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전개된 농민들의 투쟁. 1946년 11월 1일 화원면을 제외한 13개 면에서 1만 3000여 명의 농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지서와 면사무소 등을 점거한 1946년 해남 추수봉기가 일어났다. 이때 미군정 경찰은 주동자 600여 명을 체포 또는 사살하거나 투옥시켰다. 일제강점기에도 강제 공출과 친일 경찰 때문에 고통을 당한...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3일까지 전라남도 해남군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지속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 당시 해남 지역에서의 경과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부터 1950년 7월 23일 군경이 부산으로 탈출하기까지로 ‘경찰 후퇴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50년 7월 28일 인민군 주둔부...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문영(姜文永)[1915~1947]은 해남군 북평면 흥촌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독서회 활동 등을 통해 독립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하였다. 강문영은 해남공립보통학교[현 해남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강상철(姜相喆)[1963~1986]은 1986년 개헌 정국 때 목포민주회복국민회의 간부로 활동하던 중 목표역 광장에서 군사정권을 규탄하며 분신·사망하였다. 강상철의 아버지는 강종학, 어머니는 임금손이며 4남매 중 장남이다. 강상철은 1963년 3월 24일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에서 태어났다. 해남 산이동...
-
개항기 해남 출신의 항일 의병. 강자선(姜自仙)[1866~?]은 1866년 해남군 화산면 방축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부터 1909년 사이 전라남도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심남일(沈南一) 의병장 산하 황두일(黃斗一) 의진(義陣) 소속으로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강자선의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음력 12월경 의병장 황두일의 지휘 아래 해남군 송지면의 미황사(美黃寺)를...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승려이자 탱화장. 고재석(高在奭)[1924~2005]은 1924년 해남군 현산면 덕흥리에서 태어나 탱화장으로 활동하였다. 조선 말 금호(錦湖)에게서 김보응(金普應)[1867~1954]을 거쳐 김일섭(金日燮)[1900~1975]으로 이어지는 불화의 맥을 잇는 한국 근현대 불화의 4대 금어에 해당된다. 고재섭으로 불리기로 하며, 법호(法號)...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시인. 고정희(高靜熙)[1948~1991]는 시인이자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와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국문학사에서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고정희는 1948년 1월 17일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아버지 고양동과 어머니 김은녀 사이의 5남 3녀 중 장...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남식(金南植)[1919~1989]은 1919년 12월 30일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에 거주하며 항일 활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남식은 제주도로 이주하여 서귀포천주교회의 아일랜드인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항일 의식을 키워 나갔다. 당시 제주 지역 천주교의 항일운동은 패트릭 도슨(Patrick...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저항시인. 김남주(金南柱)[1946~1994]는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나간 전사이자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 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김남주는1946년 10월 16일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아버지 김봉수와 어머니 문일님 사이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삼화국민학교와 해남중학교를 거쳐 1964년 당시...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훈(金東勳)은 1896년 10월 30일 해남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김동훈 등은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난 지 5...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곤(金明坤)[1886~1922]은 1886년 1월 18일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명곤...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문인. 김봉호(金鳳皓)[1924~2003]는 1924년 2월 26일 해남군 해남읍 학동리에서 아버지 김치준과 어머니 최영숙 사이에 7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해남지부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해남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한국 전통 차 문화 복원과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호는 우록(友鹿)이다....
-
조선 후기 해남현감을 지낸 문신. 김서구(金叙九)[1725~?]는 1780년 2월부터 1781년 6월까지 해남현감(海南縣監)으로 있으면서 남천교를 중수하였다. 김서구의 자는 맹주(孟疇) 또는 성주(聖疇),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시하(金時夏), 할아버지는 김정화(金鼎和)이다. 친아버지는 김집(金𠍱)이며 김휴(金休)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신제(金信濟)[1911~1967]는 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의 항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아기(金阿其) 또는 김신재(金信才)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김신제는 1911년 2월 26일 해남군 북평면 이진마을에서 태어났다. 1932년 11월 김홍배(金洪培)·오문현(吳文鉉)·박태술(朴太述)...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암우(金巖于)[1919~1967]는 1919년 12월 23일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암우는 1933년 5월 해남군에 전남운동협의회가 조직되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계급의식을 고취...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휘(金永輝)[1903~1970]는 1903년 10월 10일 해남군 마산면 송석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김기룡(金寄龍) 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 10월 28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김종호(金宗浩)[1891~1935]는 1920년 4월 23일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주성(金胄宬)[1917~1996]은 1917년 6월 18일 해남군 북평면 서홍리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기 4년여에 걸쳐서 조선 민족의 독립의식 고취에 앞장서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주성은 1938년 4월부터 1941년 3월까지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동양대학(東洋大學) 전문부(專門部) 윤리국한...
