 논산시 노성면에서 서쪽 방향으로 4㎞ 정도 가면 호암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도로 오른쪽에 송당리 송당마을이 있다. 송당리 고분군은 송당마을 서쪽 낮은 야산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현재 고분이 위치한 지역에는 10~15년 정도 된 리기테타 소나무가 들어서 있어 고분 유구를 쉽게 확인할 수 없다. 이미 도굴이나 파괴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전기 절터. 송당리 사지는 노성면소재지 서쪽에 있는 노성산(320m) 남쪽 기슭에 있다. 정식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절터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문양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세워진 절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 전기에 많이 제작된 분청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에도 한동안 유지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절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공신 김완의 영정을 모신 사당. 본관이 김해인 김완(金完, 1577~1635)은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복남 휘하에 들어갔다. 이때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막하로 갔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을 따라 남원으로 갔다가 부친을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가 병력을 점검하자 칼로 찔러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다. 남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서 발원하여 읍내리에서 노성천에 합류하는 하천. 2010년 말 현재 옥천은 지방2급하천으로 본류는 금강이고, 제1지류는 논산천이며, 제2지류는 노성천이다. 유로 연장은 2.4㎞이고, 유역 면적은 3.34㎢이다. 옥천은 논산시 북부의 노성산(348.1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1㎞ 정도 흐르다 동쪽으로 유로를 변경하여 노성천에 합류하는 비교적 짧은 하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 영당에서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지내는 윤증 추모제.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윤증 사후 1744년(영조 20)에 이르러 윤증 문인들이 스승의 영당과 경승재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춘추로 제향을 봉행하여 왔는데, 현대로 들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3㎞를 가면 병사교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봉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에 유봉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연의 묘소 앞에 세워진 묘표. 유연(柳淵)은 통정대부를 지내고 노성면 병사리로 낙향하여 살았다. 아들이 있었지만 후사가 없었다. 두 딸을 두었는데 한 명은 청주한씨에게, 다른 한 명은 파평윤씨에게 출가하여 재산을 두 딸에게 분재하였다. 병사리에는 파평윤씨들이 오래전부터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연의 묘와 큰사위인 한여헌 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경교의 묘비. 윤경교는 파평인으로 자는 양일, 호는 장호이다. 윤황의 증손이며, 윤변의 아들로 1632년(인조 10) 9월 18일에 태어났다. 1657년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1663년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지평에 이르렀으며, 1670년(현종 11) 문학이 되었다. 남인 허적을 탄핵하다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1681년 공...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노종 오방파 중 설봉공파로 5대조는 윤순거(尹舜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덕포 윤진(尹搢), 할아버지는 윤무교(尹懋敎)이다. 아버지는 윤동휴(尹東休), 외할아버지는 권필형(權弼衡)이다. 1783년(정조 7) 식년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이듬해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8년 홍문관교리로서 경기감사 김사목(金思穆)과 파주목...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술(而述). 증조부는 윤절(尹晢), 조부는 윤인교(尹仁敎)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며, 어머니는 이익주(李翊周)의 딸이다. 부인은 이하집(李夏集)의 딸이다. 1726년(영조 2)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입학하여 서재(西齋) 장의로 활동하였다. 1733년 영조가 성균관에 거둥하여 시학례(視學禮)를 베풀었는데, 이...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교병은 1881년 8월 28일 현재의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17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말부터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연락요원인 나상필과 함께 충청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650환을 수합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1921년 4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공갈죄...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중(敬仲), 호는 남애(南厓)·유당(柳塘). 증조할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윤혜교(尹惠敎)이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해주판관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5년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부수찬·사간원헌납 등을 거쳐 1748년 홍문관부교리·홍문관수찬, 175...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정(士正), 호는 일암(一庵). 증조할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 할아버지는 윤증(尹拯)이다. 아버지는 대사헌를 지낸 윤행교(尹行敎)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장령 송기후(宋基厚)의 딸이다. 1722년(경종 2)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사옹원주부·사헌부지평·한산군수·홍주목사·사...