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구철조(具哲祖)는 본관이 능성(綾城)이며, 오위사과(五衛司果)를 지낸 관료 출신이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제천의 호좌의진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원주 수성장으로 임명되어 도망간 원주군수를 대신하여 향리 조직을 통제하고 원주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면서 의병 모집과 군수 물자의 공급을 담당하...
-
근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권재중(權在重)[1853~1919]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이 영남 지역의 의병을 규합하기 위하여 서상렬(徐相烈)을 소모사[소토사]로 파견하였을 때 인연을 맺은 후 줄곧 그의 종사관으로서 종군하였다. 호좌의진이 영남 일곱 고을의 의병을 예천에서 규합하여 태봉의 일본군 기지를 공격할 때 참여하였으며, 조령의 일본군 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용준(金龍俊)은 경기도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의 의병으로 포군으로 활약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춘영(李春永), 김백선(金伯善) 등이 지평의 포군을 기반으로 의병을 처음 일으켰을 때 참가하였다. 나중에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던 가흥, 수안보 등을 공략하기 위한...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일(仲一), 호는 복암(復菴). 김화식(金華植)[1866~?]은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와 유인석(柳麟錫)에게 학문을 배웠다. 유인석이 주도하는 호좌의진이 일어날 때는 고향인 보령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수백 리 길을 달려와 의진에 합류하였다. 단발령 이후에 장담의 선비들이 망명...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영삼(靈三·英三), 호는 모양(慕陽). 신지수(申芝秀)[1854~1904]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제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특히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이 붕괴되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영월에서 출범할 때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신지수가 제천 인근 지역에서 모아 온...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안성해(安成海)는 권관(權管) 출신의 전직 관료로,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의병으로 소모된 농민들을 훈련시키는 조련장을 하다가, 곧 우군장을 맡았다. 지역에서 개화 정책을 독려하던 충주관찰부를 공략하고 호좌의진이 기세를 올릴 때 참가하였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성(呂聲), 호는 퇴앙(退央). 아들로 의병 운동을 펼친 안승우(安承禹)가 있다. 안종응(安鍾應)[1845~1906]은 경기도 지평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에 두루 뛰어난 학자였으며, 척사론을 주장하는 화서학파와 일찍부터 교류하였다. 단발령 이후 지평 고을에서 이춘영(李春永)과 김백선(金伯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원평(原平), 호는 도진(桃津). 유치경(兪致敬)[1848~1901]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다. 장담에서 개최된 유중교의 강학에 참석하면서 문하에 출입하였다. 유중교의 시문집인 『성재집(省齋集)』 발간에 앞장섰다. 1895년(고종 32)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신석원·조두...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유해붕(柳海鵬)은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전직 관료 출신으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군기감, 또는 기계 감독을 맡아 기존의 각궁(角弓)을 소뇌[弩弓]로 개조하는 등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 힘쓴 결과 많은 성과를 올려 찬사를 들었다. 을미 의병 당시 호좌의진에서 활약하던 원용팔(元...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병선(李秉善)[?~1896]은 글 읽던 선비 출신으로, 본관이나 생년은 알 수 없다. 단발령이 내린 후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서 활약하였다.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충주성을 공략하는 등 기세를 올리던 호좌의진이 관군의 공세 앞에 무너져 근거지로 삼던 제천마저 빼앗긴...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정병철(鄭炳喆)의 자는 수봉(壽鳳)이다. 평민 출신의 의병으로 능력을 크게 인정받은 경우이다. 단발령 이후에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방에 소토장으로 파견한 서상렬(徐相烈)의 휘하에서 중군 참모로 활동하였다. 좌부장(左副長)으로 제천 본진과 연락을 담당하였고, 조령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유격장 이강년(李康秊) 휘하에서 부총(副總...
-
개항기 제천 이필희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해사(海史). 조준교(趙駿敎)[?~1896]는 청풍 출신으로 담론을 잘하고 글도 많이 읽은 호걸풍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에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의 포군을 바탕으로 구성된 의병 부대가 제천으로 들어와서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추대하면서 새 출발하게...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조후룡(趙後龍)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의 대표적 평민 출신 의병이다. 중군 안승우(安承禹) 친척 집안의 하인이었다고 하는데, 수안보 전투에서 이춘영(李春永)이 전사하였을 때 배시강과 함께 시신을 운구해 왔다. 후에 안승우의 지시를 빙자하여 김백선(金伯善)의 군사가 경작하던 논을 빼앗아 중군장 안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