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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서 전하는 당제에 얽힌 이야기. 벽파진전설은 벽파리에서 노인신을 모셨던 당제의 기원을 설명하는 당신화이다. 아득한 옛날, 한 사공이 나룻배에 십여 명의 사람들을 싣고 벽파항을 출항하여 감부섬 앞까지 힘들게 노를 저어가던 차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백발노인이 벽파부두에 나타나서는 큰소리로, “여보! 여보! 뱃사공, 내가 급한 볼일이 있어 그러니 나 좀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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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와 의신면 모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뽕할머니 이야기. 진도군에서 열리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의 주신이기도 한 뽕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는 뽕할머니의 간절한 기원을 듣고 용왕이 바다에 길을 내었다는 이야기이다. 1995년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 회동마을에서 이 마을에 사는 용행우(남, 75세), 박인준(남,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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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농악. 오산농악은 진도 동부지역 중에서 고군면을 대표하는 농악으로, 흔히 고군농악으로도 불린다. 따라서 오산농악의 보존회 명칭도 ‘고군농악보존회’이다. 진도에는 진도 서부를 대표하는 소포걸군농악이 있고, 동부지역에는 오산농악과 덕병농악 등이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서부지역의 소포걸군농악에 비해 참여자가 적고 또 마을사람들의 참여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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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의 호새비재에 얽힌 이야기. 호새비재는 내산리의 동후산(東後山)에 있는 재로서, 이 재에 호새비(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워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오랜 옛날, 황조리 앞바다에 엄청나게 많은 배들을 이끌고 적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마을을 지킬 만한 군사가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적들이 상륙을 하면 마을 사람들 모두 몰살당할 게 분명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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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행정리. 주산인 가인봉(佳人峰)[291m]의 ‘가’자를 따고 지경(地境) 계자를 붙여서 가계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계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계리에 병합되어 고군면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가계리 동쪽에 있던 용호리가 가계리에서 분리되었다. 첨찰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가인봉과 죽제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미봉(米峰)[24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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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가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가계리는 금계리의 행정리로 고군면 면소재지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가계마을로부터 북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지점의 지방도 801호선 도로 양쪽에 위치하고 있다. 10여기 이상의 고인돌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수풀로 인하여 정확한 형태나 규모 등은 파악되지 않았다. 가계 고인돌군은 10기 이상이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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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가계리에 있는 해수욕장. 가계해수욕장의 명칭은 가계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가계해수욕장의 모래사장 길이는 약 3㎞로 진도군에서 가장 길다. 주위에 나무 그늘이 빈약한 편이지만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모래사장의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 단위 휴양지로 적당하다. 가계해수욕장에는 진도 청소년수련관과 전남지방경찰청 수련원이 위치하여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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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면. 고군면(古郡面)은 오래된 군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백제 때 고군면 고성리에 진도군의 관부를 두었고, 고려 때도 고성리에 진도군의 치부를 두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촌락이 형성되었다. 백제시대 현재의 진도군 고군면 일대는 인진도군(因珍島郡)으로 진도에서 유일한 군이었다. 667년부터 687년에 걸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진도군은 진도현으로 격하되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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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은 해마다 음력 3월 초와 보름, 4월 초와 보름, 6월 초와 보름 해질 무렵에 완전하게 구경할 수 있다. 신비의 바닷길은 지난 2004년 5월과 2005년 7월에 가장 크게 열렸었다. 진도군에서는 신비의 바닷길이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달에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개최하려고 노력한다. 2004년까지만 해도 영등축제라는 명칭으로 행사를 치렀다. 200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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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과 모도(茅島)를 잇는 길이 2.8㎞에 너비 약 40~50m의 모래등이 드러나는 신비의 바닷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냈던 피에르 랑디(Pierre Landy)에 의해서이다. 역사와 지리학 분야의 박사였던 피에르 랑디는 진도개를 살피러 왔다가 그 해 4월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 사이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을 보고 감격하여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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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는 더욱 완연하게 드러난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광경은 장관이다. 5~6m 수심 아래 잠겨 있던 바닷길이 갈리면서 드러나고 바닷길 양 옆으로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신비롭다. 이 광경은 구약시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실제 진도 지역의 기독교계는 신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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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전 회동마을 주민들은 조기잡이 중선배를 타거나 선원들에게 나무를 팔아서 생활을 했다. 당시 회동마을에만 10여 척의 조기잡이 중선배가 있었고, 마을 앞 금호도에도 대여섯 척의 중선배가 있었다. 중선배 한 척에는 7~8명의 선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회동마을 주민들의 생계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 회동마을에 김 양식이 시작된 것은 1960년 무렵이었다. 장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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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는 않지만 멸치 낭장망을 하는 가구도 있다. 가계리, 회동마을, 모나리 등 인근 마을의 십여 가구가 낭장망을 통해 멸치를 잡고 있다. 그물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봄에 시작해서 가을까지 계속된다. 회동마을 앞 갯벌에서 조도군도 사이의 바다는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고 산란하는 지역이다. 소형 그물로 고기가 잡힌다는 것은 바다와 갯벌이 양호한 생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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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을 비롯한 모나리, 가계리, 모도리, 원포리 등 진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어촌에는 김 양식이 발달했다. 회동마을은 가구당 100줄로 200때(40m가 한 때로 두 때를 묶어서 양식을 하고 있다)를 양식하고 있다. 9월 초에 김발을 제작하여 중순 무렵까지 포자를 붙인다. 포자는 대여섯 때의 김발을 묶어서 그 위에 포자(김 종자)가 붙은 패각(조개껍질)을 뿌리고 차광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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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확철이 되면 해남, 완도, 강진, 장흥 등의 김 가공업자들은 김을 사기 위해 회동마을을 찾는다. 수협을 통해서 위탁 판매한 김은 중매인을 통해서 가공업자에게 넘겨진다. 김 양식이 활발했던 1980년대 무렵만 해도 8개의 수협이 있었으나 지금은 1개가 운영되고 있다. 진도에서 김이 생산되는 곳은 동남쪽 바다로 갯벌이 발달한 원품리, 회동리, 수품리 등 세 지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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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回洞)마을은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속해 있다. 금계리는 가계리, 금호리, 회동리, 용호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금호리와 가계리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금계리라 명명하였다. 회동마을은 『호구총수』(1789)에 의하면 고군내면(古郡內面) 22개 마을 중 하나였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 의하면 고일면(古一面) 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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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는 회동마을의 서쪽 동네를 가리킨다. 예전에 모나리에는 금호도를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어서 금호도까지 배로 왕래하였다. 하지만 샛바람이 불면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고 오도 가도 못하였다. 금호도와 회동마을을 잇는 정기적인 객선이 없었을 때 모나리에는 불자리가 있었다. 불자리에는 채씨 불자리, 박씨 불자리, 양씨 불자리, 정씨 불자리, 임씨 불자리 등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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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풍파로 호동(지금의 회동마을) 앞바다에 표류하였다. 그리하여 호동마을에서 촌락을 이루고 살게 되었는데 호랑이의 침입이 잦아 호동마을 건너편 모도(茅島)라는 섬으로 피신하면서 뽕 할머니 한 사람을 남겨둔 채 떠나게 되었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그해 음력 3월 초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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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도군 수원지가 있는 방죽골부터 동기미까지 형성된 산자락은 말의 형국이라 한다. 