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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진안 출신의 종교인. 진안 출신의 천주교 신부로써 제5대 전주 교구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재덕(金在德)[1920~1988]은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에서 태어났다. 1935년 진안 마령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를 거쳐 동성 상업 학교 을조에 진학하였다. 현 동성 고등학교의 전신인 동성 상업 학교는 갑조(甲組)와 을조(乙組)로 편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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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진(國珍).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鏡)의 후손으로 직제학 김작(金綽)의 6대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진사 김신경(金信經), 증조할아버지는 김택(金澤)이다. 할아버지는 김윤적(金允迪), 아버지는 통정 김윤보(金潤寶)이며 외할아버지는 이광태이다. 장인은 참봉 이홍이다. 김효남(金孝南)[?~1636]은 진안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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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지강(芝岡). 문덕규(文德奎)[?~?]는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서 태어났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껏 봉양하였고, 이웃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돈과 곡식을 나누어 주어 구휼하였다. 1895년(고종 32)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많은 사람들을 모집하여 동학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군사들에게 군량을 대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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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진안 지역의 효부. 본관은 밀양(密陽). 유현(儒賢) 허채(許採)의 부인이며 아버지는 판관(判官)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종혁(朴宗赫)이다. 박연순(朴軟順)[1882~1968]은 총명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덕성 또한 풍후하고 인심 좋기로 진안군 내에서 정평이 있었다. 또한 시어머니에게 효성이 남달리 지극하여 효부로도 유명하다. 『원용담 군지(元龍潭郡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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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의숙(宜叔), 호는 미계(美溪). 양렬공(襄烈公) 신이충(愼以衷)의 7대손이다. 신의련(愼義連)[1581~?]은 『진안지』에 의하면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릴 때부터 병든 아버지를 모셨다. 임진왜란 때에도 병든 아버지 곁에서 간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왜적이 쳐들어와 아버지를 죽이려 하였다. 신의련은 자기 몸으로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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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재민(才玟), 호는 미산(美山). 증조할아버지는 신종각(愼宗珏), 아버지는 신달성(愼達晟)이고 부인은 최만엽(崔萬燁)의 딸이다. 신학범(愼學範)[1901~1969]은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병환이 들자 온갖 탕약으로 간호를 하였으며, 아버지가 죽자 예의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으며 3년 동안 시묘하였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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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무신.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원성모의 큰 며느리 구씨가 병자호란을 피해 진안군 상전면에 은거하며 산 이후부터이다. 후에 진안 유림들이 원성모의 내력을 듣고 충절 3부자를 영모사에 배향했다. 본관은 원주(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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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자익(子益), 호는 용강(龍岡). 사육신 유응부(兪應孚)의 8대손이다. 유대겸(兪大謙)[?~?]은 진안군 용담면에서 태어났다. 7세에 『효경』에 정통하였다. 『진안지』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들어 위독하자 하늘에 빌며 변을 맛보아 약을 택하고 손가락을 찍어 피를 먹이고 허벅지 살을 떼어 먹이니 5일간 연명하였다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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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담 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헌숙(憲叔), 호는 동정(桐亭). 고려 시대 성리학을 익힌 윤택(尹澤)의 손자이다. 5대조 윤량비(尹良庇)는 호장 출신이었고 4대조 윤해(尹諧)는 과거에 합격하여 가문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버지는 윤귀생(尹龜生)이다. 아들은 윤회(尹淮)이다. 윤소종(尹紹宗)[1345~1393]은 1360년(공민왕 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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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 만불탑을 건립한 종교인.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이경의, 자는 갑룡, 호는 석정. 효령 대군의 16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성우(李成宇)이고 어머니는 능주 구씨(綾州具氏)이다. 이갑룡(李甲龍)[1860~1957]은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났다. 25세 때인 1885년(고종 25)에 마이산에 입산하여 이곳에서 솔잎 등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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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효자. 성주(星州). 자는 덕인(德仁), 호는 원사재(源沙齋). 아버지는 이우춘(李佑春)이고 동곡(桐谷) 이조(李晁)의 9대손이다. 이광범(李光範)[1836~1902]은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위독하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 입에 넣어 회생케 하여 수일간 목숨을 연명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또한 아버지가 죽자 묘에서 3년 동안 시묘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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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선일(善日), 호는 소능(小能). 동곡(桐谷) 이조(李晁)의 10대손이며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광범(李光範)이다. 이도문(李道文)[1861~1930]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지극하게 섬겼다. 글을 좋아하여 최흠재와 교유하면서 학문을 논하고 남의 집 비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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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노암(老巖). 