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에 있는 경주정씨 사적비군. 경주정씨로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 중방마을에 세거하기 시작한 정환 이후 정이경과 정우문의 사적과 효행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정환은 중방마을[속칭 방동]에 거주하기 시작한 경주정씨 입향조로서 그 가문적 위치를 기려 사적비를 세운 것이다. 정이경은 그 아버지 정훈을 이어 사실상 방동정씨의 터전을 닦은 공적을...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금석문. 조선 후기 명신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1646~1715]은 남구만(南九萬)과 박세채(朴世采)의 학문을 이었으며, 현종·숙종 대에 고위 관료로 활동하였다. 만년에 낙향하여 금곡에 태극정(太極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금곡리 옥천병자(琴谷里玉川屛字)는 그와 관련된 유적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김경세의 묘소. 김경세(金景世)[?~1636]는 본관이 김녕(金寧)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주부(主簿)에 이르렀다. 묘비에 따르면, 병자호란 때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와 함께 근왕병을 모집하여 의병 활동을 하다가 전사하였다. 김경세의 처 순흥안씨는 청군이 물러가자 남편의 시신을 찾아 돌아온 뒤 자결하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상의 묘. 김상(金尙)[1582~1653]은 경주(慶州)가 본관이고, 호는 임은(任隱)이다.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신척리에서 태어났으며, 사계 김장생의 문인이다. 1606년(선조 39) 문과에 급제한 이래 형조좌랑·강원도관찰사·승정원좌승지 등을 거쳐 1643년(인조 21)에는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자의 유허비. 김자(金磁)[1490~]는 고려 충신 상촌(桑村)김자수의 5대손으로 음성군 음성읍에서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로 입향하였다. 숭의전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한 후 낙향하여 후학양성에 매진하였고, 장월리에 정자를 건립하여 인근 유림과 교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에 있는 김종렬의 효행을 기리는 비. 김종렬(金鍾烈)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방은(芳隱)이다. 부모에게 효행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동네 노인들에게 여러 차례 주연을 베풀어 위로하였다. 이러한 행적을 기려 효행비를 세웠다. 1988년에 세워진 김종렬 효행사적비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 고수말에서 골방골로 이어지는...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필정의 신도비. 박필정(朴弼正)[1684~1756]은 숙종·영조 대에 걸쳐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계심(季心)이며, 호는 일휴(逸休)라 하였다. 28세에 명경과에 급제한 이후 성균관 전적 병조정랑 사간원 지평 한성부좌윤 등을 거쳐 가선대부에 올랐다가 1756년(영조 32)에 나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변신의 묘소. 변신(邊信)[1570~1643]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군실(君實)로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광해군 통치 때 낙향하여 지내던 중 인조반정 공신 이귀(李貴)의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후진 양성으로 만년을 보냈다. 변신의 묘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는 진천송씨 선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 송인(宋仁)[?~1126]은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서 태어났으며, 벼슬이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拓俊京)이 이끄는 난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난이 평정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추증되고 상산백(常山伯)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당 터. 서발한사당(舒發翰祠堂)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金庾信)과 그의 아들 김삼광(金三光)을 배향했던 사당이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기 전까지 서발한 김유신과 그의 어머니 만명부인 그리고 아내 지소부인(智炤夫人)의 목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1876년(고종 13)...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터. 소강정(小江亭) 터는 진천읍 신정리 소강정마을 백곡천 변에 있다. 마을 사람들이 유원지로 이용했던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에 있던 정자 터를 가리킨다. 백곡천의 옛 이름은 세금천으로, 이 세금천의 절벽 위에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이 정자를 세웠다고 전한다. 창건과 관련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경희의 묘소. 신경희(申景禧)[1561~1615]는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자는 언완(彦緩)이다. 신잡(申磼)의 아들이다. 1588년(선조 21) 음보로 임관되어 이듬해 정여립의 모반이 일어나자 그 일당인 선홍복을 체포함으로써 6품직에 발탁되었다. 1591년(선조 24) 제용감주부가 되고, 1593년(선조 2...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대구의 묘. 신대구(申大龜)[1745~1806]는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자는 자원(子元), 호는 한수재(寒秀齋)이다. 아버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신건(申睷)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동몽교관(童蒙敎官) 안중겸(安重謙)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증광시(增廣試)에 병과로 급제, 가주...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 중방마을에 위치한 신상우 추모비. 신상우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문박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학에 심취하였고 성년이 되어서는 성리학에 입문하여 주기론 연구에 전념하였다. 진천군 이월면 은구리 처가로 이주하였다가 덕산읍 산수리 중방동 효자촌으로 이주한 뒤, 신상우의 학풍을 알고 모여든 문하생이 100여 명에 달하였다. 1985년...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신중선의 묘. 신중선(辛中善)은 본관이 영산(靈山)이며, 부인은 청주이씨(淸州李氏) 청평군(淸平君) 이거이(李居易)의 딸이다. 신중선 묘는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통산마을에서 동덕제약 방향 포장도로로 약 200m를 가면 동쪽 산록에 위치하고 있다. 