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개태사 삼존석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에 개태사 스님들이 부처님께 호국 염불을 올리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왜적이 개태사로 몰려와 절간 문을 열어젖히고 행패를 부렸다. 대웅전에 다다른 왜병이 대웅전 문을 열었다. 그러자 대웅전 안에서 광채가 뿜어 나왔다....
-
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강복중이 인조반정을 찬양하여 지은 평시조. 강복중(姜復中, 1563~1639)의 자는 재기(載起), 호는 청계(淸溪)이다. 벼슬은 참봉에 그쳤으며, 일생을 시골에 묻혀 논산에서 지냈다. 강복중의 나이 61세가 되던 해인 1623년에 이귀·김유 등의 서인 일파가 광해군과 집권당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인조반정을 일으켰는데, 이에 강복중은 「계해반정가(癸亥...
-
조선 중기 문신 이경여가 논산의 은진 지역을 지나면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과은진고현」은 이경여(李敬輿, 1585~1657)의 문집인 『백강집(白江集)』권5에 실려 있다. 『백강집』에 별도의 기록은 없으나 시의 내용으로 추측해 보면 은진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에 대하여 읊은 것으로 보인다. 좁은 땅에서 반역함이 예로부터 없었으니(潢池狂逆古來無) 하늘의 토벌은 오히려 너그러워 친족...
-
조선 중기 이수광이 충청남도 논산의 은진객사의 주변 풍물을 읊은 한시.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로 사회적 격변기에 사상의 전개 방향을 탐색하고 개척한 실학파의 선구적 인물이다. 주요 저서에 『지봉유설(芝峰類說)』, 『지봉집(芝峰集)』, 『채신잡록(采薪雜錄)』이 있다. 「기제은진객사차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서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노부를 구하고 죽은 부부」는 아버지는 모시고 피난을 가던 이겸 부부가 왜군을 만나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들은 희생된다는 부부희생형의 효행담이다. 2005년 박종익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된 『구전설화』13에 실려 있다. 이는 2003년 5월 18일 백석리에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연기(남, 76)로부...
-
조선 중기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의 연산에 은거할 때 고고한 은자의 삶을 지향하며 지은 평시조.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예학(禮學)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저서에 『의례문해(疑禮問解)』, 『경서변의(經書辨疑)』 등이 있다. 이이의 제자이자 송시열의 스승으로 만년에 제수 받은 벼슬을 사양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에서 말머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전라도 지방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선비는 어릴 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읽기를 즐겨하였다. 그 일대에서는 선비의 학문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학식이 높았다. 사람들이 선비를 찾아가 과거를 보라고 권유하였으나 선비...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에서 명당자리 등토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경상도에 한 유생이 살았다. 유생은 자손을 번창시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는 명문가를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유생은 전국 방방곡곡에 있다는 명당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등토...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채광리에서 명당자리 새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에 중국의 이름난 지관이 명당을 찾기 위해 조선에 왔다. 지관은 조상의 유골을 가지고 우리나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녀도 명당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윤석간(남, 80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서 무안박씨 명당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 살고 있던 무안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 자손들은 부모의 묏자리를 명당자리에 쓰려 하였다. 주위의 이름 있는 지관을 불러다가 묏자리를 물색하였지만 마음에 드는 장소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서 강응정의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강응정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강응정은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나무를 해다 팔아 가며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어느...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에서 말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에 권 판서가 살았다. 그의 집에는 힘이 장사이면서 일 잘하는 비복(종) 한 명이 있었다. 비복은 꾀를 부릴지도 모르고 주인이 시키는 일이라면 그저 묵묵히 해치웠다. 그는 주인의 말이라면...
-
1638년경 강복중이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선산을 되찾게 된 것을 감사하며 지은 가사. 「선산회복사은가(先山恢復謝恩歌)」, 「선산회복가(先山恢復歌)」, 「분산회복가(墳山恢復歌)」 또는 「사은가(謝恩歌)」로도 불린다. 강복중(姜復中, 1563~1639)이 16세에 투장(偸葬, 남의 산이나 묏자리에 몰래 자기 집안의 묘를 쓰는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응소(應訴)한 후 60년 동안이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사계 김장생·우암 송시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이지형(남, 59)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에 출간한 『구전설화』14에 수록하였다. 김장생이 1613년 계축옥사 이후 관직을 버리고 은둔하여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서 후학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당시 김장생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사계 김장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이지형(남, 59)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에 출간한 『구전설화』14에 수록하였다.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가 사계 김장생이 머물던 곳이었다. 이곳의 지대는 다른 곳보다 낮아 장마라도 들면 어김없이 물이 찼다. 지대가 낮고 인...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에서 상사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마을에 마음씨 좋은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망태기를 들고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한 청년이 숲 속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청년을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서 쇳골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무장 이여송(李如松)이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들어왔다. 그는 도와주는 척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에 큰 인물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산의 혈을 끊고 다녔다. 이여송은 이처럼 산맥을 끊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서 쌍군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노인회관 앞에 있는 묘 근처에 쌍군송이라 불리는 고색창연한 노송 2그루가 우뚝 서 있다. 독야청청 웅장한 모습과 품위, 고상한 자태는 마치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촌의 안동권씨 문중에 권육이라는...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의 큰뜸 마을에 박씨(일명 아호리박씨) 부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부부는 정안수를 떠다 놓고 산신령한테 빌었다. “신령님, 저희에게 자식 하...
-
조선 중기 장유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돈암서원의 양성당을 소재로 지은 제영. 양성당(養性堂)은 임진왜란 후 김장생(金長生)이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하였을 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양성당 십영(養性堂 十詠)」이라는 동명의 시가 여러 수 있으나 여기서는 당대의 명문장가인 장유(張維)가 사계 김장생에게 바친 시를 대상으로...
-
1602년 김장생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건립된 양성당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는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인 김계휘(金繼輝)가 건립한 경회당(慶會堂)이 있어 당시 문풍(文風)이 크게 진작되었다. 김장생은 관직을 버리고 연산으로 낙향한 뒤에, 경회당 인근에 양성당(養性堂)을 세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1634년(인조 12...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서 원풍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4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논산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때의 일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일대에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논밭의 곡식이 타들어가고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농민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민심도 흉흉해져 좀도둑이 극성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강복중이 나라를 걱정하는 심정을 노래한 가사. 강복중(姜復中, 1563~1639)의 자는 재기(載起), 호는 청계(淸溪)이다. 벼슬은 참봉(參奉)에 그쳤으며, 일생을 시골에 묻혀 논산 지역에서 지냈다. 강복중은 1639년(인조 17)에 칠십이 넘은 노구의 몸으로 상경하여 서울 궁궐을 두루 구경하고 고향인 논산으로 돌아와 「위군위친통곡가」를 지었는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파평윤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분재기. 「윤돈 화회문기」는 파평윤씨 노종파(魯宗派) 입향조인 윤돈(尹暾)과 관련되어 당시 양반가의 경제 사정을 자세하고도 정확히 전해 주는 유일한 문서이다. 「윤돈 화회문기」는 총 세 부가 만들어져 재산을 상속받은 각각의 집안에 보관되어 왔으나 두 부는 모두 소실되고 한씨 집안에서 보관하던 한 부만이 전해져 오다가 뒤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전리에서 지함이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지함이고개」는 1993년 논산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9-연무에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이 왜병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을 때였다. 왜병들은 곡창지대인 호남 지방으로 가기 위해 연무읍 마전리를 통과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자 이 일대 사람들은 힘을 모아 의병대를 조직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에서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조선 중기 신독재 김집 선생은 한양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한삼천리의 북쪽 양산리 고운사(孤雲寺)에 정희당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김집 선생이 어진 인품과 학식으로 학문을 베풀자 인근 고을의 유생들이 속속 모여들어 수학하였다. 어느 여름, 학동들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가사 문학의 종류와 특징. 가사(歌辭)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발생한 4음보 율격의 연속체로 된 문학 형식을 가리킨다. 논산의 가사 문학은 가사 장르가 일반적으로 발전해 온 양상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즉 가사 작가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양반의 사대부가사(士大夫歌辭) 작품과 부녀자의 내방가사(內房歌辭) 작품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가평이씨 묘역. 가평이씨 집안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 1394~1468)이 송리의 딸과 혼인하면서, 연산면 화악리에 세거하던 여산송씨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화악리와 가까운 청동리에 세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다림의 아들인 이형손(李亨孫, 1418~...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1㎞ 떨어진 갓점마을의 서북향 계곡의 말단에 위치한다. 약 661㎡(약 200평)의 면적이 황폐된 채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약간의 기와편이 산견되었다. 절터에서 확인된 기와편은 조선시대 것으로 사찰의 조영시기를 조선시대로 추정할 수 있으며, 소규모의 암자형 불사가 자리했던 것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포구. 강경포구는 금강 본류와 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으로 통하는 논산천, 강경천, 염천 등의 지류가 이어지고, 서해의 조류도 강경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해상 교통과 내륙 교통을 잇는 큰 포구로 번성하였다. 강경포구는 조선 말기 3대 시장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강경장을 배경으로 하여, 성어기인 3~6월의 4개월 동안은 하루 100여 척의 배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생이자 문인.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중화재(中和齋)·재기(載起)·청계망사(淸溪妄士)·청계조옹(淸溪釣翁). 증조할아버지는 강응정(姜應貞)이고, 할아버지는 광흥창봉사 강령(姜齡)이다. 강복중은 충청도 은진(현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서 태어나 12세에 가화(家禍)로 인하여 이산현 화곡리(지금 노성면 화곡리)로 이사하였다. 1602년(선조 35) 이사 온...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역임한 강찬(姜燦)이고, 외할아버지는 김은휘(金殷輝)이다. 딸이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이 되었다. 큰아버지인 강돈(姜焞)에게 입양되었다. 강석기는 김장생의 문하에서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예학(禮學)을 공부하였으며, 훗날 입신양명하여 김장생 문하의 구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절터.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가 1557년(명종 12)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작,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를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현재의 자리로 자리를 옮겨 절을 개창하였다. 원래 고운사가 있던 곳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만들어진 개화기 이전의 문학. 논산 고전문학의 대상 범위는 논산 지역에서 출생하거나 활동한 인물들의 문학과 타 지역 출신이면서도 논산 지역을 대상으로 묘사한 작가와 문학작품이다. 논산 지역 관련 고전문학에서 한문으로 쓴 것들은 주로 이 지역 인물들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문집은 문학, 역사, 철학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대부분 시와 같은 문학작품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던 조선시대 석상. 사계 김장생의 조모 양천허씨의 사후 묘역을 정해 준 승려가 장례 기일을 지키라는 당부를 하였는데, 이 당부를 잊고 장례를 진행하자 승려가 갑자기 사망하였다고 한다. 훗날 이 사실을 안 종중원(宗中員)들이 승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양천허씨의 묘역이 바라보이는 지점에 묘소를 향하여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고정리 원고정...
