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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성리에 걸쳐 있는 산. 가은산(加隱山)은 간신히 몸만 피난한다는 뜻으로, 달리 가음산(加陰山)이라고도 표기한다. 한편 가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내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고할미가 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온 능선과 골짜기를 샅샅이 찾아다니다가 아흔아홉 번째 골짜기에서 반지를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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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으로 아들 강정환(姜鼎煥) 역시 효행으로 알려졌다. 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가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함께 기록된 강재망(姜宰望)은 형제로 짐작된다. 강재무(姜宰武)와 관련한 기록은 『여지도서』에 “부친이 병으로 위급하니 다시 그 손가락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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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효자로 알려진 강재무(姜宰武)이다. 강정환(姜鼎煥)과 관련한 기록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재무(宰武)의 아들이다. 모친이 병으로 기절하니 다시 손가락을 잘라 회생시켰다. 숙묘조 기해[己亥]에 복호(復戶)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복호(復戶)는 특정한 대상자에게 호(戶)의 조세(租稅)나 부역(賦役)을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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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와 구룡리를 연결하는 다리. 『여지도서(輿地圖書)』[1765년]에서는 “고교천은 청풍부 치소의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제천현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나와서 북진으로 들어온다. 옛날에는 돌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지고 단지 명칭만 남아 있다. 고교천은 북쪽으로 8리에 있다. 백석동에서 발원하여 나온다”라고 하였다. 이보다 이른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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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 북쪽에서 발원하여 월굴리 높은다리 밑을 지나 청풍면 북진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옛날에 높은 다리[고교]가 있었던 하천이라 하여 고교천(高橋川)이라고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4권 청풍군에 “고교천(高橋川)이 군 북쪽 8리에 있다. 근원이 제천현 경계에서 나와서 북진(北津)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고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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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정동(正東)에 위치한 고명산[574m]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삼거리[일명 세거리]·증계리(曾溪里)·한천리(寒泉里)·송현리(松峴里)와 백양동(白陽洞) 일부를 통합하여 읍내면 고명리가 되었다. 1940년 제천읍에 편입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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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와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에 걸쳐 있는 산. 봉우리 꼭대기의 바위 형세가 거북과 같아 구담봉 또는 구봉이라 하였다.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구담(龜潭)은 청풍부 치소에서 동쪽으로 30리에 있으며, 단양과 경계이다. 금석을 깎아지른 듯이 웅장하게 우뚝 솟았고, 남쪽의 언덕 아래는 한 조각의 땅도 없으니 가히 들어 올렸다고 할 만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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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리를 연결하는 고개. 구륵재는 백운산과 구학산 주능선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제천시가 접하고 있다. 구륵재 고갯마루로 이어진 소로에 2차선 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고개의 명칭은 별칭이 너무나 많아서 혼돈을 초래하고 있다. 고갯마루에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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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청풍면 장선리, 봉양읍 구곡리에 걸쳐 있는 산. 국사봉(國思峰)은 조선 시대 충신 유안례(劉安禮)[1426~1506]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즉 영월에 유배된 단종이 승하하자 유안례는 지금의 금성면 활산리 안살미에 살면서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동쪽 영월을 향하여 절을 하며 의리와 충성을 다하였다 한다. 이로 인해 국사봉(國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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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북진리와 교리에 걸쳐 있는 산. 금병산(錦屛山)은 한벽루 북쪽으로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단 병풍을 친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 병풍산(屛風山), 병산(屛山)이라고도 불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금병산은 청풍부 북쪽으로 강 건너 서로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한 떨기의 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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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연곡리와 읍리에 걸쳐 있는 산. 청풍부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산이라 하였다. 남산은 청풍부 주산의 진산이자 안산인 명산이며 사직단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남산은 곧 청풍부의 안산으로 소백산에서 온 산맥으로 비봉산 동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산은 높이 187.6m로 북북서쪽에 대덕산[58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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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원월리와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를 연결하는 고개. 