임타(林㙐)의 증손자이고 임만유(林晩儒)의 손자이다. 임윤(林潤)의 아들이다. 동춘당(同春堂)송준길(宋浚吉)의 손자 사위이다. 임취업(林就業)[1690~1756]은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평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인 임타가 진안군 상전면 와은리에 내려와 은거하며 지은 만화정(萬花亭)에서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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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진안 출신 효자. 효행(孝行)으로 1870년(고종 7)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고 1873년(고종 10)에 정려(旌閭)가 내리었다. 정려(旌閭)는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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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경지(敬之), 호는 학계(鶴溪). 대호군 전극례(全克醴)의 후손이며 효자 전성대(全聖大)의 아들이다. 전경록(全景祿)[1716~1799]의 벼슬이 참봉,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진안지』에 의하면,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변을 맛보다 병증을 알아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천수를 누리게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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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진안 출신의 예술인. 본관은 천안(天安). 아버지는 전낙현(全樂玄)이고 어머니는 장성녀(張性女)이다. 전석봉(全錫奉)[1919~?]은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장구의 매력에 끌려 마을 굿판에 뛰어 들었으며, 본격적인 기능 습득은 24세 때 용담면 최상근 문하에서 익혔다. 1949년 전국 농악 경연대회 전라북도 대표단 수장구로 선발되어 출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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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진안 출신의 종교인. 법명(法名)은 음광(飮光), 법호(法號)는 혜산(惠山). 전세권(全世權)[1909~1960]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24년 어머니 전삼삼(田參參)의 인도로 원불교에 귀의하였다. 20여 년간 원불교 교무로 봉직하면서 원불교의 교세 창달과 산업 발전, 각종 간행물의 편집 발행, 그리고 지역 사회 문화 발전에 주력했다. 원불교 총부의 건설 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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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송파(松波). 호조 판서 전극례(全克禮)의 16대손이다. 전인권(全麟權)[1890~1968]은 진안군 마령면 오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학식이 두터웠으며 어머니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생전보다 정성을 더하여 시묘 살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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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하남(河南). 증 병조 판서 정억강의 후손이다. 정연성(鄭連成)[?~?]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인자하고 후덕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며 가족 및 친족들과도 화목하였다. 아버지가 병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년이나 생명을 연장하였다. 그 후 아버지가 죽자 3년 동안 시묘 살이를 하였다. 효행은 『진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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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졸헌(拙軒). 정재효(丁載孝)[?~?]는 일찍이 성담 송환기(宋煥箕)를 섬겼다. 문학과 효행이 탁월하여 선생이 졸헌(拙軒)이라는 호를 내렸다. 부모에 대한 효행(孝行)이 지극하였다. 1906년(고종 10년)에 명정되었다. 1906년 9품 종사랑(從仕郞)을 증직(贈職) 받았으며,이듬해에 정려(旌閭)를 받았다. 정려(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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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수(在樹), 호는 난파(蘭坡). 충렬공 정인조(鄭仁租)의 후손이다. 정태성(鄭泰成)[?~?]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정태성 효자비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자 물고기를 잡아서 부친을 정성껏 봉양하였다. 18세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10년 동안 고생하다가 위독하게 되자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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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진안 출신의 종교인. 세례명은 요한이다. 선친은 원래 충청도에서 살았으나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진안으로 이주하여 자신의 집에 공소를 설립하고 미사 집전을 했다. 최민순(崔玟順)[1912~1975]은 진안군 진안읍 군하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진안 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후 대구로 유학하여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사제 수업을 마치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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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영의정 황희(黃喜)의 후손으로 세조 때 좌익공신 영의정 남원 부원군 황수신(黃守身)의 후예이다. 황국주(黃國柱)[?~?]는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세운 무신으로 문장이나 문필이 뛰어났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에서 왜적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침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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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장수(長水). 호는 송재(松齋). 방촌(蔯村)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교관 현령 황동규(黃東奎)이다. 황민찬(黃玟燦)[1876~1905]은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중리에서 태어났다. 「증 교관 황민찬 정려기(贈敎官黃玟燦旌閭記)」에 의하면 황민찬은 품성이 순하고 후덕하였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에 우애하고 배우기를 좋아 했다.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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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대규(大圭). 방촌희(哤村喜)의 후손이며 황인수(黃仁洙)의 아들이다. 황요(黃橈)[1843~1877]는 진안군 백운면 봉서리에서 태어났다. 『장수 황씨 족보 을해보(長水黃氏族譜乙亥譜)』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학문도 깊어 지역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아버지가 위중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