-
충청남도 논산과 관련한 조선시대 지도. 역사서로서 논산 지역을 언급한 최초의 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긴 하나 그 내용은 논산 자취의 편린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조차도 실제 편찬 연대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보다 늦고 그 내용도 소략하여, 논산 지역 관련 지명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부터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터. 조선시대 논산 지역은 니산현(노성현)·연산현·은진현의 세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들 세 지역은 조선시대에 폐합되거나 분리되는 변화를 겪었는데, 조선시대에 군현이 폐합되는 경우는 그 지역에서 역적 또는 강상(綱常)의 죄인이 발생하거나 변란과 재해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게 되어 독립 군현으로 기능하기가 곤란할 때였다. 이렇게 한번 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서 파평윤씨가 모여 사는 마을. 파평윤씨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문거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도 많은 학자·정치가를 배출하고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 가운데 노성 지역의 파평윤씨를 ‘노종 5방파’라고 칭한다. 17세기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인이 노·소론으로 나누어질 때 파평윤씨 집안을 중심으로 소론의 중심지가 되었던 지역이 노성현이었다....
-
조선시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선시대 지방 행정기관의 소재지로 형성되었던 취락. 구읍취락(舊邑聚落)은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주재하던 부·목·군·현 등 지방 행정기관의 소재지인 읍취락 중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소재하던 행정기관이 폐쇄 혹은 이전됨에 따라 행정적 기능을 상실한 취락을 의미한다. 현재 논산시의 구읍취락은 은진면(조선시대 은진현)의 연서리, 연산면(조선시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권석효의 선정비. 권석효 선정비는 현감으로서 선정을 베푼 권석효를 치하하기 위해 계묘년 6월에 건립되었다.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정도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면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권용규의 영세불망비. 현감 권용규의 공적을 후대에 알리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임술년 3월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논산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정도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금곡서원은 1682년(숙종 8) 기호사림의 종사였던 신독재 김집이 발의하였으며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 송준길 등이 추진하였다. 금곡서원 건립의 주도 인물들을 볼 때 서원의 건립은 기호사림, 또는 노론의 강력한 지지, 광산 김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건물의 상량문을 지은 인물은 윤증으로, 건립에...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 금석문(金石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자나 도형으로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다. 따라서 고대 등 과거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겸광의 묘소. 본관이 광산(光山)인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뒤 감찰, 정언 등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신숙주(申叔舟)의 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의 야인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군기시정에 오른 뒤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1465...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岡).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며, 어머니는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아들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김계휘는 1549년(명종 4)문과에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정자가 되고 바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묘역. 김계휘(金繼輝, 1526~1582)의 본관은 광산,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岡)이다. 현감 김호(金鎬)의 아들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이다. 1549년(명종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이조좌랑·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1566년(명종 21) 직제학으로 문과 중시에 율과로 급제하여 대사헌·예조판서·경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신도비. 김계휘(金繼輝)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좌의정 김국광의 현손이며, 현감 김호의 아들로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이다. 김계휘 신도비는 원래 고정리 마을 안에 있었으나 후대에 마을 입구로 옮겼다고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 정도 가면 남쪽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 정도 들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명.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며, 어머니는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桂輝)이다. 조카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김공휘는 율곡(栗谷) 이이(李珥)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월사, 김선원, 김청음 등과 교유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공휘 묘비.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전과 예학을 강구한 김공휘는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어느 요직에서건 치적이 현저하였다. 김공휘는 연산 휴정서원에 배향되었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무화(茂和).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 아버지는 좌참찬 김겸광(金謙光), 어머니는 사직 진계손(陳繼孫)의 딸로서 삼척진씨(三陟陳氏)이다. 숙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극개는 1496년(연산군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식년시 문과에 병과 19인으로 급제하였다. 병조정랑, 훈련원...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김기범은 현재의 논산시 관촉동에 살면서 부모님이 90세 이상 장수할 때까지 효를 다하였다. 부모님이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은 반드시 구해다 드렸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노쇠하여 중풍이 걸리고 눈까지 어두워져 앞을 분간하지도 못하게 되자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직접 떠서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갑자기 병석에 누운 뒤 잉어탕이 먹고 싶다고 하자 엄동설한인데도...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기범과 김재준 부자의 정려. 김기범의 호는 석계이다. 광산김씨로 아버지는 김재준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드시고 싶다는 음식은 반드시 구해 드리고, 어머님이 병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자 아침저녁으로 직접 음식을 떠 드리면서 봉양하였다. 김기범의 부친 김재준의 자는 사영, 호는 춘당이다. 김재준은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김재준의 처...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준영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김녕김씨의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으로, 경순왕의 8세손이라고 한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을 거쳐 동북면병마사를 지냈고, 광록대부평장사에 올랐다. 김녕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김녕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김녕은 김해의 옛 지명으로, 가락국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와 신라의 김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시대 면임 김두종의 불망비. 면임(面任)이란 조선시대 지방의 면에서 호적과 공공 사무를 담당했던 직책이다. 풍헌(風憲)·약정(約正)·존위(尊位)·권농(勸農)·집강(執綱)·도유사(都有司) 등으로도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국가의 향촌 지배 기구가 강화되어 향촌의 자치 영역인 면리가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됨으로써 면임이 부세를 비롯해 여러 행정...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고, 형은 황강 김계휘(金繼輝)이다. 김립휘는 함열현감 등 여러 군의 현감을 지내고 별제, 전부를 거쳐 장례원사의를 지냈다. 광해군 때 방응서의 옥화(獄禍)가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인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 동산마을에 은거하면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서화에 조예가 깊었으며, 경학과 예학에도 밝았다. 충청남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어머니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세손이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의 증손녀이며 예조참판 윤지(尹墀)의 딸로서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숙부는 김익희(金益熙), 동생은 『구운몽(九雲夢)』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증조할아버지는 예학(禮學)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충렬공(忠烈公) 김익겸(金益謙)이다.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형은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이며,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조카딸이다. 어머니 해평윤씨 집안은 고조부와 증조부가 영의정을...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광보(光甫), 아버지는 박정현(朴定鉉)이다. 김민수 처 순천박씨는 생후 15일에 모친이 죽자 논산시 부적면 부황리 외숙모 댁에서 외숙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14세에 부황리 다오개에 거주하는 김민수에게 시집온 지 2년 후 시어머니가 죽고 이어 남편이 중환으로 눕자 백방으로 간병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밤이면 대신 죽...
-
조선 후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舟).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계휘(金繼輝)이고, 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어머니는 부사 조대건(趙大乾)의 딸로서 창녕조씨(昌寧趙氏), 형은 김집(金集)이다. 아내는 둘인데 첫째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로서 1남 3녀를 낳았으며 둘째 부인은 연안서씨(...
-
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연산(連山).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군공(軍功)으로 원종공신에 녹권(錄券)되고 인조 때 병조참판에 증직된 서주(徐澍)이고, 어머니는 정부인에 증직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2남 5녀 중 6녀로 태어났다. 오빠는 석성현감으로 승정원좌승지에 증직된 서후적(徐後積)과 원종공신에 녹권되고 호조좌랑과 사복시정에 증직된 서효적(徐效積)이다. 언니는 판관 최정완(崔...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조선시대 월오면장 김배국의 시혜비. 김배국 시혜비의 ‘시혜’는 보폐시혜(補弊施惠)를 줄인 말로 보폐(補弊)는 폐단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김배국이 월오면장으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서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논산에서 공주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4.86㎞를 가면 상월면사무소가 나온다. 김배국 시혜비는...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통정대부 김영선이다. 김봉수는 어려서부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밑에서 예학을 배웠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도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좋은 음식이 생기면 배가 고파도 참고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어머니가 73세의 고령이 되어 병환으로 자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보(士輔), 호는 묵옹(黙翁)·신독재(愼獨齋).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계휘(金繼輝)이고, 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어머니는 첫째 부인 창녕조씨(昌寧趙氏) 사후 들어온 측실이다. 형은 김영(金榮), 김경(金檠), 김고(金杲), 김구(金榘), 김규(金槼), 이복형제는 김은(...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후손이다. 김상규는 어릴 적부터 효심이 깊고 어른을 모시는 예절이 남달라 주변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환 중일 때는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서 올렸으며, 한겨울에 눈이 쌓였을 때도 참외를 구해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병환 중일 때는 대소변의 맛을 보고 병세가 좋지 않음을 느끼고 대신...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효죽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공촌면장 김상식의 불망비. 공촌면은 조선시대 여산군(礪山郡)에 속한 면이다. 1914년 익산군 황화면(皇華面)에 통합되었고, 1963년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곡면과 통합되면서 육군훈련소의 연무대(鍊武臺) 이름을 따 연무읍이라 하였다. 공촌면장이었던 김상식이 공촌면 주민들에게 베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종윤(金宗胤)이며, 김장생(金長生)이 종손(從孫)이다. 김석은 음직(蔭職)으로 부참봉,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 군자감, 종부시주부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사헌부감찰 의영고령(義盈庫令)을 거쳐 예빈시판관, 충훈부도사, 도총부도사를 지내고 한성부서윤을 지냈다. 외직으로 통진현감, 의령현감, 안산군수, 고부군수 등을 역임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 김균(金鈞)이고, 어머니는 국세인(鞠世仁)의 딸로서 담양국씨(潭陽鞠氏)이다. 김성휘는 유복자로 태어나 집안이 궁핍하여 학문의 길에 나갈 수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치산(治産)에 힘써 재부를 축적, 당대의 거부가 되었다. 1592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성휘의 묘비. 