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임(士任). 증조할아버지는 윤순거(尹舜擧)이고, 아버지는 윤덕교(尹德敎)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으로 1713년(숙종 39) 진사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세자시강원사서·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사간원사간을 역임하였다. 이어 의정부사인·사간원대사간·공조참판 등을 지냈고, 1753년(영조 29) 한성부판윤에 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원고개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윤상정의 정려. 윤상정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자는 익삼(益三)이며, 생원에 합격한 인물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웠을 때 항상 어머니의 분뇨를 직접 처리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91년(고종 28)에 명정하여 효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거 처 공주이씨에게 내려진 정려. 노서 윤선거(1610~1669) 처 공주이씨는 공주의 토성이자 명문가인 생원 이장백(李長白)의 딸로 태어나 19세가 되던 1626년(인조 4)에 윤선거와 혼인하였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편 윤선거와 함께 강화도로 피난하였는데, 1637년 강화도가 함락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주...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숙(明叔), 호는 설봉(雪峰). 할아버지는 윤돈(尹暾),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훗날 설봉공파를 이루었다. 1590년(선조 2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3년 아버지 윤창세가 죽자 시묘를 살았다. 1600년(선조 33)에 능참봉(陵參奉)을 제수 받았으며, 160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고 이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수의 묘표. 윤수는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장남이다. 자는 명숙, 호는 운봉으로, 아들이 없어 윤황의 아들 윤순거가 양자로 들어와 대를 이었다. 명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죽주도호부사를 지냈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윤수가 죽은 지 17년 지났을 때 묘표를 세워 자손들이 알아보도록 하게 해달라는 윤덕요의 요청에 윤순거가 명을 썼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로 당대의 명유인 성혼(成渾)의 딸이다.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었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아버지 윤황이 척화 죄로 귀양 가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순거의 묘역.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煌)이나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윤순거는 파평윤씨의 정신적 전통과 인물 양성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파평윤씨 종학당을 건립하고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병사 종중과 규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순거의 신도비. 윤순거(1596~1668)는 자는 노직(魯直)이고, 호는 동토(童土)이다. 윤황의 아들로서 어려서는 성문준에게 수학했고, 시는 강항에게, 예는 김장생에게 배웠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아버지 윤황이 귀양가고, 숙부는 강화도 싸움에서 순절하자 집안과 나라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 아버지는 시강원필선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 윤주(尹拄)·윤유(尹揄)·윤부(尹拊)와 손자 윤시교(尹時敎)는 학행이 높기로 이름이 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전의 신도비. 윤전은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아들이고 팔송 윤황의 아우이다. 성혼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하여 왕을 공주까지 호송하여 공조정랑이 되었다. 정랑을 지내다가 필선이 되었고, 병자호란을 만나 강화도에서 전사하였다. 윤전은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충헌의 시호를 받...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한송(寒松). 증조할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할아버지는 팔송(八松) 윤황(尹煌)이다. 아버지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이고,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구완(九畹) 이춘원(李春元)의 딸이다.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와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조카이다. 부인은 남원윤씨(南原尹氏)로 충...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절과 부인 남원윤씨의 묘표.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구찬을 지낸 윤절과 그의 부인인 남원윤씨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표로서, 1716년(숙종 42)에 묘표를 세워 묘의 주인을 밝히고 그의 행적과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2.8㎞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 병사리 1구 마을...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1663년(현종 4) 35세에 공경(公卿)과 삼사(三司)가 함께 그를 천거하였다. 이듬해 내시교관에 제수되고, 이후 공조랑·사헌부지평에 제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증 종가에서 행해지는 기제사. 윤증(尹拯, 1629~171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할아버지는 팔송 윤황(尹煌)이며 아버지 미촌 윤선거(尹宣擧)는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일찍이 송시열(宋時烈)·윤휴(尹鑴)·박세채(朴世采) 등 당대의 명유들과 함께 교...