이 산자락 끝에 해당하는 땅 이름인 동기미는 말의 머리 부분으로 말이 물을 먹는 형상이라고 한다. 앞산에는 말안장을 뜻하는 안장바위가 있음도 이러한 명칭 유래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동기미 끝자락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말이 물을 먹듯이 “꾸르릉, 꾸르릉”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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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에는 현재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지명도 많이 있다. 여기에서는 회동마을 주민들이 의사소통 수단으로 부르고 있는 지명까지 수록한다.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한국지명총람-진도군-』과 박명진[남, 74세, 현 노인회장], 박철준[남, 74세], 장신일[남, 60세] 등 회동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 가인봉, 가연봉[산] : 매봉달 참조. ○ 간지께[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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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봉[가인봉, 가연봉], 매봉달[291m] : 이 산은 고군면 금계리와 향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회동마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회동마을 주민들은 가인봉이나 가연봉보다 가야산 또는 매봉달이라 부른다. 가야산이라 부르는 것은 매봉의 다른 이름인 가연봉·가인봉을 잘못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매봉달의 달은 우리의 옛말 중 달[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모나리[마을] :회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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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골[골] : 『한국지명총람』에는 불당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주민들의 의견은 다르다. 70대의 제보자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60대의 제보자는 뽕할머니 제당 위쪽의 조그마한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 싹바우[바위] : 뒤까끔 아래쪽에 붙어 있는 바윗덩이를 말한다. 주민들은 싹이 많아서 닭을 못 키울 지경이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 안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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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산[산] :회동마을 가까이에 있는 산을 말한다. 웃동네(가뎃동네← 가운뎃동네) 앞에 있다. 회동마을은 해안을 따라 형성되었으며 바닷가를 향해 주택이 지어졌으나 앞과 뒤의 방위 개념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전면을 앞이라 하나 회동마을은 그렇지 않다. 뒤까끔은 위치상 마을의 옆에 있으며, 앞산은 마을의 뒤쪽에 있는데도 앞산이라 하기 때문이다. ○ 영등살[바닷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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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중구 이날에는 산일을 해도 탈이 없다고 하여 이장, 개사토 등 묘를 손질하였다. (3) 생업력 10월 10일 경부터 김 채취가 가능하다. 콩, 팥, 참깨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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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회동마을에는 제각이 없기 때문에 다른 마을로 가거나 집에서 시제를 모신다. (3) 생업력 김을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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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동계 매년 12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에서는 1년간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2) 세시풍속 ○ 동지 이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 김장 담그기 이달 중순 경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동치미 등을 담아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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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점치기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이듬해 농사가 잘 된다고 여겼다. ○ 빚갚기 새해가 되기 전에 빚을 청산하기 위해 섣달 그믐날 빚을 갚는다. (3) 생업력 김 채취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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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날(음력 1월 1일) 회동마을에서는 설날 새벽 1시 경에 차례상을 차린다. 떡국 대신 메를 올린다. 설날 아침에는 설빔을 입고 가족과 친지에게 세배를 한다. 세배를 받으면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설날 아침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 정초 ① 토정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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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진도 신비 바닷길 축제(영등축제) 영등사리 때 회동마을과 모도마을을 연결하는 바닷길이 열리는 현상을 기념하기 위해 영등축제를 개최한다. 현재 축제명은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이다. 2005년부터는 축제 이름을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로 바꾸고 영등달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찾을 날을 정하여 축제를 하고 있다. (2) 세시풍속 ○ 하루달날(사람날)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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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경로잔치는 매년 4월 5일 경 한다. 경로잔치는 65세 이상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잔치를 벌여 대접하는 것이다. 비용은 호상할 때 천돈을 모아서 그 기금을 마련한다고 한다. (2) 세시풍속 ○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청명,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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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4월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3) 생업력 이달부터 멸치잡이가 시작되어 가을까지 멸치를 잡는다. 회동마을에서는 1호가 낭장망으로 멸치를 잡고 있다. 벼농사의 경우, 5월 10일에서 5월 30일 사이에 볍씨를 담근다. 5월 30일에서 며칠동안 못자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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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일일관광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주민들끼리 관광을 가기도 한다. (2) 세시풍속 단옷날 이날은 풀잎마다 약이 된다고 하여 익모초, 설모초, 우실나무, 쑥 등 풀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모내기는 5월 말에서 6월 10일까지 이앙기로 한다. 콩, 팥, 참깨 등을 파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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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복날잔치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음식을 장만한다. 돼지고기, 닭죽, 떡 등을 준비하여 주민들과 회합하는 자리이다. (2) 세시풍속 ○ 유두 유두는 노는날이라고 하여 고운 옷 입고 잘 먹고 놀았다. 보리쌀을 갈아서 보리빵을 해먹었다. 예전에는 이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었으나 지금은 유두를 쇠는 집은 없다고 한다. (3) 생업력 이달에는 벼의 생장을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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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백중 이날은 ‘도랑신네’가 일년 농사를 결정하는 날이어서 논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백중에도 차례를 지냈는데, 지금은 백중을 쇠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 한다. (3) 생업력 마늘을 심는다. 김 양식 그물을 보수하거나 새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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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예전에는 벼가 익으면 베어다가 찧어서 밥을 지어서 성주에 올렸다. 그리고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넣었다. 성주동우에 넣었던 쌀은 특별히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거나 신경 쓰지 않으려고 시장에 내다가 팔기도 했다. 집을 개조하면서 마래가 없어지게 되자 성주동우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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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김 양식이다. 회동마을에서 김을 양식한 지는 약 30여 년 되었다. 따라서 주민들의 생활은 김 양식 주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김은 양력 9월 초(절기상으로는 백로 경)에 김발에 포자를 부착한다. 포자를 붙이고 나서는 유기산 등 김의 생장을 돕는 약을 한다. 수확은 양력 10월 말부터 이듬해 4월 중순 경까지 가능하다. 김 수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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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의에는 정기회의와 대동회의가 있다. 정기회의는 매달 15일에 열린다. 특별한 안건이 없는 경우 방송을 통해서 알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대동회의는 12월 말에 개최된다. 대동회의에서는 이장의 일 년 업무보고, 결산, 임원 선출 등이 이루어진다. 마을조직으로는 청년회, 개발위원, 부녀회, 상부계, 어촌계 등이 있다. 청년회(진흥회)는 18세에서 40세에 해당하는 청년들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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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현재 회동마을은 총 129가구이며 이 중 농업가구는 21가구, 어업가구는 105가구, 기타 3가구가 있다. 인구는 총 257명으로 남자는 178명, 여자는 17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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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이 속한 고군면은 진도군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회동마을은 고군면의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첨찰산(尖察山)[485.2m]의 맥이 남남서 방향으로 내려가 두무골재를 지나 덕신산(德神山)[389m]을 이룬다. 점차 고도를 낮추면서 삼재를 만들고 곧장 바다로 내려가 회동재를 건너 동기미봉을 바다에 밀어 놓았다. 이 산줄기가 회동마을의 북서사면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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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알려진 신비의 바닷길은 평상시에는 모래등이 해수면 아래 5~6m 지점에 있어 드러나지 않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에 해할(海割) 현상이 발생하는 곳이다. 