김성휘는 유복자로 태어나 배움을 얻지 못했으나 산업에 힘을 기울여 인근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자 군량미를 헌납하여 국익을 도왔다. 벼슬은 형조참의에 이르렀고, 평생 일군 재산으로 구제 사업을 하면서도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대둔산...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섭(金燮)이다. 김수남은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서인으로서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은거하였다. 인조가 즉위한 후 162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에 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형조 분사랑(分司郞)으로 강화도에 들어갔다가 청군에 의해 성이 함락되...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수남의 정려. 김수남(金秀南, 1576~1636)은 광산김씨로, 자는 여일(汝一), 호는 만치당(萬痴堂)이며, 사계 김장생의 문인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은진현 충신조에 의하면, 김수남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호종한 이후 적군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이고, 아버지는 김임(金銋)이다. 김수문은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여진족이 함경도 종성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납치해 가자 1535년(중종 30) 영건만호(永建萬戶)로서 전투에 참가하여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구해 왔다. 1546년(명종 1) 동래부사가 되었으며 1549년 김해부사 재직시 구...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관 김수문의 신도비 귀부. 김수문(金秀文)은 명종 때의 무관으로 자는 성장(成章), 호는 양촌(陽村)이고, 본관은 고령으로 김임(金銋)의 아들이다.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영달만호(永達萬戶)가 되어 야인들과의 전투 후 종성(鍾城)에서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는 제주목사로 공을 세워...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이성현감(利城縣監) 김극조(金克祧)이다. 김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의 휘하에 들어갔다. 같은 해 여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막하에 있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李光岳)을 따라 남원에 갔다. 이때 아버지 김극조를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韓德修)...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김장생(金長生)의 5세손이다. 김우택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부친의 병환 시에 찬물에 목욕하며 쾌유를 빌었으며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였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3년간을 반찬없이 죽만 먹고 지냈으며 3년 동안 성묘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머리에 종기를 앓고 있을 때는 3주일 동안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시켰다. 하...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유휘의 묘표. 김유휘는 광산인으로 부사직을 지냈고, 손자인 김곤보(金坤寶)가 1620년에 병기 수송에 응모했던 일로 인하여 공조 참의가 추증되었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대둔산 운주 방면으로 1㎞ 정도 가다가 우회전한다. 양촌리 방면으로 3㎞ 정도 가다 보면 임화리 마을에 도착한다. 김유휘 묘표는 임화리 마을의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좌의정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김호(金鎬)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繼輝)이다. 큰아버지인 김석(金錫)에게 입양되었다. 김은휘는 정지운(鄭之雲)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차례 과거에 실패한 후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가 활인서별제, 사포서별제, 수운판관(水運判官), 통례원인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은휘의 묘갈. 김은휘(金殷輝, 1529~1611)의 자는 경회이고, 본관은 광산인으로 김계휘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안력이 뛰어나서 책을 볼 때 10행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 및 구봉 송익필과 친교하였다. 관직은 천안현감을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논산에서 국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연안서씨(延安徐氏)이며, 형은 김익희(金益熙)이다. 김익겸은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36년 후금(後金)의 황태극(皇太極)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친 일을 축하하기 위해 춘신사(春信使)로 파견된 나덕헌(羅德憲), 이확(李廓) 등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김은휘(金殷輝)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사용(司勇) 김양(金梁)이다. 김익요는 충의위(忠義衛)를 지냈다. 그러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고향인 충청도 연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지역)으로 물러나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예학과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다. 김익추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는데 두 스승으로부터 총민하여 대성할 것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처음 벼슬길에 올라 익릉참봉을 거쳐 선공감봉사를 지내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인 충청도 연산(...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창주(滄州).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서주(徐澍)의 딸로서 연안서씨(延安徐氏)이다. 동생은 김익겸(金益兼)이다. 김익희는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정자에 등용되었다. 그 해 검열을 거쳐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1635년 수찬과 사서...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조선 중기 명종 때 광산김씨 문중 사당에 원인 모를 화재가 났는데, 김인종 처 수원백씨는 조상의 신주를 꺼내 오기 위해 불길에 휩싸인 사당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였다. 그러자 김인종 처 수원백씨의 자부인 김두현 처 영성정씨가 사당으로 들어갔고, 이어 손부인 김세기 처 김해김씨가 들어갔으나 모두 나오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조선 중기 명종 때 김인종...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임의 신도비. 김임의 본관은 고령, 자는 평경(平卿)으로 김수문의 부친이다. 김임은 노성에 거주하면서 1513년(중종 8) 진사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는데, 당시 만석꾼으로서 인근 30리가 그의 소유지였다. 이에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선비로 살면서 객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풍류를 즐...
-
조선 중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과의교위 김덕린(金德麟)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로 감찰 이위의 딸이다. 김자빈은 어려서부터 무예를 연마하고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서와 병략에 통달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을 때 충청도관찰사 정세규의 추천으로 종사관이 되었다. 의병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숙부 김덕...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김장생은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예학을 배웠으며, 이이(李珥)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워 조선 중기 예학과 성리학의 거두가 되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을 역임하여 요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로 영향력이 매우 커서 인조 초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장생의 예학은 아들 김집에게 계승...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후손들이 행하는 김장생의 불천위제사. 김장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의 아들이며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으며 20세 무렵에는 이이(李珥)에게 사사했다.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을 제향한 사당. 조선 후기 호서사림을 대표하였던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본관이 광산, 호는 사계(沙溪)이며, 대사헌 김계휘의 아들이다. 송익필과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당대를 대표하는 대 유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우리나라 예학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늦은 나이에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장생의 신도비. 김장생 신도비는 성품이 곧고 강직하며 바른 것이 무엇이며 세상의 이치란 어떤 것인가를 알고는 학문에 힘쓴 김장생의 공과 인품을 기록하여 널리 후대에 알리기 위해 1634년(인조 12)에 건립되었다. 김장생 신도비는 김장생 묘소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순천(順天).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수언이다. 김장생 처 순천김씨는 사계 김장생의 부인 창녕조씨(昌寧曺氏) 사후에 계배(繼配)로 들어가 6형제를 낳아 잘 양육하고 집안일과 남편 수발을 잘 돌보았다. 남편 김장생의 장례를 마친 후 자결하였다. 묘소는 충청남도 계룡시 금암리에 자리하고 있다. 1906년에 효열이 조정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과 광산김씨 문중 사람들의 묘소. 고정리의 김장생 묘소 일원에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 김장생과 광산김씨의 중흥을 이룬 김장생의 7대조모인 양천허씨, 그리고 김철산과 김철산의 처인 안동김씨, 김겸광, 김공휘, 김선생 등의 묘소가 모여 있다. 이곳에는 또한 김겸광 신도비와 김장생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고, 양천허씨의 재실인 논산...
-
조선시대 논산의 열녀. 김장택(金章澤)의 처 권씨는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안동권씨 권순장(權順長)[1607-1637]의 현손녀로 논산의 대표적인 세거 성씨인 광산김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시집와서 얼마 후에 남편 김장택이 죽었으나 굴하지 않고 시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고 돌보았다. 또한 유복자로 태어난 자식을 엄격하게 교육시켰으며 장성한 후에는 자신의 할 일이 모두 끝났다고 생...
-
조선시대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민원호이다. 남편 김장현과 사별한 후 양자로 김영표를 들였다. 민씨는 김장현에게 출가한 뒤 17세 되던 해 19세의 남편과 사별한 뒤 남편의 뒤를 따르려고 목을 매었으나 주위 사람들의 구출로 목숨을 건졌다. 양자 김영표를 들이고 시부모에게 효를 다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71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평생을 수절하며...
-
조선시대 논산의 열녀. 본관은 연안. 아버지는 이조인(李祖仁)이고, 남편은 광산김씨 김장현이다. 김장현의 처 이씨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남편에게 순종하였다. 남편이 객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고 시부모에게 좋은 술과 안주를 올리며 위안하였다. 시집올 때 입고 온 녹의홍상으로 갈아입고 남편의 뒤를 따라 순절하여 후대까지 칭송이 이어졌다....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영, 호는 춘당. 아버지는 김기범(金箕範)이다. 김재준은 어려서부터 유학의 예법을 익히고 장성하여 부모에게 효를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라에 눕게 되자 매일 대소변을 직접 처리하면서 병세를 알아보려고 대변 맛을 보며 약을 선택하여 달여서 드렸다. 교관을 지냈다. 묘소는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있다. 논산시 관촉동 관촉...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석서리에 있는 조선 중기 효자 김정망의 정려. 김정망의 자는 숙우(叔遇)이고, 호는 삼육재(三六齋)이다. 오강(梧岡) 김성휘(金成輝)의 손자로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효우근신(孝友謹身)한 것을 계기로 추천이 되어 관직이 현감에 이르렀는데, 효우(孝友) 두 자를 손바닥에 써넣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부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정성껏 병간호를 하면서...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종지(宗之). 할아버지는 좌의정 광산부원군 김국광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김극뉴이다. 부인은 영산신씨로 풍저창수 신우정의 딸이다. 4남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군수 김석이며, 둘째 아들은 별제 김종이고, 셋째 아들은 증참판인 김호이고, 넷째 아들은 호군 김단이다. 김종윤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고 성품이 후덕하고 행동에 절도가 있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종윤의 묘표. 연산역의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고정리 마을에 이른다. 김종윤 묘표는 고정리 거정 터에 위치하고 있다. 오랜 세월의 풍우로 자획이 마모되어 묘 옆에 새로이 묘비를 세워놓았다. 1538년(중종 33)에 세워진...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김녕김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태진(泰晋), 호는 동악(東岳). 신라 경순왕의 8세손 김시흥의 후손이다. 김준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의 어가를 호위하였다. 어가를 호위하는 데 많은 걱정과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왕을 보필하였다. 선조가 환궁 후에 김준영의 공을 인정하여 충근정량호성공신 3등에 책훈하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7세손이자 입부(立夫) 김성휘(金成輝)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효자 김정망(金廷望),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김중창은 일찍이 성균생원이 되었으나 특별히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아 초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하며 집안일을 보살피고 처리하는데 전념하였다. 효자인 아버지의 효행을 옆에서 직접...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이초(而初), 호는 서윤(庶尹).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에 3등에 책록된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김진일은 어릴 적부터 행실이 올바르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영릉참봉을 지냈으며, 헌릉령과 사재감 첨정을 거쳐 통정대부 한성부서윤을 역임하였다. 1721년(숙종 46)에 일어난 신임사화로 인해 조정이나 관직에 회의를 느끼고...