-
조선시대 사대부의 꾸밈새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한 윤증의 고택(古宅)에서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였던 그의 유품이 다량 발견되면서 개략적으로나마 조선 후기 사대부의 복식(服飾)과 이를 통한 생활 및 풍속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윤증의 유품들은 윤증의 생전 고고한 모습과 숨결을 느끼게 함은 물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노종파 윤증가의 책판. 윤증가 책판은 윤선거의 『노서유고』를 비롯하여 『명재연보』, 『가례원류』 등을 널리 보급하고 길이 보존하고자 만든 것이다. 198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책판은 『노서유고』 573판, 『명재연보』 119판, 『명재언행록』 45판, 『일암유고』 111판, 『의례문답』 1...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노종파 윤증가에서 사용했던 물건들과 문중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 성리학과 예학에 밝고 학업과 행실이 뛰어났다.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마다하고 논산군 이산에 머물며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1970년 12월 29일 중요민속문...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경(子敬), 호는 덕포(德浦). 아버지는 장령 윤순거(尹舜擧)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관찰사 함춘원(咸春元)의 딸이다. 1652년(효종 3)에 생원시에 합격한 뒤 10년이 지나 빙고별제(氷庫別提)와 종부직장(宗簿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상의주부(尙衣主簿)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장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진의 신도비. 윤진은 1631년(인조 9)에 태어나 1698년(숙종 24)에 사망하였다. 윤진의 자는 자경이고 호는 덕포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윤순거의 아들로 1652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빙고별검으로 있다가 1666년(현종 7)에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 이조좌랑, 수찬, 병조정랑 등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다. 왕에게 붕당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창세의 묘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는 노종 5방파의 아버지이며, 파평윤씨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윤창세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윤창세는 처음 논산으로 이거한 파평윤씨 윤돈의 아들로 노성면 병사리로 처음 터전을 옮긴 인물로서, 평소 효심이 깊어 자손과 제자들로부터 효렴공(孝廉公)이라 불렸으며, 나라에 대한 충절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파평윤씨 묘역과 묘비. 윤창세 선생 묘소 일원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가 진중에서 전사하여 훗날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윤창세의 묘소가 제일 먼저 자리 잡은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와우형(臥牛形)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묘소가 마련된 이후 윤창세의 자손들은 노종 5방파로 발전하였다. 묘역에는 노종 5방파 직계 선조...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태병은 1889년 9월 17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1월 백남식·임종귀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중국 길림 지방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 단체 북로군정서를 도와 조국 독립을 달성하자는 데 뜻을 같이 두었다. 이를 위하여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문(長文). 증조할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윤선거(尹宣擧)이다. 아버지는 소론의 영수인 우의정 윤증(尹拯)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한성부우윤 권시(權諰)의 딸이다. 부인은 병조좌랑 박태소(朴泰素)의 딸이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선발되었다. 1696...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행교의 묘표. 윤행교의 묘는 원래 공주 작곡에 있던 것을 전주 팔봉산 아래로 이장하였다가 후에 다시 지금의 노성면 하도리로 이장하였다. 윤행교 묘표는 묘를 이장한 후 1697년(숙종 23)에 윤행교의 가계, 성품,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하였다. 공주-논산 간 구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노성면 하도리 노성비행장이...