해할이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섬이 많은 다도해 지역에서 물리 빠지는 썰물 때 주위보다 높은 해저사주가 드러나면서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의 하나이다. 바닷길의 폭은 평균 40m 가량이며 모래와 자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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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회동마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으로 꼽는 것이 8개 있는데 이를 회동팔경(回洞八景)이라 한다. 회동팔경은 회동명월(回洞明月), 금호귀범(金湖歸帆), 안암기운(鞍岩起雲), 초평모우(草坪牟牛), 남산호수(南山湖水), 장사낙안(長沙落雁), 송천무학(松川舞鶴), 삼도낙조(三島落照)를 일컫는다. 회동마을은 김 양식선 등 선박 100여 척을 소유한 부촌이다. 현재 회동마을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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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면 회동마을에서 모도마을까지 물길이 열린다. 행정구역상으로 회동마을은 고군면에 속하고 모도마을은 의신면에 속한다. 모도마을은 회동마을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이면 도착하는 비교적 가까운 섬마을이다. 그러나 회동마을에서 보면 모도마을은 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으므로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이기도 하였다. 과거 바닷길이 열릴 때면 회동마을과 모도마을 사람들은 바닷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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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제에 관한 몇 가지의 영험담이 있다. 첫 번째로 어떤 마을 사람이 당집 주변에서 캔 칡을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칡을 다시 갖다 놓으라는 꿈을 꾸고 나서 칡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 아들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 당제를 모신 뒤에 아들을 얻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로 10여 년 전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의 부인이 생리를 하였다. 선정된 제관은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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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에서 제가 끝난 뒤 제관은 정월 초사흗날 새벽에 다시 독샘에서 제를 모신다. 미리 제물을 장만하여 독샘 앞 바닥에 차려놓는다. 이때에는 당집에 올린 제물 외에 돼지머리도 함께 올려놓는다. 예전에는 거리제 모실 시간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부녀자들이 나물 한 그릇, 수저 한 벌, 빈 밥그릇을 놓은 상을 가지고 나온다. 그러면 제관이 미리 밥을 해가지고 와서 일일이 빈 밥그릇에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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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모시는 날인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각 가정에서 한 사람씩 동원되어 당집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당집 올라가는 계단 양 옆으로 황토를 조금씩 놓아둔다. 그리고 제관은 자신의 집에서 제물을 장만한다. 예전에는 제관들이 오전부터 당에 올라가서 직접 제물을 장만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서 제물을 장만한 뒤 제의 시간에 맞춰서 제관이 가지고 올라간다. 제물을 장만할 때는 함부로 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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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도마을 당제는 2005년 7월 2일, 2006년 7월 7일(금) 2차에 걸쳐 조사하였다. 제보자는 김유형[남, 77세], 김병헌[남, 62세], 김복윤[남, 61세], 노강준[남, 52세] 등이다. 모도마을 중심부 위쪽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당할머니를 모시는 당집이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당할머니를 뽕할머니라 부르고 있으나 원래는 당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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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처음 개최되었을 때는 4월 15일 뽕할머니의 제사와 의신면 모도초등학교 개교 21주년 운동회로 시작되었으며 만 여 명의 관광객이 참가하였다. 1980년 3회 축제 때에는 이만 여 명의 관광객 중 915명의 외국인 참가하였다. 이때부터 외국 관광객의 방문이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 6회 축제 때에는 「영등살이」 영화 촬영을 하여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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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3년부터는 축제기간이 4일로 확대되면서 다양하고 이채로운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뽕할머니 제사, 민속공연 외에도 영등살놀이라 하여 뗏목놀이, 용왕제, 뽕할머니 만남기원 및 농악놀이, 바닷길 대영합회, 뽕할머니 상봉, 뽕할머니 씻김 등을 개최하여 뽕할머니전설을 재현하였다. 그리고 찾아가는 박물관, 축하 비행, 해상 선박퍼레이드, 바닷길 불꽃축제, 진도닻배놀이 시연, 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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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회동마을, 진도읍, 회동 앞바다의 야외공연장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근래 가계마을에 진도해양생태관이 건립되고, 그 앞으로 넓은 주차장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와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축제는 1978년 처음 시작된 이래 2005년 현재 28회까지 개최되었다. 제1회부터 28회까지 기간과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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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에는 영등축제의 주신인 뽕할머니에 관한 두 편의 설화가 전하는데, 첫 번째 설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 호동마을에 호랑이의 피해가 심하자 주민들은 바다 건너 모도로 피난을 떠났다. 그때 뽕할머니 혼자 마을에 남게 되었다. 뽕할머니는 날마다 뿔치바위에서 가족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용왕님께 빌었다. 그러던 음력 2월 15일 뽕할머니는 꿈에 “곧 무지개를 타고 가족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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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 축제의 근간은 영등살 때 회동마을 사람들이 모셨던 영등제에서 찾을 수 있다. 회동마을에서는 영등제를 갯당제라 하였는데, 80여 년 전에 중지되어 현재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영등제는 한국의 농어촌에서 일반적으로 봉사되는 풍신제이며, 영등할머니는 영등제에서 봉사되는 풍신으로 농어촌에서 고루 봉사되는 신격이다. 회동마을 사람들이 영등제를 모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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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은 자연지리적으로 특이한 해안과 해저지형, 큰 조차와 파랑(波浪), 해류의 흐름, 퇴적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자연현상이다.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마을 사이 해저에 발달된 육계사주가 가장 낮을 때 해상에 노출되어 마치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1999년 명승지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라남도 전역에서 많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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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내용과 관련하여 조언을 하자면, 첫째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해마다 많은 일본인들이 단체로 방문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서는 철저한 눈높이 서비스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역 이미지를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프로그램 구성면에 있어서도 어설픈 흉내는 지양해야 한다. 특히 공연과 경연 등의 행사 프로그램은 진도의 정신과 혼이 들어간 행사로 바뀌어야 한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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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마친 뒤에는 축제에 대해 평가하고 방문객을 분석하여 다음 축제의 발전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26회부터 28회까지의 평가보고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003년 26회 축제 평가보고서에서는 향후 발전 과제로, 개막식 행사 및 진도읍내 축제 분위기 활성화, 체험관광 활성화, 행사장 주변 사유지 매입 추진, 영등살놀이 씻김굿 무대 시설, 한국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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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회동마을은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로 인해 제법 알려진 마을이 되었다. 28년간 축제가 계속되는 동안 회동마을 사람들의 역할은 초기에 비해 많이 축소되었으나 마을 사람들에게 파생되는 사회문화적 인식과 경제적 파급 효과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 언론의 역할은 축제가 활성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축제가 지속적으로 개최되기까지 회동마을, 진도군청, 지역인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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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고군면 관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진도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진도읍], 6개 면[고군면, 군내면, 의신면, 임회면, 조도면, 지산면] 중 고군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고군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3년 전라남도 진도군 고일면과 고이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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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의 행정리이자 법정리. 고려 때 진도읍성이 있으므로 고성이라 하였다. 여러 기의 고인돌로 보아 신석기 또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을의 입향조는 장흥임씨로 이들이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고려 때 진도읍성이 있으므로 고성 또는 고성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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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 64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고군면 고성리 고군성지 주변의 지형을 보면, 남쪽은 첨찰산, 죽찰산 등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는 진도 용장성이 있다. 