-
조선 중기 논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첨지중추부사 조대건(曺大乾)의 딸이다. 김집은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사장학(詞章學)을 좋아하지 않아 경전연구와 수양에 전심을 다하였으며,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의 김집 종손 집에서 행하는 김집의 불천위제사. 김집(金集, 1574~1656)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며 송시열과 송준길의 스승이다. 영특하고 학예에 뛰어나 l8세 때 진사가 되었으며 광해군 때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집의 신도비. 김집 신도비는 사계 김장생의 아들로 태어난 김집이 아버지 못지않게 학자로서 뛰어나고 청렴한 삶을 산 것을 후손에게 길이 알리고 본받게 하기 위해 1659년(효종 10)에 양산리 고운사지에 세웠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3.8㎞ 가다 보면 계백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4....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1661년(현종 2) 김집의 문묘 배향을 명하는 교서. 김집(金集, 1574~1656)의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세거지는 충청남도 연산(連山)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송상현(宋象賢)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나 학통은 아버지 김장생(金長生)의 가학을 이어받았다. 18세...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집의 묘소. 김집의 본관은 광산으로,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다.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고,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여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은거하게 된다. 인조반정 뒤 다시 등용되어 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학자 김집을 제향하는 사당. 김집(金集, 1574~1656)은 김장생의 아들로서 본관은 광산, 호는 신독재(愼獨齋)로, 호서 출신의 저명한 유학자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참봉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통치 행위를 보고 은퇴하였으며 인조 반정 후 부여 현감으로 등용되어 집의, 공조 참의를 지냈다. 효종 즉위 후, 예조 참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지언(止彦), 호는 화양당(華陽堂). 김호는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식이나 생각이 아주 깊고 행동이나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진사를 거쳐 정선군수를 지냈으며 원주진관병마첨절제사를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호소사로 종사하던 스승 김장생을 따라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숙경(叔京). 아버지는 진산군수 김종윤이며,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로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이다. 아들은 김계휘(金繼輝)이며, 손자는 사계 김장생이다. 김호는 음보로 선공감주부와 지례현감을 역임하였다. 평소 학문에 힘썼으며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며 교유하였다. 특히 역학(易學)과 성리학(性理學)...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김적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많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며, 1630년(인조 8)은 장악원직장이 되었다. 1631년(인조 9) 감찰을 지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경재(敬齋). 아버지는 남명한(南溟瀚)이다. 남두건은 조선 중기 학자로 효자였던 아버지 남명한과 함께 초야에서 학문을 함께하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의 강론을 즐기고 낙으로 삼으며 일생을 보냈다. 또한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기로 고을에 명성이 자자하였고 그것을 행함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모든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령. 자는 운약(雲若), 호는 취은(醉隱). 아버지는 부위(副尉) 남응곤(南應坤)이며, 아들은 남두건(南斗建)이다. 남명한은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 군량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아 철저하게 완수하였다. 조정에서 남명한의 공로를...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남양전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고문서. 남양전씨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문서는 모두 27건으로 교지(敎旨) 23건, 유서 1건, 호적단자 3건 등이다. 1416년 전흥(田興)에게 내린 왕지(王旨)는 36.2×31.2㎝, 1417년 내린 왕지는 30.0×28.0㎝, 1434년에 내린 교지는 39.2×48.0㎝이다. 1454년 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남일우의 거사비.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 남일우가 연산 지역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서 건립되었다. 거사비는 감사(監司)나 수령이 갈린 뒤에 그 선정을 사모하여 고을 주민들이 세운 비석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가다 보면 연산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상월 방면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노성면 읍내리는 조선시대 노성현의 읍취락(邑聚落)이었기 때문에 읍내(邑內)란 명칭이 유래했다. 노성현의 구읍취락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예전 기능을 이미 상실하였다. 노성은 본래 백제 때에는 열야산현이었는데, 당나라가 노산주(魯山州)로 고쳤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니산으로 고치고 웅주(현 공주)에 귀속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노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노성산성 봉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조선시대 읍지들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에 의하면 “봉화가 관아의 북쪽 산성에 한 군데 있다. 서쪽으로 은진 노산(蘆山)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공주 효포산(曉浦山)에 신호를 보낸다.”라고 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노티리 사지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장마루에서 호암리 방향으로 약 1.8㎞ 거리에 위치한 노성면 노티리 가재마을(호암산의 서향사면)의 동쪽 끝(호암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산 중턱을 정지하고 조성한 것으로 보이나 현재 사역으로 추정되는 면적은 약 990㎡(약 300평)이며 이들은 모두 밭으로 개간되었지만 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 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또한 돈암서원은 1659년(효종 10)에 이어 1660년 (현종 1), 두 번 사액을 받은 특이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서 호서 지역 전체 뿐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강당. 돈암서원의 강당 건물로 1634년 서원 창건시 건축하였고 강학 공간으로 사용 및 호서 사림의 활동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으나,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은 강학 공간에서 앞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져 배치되어 있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시대 돌다리. 논산 석성 수탕교는 논산과 부여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성동뜰의 넓은 평야 지역을 흐르는 석성천을 가로질러 놓였던 석교이다. 『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 편찬된 지리지에는 수탕석교·수탕천교·수탕교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지 주민들은 주창다리로 부르고 있다. 수탕교는 일제강점기까지도 석성뜰에 농사일을 하러 가는 큰 길 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환 선생 고택 내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1543~1593)의 아들로 동부승지와 이조참의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아들은 윤선거이고, 손자는 숙종 대 소론의 거두였던 명재 윤증이다. 윤환 선생 고택은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청주 양씨 선조를 제향하는 사당. 논산 충헌사는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를 주향으로 하고,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 등을 제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양기의 본관은 청주, 호는 암곡, 시호는 충헌이다. 양치는 양기의 증손으로 호는 퇴은(退隱)이다. 세종 때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개척하고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황...
-
충청남도 논산의 옛 두마면 향한리에서 농부들이 모를 심으면서 부르던 민요. 국어사전에서 농부가는 농부들이 부르는 노래라 하여 농요의 의미로 쓰고 있다. 조선시대 가사작품인 「농부가」는 권농가(勸農歌)적 성격을 갖기도 한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불리는 농부가는 전라북도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불리는 「모심는 소리」를 창자가 유입하여 부르는 삽입 가요이다. 논산 지방의 보편적 「모심는...
-
서필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이며 만죽헌 서익의 증손이다. 1614년 서운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는 부친과 조부가 ‘칠서의 옥’으로 인해 유배 중이었던 탓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칠서의 옥’은 7명의 서얼 출신 인물들이 영창대군을 보위에 올리려 역모하였다는 사건으로 당시 부여서씨 서양갑이 연루되어 그의 집안이었던 부여서씨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도처중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효행 사적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645년 명정이 내려져 정려가 논산시 상월면 한천2리에 세워졌다. 정려 안 명정 현판에는 ‘효자사인도처중지문 숭정을유팔월일 명정려(孝子士人都處中之門崇禎乙酉 八月日命旌閭)’라고 쓰여 있다. 1979년의 정려중수기가 명정 현판과 함께 걸려 있다. 1697년(숙종 23)에 예조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한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 효자 도처중의 정려. 도처중(都處中, 1642~?)은 본관이 팔거(八莒)로, 지극한 효행이 알려져 1645년(인조 23) 명정을 받았고, 1679년(숙종 5) 예조에서 편찬한 효행등제(孝行等第)의 상물질(賞物秩)에 올라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도처중의 효행 사적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효자 도처중 정려는 상월면 한천리 안골 입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원정비. 돈암서원 원정비는 돈암서원을 세우게 된 배경과 서원의 구조를 남기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의 학문과 성품을 칭송하는 글도 새겨 놓았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2.3㎞를 가면 도로 남쪽에 돈암서원 입구가 있다. 돈암서원 원정비는 서원 내의 강당 건물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당. 돈암서원 유경사는 호서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며, 1658년(효종 9)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추배하였고, 이어 1688년(숙종 14)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95년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각각 추배하고 있는 곳이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
주곡리는 마을 곳곳에 우물이 많아 물 걱정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한다. 마을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4개의 우물을 포함해 개인이 사용하는 것까지 총 12개가 있었다.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주곡리를 크게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구분하였을 때, 우물 수와 수질 면에서 두 동네가 다른 환경에 있었다. 윗동네의 경우 아랫동네보다 우물 수가 적고 수질이 좋지 않았다. 반대로 아랫동네는...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개인 혹은 여러 사람의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 문집이라는 말은 중국 양(梁)나라 완효서(阮孝緖)에 의해 『칠록(七錄)』이 만들어질 때 그 분류 항목 중의 하나인 문집록(文集錄)에서 나왔다. 이후 경(經)·사(史)·자(子)·집(集)의 4부분류법(四部分類法)이 일반화되면서 문집은 집부(集部)에 귀속되었다. 문집은 거기에 수록된 저자의 수에 따라 총집(總集)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민동호의 선정비.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가다 보면 노성면사무소가 보인다. 민동호 선정비는 노성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노성교회 아래 노성면...
-
박언침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밀양박씨 시조는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큰아들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이다. 경명왕은 여덟 아들을 모두 대군으로 봉하였고, 이들의 후손이 대군의 봉호를 받은 연고를 따라 각 박씨의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밀양박씨는 우리나라에서 김해김씨 다음으로 자손이 번성한 성씨로, 분파도 상당히 복잡하다. 시조 박언침 이후 자손들의 분파도 많은...
-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온의 자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밀양손씨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로 유명한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의 후손이다. 손이라는 성씨는 구례마가 받았다. 손순은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출신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왕에게까지 알려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고 문효라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인이었던 박동래의 불망비. 사인 박동래가 백성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기리고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95㎞ 직진하다 보면 황화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봉곡서원이 나온다. 박동래 불망비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서향하여 서 있다. 비석은 귀접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반남박씨 입향조 박동민의 묘소. 박동민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이며, 아버지는 박응천이다. 형제로 박동현과 좌참찬을 지낸 박동선이 있으며, 아들은 사헌부집의를 지낸 박휘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눌(李訥, 1552~1631)의 딸이다. 상월면 대우리 북쪽 산록에 박동민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 아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주. 익안대군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눌(李訥, 1552~1631)이며, 남편은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朴東民, 1566~1593)이다. 슬하에 3형제를 두었다.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는 노모께 효도를 하고 남편에 대한 내조에 최선을 다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이씨는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 정려. 열녀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1556~1593)는 익안대군의 7세손으로 이눌(李訥)의 딸이고,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의 처이다. 전주이씨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노성 대우리에 이르러 남편이 장질부사로 죽었고, 이씨는 남편을 따르기로 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상문의 정려. 박상문(朴尙文, 1615~1672)의 본관은 무안, 자는 욱재(郁哉)이다. 무안박씨로 할아버지는 박종원이고, 아버지는 박훈이며, 박증의 5대손이다. 박상문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났는데, 이와 관련하여 무겁교 일화가 전한다. 무겁교는 상월면에 있었던 다리인데,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단지(斷指)하여 피를...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양오(養吾). 아버지는 감역(監役) 박흔(朴訢)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박수진의 아버지 박흔은 1631년(인조 9) 호남에서 양천식(楊天植) 일당이 권대진(權大進)·조철(趙澈) 등과 함께 정한(鄭澣)을 추대하며 반역을 모의하다 사전에 발각된 소위 ‘정한추대사건(鄭澣推戴事件)’ 때 허위로 유포한 기록으로 최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언효(彦孝). 아버지는 박이현(朴而絢)이다. 박영서는 무과에 급제하여 옥구현감에 창성부사가 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남이흥(南以興), 정충신(鄭忠信) 등과 난을 토벌하다 포로로 잡혔는데, 이괄의 회유에 굴하지 않아 사살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사후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62...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 마두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박이현과 박영서 부자의 정려. 박이현·박영서 정려는 1689년(숙종 15) 명정을 받았다. 박이현의 본관은 순천이고, 자는 여수(汝粹)이며, 참봉 대영(大榮)의 아들이다.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의 막하에서 동지들을 모아 고향에서 진을 치고 호남의 고경명 등과 연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종원의 묘표. 박종원은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나 집안이 부유하여 재산을 백성을 구휼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는 비록 입신양명하지 않았으나 백성을 위해 자산을 썼기에 왕이 이를 귀히 여겨 관직을 내렸다. 이에 1672년(현종 13) 상월면 학당리에 묘표로 기록하여 남겨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에서 국도 23호선을 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 박증의 조선 전기 묘소. 박증(朴增)의 본관은 무안(務安)으로 자는 익지, 호는 암천(巖川)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하였으며, 사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뒤 묘소가 있는 당점산으로 서원을 이건하여 당호재라 하고 그곳에서 배향하고 있다. 1933년에 복원된부적면 충...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박증의 조선 중기 묘표. 박증의 자는 익지이고 호는 암천으로 본관은 무안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했으며, 사후에 형조참의를 제수받았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이후에 묘소가 있는 당점산의 당호재와 복원된 충곡서원에서 배향되고 있다. 박증 묘표는 박증이 죽은 지 150여 년이 지난 1670년(현종 11)에 건립되...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권보이고, 남편은 박흔이다. 안동권씨는 남편 박흔이 정한(鄭澣) 추대사건에 연루되어 모반의 일당이라는 무고를 받고 자결하자 27세의 젊은 나이에 아들을 데리고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로 내려와 모진 수모와 고난을 겪으며 평생을 수절하며 살았다. 아들 박수진을 도와 남편의 신원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여, 1675년(숙종 1)...