다릿재는 박달재와 더불어 제천에서 충주로 통하는 관로에 위치한 대표적인 고개였다. 박달재와 천등산의 안부에 국도 38호선이 개설되어 많은 차량이 이 길을 왕래하였는데, 2007년 국도 38호선의 직선화 사업이 진행되어 다릿재 터널이 개통되면서 다릿재는 본래의 고개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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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와 금성면 월굴리의 경계에 있는 산. 『신증동국여지승람』 청풍군에 "삼방산이 군의 북쪽 3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대덕산(大德山)은 일명 삼방산(三方山)이라 한다. 청풍부(淸風府)의 치소에서 서북쪽으로 강 건너 몇 리쯤에 있다. 위에는 옛 절터가 있는데, 그 계단의 초석이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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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법정동.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대랑동리(大朗洞里)는 관문에서 거리가 10리이며, 편호는 26호에 남자가 43명에 여자는 71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에는 달리 하여 대랑골[大郞谷], 대랑동(大郞洞)으로 불리었다. 대랑동의 본동인 원알은 역원 마을을 뜻하는 원말에서 변한 이름으로 제천에서 단양으로 통하던 역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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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16세기 이전까지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지역에 있던 특별 행정 구역. 향(鄕)·부곡(部曲)·소(所)·처(處)·장(莊) 등의 지방 특별 행정 구역은 기원이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덕산향(德山鄕)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비록 조선 전기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지만 그 연원은 고려 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소의 주민은 특정 공물을 생산하는 공장(工匠)의 성격이 강하고,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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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창고 터.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에 둔창 터가 있다. 오늘날 ‘둔창 터’는 마을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곳에 고려 시대에 큰 창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 고려 시대에 군기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둔창 터[屯倉垈]는 도곡리 한삼포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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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옛날에 제천향교 뒷산 독순봉에서 학 두 마리가 날아오다가 한 마리는 학다리에 떨어져 죽고, 한 마리는 바람부리 서쪽에 있는 학들에 떨어져 죽었다 전하는데, 학들 동쪽의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自作里)를 편입하면서 학의 머리 쪽이 되므로 두학(頭鶴)이라 하였다. 학들은 두루미 서식처로 작은황새골, 큰황새골, 오리골 등의 지명이 전한다.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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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도기리와 단양군 단성면 벌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忠原縣) 산천조에는 “모녀현(毛女峴)은 충원현의 동쪽 80리에 있다. 대미산(帶美山)에서 나온다. 전해오는 말에 신녀(神女)가 음식을 먹지 않고 옷을 입지도 않았으며, 전신에 털이 나서 매우 길었는데, 산등성이를 넘고서 산을 넘는다고 한다[毛女峴在東八十里 帶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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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유적에서 수습되는 조선 시대 기와편, 도자기편 등을 볼 때 조선 전기에 창건되어 현재까지 법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유물이 다수인 점을 고려할 때 무암사가 번창했던 시기는 조선 시대로 여겨진다. 무암사에 대한 기록으로는 『신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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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에 걸쳐 있는 산. 일명 ‘문수산’으로 불리는 문수봉(文繡峰)은 문헌을 통해 지명의 유래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남쪽에 연결되어 있는 대미산(大彌山)[1,115m]의 존재를 통해 불교 신앙, 즉 문수보살(文殊菩薩)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도 있다. 문수봉은 월악산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최고봉으로 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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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 청풍호에 잠긴 금병산의 석회암 동굴. 『여지도서(輿地圖書)』·『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호서읍지(湖西邑誌)』에 “수혈(水穴)은 병산 아래 있다. 동쪽의 풍혈에서 100여 보 거리에 이어진 절벽 아래 구멍이 있는 곳으로 샘물이 솟아 나오는데, 그 맛은 매우 차다. 혹은 풍혈과 상통한다고 말한다.”라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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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 청풍호에 잠긴 금병산의 석회암 동굴. 금병산에 위치한 동굴로 밖으로 바람이 불어 나와 ‘바람굴[일명 풍혈(風穴)]’이라고 불렀다. 입구에는 조선 초 학자 정인지(鄭麟趾)가 새긴 것으로 전해지는 ‘풍암(風岩)’ 이라는 글자가 초서체로 각자되어 있어 바람과 관련된 지명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굴은 청풍강 청초호(靑草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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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모정리에 걸쳐 있는 산. 박달산(朴達山)의 박달은 밝음, 새벽, 빛을 뜻하는 밝달에서 유래된 낱말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박달재에서 따온 명칭으로 보아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사(高麗史)』에 이미 박달현(朴達峴)에서 최원세(崔元世)와 김취려(金就礪)[?