동쪽과 서쪽에는 좁다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동쪽에는 해남 쪽으로 돌출한 원포리를 중심으로 내만된 해안이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원포리와 내산리 사이에는 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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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성리 고인돌군은 두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가군에 7기, 나군에 11기 등 모두 18기의 고인돌이 있다. 가군 고인돌은 고성중학교에서 남서 방향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6기가 1열을 이루고 있고, 고성중학교 담과 논 사이에 아래쪽 부분이 묻혀 있는 1기의 고인돌이 있다. 나군 고인돌은 고성리와 오성리 두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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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고운 심성과 바른 생활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덕인), 적성과 소질을 살려 미래사회에 적응하는 사람(성취인), 열심히 배우고 익혀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실력인), 기초체력 단련으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건강인), 주인정신으로 예향 진도와 모교를 사랑하는 사람(예향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5년 5월 3일 설립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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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인성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어린이(도덕인), 꿈을 지니고 자기 자랑을 가꾸는 어린이(개성인),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토대로 실력을 기르는 어린이(창조인),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심신이 조화로운 어린이(건강인), 진도 문화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어린이(문화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3년 11월 30일 고성공립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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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에 있었던 공립 고성초등학교 분교. 바른 인성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어린이(도덕인), 꿈을 지니고 자기 자랑을 가꾸는 어린이(개성인),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토대로 실력을 기르는 어린이(창조인),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심신이 조화로운 어린이(건강인), 진도 문화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어린이(문화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했다. 1935년 4월 30일 향동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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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계리는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행정리로는 가계리, 회동리, 용호리, 금호리를 포함하고 있다. 금호리는 섬이며, 다른 마을들도 해안과 인접하고 있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금호리와 가계리의 마을 이름에서 각각 한 자(字)씩을 따서 금계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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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할머니 영정을 모셔놓은 당집. 뽕할머니 영당은 진도군이 주최하는 영등축제를 위해 건립된 것으로, 영당에 모셔져 있는 뽕할머니 영정은 진도군 출신의 동양화가 옥전 강지주 화백이 그렸다. 영등축제 때 이곳에서 뽕할머니에게 제를 지내고 있는데, 영등축제는 2005년부터 신비의 바닷길 축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라남도 진도군 금계리 회동마을에 있는데, 영당에서 문을 열면 바닷길이 갈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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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호리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금호도에서 유래되었다. 금호도는 금(金)섬이라고 불리다가 섬과 섬 사이의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금호도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섬에 보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삼별초 항쟁 당시 정4품 벼슬을 한 김시랑이 들어와 살았다고 해서 그의 성(姓)을 따서 김(金)씨섬이라고도 불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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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호리 금호도에 있는 유물산포지. 회동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남서쪽으로 5분 정도 가면 금호도에 이르게 된다. 유물산포지는 모두 두 곳이다. 금호선착장에서 북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구릉사면부에 위치하는 유물산포지1은 해발고도 38.3m의 구릉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20.5~27m 정도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금호도 선착장에서 오산초등학교 금호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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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김해김씨 경파로 어릴 때의 이름은 상쇠, 호는 석농(石農)이다. 아버지 김형우(金馨瑀)와 어머니 박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 조양덕(曺良德)[1925~1985]과의 사이에 3남 2녀가 있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원입대를 하여 육군중위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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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속하는 행정리. 이 마을의 주민은 본래 죽리(竹里)라는 마을에서 거주하였는데, 인근 밤나무골이란 곳에 하율리가 있어서 두 마을의 세력다툼으로 죽리마을은 현 내동으로 자리를 잡고, 밤나무골의 하율리는 과거 바다 만 건너편인 현 하율리로 이사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진도 용장성 산릉과 연결되는 제봉[150m] 남쪽 산록에 배산임수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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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오산리에서 내동리로 통하는 도로 왼쪽의 밭에 7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위치하고 있는데, 동남쪽으로는 하조마을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오산리가 보인다. 내동리 고인돌군은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했을 때 새로 발견된 유적이다. 대부분의 고인돌이 지표하에 묻혀 있어 자세한 조사는 할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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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 내동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내동마을은 고군면 소재지의 동쪽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1은 내동마을에서 남서쪽으로 300m 정도 떨어져 있는 구릉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유물산포지2는 내동마을에서 남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져 있는 야트막한 구릉상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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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산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한 법정리로서 행정리로는 내동리, 마산리, 황조리를 포함하고 있다. 내동리의 ‘내’자(字)와 마산리의 ‘산’자(字)를 따서 내산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리, 마산리, 황조리 일부와 고일면의 오상리, 원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내산리라 하고 고군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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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속하는 행정리. 길옆에 논이라는 의미가 한자화하여 도론으로 변한 것이다. 진도 용장성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바로 밑에 있는 마을로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 최초로 경주이씨가 입촌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계안산암질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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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평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행정리로는 도론리와 평산리를 포함하고 있다. 도론리의 ‘도’자(字)와 평산리의 ‘평’자(字)를 따서 도평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라 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해남읍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대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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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속한 행정리. 고려조에 현재 향동 일대에 목장이 있었는데 역에서 사육하는 말을 마산리 해안에서 육지로 반출하였기로 거기를 ‘마재보(馬載步)’라 했다는 연유로 마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형성은 백제 말부터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리, 마산리, 황조리 일부와 고일면의 오상리, 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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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동리와 황조리 사이에 축조된 방조제. 목장에서 사육한 말을 이 곳 해안을 통해 육지로 운송하여 예전에는 이곳을 마재보(馬載步)라 하였다. 마재보에서 마산리(馬山里)가 유래하였으며, 마산리에서 마산저수지가 유래하였다. 마산방조제가 축조되기 전 이 물목 위에 있던 고군면의 오산리·중리·입석동 앞 갯벌은 수차례 소규모로 둑을 막아 농경지로 만들어 왔었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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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마산리에 위치한 저수지. 목장에서 사육한 말을 이 곳 해안을 통해 육지로 운송하여 예전에는 이곳을 마재보(馬載步)라 하였다. 마재보에서 마산리(馬山里)가 유래하였으며, 마산리에서 마산저수지가 유래하였다. 1933년 마산방조제 축조로 만들어진, 일본 기업인 소유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36년 마산저수지가 축조되었다. 고군면 북동쪽 마산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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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에 속한 행정리. 