-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동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반남박씨는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반남호장을 지냈으며 이후 후손들이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반남(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을 본관으로 삼았다. 반남박씨는 고려 말 문정공 박상충으로부터 번영을 누리기 시작하여 박상충의 아들 평도공 박은(朴訔)은 조선조에 들어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노성현감 유몽열(柳夢說)이 세운 서당. 상월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91호선을 타고 좌회전하여 상월교, 학당교를 지나 2㎞ 정도 가다 보면 학당리 입구에 도착하는데, 보인당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1566년(명종 21) 학당리 도룡골에 건립된 보인당은 노성현감 유몽열(柳夢說)의 주도로 세워졌다. 율곡 이이가 지은 「보인당기」에는 노성현...
-
서정수에 의해 논산시 가야곡면과 처음 인연을 맺은 부여서씨 봉례공파가 이후에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육곡리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어 정확하게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후손들 사이에서는 처음 두월리, 야촌리 일대에 터를 잡고 살던 선조들이 가문이 번창하고 가세가 부흥하면서 바로 옆 마을이었던 육곡리에까지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봉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절터. 봉선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추모비가 하나 서 있다. 추모비의 비문을 요약해 보면, “1587년 전북 익산 금마의 서익이 서거하니 두 아들인 서용갑과 서호갑이 아버지의 선영을 모시고 시묘를 하였는데, 근처 암자의 승려 윤씨가 효성에 감탄하여 봉선암이라 이름 지었다. 윤씨는 임종할 때 산 밑에 있는 자기 소유의 논 3두락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선시대 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 봉수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어,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써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
-
시묘리라는 지명은 효자가 부모의 묘 앞에서 시묘살이를 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시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묘를 지킨다는 뜻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정성껏 장례를 치르고 효심이 깊은 자식은 부모님의 묘를 지키게 되는데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생업을 포기하고 묘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든 일일 뿐더러 시묘살이는 개인의 모든...
-
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아들 서융(徐隆, 부여융이라고도 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융은 660년(의자왕 22)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멸망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다. 당나라 고종은 서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후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서융의 원손으로...
-
충청남도 논산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유학자와 선비 세력에 대한 호칭.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사림(士林)이란 고려시대에 유학자 또는 유학을 닦은 관료로 유사(儒士), 유신(儒臣) 등으로 불렸으며, 말기에 신유학이 들어오면서 사대부·사인·사류(士類)·사족(士族)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사...
-
조선시대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던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 사직단은 원래 임금이 사직신(社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는 사직단이 모두 설치 되어있었는데, 논산 지역에서는 은진현ㆍ연산현ㆍ노성(니산)현에 사직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매년 수령이 임금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주곡리 마을에서 양산계곡을 찾아 깊숙이 들어가면, 널찍한 바위 위에 선명한 글씨가 새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위 위의 글씨를 자세히 살펴보면 ‘삼우대 대공수자류(三友臺, 臺空水自流)’라고 쓰여 있는데, 예전에는 바위 한가운데에 맑은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마을 속 깊은 계곡 바위 글씨에는 벌써 천 년 전의 전설이 함께 내려져 오고 있다. 고려 초에 일어난 일이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향일당(嚮日堂)·범허재(泛虛齋). 할아버지는 우후(虞侯) 상효충(尙孝忠), 아버지는 찰방(察訪) 상보(尙甫), 어머니는 박사(博士) 김휘(金徽)의 딸로서 연안김씨(延安金氏)이다. 상진은 일찍이 부모를 여위고 매부인 하산군(夏山君) 성몽정(成夢井)의 집에서 자랐다. 15세가 되어도 공부에 뜻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여(夫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만죽헌(萬竹軒). 아버지는 서진남(徐震男)이고, 어머니는 직제학 이약해(李若海)의 딸로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서익은 1554년(명종 9) 13세 때에 향시에 장원하고 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병조좌랑, 이조좌랑, 교리, 사인을 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익의 묘갈. 1672년(현종 13) 서익의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갈로 서익의 행적이나 업적, 관직 등 서익 개인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후손들에 대해 자세하게 적고 있다. 육곡리에 위치한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500m 정도 가서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지방도 643호선을 따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서익의 묘소. 서익의 본관은 부여(扶餘)로, 1554년(명종 9) 13세 때에 향시에 장원하고, 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과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서천군수, 안동부사, 의주목사 등을 지냈다. 문장과 도덕, 기절(氣節)이 뛰어나 이이(李珥)·정철(鄭澈)로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필원의 인정비. 서필원 인정비는 서필원이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후 다시 대사성이 되어 전라도를 떠나자 지역 백성들이 건립한 것이다. 서필원의 공적을 살펴보면, 1659년(효종 10)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봉록을 내어 백성을 구휼하고, 소 전염병이 돌아 경작이 어려울 때에는 다른 도로부터 소를 얻어 나누어 주었다고 한...
-
도순을 시조로 하고 도사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성주도씨의 시조는 도순(都順)으로 고려 원종 때 전리상서를 역임했다. 도순은 정몽주 등과 함께 고려의 신하로 몰려 조선 건국 이후 수난을 당하였다. 도순 이후 성주도씨는 한동안 출사를 꺼렸으나,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15명의 문·무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성주도씨 8세손 도사면(都思勉)이 고성이씨 입향조인 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문림의 묘표.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연산 화악리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송서(宋瑞)의 아들인 송윤번(宋允蕃)이 진잠(鎭岑)에 살다가 그 아들 송전(宋琠)이 화악리로 이거해 살기 시작했다. 이미 송윤번의 셋째 딸이 고성 사람과 결혼하여 고양리에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고 송전(宋琠)의 딸은 기계인(杞溪人) 유효...
-
연산 사거리에서 벌곡으로 가는 길 옆인 연산3리에는 노송 한 그루가 우산살처럼 가지를 펼치고 있고 그 아래에 소나무 이름을 딴 ‘송불암’이라는 석불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연산리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송불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초에 광산김씨 가문이 연산 땅에 살고 있었다. 그는 글 공부에 매진하여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고, 벼슬길에 오르면서 개경에 있는 좋은...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
충청남도 논산시 휴정서원에 배향된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이다. 송익필은 할머니 감정(甘丁)이 안돈후(安敦厚)의 천첩 소생으로 신분이 미천하였으나 아버지 송사련이 안처겸(安處謙)의 역모를 조작 고발하여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 올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상하고 문장이 뛰어나 아우 송한필(宋翰弼)과 함께 일찍부터...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었고, 1630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마(洗馬)에 제수된 이후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내시교관(內侍敎官)·동몽교관(童蒙敎官)·대군사부·형조좌랑·사헌부지평·한성부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관직에 나아가지...
-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영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순천박씨는 우리나라 박씨의 원시조인 박혁거세의 후손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박영규는 승주 사람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후백제 왕 견훤의 사위였으나 견훤의 뜻에 따라 왕건에 내응(內應)하여, 후백제의 신검을 토주(討誅)한 공으로 좌승(佐丞)이 되어 땅을 하사받았다. 순천박씨의 세계(世系)는 중시조 박...
-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의 부여현 성씨조에는 서씨가 부여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려시대 효자 서공(徐恭)의 일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여서씨는 고려시대에 부여현의 유력한 성씨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부여서씨가 육곡리에서는 언제부터 살았던 것일까. 후손들은 백제가 멸망할 때부터 육곡리 일대에 은거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이 보...
-
주곡리 장승제는 논산시 향토유적 제2호로 선정된 유래 깊은 전통행사이다. 그러나 장승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오랫동안 마을에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하나는 조선 중종 연간에 청주양씨 첨정공 양춘건(楊春健)이 인근 신도내에서 숯골로 이사한 후, 동구 밖에 장승을 만들어 놓고 나라의 안정과 마을수호를 위해 제를 지내...