-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홍중은 1875년 8월 18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257번지[노성로 321-13]에서 출생하였다. 1898년 일제의 강제 단발령에 저항하여 항일시위를 한 이후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07년에는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결사대를 구성하여 항일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때 윤홍중은 체포되어 1개월간 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아버지는 윤창세이며, 장인은 성혼이다. 슬하에 8형제를 두었는데 후손들이 매우 번성하여 14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윤순거·윤문거·윤선거·윤증 등 호서 유림의 큰 줄기를 이룬 이들이 모두 이 가계에서 나왔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황의 묘비.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파평윤씨 노종 5방파 중의 한 사람인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의 묘비로, 가계와 행적, 그가 올렸던 상소문의 내용들이 새겨져 있다. 윤황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글씨를 잘 썼다. 인조 때 문신으로 활약하였는데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 등과 척화를 강력히 주장...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소와 묘비.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장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봉상시정(奉常寺正)·군기감정(軍器監正)을 거쳐 동부승지·이조참의·전주부윤을 지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과 1636...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역. 윤황은 노성면 병사리에 세거의 기반을 마련한 윤창세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노성의 파평윤씨 가문은 우국충절의 사족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윤창세의 다섯 아들은 노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노성 오방파로 불렸으며, 오방파 중에서도 윤황의 직계들이 가장 번성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파평윤씨 문정공파 종중에서 행하는 윤황의 불천위제사. 윤황(尹煌, 1572~163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01년 전적(典籍)에 이어 감찰·정언(正言)을 지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사간으로서 극력...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고택. 윤황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자는 덕요(德耀)이고, 호는 팔송(八松)으로,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주화(主和)를 반대해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 등 주화론자의 유배를 청하고, 항장(降將)은 참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화는 항복이라고 했다가 왕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노성현(魯城縣)의 소재지여서 읍내(邑內)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노성현(魯城縣) 읍내면(邑內面)으로 교촌(校村)·신촌(新村)·죽촌(竹村)·천아동(天牙洞)·송아(松牙)·송당(松堂)·월명(月明)·왕림(旺林)·상반(上盤)·무정(武亭)·남산(南山)·홍문(紅門)의 1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정리·남산리·홍문리·상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19개의 비석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번영회관 앞에 비석 19기가 북동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시멘트 바닥에 일렬로 세워 놓아 아랫부분의 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비석의 형태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호패형(戶牌形)으로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다. 2. 행현감이후승기영세불망비(行縣監李侯承紀永世不...
-
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던 파평윤씨 노종파 의창지. 윤순거가 이이(李珥)의 석담사창지법(石潭社倉之法)의 예에 따라 불의의 재난과 일가집의 궁핍에 대비하는 대비책으로 의창(義倉)을 창설하였다. 즉 의창제를 문중 운영에 도입한 것이다. 윤순거는 문중의 선산과 재실의 운영, 묘사를 위하여 마련된 재정 조치로 의전을 마련하였다. 처음 의전(義田)은 윤순거가 5방파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광좌의 불망비. 이광좌는 경주 사람으로 호는 운곡(雲谷)이다. 이항복의 고손으로 1697년에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신임사화 후에 노론을 제거하고 소론 정권이 수립되자 예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1755년 나주의 벽서사건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 이광좌가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노성 지역을 지나면서 군민을 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이희갑의 선정기념비.