모사는 모세미를 음역하여 모사라 한 것인데, 실제로 띠풀이[茅]는 차음한 것에 불과하며 모세미의 뜻은 조개껍질 부서진 모래가 많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목처럼 되었으므로 상목골 또는 향막동, 향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향동리라 하여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해안에 발달한 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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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 모사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고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80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모사마을에 이르게 된다. 모사마을 입구의 버스정류장에서 오른편 밭이 모사 유물산포지이다. 기존의 조사에서 회청색경질토편과 아가리편[구연부편]이 확인되었다. 현재 이곳은 ‘안논들’로 불리며 해발고도 25m 미만의 저평한 평지로 밭농사가 경작되고 있다. 유물산포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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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 모사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마을제사. 모사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 9시경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바라는 제를 모신다. 제사 일시는 간혹 바뀌기도 하여서, 음력 정월 초하룻날부터 보름 이전에 마을에 초상 등 궂은 일이 생기면 2월 초하룻날이나 2월 보름 중 택일하여 모신다. 제사 명칭과 관련하여,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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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정민익을 배향한 사우. 묵제 정민익(丁民翼)[1781~1861]은 금호도에 머물면서 평생 벼슬을 탐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에 뜻을 두었다. 금호도는 섬의 크기는 작지만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정민익은 이곳에 관해정(觀海亭)이라는 정각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해남과 진도에서 22명의 제자가 모였다고 전한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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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926년 10월 3일에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석현리 사동마을에서 아버지 박종민(朴鍾珉)과 어머니 김천심(金天心)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중퇴하고, 해방 후인 1948년에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58년부터 1965년까지 해병대 제3연대 연대장, 해병대 사령부 작전국장, 해병대 제1상륙사단 참모장, 해병대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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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교육공무원. 본관은 무안. 1932년 진도군 고군면 하율리에서 태어났고 1995년 향년 63세로 타계하였다. 1956년 경북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고, 1978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56년부터 광주북중학교, 광주중앙여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1966년 광주교육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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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정치인. 고군면장, 수리조합장 및 전라남도의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우체국장으로 우정발전에도 기여한 정치인이다. 아버지 박동주(朴東柱)와 어머니 조내금(曺乃今)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성진명학교를 졸업하였다. 고군면장, 수리조합장을 비롯하여 진도군 고군면 관내 각급학교의 기성회장을 역임하였고 1960년 제3대 전라남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지역개발에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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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제막이 있었으므로 지막골, 제막, 지막 또는 금학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벌포리와 하율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지막리라 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주봉재 동편 산록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안에 경사가 급한 앞산(104m)이 있어 수심이 매우 깊다. 면의 동쪽 중앙의 해안가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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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 벌포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마을제사. 벌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15일 자정에 마을 공동의 제를 모시는데 이를 ‘당산제’라고 부른다. 당산제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제를 모신 이후로는 한 번도 제를 중단한 적이 없이 현재에 이른다. 제는 마을 뒤쪽에 있는 ‘당집’에서 모신다. 당집 뒤에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당산나무로, 이를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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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위치한 나루. 벽파나루는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진도에서 가장 번창했던 나루로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와 해남군 황산면 옥동 삼지원(三持院) 사이 2.8㎞를 연결하고 있다.『옥주지(沃州志)』에 의하면 벽파나루에서 해남군 화산(花山), 영암군 송지(松枝), 제주도 등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1272년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항전할 때 벽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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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벽파정(碧波亭)이 있었으므로 벽파정 또는 벽정(碧亭), 벽동(碧洞)이라 하였다. 벽파적이 벽파장으로 와전되었으며, 뱀파장, 별파장 등도 모두 벽파정의 와전이다. 벽파는 해변의 벽도를 미화해서 붙인 이름이고, 벽파항이라고도 한다. 1500년경 형성되어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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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서 발굴된 중국의 통나무배. 진도 통나무배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78년으로, 월간지『예향』에 실린 삼별초 관련 답사기행문에서이다. 이를 근거로 문화재청에서는 현장을 답사하고 조사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같은 해 11월 조사원을 현지에 파견하여 매몰선의 실체를 확인,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노출된 유구의 형상으로 보아 선체일 가능성이 있으나, 시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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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벽파마을에서 매년 설날, 정월 대보름, 추석에 당집의 당할아버지께 올리는 마을제사. 벽파리는 본래 전라남도 진도군 고일면 지역으로서, 벽파정이 있어서 벽파정, 또는 벽정이라 불렸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동리, 벽동리와 군일면의 용장리를 병합하여 벽파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고,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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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항구. 벽파항은 진도군과 해남군을 연결하는 항구이다.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 있는 울돌목은 진도군과 육지를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해협이다. 그러나 울돌목은 조류 속도가 빨라 육지와의 연결 항로로 부적합하였다. 그래서 벽파항은 진도대교(珍島大橋)가 건설되기 전까지 진도군과 해남군을 연결하는 가장 번창한 항구였다. 벽파리는 해변에 핀 벽도(碧桃)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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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섬, 섬과 육지 사이에서 배를 보내라고 불을 피워 연락하는 장소. 배가 없는 섬에서 다른 섬이나 육지로 갈 때 혹은 섬으로 가려고 그곳의 배를 부를 때는 불을 피워서 연락한다. 연락은 봉수(烽燧)나 마찬가지로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피운다. 바다에서 불을 피워 교통을 해결한 역사는 매우 오래 전 일이며, 이와 더불어 조난에 대한 구조는 뱃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통된 과제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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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의 법정리이자 행정리. 돌고개 밑이 되므로 돌게, 돌고개 또는 석현이라 하였다. 석현리는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돌고개 밑이 되므로 돌게, 돌고개 또는 석현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모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석현리라 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군내천의 한 지류인 고군면의 석현천은 첨찰산의 북서산줄기인 돌갯재[석현]와 칠산(七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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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석현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고군면 소재지에서 진도읍 쪽으로 국도 18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석현리에 이르게 된다. 유물산포지는 석현리에서 북서쪽으로 300m 정도 떨어져 있는 ‘당산골’로 불리는 계곡부의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적갈색연질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현재 이곳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물산포지 내에 고인돌군이 있었으나 3년 전 마을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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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행정리. 당사골로 부르다가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고성보다 나중에 설립되었기에 신리라 하였다. 마을의 입향조는 현풍곽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리가 있는 고군면 고성리는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옛 진도읍성이 있어서 고성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와 모산리, 평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성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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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연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벽파리의 행정리인 연동리 마을 앞 논과 밭, 민가에 10여 기가 흩어져 있다. 