묘소는 높이 1.5m, 너비 2.5m, 길이 4.2m 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역민 구휼에 앞장선 안승갑의 공적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산 4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비는 월두형으로 40×12×103㎝의 크기이다. 앞면에 ‘안승갑 시혜기념비(安承甲 施惠紀念碑)’라 쓰여 있고, 좌우에 업적을 4언 8구의 시로 읊고 있다. 비문은 전면에 ‘안승갑 시혜기념비’라 적혀 있으며, 그 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하곤의 고택이 있던 터. 완위각(宛委閣) 터는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위치하며,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이며 장서가였던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 거주하였던 고택임과 동시에, 조선 후기 4대 장서각 중 하나였던 완위각(만권루)이 자리하였던 곳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유석의 묘소. 유석(兪晳)은 진천군수 유희증(兪希曾)의 아들로 1625년(인조 2) 진천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백이며,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어려서부터 글과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유석 묘는 진천군 덕산면 석장리에 위치하였으나, 중부 신도시 개발 사업으로 2009년 진천읍 문봉리 산19-16번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덕산면장 이계창의 선정비. 이계창(李啓昌)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진천군 덕산면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계창은 1922년 덕산면 석장리 조광호가 사유지 22,070㎡를 희사해 옥동초등학교를 개교하였을 당시 면내 유지들로부터 1만여 원을 모금하였다. 이계창 선정비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덕산...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부의 묘. 이부(李阜)[1482~1551]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자릉(子陵), 호는 행원(杏園)이다. 사림파로서 조광조(趙光祖)와 교유하였고, 1519년(중종 14) 현량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병조좌랑·사간원정언을 역임하다가 병을 얻어 사직한 뒤 고향인 진천으로 낙향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 선옥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행가 이용위의 선행비. 이용위는 자선 선행가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계(君季)로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가세가 넉넉하여 마을의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돕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 난민을 여러 차례 구제하였기 때문에 그의 시혜사실을 기려 1924년 선행비를 세웠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지역민에게 선정을 베푼 이종천의 공적비. 이종천(李鍾千)[1922~1985]은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나 해방 후 덕산읍의회의원 및 진천향교장의(鎭川鄕校掌議) 등을 역임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종천은 덕산읍 석장리 선옥마을의 도로가 협소하여 이용하기 불편하자 도로 개선에 앞장섰다. 그의 사후 7개 마을 주...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발의 처 고령신씨의 묘. 조선 후기 문신인 이시발의 부인 고령신씨 묘로 이시발의 묘소 건너편에 위치한다. 고령신씨[1590-1661]는 승지 신응구(申應榘)의 딸로 이시발과 결혼하여 전처 여흥민씨(驪興閔氏) 소생의 자녀들과 함께 자녀들을 키웠다. 슬하에는 조선 현종 때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경휘와 좌의정 이경억이 있...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한문의 묘소. 조선 후기의 효자 정한문(鄭漢文)은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고 형에 대한 예의가 남달랐다. 밥을 먹을 때 형이 함께 있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어머니가 담질이 있어 너구리를 구하자 시냇가에 가서 울부짖으니 우연히도 얼음이 풀려 고기를 얻어 병을 낫게 하였다고 전한다. 충청...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터. 죽계사(竹溪祠)는 1851년(철종 2)에 건립하여 김유신(金庾信)[595~673]과 조감(趙感)[1604~1689]의 위패를 배향하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현재 조감의 위패는 만뢰사(萬賴祠), 김유신의 위패는 진천 길상사(吉祥祠)에 배향되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발의 신도비. 이시발[1569~1626]은 인조 대의 문신으로, 1596년(선조 29)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북변(北邊)을 방비하기 위해 함경감사로서 포대와 성곽을 보수하였다.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체찰부사(體察副使)로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남한산성의 축성을 감독하다가 순직...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집의 묘갈. 이집(李輯)[1670~1727]은 본관이 고성(固城)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변을 맛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고 한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삼년상을 치르면서 날마다 죽만 먹고 슬프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조선 개국공신 이거이 일가의 공적비. 이거이(李居易)의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낙천, 호는 청허당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정의 아들로,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1393년(태조 2) 우산기상시를 거쳐 판한성부사·문화좌정승에 오르고, 1402년(태종 2) 영사평부사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아들 이저(李佇)...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선정비군. 총 17개 비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현감 신현(申俔)의 선정비로 임진왜란 직후인 1589년에 건립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산41-100번지 진천향토민속자료전시관 앞 화단에 전시되어 있다.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앞 선정비군은 총 17개이다. 9번째 비석은 가첨석[지붕돌]을 얹은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