-
개항기 해남현감을 역임한 무신. 김중현(金中鉉)[1844~1914]은 충청북도 제천 출신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궁궐 밖으로 피신시키는 공을 세웠다. 해남현감으로 부임하여 해남과 인연을 맺은 뒤 1891년 부모의 묘를 해남으로 이장하였으며, 김중현 또한 사망한 뒤 해남군 옥천면에 묘소를 썼다. 김중현의 본관은광산(光山)이다. 초명은 김성택(金聖澤)이고,...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화남(金化南)[1924~1994]은 1924년 1월 13일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부터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중국에서 활동하였다. 김화남은 1944년 3월 일본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한 후 탈영하여 중국 제9전구 제4군 제101사단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제9전구 내의 한국 사병을 광복군 제1...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흥룡(金興龍)[1897~1952]은 1897년 9월 13일 해남군 해남읍 남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손승옥 등은 해남공립보통학...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흥봉(金興鳳)[1898~1983] 1898년 8월 20일 지금의 해남군 해남읍 복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조종운 등은 해남공립...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상권(南相權)[1892~1963]은 1892년 11월 12일 지금의 해남군 해남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남상권 등은 해남...
-
1909년 7월 해남 대흥사 심적암에서 일어난 항일 의병운동. 일제는 호남 지역을 경제적 침략의 요충지로 여겼다. 전라남도 서남부 해안 및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일찍이 많은 일본 상인, 농업 경영자, 어업종사자들이 들어와서 지역 주민들의 항일의식은 고조되었다. 이 시기에 의병운동 관련자들이 서남해 도서 지방에 유배되어 있었으며,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시달리던 토착 주민들은 의병들과...
-
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에서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 일어난 저항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3·1운동 소식을 접한 해남의 뜻있는 사람들도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고 뜻을 같이 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4월 6일 오후 1시경 해남 장날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며...
-
1894년 해남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1월 고부군에서 발생한 고부민란에서 비롯되었다. 고부민란 이후 전봉준과 김도삼(金道三)·정익서(鄭益瑞)·최경선(崔景善) 등이 3월 무장현에서 봉기하고 민중들의 봉기와 호응을 촉구하였다. 당시 농민군은 관군을 연달아 격파하고 4월 전주성을 점령한 후...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복금(文卜今)[1907~1937]은 1907년 12월 13일 지금의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전라남도 목포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8일 양동교회 신도들과 기독교 계열 학교인 정명여학교 및 영흥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발생하였다. 이...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영주(文榮柱)[1909~1970]은 1909년 10월 30일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서 태어났다.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문희동(文喜同)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문영주는 해남군 북평면에 거주하며 1933년 1월 28일 농민 지도 기관 설치를 위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여 농민조합(農民組合)을 결성한 후 농...
-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의 역사학자. 민두기(閔斗基)[1932~2000]는 1932년 11월 2일 해남읍 백야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해남읍 해리에 있는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광주서중학교에 입학하여 1951년 졸업하였다. 1955년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염철론(鹽鐵論)』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3년 『청대신...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영명(閔泳明)[1909~1960]은 1909년 2월 1일 해남군 마산면 노하리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 민영명은 1928년 광주공립농업학교 2학년 재학 중에 교내 독서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 갔다. 이듬해인 1929년 11월 3일 광주고...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병선(朴柄善)[1909~1994]은 1909년 2월 1일 해남군 마산면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박석진(朴石珍)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박병선은 광주공립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6월 조길룡(曺吉龍)·김남철(金南哲) 등 같은 학교 학생 20여 명과 함께 무...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연극인. 박승남(朴承南)[1938~2009]은 1938년 음력 6월 29일 해남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53년부터 미암극단에서 활동했으며, 해남 출신 가수인 오기택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60~1970년대에는 김봉호 연출의 「비가」·「왜 싸워」·「마의태자」, 김연태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햄릿」 등의 연극에 배우로 출연하였다...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종주(朴鍾柱)[1911~1967]은 1911년 5월 5일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박정일(朴政一)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박종주은 광주공립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6월 조길룡(曺吉龍)·김남철(金南哲) 등 같은 학교 학생 20여 명과...