-
한국인 중에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홍길동전의 모델이 되었던 서양갑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양갑의 일생은 소설 속 홍길동과 너무도 흡사하며 허균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란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서양갑은 허균, 이사호, 그리고 김장생의 서제였던 김경손 등과 친분을 쌓으며 지냈으므로 허균이 소설을 집필하며 서양갑의 행적을 많이 반영하였을...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군. 부도는 승려들이 열반한 후 다비가 행해지고 이 과정에서 생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은 불탑으로 부르고 있으며, 부도와는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다. 쌍계사 부도는 쌍계사에서 입적(入寂)한 고승들의 유골이나 사리(舍利)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충...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안홍록(安弘祿)이다. 1629년(인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이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추호도 어김이 없었으며 도학이 높았다. 당시 유림과 은진현감·연산현감이 안신길의 효행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에서는 효행을 표창하고 이조참판에 추증하였다. 논산시 지산동에 효행비가 있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안호의(安好義)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의리에 강했으며 학문을 즐겼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외직으로 아산현감·정산현감·석성현감을 역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고 지방 토호들을 엄히 다스려 기강을 바로잡았다. 또한 미신을 타파하는 한편 학교를 부흥시키는 치...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벌곡면사무소에서 두마 쪽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왼쪽에 조령1리 안터마을이 나온다. 안터 사지는 안터마을 뒷산 남쪽 계곡 중턱에 있다. 현재 절터는 황폐해지고 잡목만 우거져 있어 정확한 건물의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사찰을 지을 때 축조한 1m의 축대석과 자연 초석 형태의 석재가 남아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와 조각으로...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안치화(安致和)이다. 안홍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사(經史)에 밝았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전주판관·금산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힘썼다. 후에 조정에서 학행(學行)으로 천거하여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증이 낚시를 즐겼던 바위. 박증(朴增)[1461~1517]의 자는 익지(益之), 호는 암천(巖川)이며,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이(朴頤)[1402~1478]이고,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1436~?]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풍채가 빼어나며 대인장자 같다고 하여 기린(麒麟)이라 불렸다. 효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김장생의 서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생전에 관직에 나가는 것보다 연산이나 연산과 가까운 곳에 서재(書齋)를 짓고 문인들과 강학하며 지내는 것을 즐겼다. 양성당은 1602년(선조 35)에 정인홍(鄭仁弘)의 용사(用事)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연산에 내려와 아한정(雅閑亭)의 유지(遺址)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묘비.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에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이미 김철산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있었던 연산면으로 내려와 아들을 낳고 가문이 번창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양천허씨의 아들인 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원(南原).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다. 함창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申砬)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악전고투하면서 마지막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전사하였다. 묘는 노성면 가곡리에 있다. 당시 양함은 29세로 시신도 거두지 못한 채 장사지냈는데, 이때 나라에서 국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여산송씨 묘역. 여산송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연산면 화악리에 입향하여 연산 지역에서 토착 세력으로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3㎞ 가면 오른쪽으로 국도 1호선과 만난다. 국도 1호선을 따라 3㎞가량 가다가 계백로에서 화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충청남...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관한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에서는 「神農遺業」(신농유업)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인 농기가 있다. 이 농기의 크기는 가로 240cm, 세로 360cm 정도이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깃대는 그 높이가 무려 15~17m에 이르렀다고 하니, 당시 농번기마다 들썩였을 두레의 규모를 상상해 볼 만하다. 1906년에 만들어졌다는 바로 이 농기가 다름 아닌 주곡리 마을 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연산공원 귀부석은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 낮은 구릉 진입로 입구에 있는데, ‘연산공원’이라고 새긴 비신을 얹고 있다.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는 아닌 듯한데, 본래는 연산공원 일대 관아 터 유적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연산공원 귀부석은 네 발이 구부러져 있고 발톱무늬가 선명하며, 꼬리는 ㄴ자로 꺾여 있다. 전체적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연산면은 조선시대 연산현 지역으로서, 연산리는 연산현의 행정 업무를 집행하던 관아가 있던 구읍취락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읍취락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연산현은 은진, 니산, 석성과 함께 충청도 공주진(公州鎭)에 소속되어 있었고, 공주목사 관할 하의 연산현감이 있었다. 연산현은 진산군(현 충청남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대성전.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연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안이씨의 시조는 이무(李茂)로, 본래 당나라 출신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나당연합군 대총관 소정방(蘇定方)의 부장(副將)이 되어 신라에 들어와 백제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신라에 귀화하여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지고 연안을 식읍으로 받아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이무를 시조로 받들어 세계(世...
-
조선시대 논산 지역에 연고를 둔 절개 높은 여자를 일컫는 말. 열녀(烈女)는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열녀 중에는 또 ‘마당과부’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조혼(早婚)이 예사였던 시절에 혼례만 치르고 미처 시가(媤家)로 가기 전에 신랑이 죽는...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의 재실. 염수재는 유학자 김장생(1548~1631)을 모신 사당의 앞면에 있는 재실이다. 염수재의 건축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염수재 정문에 걸린 김재경 정려의 연대가 1864년(고종 1)인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염수재 뒤쪽으로 김장생 사당과 연결된 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산김씨...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국광과 김겸광 형제가 세운 사당. 김국광은 조선 세조와 성종 때 원종공신, 적개공신, 좌리공신 등에 책봉되었다. 건주위 정벌과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관여하였다. 영사암은 김국광과 김겸광 형제가 부모 사망 후 3년간 무덤을 지킨 자리에 세운 사당으로 1475년(성종 6)에 세워졌으며...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영은사지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의 바랑산 북곡(北谷) 내에 위치하는 영주사는 최근에 새로 조성된 사찰로, 영은사(靈隱寺)라는 구사지(舊寺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사역 내의 대웅전 전면 북측에 부도 1기가 남아 있는데, 이 부도는 영은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은사지 부도는 석종형(石鐘形)으로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예의 본질과 의의 및 시비를 탐구하는 유학의 한 분야. 오늘날 충청 지역은 충절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한 상징의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았던 기호학파의 존재가 드러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논산 지역에 뿌리내린 호서사림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전기 경기 지역의 사림에 종속되어...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군. 옥녀봉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이 옥녀봉 앞에서 휘돌아 흘러 넓은 강폭을 이루며, 잔잔한 물가에 물고기들이 노닐며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연 경치를 즐기며 곳곳에 암각을 새겨 놓은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암각 해조문은 선박들의 왕래를 돕기 위해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할아버지는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수안군수를 지낸 유대경(兪大敬)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양증(兪養曾)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병조참판 남이신(南以信)의 딸이며, 부인은 세종대왕 9세손 이산악(李山岳)의 딸 전주이씨(?~1667)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유...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휴계(休溪).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아버지는 유신민(柳信民)이다.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종백부이며, 유문원(柳文遠)은 종질이다. 유무는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연산에 칩거하였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잠시 찰방에 봉직한 후 곧 사직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문화(文化). 하정공파(夏亭公派)로 유제민(柳濟民)과 유정민(柳定民)이 숙부이며, 유무(柳懋)의 종질이다. 유문원은 원래 유무가 배향된 연산의 휴정서원(休亭書院)에 배향되어 있었다. 휴정서원은 처음에 유무만 배향하였으나 뒤이어 유문원을 배향하였고, 1735년에는 이항길(李恒吉)을, 1751년에는 김정망(金廷望)과 권수를 배향하였다. 휴정서원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연의 묘소 앞에 세워진 묘표. 유연(柳淵)은 통정대부를 지내고 노성면 병사리로 낙향하여 살았다. 아들이 있었지만 후사가 없었다. 두 딸을 두었는데 한 명은 청주한씨에게, 다른 한 명은 파평윤씨에게 출가하여 재산을 두 딸에게 분재하였다. 병사리에는 파평윤씨들이 오래전부터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연의 묘와 큰사위인 한여헌 묘,...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과수원으로 개간된 곳에 기와 가마 3기가 있었음이 확인되었으나 지표면 조사에서는 가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논으로 개간된 가마터 전방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기와 조각이 수습되었다. 기와 조각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주로 선조문과 청해파문 무늬가 새겨진 회청색 경질 조각...
-
부여서씨 집안의 대표적 인물이자 육곡리 봉례공파 후손들의 자랑인 서익 선생은 논산에 이거해서 뿌리를 내리고 대표적인 큰 가문으로 성장하는데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서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 또는 만죽헌(萬竹軒)이다. 1542년 태어나 1569년 처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던 중 1585년 의주 목사 재직 당시 정여립 등...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팔송(八松) 윤황(尹煌)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예절을 익히고 실천하여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 장성하여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비록 집안이 가난하여도 부모를 효성으로 모심이 남달라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자 묘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살았다. 묘소는 논산시 광석면 사월리에 있다.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효자 정려(...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 호는 석호(石湖).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세자시강원설서·예조좌랑·병조좌랑을 거쳐 제천현감·춘추관수찬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길보(吉甫), 호 미촌(美村)·노서(魯西)·산천재(山泉齋).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가 형이며, 윤증(尹拯)이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형 윤문거와 함께 급제하였다. 1636년 청나라 사신이 입국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을 모아, 사신의 목을...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본관은 공주(公州). 아버지는 이장백(李長白)이며, 남편은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로서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윤선거 처 공주이씨는 윤선거에게 시집을 와서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신을 하였다. 청군의 공격으로 강화도가 함락되고 포로로 잡힐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자결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숙(明叔), 호는 설봉(雪峰). 할아버지는 윤돈(尹暾),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훗날 설봉공파를 이루었다. 1590년(선조 2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3년 아버지 윤창세가 죽자 시묘를 살았다. 1600년(선조 33)에 능참봉(陵參奉)을 제수 받았으며, 160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고 이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로 당대의 명유인 성혼(成渾)의 딸이다.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었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아버지 윤황이 척화 죄로 귀양 가고,...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순거의 묘역.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煌)이나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윤순거는 파평윤씨의 정신적 전통과 인물 양성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파평윤씨 종학당을 건립하고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병사 종중과 규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봉곡서원에 있는 조선시대 선비 윤용병의 청렴비. 윤용병은 청렴한 선비로, 도박과 내기를 싫어하고 청렴하게 살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은진현 유림들이 연무읍 고내리 봉곡서원 바깥마당에 다른 비들과 함께 나란히 청렴비를 세웠다. 비의 형식은 귀접이 단갈로, 비의 규모는 높이 100㎝, 폭 40㎝, 두께 16㎝이다. 비의 앞면에 ‘사인윤용병견도청렴비(士人...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 아버지는 시강원필선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 윤주(尹拄)·윤유(尹揄)·윤부(尹拊)와 손자 윤시교(尹時敎)는 학행이 높기로 이름이 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찬(燦), 자는 정숙, 호는 후촌(後村).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형은 윤황(尹煌)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이후 승문원저작이 되었다. 1613년 유생 이위경(李偉卿)이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폐모소를 올렸을 때 한림 엄성(嚴惺)과 함...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한송(寒松). 증조할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할아버지는 팔송(八松) 윤황(尹煌)이다. 아버지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이고,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구완(九畹) 이춘원(李春元)의 딸이다.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와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조카이다. 부인은 남원윤씨(南原尹氏)로 충...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증 종가에서 행해지는 기제사. 윤증(尹拯, 1629~171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할아버지는 팔송 윤황(尹煌)이며 아버지 미촌 윤선거(尹宣擧)는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일찍이 송시열(宋時烈)·윤휴(尹鑴)·박세채(朴世采) 등 당대의 명유들과 함께 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경(子敬), 호는 덕포(德浦). 