양명희씨 집 안에 두께가 300㎝가 넘는 거석이 놓여 있는데, 일명 ‘천지바위’라고도 부른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조사·보고되었다. 일부 덮개돌이 파괴되고 아래쪽이 매몰되어 있어 확실한 형식을 알 수 없으며,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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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연동리에 있는 선돌[立石]. 선돌을 연동리에서는 ‘미륵돌’, ‘선돌’, ‘동자바우’ 등으로 부른다. 마을사람들은 선돌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으나, 일종의 마을 수호신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남향으로 앉은 연동리는 동쪽으로는 바닷가와 잇닿아 있고, 마을에서 동쪽으로 200여m 되는 지점에 원둑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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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의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1574년에 형성된 마을에 대한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검산곶에서 유래한 ‘검사골’이 고유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예전에 마을 남쪽에 있는 연동저수지에 연꽃이 많아서 연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574년에 형성된 것으로 보며, 마을의 입향조는 밀약박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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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망바우 쪽 마을 앞에 수백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어 오류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청해진에 근거하였을 때 마을 동쪽 소바우에 갈영월이라는 사람이 장보고 명을 받아 최초로 입주하였다는 것과 삼별초가 제주도로 쫓겨 간 뒤 진부리의 8세대는 수산물의 소득으로는 생활이 곤란하다 하여 고래나 동아새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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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 고군면소재지에서 지방도 80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상리에 이르게 된다. 선돌은 마을에서 북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선바위’라 불리고 있으며, 주변에 오상리 고인돌이 있다. 1968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남해 도서지역 고고학 조사시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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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한 법정리. 오산리는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 오산(五山)은 원래 오산(烏山)이었으나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오(烏)를 오(五)로 바꾸었다는 설도 전한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오하리, 하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오산리라 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오산리는 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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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유적. 고군면소재지에서 지방도 80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상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오산리 유적은 오상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진도군 문화유적 조사시 처음 발견된 유적으로 1987년 학계에 보고되었다. 2003년 경지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전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조사 당시 ‘오산리유적 가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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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위치한 저수지. 까마귀가 사는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烏山)이라 하였는데, 까마귀[烏鳥]는 흉조라 하여 동음인 오(五)로 바꾸어 오산리(五山里)가 되었다. 오산저수지는 오산리에서 유래하였다. 1970년 12월 10일 오산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축조하였다. 진도군 고군면의 북서쪽으로, 고성리의 오목재 근처에 위치한다. 18번 국도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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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창의력을 기르는 어린이(창의인), 꿈을 지니고 자기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개성 추구인), 예향 진도문화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어린이(애향인), 신체를 깨끗이 하고 체력이 강한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4년 7월 21일 고성국민학교 오산분교장으로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44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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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분교. 더불어 생활하고 효도하는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어린이(창의인), 의지가 강하고 튼튼한 어린이(건강인), 우리 것을 알고 재능 있는 어린이(재능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6년 10월 9일 금호도국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1946년 12월 1일 금호도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8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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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분교.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창의력을 기르는 어린이(창의인), 꿈을 지니고 자기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개성 추구인), 예향 진도문화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어린이(애향인), 신체를 깨끗이 하고 체력이 강한 어린이(건강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8년 5월 18일 향동공립심상소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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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오하리가 있는 오산리의 오산이라는 말이 오산(烏山)하는데서 동음으로 썼을 것이고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다섯 오자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오상리의 위 상(上)자는 마을이 커서 오상리와 오하리 둘로 나뉘면서 윗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고인돌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1400년쯤에 창녕조씨인 충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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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오상리 고인돌군은 세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가군 고인돌은 오산리 저수지 제방 밑에 4기가 동서 1열로 놓여 있다. 이곳에서 내동리 마을 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섬바위’라는 선돌이 있는데 선돌 옆에도 2기의 고인돌이 있다. 나군 고인돌은 오상리 마을 북쪽 넓은 경지 쪽 낮은 구릉상에 6기가 군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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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행정리. 1437년(세종 19)에 왜적의 침입을 피하여 남해현으로 옮겼던 진도 고을을 이곳으로 옮기고 새성[新城]이라 하였다. 그 뒤 ‘무냄기’, ‘무넘기’, ‘무내기’로 변천되어오다가 오일시장이 열리면서 무내미는 사라지고 ‘닷새장터’로 불리다가 ‘오일시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437년에 왜적의 침입을 피하여 남해현으로 옮겼던 진도 고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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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정기시장. 오일시장은 열흘에 한 번 끝자리가 5일인 날에 장이 선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38년 당시, 진도군에는 세 군데서만 장이 섰는데, 진도읍장, 십일시장, 오일시장 등이었다. 그 중 오일시장이 규모가 제일 작았으나 매출액은 연간 32,425원으로 섬치고는 제법 큰 규모였다. 그 후 경제 성장과 함께 장날이 추가되어 5일장이 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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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오하리가 있는 오산리의 오산이라는 말이 오산(烏山)하는데서 동음으로 썼을 것이고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다섯 오자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오하리의 아래 하(下)자는 마을이 커서 오상리와 오하리 둘로 나뉘면서 아랫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1400년쯤에 창녕조씨의 충신이 있었는데, 반정으로 왕이 바뀌면서 새로운 왕을 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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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고군면 금계리 용호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군내면 소재지에서 의신면 방향으로 18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의 왼쪽에 가계교가 나온다. 가계교를 지나 남서쪽으로 500m 정도 가면 용호마을이 있다. 용호 유물산포지는 마을의 북동쪽에 위치한 미봉[242m]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구릉사면에 ‘쉰배미골’을 중심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앞쪽으로 향동천이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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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는 용산과 호수의 입구라는 호구가 합쳐져 용호리라고 하였다. 호구는 사실 가계해수욕장의 사빈이 형성한 과거의 석호지역으로 호수 호(湖)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호구리, 용산리, 도장리를 병합하여 용산과 호구의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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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의 법정리이자 행정리. 며흘포, 마흘포가 멀포로 변하여 의역된 것으로서 지금은 원포로 불리게 되어 ‘멀고 험하고 외진곳’이라는 뜻으로 고정된 이름이 되었다. 