~1234]가 거란병을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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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격전지. 1216년(고종 3)에 거란 왕자가 대요수국 왕이라 자칭함에 따라 몽고군에게 쫓기게 된 거란대군 10만 명이 내침을 하였다. 1217년(고종 4) 7월 고려군은 김취려(金就礪) 장군의 휘하에 박달재의 협곡과 고갯마루의 지형을 이용한 전략으로 적군을 협공으로 퇴각시켰다. 이후 1258년(고종 45)에 몽고군이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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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의 효자. 박시산(朴時山)은 영조 대 사람으로 『제천군읍지(堤川郡邑誌)』에 효열로 널리 알려진 박전 등과 함께 관련 기록이 간단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박시산은 양인(良人)이다. 호랑이가 그 집에 들어와 아버지를 물어 상처 입히니 시산이 몽둥이로 호랑이를 때리고 도끼로 머리를 부수니 곧 호랑이가 죽었다. 부친은 치료하여 죽지 않았다. 영조 7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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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박양한(朴良漢)과 박양우(朴良遇)의 아버지는 숙종 대의 문인 박수검(朴守儉)[1629~1698]이다. 박수검은 조석윤(趙錫胤)과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의 폐출을 보고 벼슬을 버린 뒤 제천의 임호(林湖)로 내려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박양한은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장으로 안무사에 제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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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정숙(靜淑).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을 보살펴 달라는 문종의 고명(顧命)을 받았던 충정공(忠貞公) 박심문(朴審問)[?~1456]이 6대조이다. 박전(朴瀍)[1599~?]의 효행에 대해서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제천군읍지(堤川郡邑誌)』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손가락을 끊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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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백련사는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증명할 만한 유물이나 문헌 기록은 없다. 사찰 내에서 수습되는 유물로 보아 조선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감악산에 위치한다. 가파른 자락에 높은 석축을 쌓아 사역을 조성하였는데, 경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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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외적의 침입 등 변경 지역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 정부에 전하는 통신 수단으로 낮에는 횃불[烽], 밤에는 연기[燧]를 이용했다. 조선 시대 봉수는 위치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연변 봉수(沿邊 烽燧), 내지 봉수(內地 烽燧)로 나뉜다. 경봉수는 서울 목멱산 봉수를 말하고, 국경이나 해안 근처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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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자작동의 갑산과 가창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두학동과 고명동을 거쳐 장평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두학동에 위치한 사계(沙溪)는 조선 시대부터 사용되던 명칭인데, 현재는 장평천이라 불리고 있다. 장평천 이전에는 두학천이라고 불렸는데, 두학동에서부터 시작하여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지방 하천인 장평천은 제천시 두학동에서 시작하여 봉양읍 장평리까지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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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서창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창고 터. 조선 시대 청풍군에 있었던 관창(官倉) 중 하나인 서창은 『여지도서(輿地圖書)』,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 「청풍부팔면지도」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서창은 청풍에서 충주로 통하는 지름길에 있었으며, 조선 시대에 죽령대로와 연계한 관로였다. 특히 서창은 강변에 위치하여 한강으로 수운한 세곡을 보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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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강제동과 금성면 동막리에 걸쳐 있는 산. 삼국 시대에 축조한 성산성(城山城)이 있어 성산(城山)이라 하였다. 1872년 제작된 고지도에는 고소성(姑蘇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곽이 테뫼식이므로 퇴미산[일명 태미산]이라고도 하고, 호명산에서 이어진 산맥이 성산에 응하여 지맥이 끝나므로 말응달산이라고도 한다. 말응달산은 멍달산을 거쳐 멍달이로 변하였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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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절터.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 송학산의 대덕산성 안쪽에 위치한 절터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소악사재현북십오리대덕산(小岳寺在縣北十五里大德山)’이라는 기록과 절터 입구의 암벽에 1685년(숙종 11)에 새겨진 ‘대덕산소악사불량전답입속치박□□강희이십사년을축칠월서(大德山小岳寺佛粮田畓入屬置薄□□康熙二十四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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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와 백운면 모정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 말 제천현 근남면에 속한 소시랑리(小始朗里) 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소시랑(小始朗)의 ‘시랑(始朗)’이 ‘시랑(侍郎)’으로 바뀌어 표기된 것이다. 이외에도 ‘소(蘇)’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시랑(侍郞)’ 벼슬을 하여 생긴 지명이라는 말도 전한다. 