아버지는 장령 윤순거(尹舜擧)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관찰사 함춘원(咸春元)의 딸이다. 1652년(효종 3)에 생원시에 합격한 뒤 10년이 지나 빙고별제(氷庫別提)와 종부직장(宗簿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상의주부(尙衣主簿)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장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흥백(興伯). 고려 태사 윤신달(尹莘達)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대사성 윤탁(尹倬)이고, 아버지는 윤돈(尹暾)이다. 윤창세는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첫째는 윤수(尹燧)로 설봉공파를 이루었고, 둘째는 윤황(尹煌)으로 문정공파, 셋째는 윤전(尹烇)으로 충헌공파, 넷째는 윤흡으로 서윤공파, 다섯째는 윤희(尹熺)로 전부공파를 이루...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창세의 묘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는 노종 5방파의 아버지이며, 파평윤씨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윤창세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윤창세는 처음 논산으로 이거한 파평윤씨 윤돈의 아들로 노성면 병사리로 처음 터전을 옮긴 인물로서, 평소 효심이 깊어 자손과 제자들로부터 효렴공(孝廉公)이라 불렸으며, 나라에 대한 충절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파평윤씨 묘역과 묘비. 윤창세 선생 묘소 일원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가 진중에서 전사하여 훗날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윤창세의 묘소가 제일 먼저 자리 잡은 곳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와우형(臥牛形)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묘소가 마련된 이후 윤창세의 자손들은 노종 5방파로 발전하였다. 묘역에는 노종 5방파 직계 선조...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아버지는 윤창세이며, 장인은 성혼이다. 슬하에 8형제를 두었는데 후손들이 매우 번성하여 14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윤순거·윤문거·윤선거·윤증 등 호서 유림의 큰 줄기를 이룬 이들이 모두 이 가계에서 나왔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황의 묘비.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파평윤씨 노종 5방파 중의 한 사람인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의 묘비로, 가계와 행적, 그가 올렸던 상소문의 내용들이 새겨져 있다. 윤황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글씨를 잘 썼다. 인조 때 문신으로 활약하였는데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 등과 척화를 강력히 주장...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소와 묘비.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장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봉상시정(奉常寺正)·군기감정(軍器監正)을 거쳐 동부승지·이조참의·전주부윤을 지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과 1636...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역. 윤황은 노성면 병사리에 세거의 기반을 마련한 윤창세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노성의 파평윤씨 가문은 우국충절의 사족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윤창세의 다섯 아들은 노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노성 오방파로 불렸으며, 오방파 중에서도 윤황의 직계들이 가장 번성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파평윤씨 문정공파 종중에서 행하는 윤황의 불천위제사. 윤황(尹煌, 1572~163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01년 전적(典籍)에 이어 감찰·정언(正言)을 지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사간으로서 극력...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고택. 윤황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자는 덕요(德耀)이고, 호는 팔송(八松)으로,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주화(主和)를 반대해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 등 주화론자의 유배를 청하고, 항장(降將)은 참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화는 항복이라고 했다가 왕의...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구읍취락.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연정(蓮亭)의 서쪽에 위치하여 연서라 부르게 된 연서리는 은진면의 면소재지로 조선시대에는 현감이 집무하는 동헌이 있었던 구읍취락(舊邑聚落)이다. 지금은 은진면사무소·은진치안센터·은진보건소·농촌지도소·은진농업협동조합·은진초등학교·은진우체국 등 각종 기관이 들어서 있다. 은진면은 조선시대 은진현이었다. 13...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 은진초등학교에 있는 조선시대 귀부석. 은진초등학교 소재 귀부석은 은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두 그루의 고목 사이에 놓여 있다. 귀부석은 한 개의 석재에 조각되어 있는데, 아래 3분의 1 가량은 땅에 묻히는 부분으로 자연 석재 그대로 남아 있다. 머리는 90도 옆으로 돌린 형태로 눈, 코, 입, 이빨이 조각되어 있다. 입에는 구슬을 물고 있고, 눈과 코...
-
조선 중기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던 파평윤씨 노종파 의창지. 윤순거가 이이(李珥)의 석담사창지법(石潭社倉之法)의 예에 따라 불의의 재난과 일가집의 궁핍에 대비하는 대비책으로 의창(義倉)을 창설하였다. 즉 의창제를 문중 운영에 도입한 것이다. 윤순거는 문중의 선산과 재실의 운영, 묘사를 위하여 마련된 재정 조치로 의전을 마련하였다. 처음 의전(義田)은 윤순거가 5방파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와 열녀. 이공겸과 처 여흥민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현재의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살면서 시아버지를 지극히 모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논산까지 이르게 되자 이공겸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피난길에 올랐는데 공주를 향하여 가다가 연산면 백석리에서 왜적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의 아버지는 아들 내외를 살리려고 빨리 피신하기를 재촉하였으나 이...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세조의 후손인 덕원군의 후손이다.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이광근은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하고자 머슴살이를 하였으며 좋은 음식이 생기면 자기가 먹지 않고 부모님께 먼저 갖다 드렸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병이 더욱 심해졌다. 병이 위중하자 대변의 맛을 보며 병...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담.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이기팔은 형제 5명과 우애가 남다르게 깊었으며 평생 부모님에게 효도하다가 부친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혼신의 정성을 다하여 간병했으며 돌아가자 비통함이 극에 달해 실신할 정도였다. 장례 후에도 3년간 성묘를 정성껏 하여 인근에 효성이 자자하였다. 이기팔이 죽은 뒤 유림에서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기적...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여. 효령대군 후손으로 형 이기팔과 함께 효행을 행하였다. 이기호는 유학의 예법을 몸소 실천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고 서로 도와가며 살았으며 부모님을 모시고 정성껏 봉양하였다. 부친이 병들자 온 힘을 다하여 간병하였다. 그러나 별로 효험이 없자 손가락을 베어서 수혈을 해드려 수일을 연명하게 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한 겨...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은진현감 이도선의 불망비. 이도선이 은진현감의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은진현 주민들이 이도선의 선정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이도선 불망비는 연서리의 은진면사무소 마당에 세워져 있다. 이도선 불망비는 원래 은진면 교촌리 비석거리에 있던 것을 2004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40㎝, 폭...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은진현감 이민제의 불망비. 이민제가 은진현감으로서 지역민에게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은진현 주민들이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망비이다. 이민제 불망비는 원래 교촌리 비석거리에 있던 것으로, 2004년 은진면사무소 마당으로 이건, 보존하고 있다. 비의 석질은 화강암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110㎝, 폭 50㎝이다. 비의 앞면에 ‘현...
-
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공신.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자선(子善), 호는 백봉(白峯). 19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분개한 이민진은 의병을 조직하였는데 그 수가 3,000여 명이나 되었다. 의병을 이끌고 당시 연산현감이었던 김홍익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다. 출전 당시 이민진은 검은 행전과...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이선익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셔 왔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구해다가 손수 달여 드리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추운 겨울에는 물고기를 잡아다 봉양...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선익의 정려. 이선익(李善益)의 자는 우현(友賢),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가평이다. 어린 시절부터 효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겨울철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10여 년 동안 손수 탕약을 끓여 올렸으며, 병이 위독해지자 양손의 손가락을 잘라 그...
-
충청남도 논산시 행림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구(光九), 호는 도애(桃崖).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이며, 외조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해군 즉위 뒤 정치의 문란함에 회의를 느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은진현감 이소의 선정비. 이소는 전주 사람으로 주계군과 이소재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우계 성혼과 교의을 맺었다. 선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옹원주부에 이르고, 광해군 때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인조반정 후에 이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은진현감으로 내려와 선정을 베풀어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고을 인심이 순화되었다고 전...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이언섭은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님을 봉양하는 데 남달랐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할 때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고 양친이 병들어 요구하는 것을 백방으로 구해 드리니 병이 낫기도 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실천하며 불우한 이웃을 보면 자기가 곤궁하여도 도와주니, 향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경의 비석. 이장경 묘갈은 가평이씨 후손들이 예산현감·안음현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던 이장경의 행적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칭송하기 위해 1537년(중종 32)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00m를 가면 연산중학교가 나온다. 연산중학교의 전면에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데 여기에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생의 비석. 이장생(李長生)은 1467년(세조 13)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0년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에 제수되었다가, 선전관으로 발탁되고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 연경에 다녀오고, 병조판서를 거쳐 평안도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동생은 이장경(...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장생의 묘소. 이장생은 가평인으로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1467년에 태어나 1522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좋아하여 1490년(성종 21) 갑과에 급제하였고 용양을 거쳐 선전관을 지냈으며,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으로 있을 때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오고 평안도절도사를 지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철근의 묘표. 이철근은 1449년 가평군 이형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경기수운관·포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통훈대부의 관직에까지 이르렀다. 1491년 충주판관으로 북정에 참여하였으며 진산군수·봉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이장생과 이장경이다. 이철근 묘표는 1508년(중종 3) 후손들에게 이철근의 행적을 칭송...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감을 지낸 이초로의 거사비. 이초로는 전라남도 함평 사람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50년(효종 1) 2월 연산현감으로 취임하여 동년 8월에 사직하였다. 이초로가 연산현감을 사직한 뒤 연산 주민들이 그가 재임 당시 행했던 치적을 기리고자 거사비를 세웠다. 논산시에서 계룡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82㎞...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구(子久), 호는 과암(果菴). 이항길은 김장생의 이웃에 살면서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송시열과 송준길, 성혼 등이 스승을 찾아 공부하러 올 때면 먼저 이항길을 찾아 선생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이항길은 80세의 노친을 효성을 다해 모셨으며, 이러한 이항길의 학행과 행동 범절을 김장생이...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종친 이향령의 묘소. 익성군 이향령은 조선 중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손자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뒤따라 호위하여 1597년(선조 30) 정의대부익성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 진릉군을 추대하였다는 이이첨(李爾瞻)의 무고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형손의 비석. 신도비(神道碑)는 조선시대 임금이나 2품 이상의 관직에 있던 사람의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묘갈(墓碣)은 신도비와 비슷하지만, 3품 이하 관리의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둥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제와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이형손은 1418년...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이홍묵의 처 전씨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편 이홍묵은 의병에 자원하게 되자 의복에 붉은 색실로 꾀매어 행장을 차려 주었다. 얼마 후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참패했다는 비보를 듣고 부인은 집에서 기르던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다가 의복에 붉은 실로 꿰맨 흔적을 보고 남편임을 확인하고는 시신을 수습하여 마을...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1리 장골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이홍묵의 처 전씨의 정려. 전씨는 이홍묵의 부인이다. 병자호란 때 남편이 종군하여 광주 험천에서 전사하자 몸소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아 마을까지 운반해 장례를 치렀다. 남편의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팔 때 인부들에게 남편의 성격이 광활하였으니 묘를 넓게 파달라고 하고, 하관은 혼자 하겠다며 사람들을 물리친 후 비수로...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익성군 이향령의 신도비와 무인석. 이항령은 선조의 형인 하원군(河原君) 이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선조의 행재소가 있는 의주까지 여러 달 만에 호행해 선조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596년(선조 29) 익성군으로 봉해지고 승헌으로 승진하였다. 선조의 세자인 순화군이 후사가 없자 익성군의 3자 진릉군을 후사로 삼았다. 1612...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시대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익안대군 영당은 원래 경기도 여주에 있었는데, 1958년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종가가 논산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영정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는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아우이며 태종의 형이다. 1392년(태조 1)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에 봉해지고 1398년 개국공...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고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구절을 따라 임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임리정은 정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양반 가옥. 임수택 가옥은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부적면, 연산면의 경계가 만나는 연산면 오산리 마을회관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다.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노성의 파평윤씨 집안에서 1703년에 윤원거의 손자인 윤임교의 처에 의해 건립된 가옥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정은 지붕 곳곳에 있는 막새기와에 새겨진 ‘숭정기원...