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성군이 논산군으로 편입되어 노성면이 되었다. 이희갑은 9대 면장으로 장기간 재임하면서 노성면의 발전과 노성 주민들의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해 주고 주민들의 화합을 위하여 힘을 썼는데, 이때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임준상의 선정비. 임준상(林準相, 1856~?)은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임택수(林宅洙)의 아들로 태어나 1885년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조선 말기 노성현감을 역임한 임준상은 「노성향교 선생안」이 유실되어 정확한 재임 기간은 알 수 없으나 선정비에 의하면 임준상이 재임할 당시 선정을 베풀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많은 현감들이 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얕은 산으로 둘러쳐진 장구형 지형이 있다고 하여 장구동이라고 부른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장구면(長久面)으로 구중(九中)·노계(魯溪)·지장(芝庄)·가곡(佳谷)·중산(中山)·접지산(接枝山)·내촌(內村)·유봉(酉峯)·대병(大丙)·소병(小丙)·구동(久洞)·사교(沙橋) 등 18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동리·사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대규의 송덕비. 일제강점기 지방 사료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그 시대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전 참봉 정대규(鄭大圭)의 청덕(淸德)도 단갈(短碣)의 비문 외에는 더 이상 상고할 수가 없다. 주민들이 전 참봉 정대규의 청덕을 기리기 위해 1938년 송덕비를 건립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조한숙의 청덕비. 조한숙(趙漢肅, 1866~?)은 본관이 임천이고, 자는 원약(元若)이다. 아버지는 행진위현령(行振威縣令) 조성호(趙性鎬)이다. 1891년(고종 28) 사마시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노성군수로 재임하였다. 노성군수로 재임할 당시 조한숙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관리들이 재임하고 떠나면 비를 세워주는 관행에 따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 윤씨 문중에서 운영해 오던 서당. 종학당의 전신은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거리에 있는 정수루이다. 정수루는 누각과 서재가 있어 선비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였다. 정수루 정면 중앙에는 정수루(淨水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좌우로 향원익청(香遠益淸), 오가백록(吾家白鹿)이란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호암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통폐합 대상 지역의 하나였던 섭밭달(섶밭말)에 섶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그중 대나무가 특히 많이 우거져 있어서 죽림리라 했다. 원래는 공주 곡화천면(曲火川面)에 속한 지역이었다. 죽림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로리·장동·방축리·구동리 등의 일부를 병합하여 죽림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화곡리에 있는 한국불교 법륜종 소속 사찰. 지장정사는 1980년 덕산 창법이 계룡산에서 1,000일 기도를 마친 후 불사를 시작하였다. 1994년 영산전 조성 불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였고, 1997년 선재어린이집 문을 열었다. 2002년 납골당인 연화대와 극락전을 중창하였으며, 2003년 자비회관을 건립하였다. 2004년 논산시 대교동에 포교원인 대현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천에서 서식하는 십각목 바위게과의 갑각류. 참게는 담수성 강하성 갑각류로 바다와 연결된 강에서 주로 서식한다. 참게의 자연적인 생태는 담수(하천)에서 성장한 어미게는 강을 따라 내려가서 바다 연안에 산란 부화한다. 참게는 강에서 바다로 8월 하순부터 내려가 바다의 연안 지역에서 암수가 짝을 지어 포란한다. 3월에서 4월까지 어미게는 산란과 부화를 마친다....
-
충청남도 논산의 노성 지역 파평윤씨 가문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양반 가문이다. 노성은 이들 파평윤씨 노종 5방파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배출된 유서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으로, 특히 이곳에 집중되어 분포한 종학당과 병사, 선영과 영당, 서원과 정려, 종가 고택 등은 조선시대 호서 지역 양반들의 유교 문화를 빠짐없이 접할 수 있는 문화 자원이다. 특히 후학들이 정신문화와 유교적 사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인 충헌공 윤전의 재실. 윤전은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1613년(광해군 5) 유생 이위경이 폐모소를 올렸을 때, 상소를 저지시키려다 파면되었다. 이후 1615년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고, 1623년(인조 1) 경기도사로 복직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 있는 도예원이자 자연체험학교. 2001년 4월에 우대경이 충청남도논산계룡교육지원청과 폐교된 삼동초등학교를 자연체험학교와 도예원으로 활용하기로 임대 계약을 체결하였고, 2002년 4월에 토감도예원을 자연 미술 체험학습장과 도예원으로 조성하여 개원하였다. 토감도예원은 2005년에 논산시 문화 유적 답사 체험학습장으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에는 일본 도...