하지만 ‘소시랑’은 ‘쇠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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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100개의 논에서 연원한 월백리(越百里), 본백리(本百里) 등 여러 마을을 통합하면서 ‘새 신(新)’자와 ‘일백 백(百)’자를 써서 신백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월백리·본백리·관전리(官前里)를 통합하여 읍내면 신백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신백리가 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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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법정동. 마을 북쪽에 있는 시루봉[657m]이 마치 시루를 엎어 놓은 반월 형국이고 중담 동쪽 마을 뒷산도 반월 형국이며, 대원대학 입구에 있는 동무뿌리산 또한 반월 형국이므로 새로 뜨는 초승달에 비유하여 신월이라 하였다. ‘새 신(新)’자의 뜻을 빌려 새월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제천군 현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진리(上陳里)·하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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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경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실리곡리(實利谷里) [실리실]’로 수록되어 있으며 『한국지명총람』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관한 내용만 있을 뿐 지명의 유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실려 있지 않다. 다만 1993년 실리곡리(實利谷里) 입구에 세운 효자 김수명(金秀命)과 의사 김상한(金商翰)의 숭모비에 “우리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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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한약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시장. 약령시는 한약재의 유통과 관련하여 보건·의료적 기능과 지역 경제를 이끌어 온 원동력으로서 경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세기 전반에 새로운 약령시가 다수 개설되었는데, 이미 조선 효종 때 개설되었다가 성쇠를 계속한 대구, 원주, 전주를 비롯하여 제천, 개성, 평양, 진주, 대전, 함흥 등에 약령시가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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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충주댐 수몰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황강역(黃剛驛) 터. 고려 시대 평구도에 속한 황강역은 조선 시대 황강역(黃江驛)으로 변천하였으며, 황강도(黃江道)에서 독립적으로 관할한 역은 6개소로 제천, 단양, 영춘 일대를 관장하였다. 황강역은 경상도 및 충청도와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역으로 발전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연원도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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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에 대한 사전적 개념을 보면, 열녀는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죽는 여자 및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强暴者)[몹시 우악스럽고 사나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에 항거하는 미혼녀라고 하였고, 열부(烈婦)는 기혼녀로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는 부인 및 목숨을 끊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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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걸쳐 있는 산. 왕박산(王朴山)은 왕씨에서 박씨로 성을 고친 의흥 박씨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의흥박씨세보』에 따르면 시조 박을규(朴乙規)는 본래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 상서를 지낸 인물인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멸족의 화를 피해 단양의 영춘 차의곡[지금의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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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아랫소새에 있는 바위인 왕암(旺巖)에서 따 온 이름이다. 왕암은 1894년 시작된 갑오개혁 때 세 쪽으로 갈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각각 왕바위[王巖], 마고할미바위[麻姑巖], 염불바위[念佛巖]로 불린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묵지리(墨只里)·소사리(所沙里)·한의동(閑儀洞)을 통합하여 왕암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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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신월동·왕암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용두동 관할 법정동인 신월동 하소천 변에 있는 용두암(龍頭巖)에서 따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 지역으로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행정동으로 신설되어 법정동인 하소동·신월동을 관할하였고, 1983년 법정동인 왕암동을 편입하여 관할한 이래 오늘에 이른다. 동쪽에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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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원대리에 있던 고려 시대~조선 시대 권일원(權一院) 터. 권일원이 있었던 곳은 단양과 청풍의 접경 지역으로, 계란치[230m]에서 서쪽 청풍강과 함께 육로의 분기점으로 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죽령대로는 수산역과 황강역을 경유하여 충주로 통하는 길목으로 지금의 국도 36호선이 통행하는 큰길가에 목조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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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 수산리에 걸쳐 있는 월악산의 주봉.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건설부 고시 제565호로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동식물과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연 문화유산이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리었으며 소사(小祀)를 지냈다. 풍수상 음기가 강한 여성 산이라 한다. 주봉인 월악영봉(月岳靈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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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읍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창(邑倉) 터. 