-
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개된 전투.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전쟁을 따로 정유재란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고 한다. 당시 충청남도 논산 지역도 특히 제2차 침략전쟁을 계기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격전지가...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장사정 처 말종에 대해『여지도서(輿地圖書)』니산현(尼山縣) 인물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말종은 사노비로 장사정에게 시집간 지 석 달도 안 되어 오랑캐의 난리를 당하였다. 이에 장사정이 본읍의 현감 김홍익을 배종하고 광주 전장으로 나갔다. 이때 장사정은 전장에서 김홍익이 전사하자 그의 시체를 지키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결국 말종은 전사...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구고운사 경내에 있던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서재. 황강(黃岡) 김계휘(金繼輝, 1526~1582)는 1557년(명종 12)에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작,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구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당중입의』, 『정회당 유장』에 의하면 정회당은 초입시에 합격하고 문리가 통한 유생...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효성의 선정비. 은진향교에 있던 선생안이 유실되어 은진현감을 지낸 정효성의 재임 기간을 알 수 없으나 주민들이 주선하여 은진현감을 지낸 정효성의 청렴 후덕한 선정을 기리기 위해 정효성 선정비를 건립하였다. 1975년 은진면 교촌리 석림사 승강장 근처에 정효성 선정비를 포함하여 은진면 일대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 비석거리를 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주요 경물에 이름을 붙여 읊은 시가. 제영은 제목을 붙여 시를 읊거나 또는 그런 시가를 말한다. 논산 지역의 제영은 자연경치나 누정·사찰·객사 등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다. 논산 지역 문인이나 학자들은 누각이나 정자, 혹은 대(臺)·당(堂)에 모여 학문을 강론하기도 하고 주변의 승경을 벗 삼아 멋스러운 운치를 즐기며 시를 지었다. 또 오랜 역사를 지닌 논산 지...
-
조선시대 논산 출신의 문신. 어려서부터 마음씨가 착하여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온순한 성품과 웃어른을 대하는 예의범절이 남달라 주위에서 칭송이 대단하였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숭릉태봉(崇陵泰封) 벼슬에 올랐으나 홀로 계신 모친을 모시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연산으로 내려왔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는데, 모친은 노쇠하여 병석에 눕게 되었...
-
조선시대 논산의 역사. 1. 조선 건국 고려의 멸망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신 도읍을 정하는 것이었고 논산 계룡산 부근의 신도내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더불어 그 유력한 후보지의 하나였다. 당시 논산의 계룡산 부근이 강력한 천도 지역으로 떠오른 이유는 권중화(權仲和)의 역할이 컸다. 권중화는 태조의 명으로 태실증고사로 왕실 안태의 장소를 물색...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선시대 양반의 자제나 부녀자들이 즐겨 놀았던 실내 놀이. 종경도는 ‘관직도표’로서, 말판에 정1품에서 종9품에 이르는 문무백관의 관직명을 차례로 적어 놓고 윤목(輪木)을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말을 놓아 하위직부터 차례로 승진하여 고위 관직에 먼저 오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종정도(從政圖), 승경도(陞卿圖)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양반의 자제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 윤씨 문중에서 운영해 오던 서당. 종학당의 전신은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거리에 있는 정수루이다. 정수루는 누각과 서재가 있어 선비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였다. 정수루 정면 중앙에는 정수루(淨水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좌우로 향원익청(香遠益淸), 오가백록(吾家白鹿)이란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호암산...
-
이방헌 씨가 전해주는 주곡리 장승의 유래는 고려 말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마을에 장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천하일색으로 널리 소문난 강충신의 부인을 호시탐탐 탐을 내었다. 그러던 중 멀리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된 장정승이 강충신의 부인을 가로채고자 마음먹고 강충신을 자신을 돕는 부사로 함께 가게 하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장정승은 결국 강충신의 목숨을 빼앗...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시에서 익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9.71㎝ 가면 강경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약 0.72㎞ 가다보면 황산리가 나온다. 죽림서원은 황산리에서 북쪽에 솟은 동산을 두고 금강 쪽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졌다. 1663년(현종 4)에 중건하였으며 그로부터 2...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죽림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묘정비.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진 사립 교육 기관이다. 본래 창건 때에는 지명을 따서 황산 서원(黃山書院)이라 하였다. 죽림서원 창건에 최초 발의하고 건의한 인물들은 김장생의 문인인 최명룡, 송흥주 등이었다. 이들이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황산사(黃山祠...
-
충청남도 논산시 봉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무신. 본관은 삼척(三陟). 호는 추당(湫塘). 아버지는 조선 개국공신 진충귀의 증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연산군 때 임천군수를 역임한 진암수(陳巖壽)이다. 진암수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진극효는 둘째이며, 삼형제 모두 학문에 뛰어났다. 선조 때 진사가 되어 학업에 전념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독실하여 시인 묵객들과 교우하였다. 제자...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진진 처 담양국씨는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극진히 섬겨 어려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16세에 진진(陳璡)에게 출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마을에 당도하자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 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대항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모두 피난을 떠나게 되자 남편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왜적이 점점 가까워 오자 남편에게 꼭 살아서 부모님과 어린...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진진 처 담양국씨의 정려. 담양국씨는 진진의 부인이다. 임진왜란 일어나자 왜적은 논산의 가야곡까지 몰려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 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왜적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총칼이 없는지라 모두 후퇴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씨도 남편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왜적이 점차 가까워 오자 국씨 부인은 남편에게 꼭 살아서 부모님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준길 손윗누이의 묘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선산에 있는 송처자의 묘표는 10세의 나이에 요절한 처녀의 것이기에 주목이 되는데, 묘표는 후에 송준길이 세운 것이다. 이 묘표의 비신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과 농대석을 갖춘 중요한 자료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누이의 죽...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여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초포교 중수비. 초포(草浦)는 광석면 항월리 풋개마을로 조선시대 서울로 올라가는 큰 길이 있던 곳이다. 초포에는 노성천(魯城川)에서 내려오는 큰 냇물이 흘러 석교인 초포교를 놓아 인마의 통행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러나 초포교는 매년 여름 큰 장마가 들 때마다 다리가 망가짐으로써 그 때마다 보수를 하였다. 1674년(숙종 즉위년) 초포...
-
충청남도 논산의 노성 지역 파평윤씨 가문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양반 가문이다. 노성은 이들 파평윤씨 노종 5방파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배출된 유서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으로, 특히 이곳에 집중되어 분포한 종학당과 병사, 선영과 영당, 서원과 정려, 종가 고택 등은 조선시대 호서 지역 양반들의 유교 문화를 빠짐없이 접할 수 있는 문화 자원이다. 특히 후학들이 정신문화와 유교적 사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인 충헌공 윤전의 재실. 윤전은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1613년(광해군 5) 유생 이위경이 폐모소를 올렸을 때, 상소를 저지시키려다 파면되었다. 이후 1615년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고, 1623년(인조 1) 경기도사로 복직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대둔산 서편 자락의 깊은 계곡 바위에 ‘탁영(濯纓)’이라 새겨져 있어 탁영 암각(巖刻)이라 한다. 바위에 ‘탁영(濯纓)’이란 글자가 자경은 14㎝ 정도로 암각되어 있다. 조선시대 어느 선비가 수락리 계곡에서 정취를 즐기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 시 ‘어느 때나 이 바위에 노닐며 갓 끈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병사에서 음력 3월에 파평윤씨 노종파가 윤돈 이하 4대를 모시는 제사. 파평윤씨 노종파 대종중 시제는 매년 음력 3월 첫째 일요일에 입향조 윤돈(尹暾, 1551~1612)을 중심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병사 및 선영에서 시제를 지내므로 사당은 없고 재실이 있다. 음식을 재실에서 준비하여 묘소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다. 이외에도 논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윤씨 문중 건물. 파평윤씨 정수루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인 파평윤씨 종학당의 전신이자 문인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이기도 하다. 파평윤씨 정수루와 파평윤씨 종학당은 약 340여 년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파평윤씨 가문 출신의 대과 급제자 46명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고 전해진다. 파평윤씨 종학당은 164...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정자로 1633년(현종 4)에 송시열이 건립함. 1663년(현종 4)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짓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은 마음에 팔괘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지는 팔괘정은 죽림서원의 북쪽 언덕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죽림서원의 양 날개처럼 사우를 위요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팔괘정 주변에 있는 조선 중기 암각군. 우암 송시열이 팔괘정을 짓고 생활하고 있을 때 팔괘정에 글이 걸린 꿈을 꾼 뒤 새겼다고 전한다. 각자를 한 정확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논산에서 강경읍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6.32㎞를 가다 보면 산양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0.5㎞를 가면 강경읍 역전로가 나오는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중기 현감 이씨의 묘소. 묘역은 쌍분이며 묘비, 상석, 문인석, 묘갈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2기의 묘비에는 각각 ‘현감가평이공지묘(縣監加平李公之墓)’, ‘선인조씨지묘(先人趙氏之墓)’라고 음각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255㎝로 비신의 높이 150㎝, 너비 70㎝, 두께 22㎝이다. 묘갈의 이수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형상으...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비. 황화정(皇華亭)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점인 황화정리에 세워져 있다. 황화정은 관리들이나 과객이 지나다가 잠시 머물러 쉬어가기도 하고 관찰사를 전송하거나 영접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전라도 신구 관찰사가 임무 교대를 하였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전라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여산 고을에서 최북단이며, 북쪽으로 위치한 작고 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