마을 형성은 입도조인 김해김씨와 나주임씨에 의해서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갯가가 되므로 먼개 또는 원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하리, 하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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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했을 때, 원포리에서 18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고인돌들은 대부분 아래쪽이 매몰되어 있어 확실한 형식을 알 수 없으나, 가장 큰 고인돌에 받침돌이 한 개 있는 것으로 보아 기반식과 뚜껑식이 혼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인돌의 크기가 일정치 않고 대형과 소형이 혼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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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고군면 원포리 원포마을에서 매년 지내고 있는 마을제사. 바닷가 마을인 원포마을은 며흘포, 마흘포가 ‘멀포’로 변하여 의역된 것이다. 지금은 원포라는 이름으로 고정되었는데, ‘멀고 험하고 외진 곳’이란 뜻이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 김, 전복이다. 현재 주요 성씨는 김해김씨와 나주임씨이다. 마을 공동재산으로 마을회관이 있고, 마을조직으로는 13명으로 구성된 청년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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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에 있는 행정리. 버드나무 다리를 한자화하여 유교(柳橋)라 했다. 과거 마을 앞에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청해진에 근거하였을 때 마을 동쪽 소바우에 갈영월이라는 사람이 장보고의 명을 받아 최초로 입주하였다는 오류마을의 설에 의해 이 마을도 그 때나 그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유교리가 속한 오류리는 본래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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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4년에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서 태어나 2020년 2월 13일 사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어린이들과 자주 싸웠을 만큼 일본을 싫어했다. 15세가 되자 마을에 계를 만들어 항일운동 의지를 고취하고 신사 참배 거부를 주지시켰다. 1941년 4월에는 한형술·이기창 등으로부터 고성국민학교 학생들이 신사 참배 차 간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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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해양생태전시관. 조가비전시관은 진도해양생태관 1층에 위치한 전시관으로 다양한 바닷속 현장을 그대로 복원해 부모와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세계 축제로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고군면 회동관광지 안에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좋은 위치에 진도해양생태관을 설립했다. 2004년 4월 27일에 개관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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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자 정치인. 본관은 창령(昌寧)이다. 1933년 3월 2일에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오상마을에서 아버지 조형환(曺馨煥)과 어머니 김수영(金水永)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1년에 목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종합학교를 수료하였다. 소위로 임관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68년에 중령으로 월남에 파병되어 주월군 사령부 작전처에서 근무하였다.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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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예전엔 금학리(金鶴里), 지학리(芝鶴里)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1789년 기록에는 종이를 만들던 지막(紙幕)이라 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에 의한 유래가 유력하다. 입향조는 1300여 년 전에 처음 들어온 밀양박씨이며, 그 뒤 창녕조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제막이 있었으므로 지막골,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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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지막리 고인돌군은 3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가군 고인돌은 지막리 서남단에 원래 6기가 있었으나 2기는 파괴되어 4기가 남아 있다. 나군 고인돌은 박연배씨 집과 박필현씨 담장에 10기가 있으며, 다군 고인돌은 지막리에서 벌포리 쪽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쪽으로 밀양박씨 세장산비가 있는데, 13기의 고인돌이 민묘 주위와 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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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 있는 선돌. 마을 주민들은 예로부터 마을에 선돌을 세워두면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어 선돌을 세웠다. 고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80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지막리에 이르게 된다. 고군면 지막리 선돌은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마을길 양옆에 2기가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1호가 116x×70x22㎝이며, 2호가 90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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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 벌포마을에 있는 옹기요지. 고군면 소재지에서 801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벌포마을에 이른다. 가마는 마을 입구에서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길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주민 허인구 씨의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된 반지하식 옹기가마로서 1950년대에 폐기되었다고 한다. 유물은 옹기편과 소토덩어리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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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 지막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마을제사. 지막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밤 12시경 마을에 있는 선바우독 두 곳과 닥너머재의 삼거리 한 곳에서 제를 지내는데, 이를 망제라 부른다. 특히 교통사고가 잦은 닥너머재의 삼거리에서 올리는 제사는 나쁜 기운을 누르고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영혼들의 천도를 돕는 의미도 들어 있다. 지막마을에서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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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지수리의 확실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한자어로 진도의 명주인 홍주를 만드는 지초 지(芝)와 물 수(水)를 의미한다. 본래 지수리가 속한 오산리는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수리, 오상리, 오하리의 각 일부와 고이면의 고성리, 황조리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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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지수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매년 음력 1월 14일 밤 12시경에 지내는 제사로, 마을사람들은 당산제라고 부른다. 당산제 전날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나거나 초상 등 궂은일이 생기면 다음 달인 2월 초 하루로 날짜를 옮기기도 한다. 지수마을에서는 당산제 전에 간단하게 거리제를 지내는데, 마을 곳곳에 간단한 제물을 올리고 제관이 절을 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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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리 사이의 바닷길이 열리는 시기에 개최되는 전국 축제.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전국 10대 축제 중 하나로서 음력 2월 초 또는 보름을 전후하여 바닷길이 열리는 시기에 개최된다. 바닷길이 열리는 곳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 회동마을에서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마을까지 2.8㎞ 구간이다. 바닷길이 열리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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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관광문화 유적지를 흥미 있게 해설하고 안내하는 해설가들의 모임. 진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여러 관광지와 유적지 등을 소개함으로써 진도에 대해 제대로 알림과 동시에 문화관광의 진흥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문화관광 안내 해설가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지역민의 관광 소득이 늘어나고 있으며, 해설가들은 향토사 조사·연구 및 사료 발굴 연구회원으로도 활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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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를 잇는 바닷길.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그 앞바다에 있는 조그만한 띠섬 의신면 모도리 사이에 바닷물이 들고나는 영등살물 때 폭 60㎝, 길이 약 2.8㎞의 구간에서 해저 연안사주인 모래등이 드러난다. 이는 해류의 영향으로 육계사주가 발달한 바다가 조수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낮아질 때 모래등이 물 위로 드러나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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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민속놀이 보존·전승 단체. 농악 및 민요, 무용, 민속놀이 등을 보존·전승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한국국악협회 진도지부장이던 허옥인의 요청에 의해 농악단으로 출발했다가 1982년에 박석근을 중심으로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게 되었다. 이후 활동 영역을 넓혀 전국을 무대로 토속공연을 개최하는 단체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주로 진도 내에서 토속무용과 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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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과 고군면 경계에 있는 석성. 첨찰산성은 진도군 의신면과 고군면의 경계지인 진도군에서 가장 높은 산인 첨찰산[해발 485m]에 위치해 있다. 첨찰산 정상 봉수대가 위치한 산정을 중심으로 동남쪽의 해발 460m 고지와 남쪽 420m 고지를 연결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1500년도 더 된 백제 때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산성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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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위치한 청소년수련관. 