-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파평윤씨는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에 책록된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시대 유명한 문벌귀족 중의 하나였다. 윤신달과 관련해서는 파평현 용연(龍淵)에 있던 옥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부이므로 그전의 다른 이야기나 모습은 알 수 없으며, 그의 후손들이 파평현을 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병사에서 음력 3월에 파평윤씨 노종파가 윤돈 이하 4대를 모시는 제사. 파평윤씨 노종파 대종중 시제는 매년 음력 3월 첫째 일요일에 입향조 윤돈(尹暾, 1551~1612)을 중심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병사 및 선영에서 시제를 지내므로 사당은 없고 재실이 있다. 음식을 재실에서 준비하여 묘소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다. 이외에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윤씨 문중 건물. 파평윤씨 정수루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인 파평윤씨 종학당의 전신이자 문인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이기도 하다. 파평윤씨 정수루와 파평윤씨 종학당은 약 340여 년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파평윤씨 가문 출신의 대과 급제자 46명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고 전해진다. 파평윤씨 종학당은 164...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50m 정도 들어가 오른쪽 길로 200m 가면 덕포선생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재실,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 파평윤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파평윤씨 재실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건물로, 1988년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299호로 지정하였으나 덕포공...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0m 정도 들어가 다시 오른쪽(동쪽) 길로 200m 가면 덕포공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묘역이 나온다. 파평윤씨 재실인 병사는 1574년(선조 7)에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 묘소 수호사로 지었던 건물과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을 포함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의 지역인 하도면의 이름을 따라 하도리라 했다. 본래 충청남도 노성군 하도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풍양조씨와 의령남씨가 살며 행세한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재동·요동·만화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하도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 성재동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하도리 성재동 고분군은 하도1리 성재동 북서쪽에 남동-북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해발 50m 내외의 능선 남서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현재는 산림 지역을 밭으로 개간하여 경작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도리 성재동 고분군은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지원으로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논산 지역 문화유적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 요동마을에 있는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논산에서 공주 방면의 국도 23호선을 따라 5.5㎞ 정도 가면 두고랭이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을 통과하는 소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요동마을에 이른다. 하도리 요동 고분군은 요동마을 북측에 있는 구릉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하도리 요동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낮은 야산지로 이곳에서는 백제 토기편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범바위가 있어 호암(虎岩)이라고 하였다. 원래 충청남도 노성군 화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리·소중리·장선리·방축리·장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호암리라고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하면서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호암1리·호암2리로 구성되어 있다. 동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도덕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개성 있는 건강인, 새롭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생활하는 창의인, 다양한 체험과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자율인, 폭넓은 교양을 쌓아 진로를 개척하는 개척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53년 5월 1일 호암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70년 3월 1일 삼동국민학...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홍우현의 선정비. 조선시대 지방 관리인 현감으로 나아가려면 사마시에 합격을 해야 정식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노성향교에 선생안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홍우현이 노성현감으로 부임하여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노성현감을 역임한 홍우현(洪祐賢)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1880년(고종 17) 홍우현 선정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청남도 노성군 화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전리·덕동리·용막리를 병합하여 화곡리라 하고 논산군 노성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게 되었다. 동부와 서부는 해발고도 120~140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남부는 100여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화곡리 큰덕골에서 격년으로 음력 정월 14일 저녁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며 지내던 마을 제사. 화곡리 큰덕골에서는 2년에 한 번 장승제를 지낸다. 이를 위해 설이 지나면 제관을 뽑아 제를 주관하게 한다. 비용은 호당 쌀 3~4되(5.42~7.21ℓ)씩을 갹출하여 충당하고, 제물은 삼색실과, 술, 백설기 3되 3홉 등이다. 큰덕골 장승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논산 명재 고택에서 매년 10월 열리는 음악회. 한국의 고유한 전통적 문화유산인 효의 의미와 정신을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세계 윤리로서 체계화하여,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에게 가정과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자 하며, 이를 바탕으로 세계 인류의 공영과 공존에 이바지하고자 효와 이웃사랑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효와 이웃사랑 음악...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이 마을에 살았던 신씨가 과거에 등과하여 솟대를 세워 이 마을을 솟대배기라고도 하고, 효자가 있어 마을 입구에 효대를 세워 효대배기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효대를 한문으로 효죽(孝竹)이라고 표기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요현동·봉익동·하반용동·사교리·대정리 등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효죽리라고 하고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