남한강 상류의 청풍은 수운의 물물교역이 발전한 고을로 관내 읍창(邑倉), 남창(南倉), 북창(北倉), 서창(西倉) 등지에 세곡과 환곡을 조적(糶糴)하면서 뱃길로 수운하였다. 특히 청풍치소의 읍창과 남창에서는 관아에서 소용되는 각종 공물과 세곡 등을 다용도로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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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천 출신의 효자와 그의 처. 이시진(李時振)의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군수(郡守) 이대수(李大遂)이며, 그의 처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의 외손녀로 선산 부사(善山府使)를 지낸 윤면(尹勉)의 딸이다. 이시진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12세 때 부친이 병석에 눕자 연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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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법정동. 자작동(自作洞)은 스스로 가업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교통이 불편한 시대 산간 오지에서 임야를 개간하여 생활한다는 자활의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 영춘군 어상천면 자작리 지역으로 1914년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가 되었고, 1987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제천시 자작동이 되었다. 1998년 동현동 관할이 되었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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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신동과 산곡동, 봉양읍 장평리와 삼거리에 걸쳐 있는 산. 제비랑산(齊飛郞山)에는 제비왕이 피난을 위해 쌓았다는 산성이 있다. 정상부인 형제봉 고지는 천혜의 자연 망대이다. 제비랑산 서쪽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는 제천 시내를 비롯하여 원주, 충주, 청풍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제비랑산은 상고 시대에 제비왕이 처음으로 성곽을 축성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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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 서화첩은 1802~1803년 청풍 부사 안숙(安叔)이 청풍, 제천 등 4군의 명승을 유람하면서 읊은 시문과 화가 기야(箕埜) 이방운(李昉運)[1761~1815]이 그린 그림으로 구성된 서화첩이다. 표제에서 거론된 ‘사군(四郡)’이란 충청북도 내 청풍·제천·단양·영춘을 가리키며, ‘강산(江山)’이란 제천 지역 안에 흩어져 있는 명승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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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은 제천현과 청풍군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특수 행정 구역이 일부 남아 있었고, 역원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 조선 전기에 이미 지배 집단인 토성이 약화되고 새로운 성씨 집단이 동성 마을을 만들며 주도권을 행사했다. 농업 기반은 약했으며 밭농사를 주로 했는데, 경작지에 비해 많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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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주포리와 장평리를 연결하는 고개. 주폿고개는 고개가 위치한 주포리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한국지명총람』에는 “주폿고개[장터고개·기너미고개·개너밋재]는 주포리(周浦里)에서 장평리로 가는 고개, 장평 사람들은 주폿고개라고 부르며, 주로 주포리에 주포장이 서므로 장터고개, 또는 윤조원(尹調元)[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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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단양군 영춘면 하리를 연결하는 일반 지방도. 지방도 522호선 제천~영춘 간 총연장은 35.4㎞이며 2차로 31.7㎞와 4차로 3.7㎞의 포장도로로 되어 있다. 제천시에서 단양군과 경계로 삼은 갑산재까지의 연장 10.1㎞는 2차로 6.4㎞와 4차로 3.7㎞로 개설하였다. 제천 동부 지역 갑산과 가창산 등지의 석회석 채석장 산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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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동양 사회에서는 유교의 도덕규범 가운데 특히 ‘충’과 ‘효(孝)’의 실천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충’이라는 의미는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본래는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을 다하는 정신 자세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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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산수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집터인 양택(陽宅)과 묘지인 음택(陰宅)으로 사용하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최적의 조건으로 삼는다. 즉 흘러가는 물줄기에 넓은 들판과 산세의 지맥이 끊어지지 않고 모래흙에 찬샘이 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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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 출신이거나 제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효는 동양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사상이다. 공자(孔子)는 올바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인(仁)을 주장하였는데,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며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爲仁]”이었다. 그리고 그 인을 실천하는 근본으로서 “효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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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에 검은 빛깔의 오석(烏石)이 많고 진주 강씨 세거지에 ‘현암(玄巖)’이라는 글자를 새긴 오석이 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새김글은 조선 명종 때 진주 강씨 후손이 기묘사화 때 모해를 받아 흑석동에 낙향하여 새긴 것으로 전해 온다. 『한국지명총람』에 “흑석리는 검은 빛깔의 돌이 많으므로 검은돌 또는 흑석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