1998년 전라남도 진도군청에서 청소년의 복지증진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청소년수련관이다. 전라남도 진도군청에서 청소년들에게 수련활동을 통하여 청소년의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 건전한 청소년으로 육성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진도군청은 1998년 5월 2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가계해수욕장 내에 청소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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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있는 행정리. 처음 입향한 곽평산의 이름을 따서 평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첨찰산의 정기를 받은 출석봉 아래에서 살던 현풍곽씨의 평산이라는 사람이 처음에 주거를 정했고 그 뒤 최씨, 이씨, 한씨, 조씨 등 5성이 모여서 촌락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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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에 있는 공원. 프랑스 주한대사였던 피에르 랑디를 기념하기 위해 피에르랑디공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피에르 랑디는 1975년 진도에 방문했다가 바닷길이 열리는 모습을 보고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신비의 바닷길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77년 영등제가 시작된 뒤 고군면 회동리과 의신면 모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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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무안박씨로서 입도조 박희정은 1505년 영암군수로 재직 중이던 그의 형 박종정(朴從貞) 군수를 따라갔다가 진도가 살기 좋다는 얘기를 듣고 고군면 하율(下栗)로 들어와 터를 잡았다고 전해온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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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 하율마을에 있는 시대 미상의 고분. 고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80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율마을에 이르게 된다. 고분은 하율마을에서 남쪽으로 60m 정도 떨어져 있는 야트막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지만 고분이 위치하고 있던 자리는 수풀만 무성하다. 마을사람은 이곳을 ‘말무덤’ 또는 ‘장터’라고 부르고 있으나 고분의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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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하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하율리 마을 안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남동쪽으로는 말무덤이 있으며 왼쪽으로 민가가 밀집해 있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이 이동되고, 일부 파괴되어 확실한 형식을 알 수 없다. 고인돌의 규모는 길이 180㎝, 폭 100㎝, 두께 50㎝의 소형 고인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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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 하율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고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80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율마을에 이르게 된다. 유물산포지는 하율마을에서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는 야트막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은 기와편, 자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현재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마을사람들로부터 ‘터들’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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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 하율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하율마을에서는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위해 음력 1월 1일 자정에 마을 공동의 제를 모시는데, 이를 ‘당산제’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정월 보름 안에 날을 받아서 제를 모셨으나, 제를 모시기 전에 마을에 초상이 나면 제를 모실 수 없기 때문에 1980년대 들어 정월 초하룻날로 날을 옮겨 지낸다. 당산제가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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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570년에 뽕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을 ‘뽕골’에서 ‘상목동’으로 의역했다가 약 300년 전에 상을 향으로 개칭하여 ‘향목동’ 또는 ‘향목구미’라고도 하였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목처럼 되었으므로 상목골 또는 향막동, 향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향동리라 하여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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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여래입상. 고군면 향동리의 가련봉(佳連峰) 범바위에 있는 세 개의 굴 중 한 곳에 위치한 불상이다. 향동리 마애불은 금골산 마애여래좌상과 유사한 입지적 조건을 갖고 있으며 진도의 바다를 향해 위치해 있는데, 이와 같은 공통점은 진도군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 때문으로 보인다. 굴에는 현재도 구도자들이 머문 흔적이 있다. 향동리 마애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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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 향동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마을제사. 향동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9시에 마을 앞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당산제 혹은 망제(望祭)라고 한다. 언제부터 당산제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지내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지금까지 중단된 적은 없다고 한다.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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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명이 특이하게 황조(皇朝)여서 유래가 많다. 일설에 황혼락조(黃昏落照)가 아름다워서 황조(黃照)라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신빙성이 낮다고 한다. 마을을 성립한 성씨가 황성(皇城)김씨여서 동명에 ‘황(皇)’자를 따고 ‘조(朝)’자를 붙여서 미화시킨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18세기 이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화순 동복오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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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古郡面) 금계리, 의신면(義新面) 모도리(茅島里)·초사리를 중심으로 한 관광지. 회동관광지 내에는 신비의 바닷길, 뽕할머니 사당, 뽕할머니 동상, 전망대, 공연장, 피에르 랑디 기념공원, 가계해수욕장, 진도청소년수련관, 진도해양생태관, 전남지방 경찰청 수련원, 신석기시대의 유물, 모도 등이 있다. 국가 명승 제9호인 신비의 바닷길을 주요 관광 자원으로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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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 포구에 위치한 나루. 진도군 고군면 회동 포구에서 건너편에 있는 고군면 금호도(金湖島)로 건너가는 나루이다. 현재 진도군 고군면 금호도뿐 아니라 옆에 위치한 의신면 모도(茅島)와의 바닷길 2.8㎞도 사릿물 때 열리는데, 매년 영등제 행사가 열리면 이 곳 나룻배가 사람들을 모도까지 건네주기도 하지만 면(面)이 달라 이곳 나루에서는 금호도만 건너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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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행정리. 박일웅(朴一雄)이 동리를 창립하고 간 뒤에 마을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뜻에서 회동(回洞)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회동리가 속한 금계리는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계리, 회동리, 금호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호와 가계의 이름을 따서 금계리라 하여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첨찰산의 맥이 남서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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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 회동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군내면 소재지에서 의신면 방향으로 18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의 오른쪽에 회동마을이 위치한다. 유적은 마을에서 북쪽으로 1.2㎞ 정도 떨어져 있으며 가인봉(佳仁峰)[291.5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유물은 회청색경질, 적갈색경질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서쪽에는 상수원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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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3월 초 조수간만의 차로 회동마을과 모도 사이의 바다가 열릴 때 올리는 제의.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 회동마을에서는 진도군의 주도로 매년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개최하면서, 축제의 일환으로 마을 공동제사로 행해졌던 제의 양식인 영등제를 지낸다. 영등제는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사당에서 뽕할머니에게 제를 올리는 것이다. 한국의 농·어촌에서 일반적으로 봉사되는 풍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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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回洞里)에 있는 선착장. 회동선착장은 회동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회동은 원래 호동이었으나 호랑이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이 모도(茅島)로 피신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여 회동(回洞)이라 고쳐 불렀다. 회동선착장에서는 소규모 어선이 정박하거나 주변 해역에서 양식하는 물김을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회동선착장은 선착장 서쪽에 만들고 있는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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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에 있는 저수지. 1969년에 준공된 저수지이다. 저수지는 높이 6.5m, 둑길이 117m, 저수량 5만8200㎥로 만수면적이 3㏊에 달하며 유역면적이 174㏊에 달해 항시 물이 마르지 않는다. 유역 일대가 과거에는 목장으로 쓰였던 분지이다. 저수지는 주변 12㏊에 관개하며 진도읍과 의신면의 상수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