-
개항기 해남 출신의 항일 의병. 박화선(朴化仙)[1873~1949]은 황두일(黃斗一)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이다. 해남군 송종면[현 송지면] 미황사(美黃寺) 일대를 무대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화선은 1873년 12월 8일 해남군 화일면 방축리 784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국권이 무너지는 상황에 분개하여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일...
-
전라남도 해남에서 활동한 여류화가. 배정례(裵貞禮)[1916~200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숙당(淑堂)이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화가 진재(晋齋) 배석린(裵錫麟)이다. 남편은 해남 출신 박기배(朴祺培)이다. 배정례는 1916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으며, 1935년 박기배와 결혼한 후...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승려이자 수필가. 법정(法頂)[1932~2010]은 1932년 2월 15일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아버지 박근배(朴根培)와 어머니 김인엽(金仁葉)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5년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무소유』를 비롯한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속명은 박재철이다. 법정(法頂)은 우수영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목포상업중...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선화인(宣化仁)[1883~1943]은 1883년 1월 7일 해남군 삼산면 신흥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어서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191...
-
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에서 농민의 소작 요건 개선을 요구하며 일어난 농민운동. 일제강점기 해남의 주산업은 농업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쌀농사가 대다수였다. 1927년 해남의 경지 총면적을 보면 25만 5421단보[약 253.31㎢]였으며, 이 중 논은 15만 2692단보[약 151.43㎢][59.8%], 밭은 10만 2729단보[약 101.88㎢][40.2%]로 논이 밭보다 5만여 단보...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승옥(孫升玉)[1898~1979]은 1898년 8월 9일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손승옥 등은 해남공립보통학교 학...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태옥(孫太玉)[孫泰玉, 1895~1934]은 1895년 5월 22일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손태옥 등은 해남...
-
개항기 해남 일대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 송병운(宋炳雲)[?~1909]은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출신으로, 해남에 거주하며 항일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손병운(孫丙雲)으로도 알려져 있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이후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은 항일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1909년 9월 1일부터...
-
일제강점기 말 일제의 사상 통제 및 사상 전향을 위해 설치된 친일관변단체의 해남분회.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한반도를 전진기지로 삼고, 전쟁터로 조선인 청년·학생·여성들을 내몰았다. 조선인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사상을 개조한다는 목적으로 많은 관변단체를 세워 활동하게 하였다.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어 국가사회체제 전반에 총동원이 선언되...
-
1993년 7월 26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운거산에 추락한 사건 1993년 7월 26일, 오후 2시 20분 탑승객 110명, 승무원 6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소속 보잉 737기가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다. 여객기는 오후 3시 24분 첫 번째 착륙 시도 실패에 이어 세 번째 착륙 시도를 하였지만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운거산(雲...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장길(安長吉)[1888~1919]은 1888년 9월 9일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어서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4월...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창석(安昌錫)[1894~1970]은 1894년 10월 13일 해남군 해남읍 남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어서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4...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8년 6월 3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양성룡(梁成龍)[1888~1972]은 1920년 4월 23일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양성룡...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한묵(梁漢默)[1862~1919]은 1862년 4월 29일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였으며 33인 중 유일하게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양한묵의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길중(吉仲)·경조(景朝), 호는 지강(芝江)이다. 아버지는 양상태(梁相泰)이고 어머니는 낭주최...
-
1963년 1월 18일 전라남도 목포 허사도 앞바다에서 해남-목포 간 여객선이 침몰한 사건. 도로교통 시설이 충분하지 않던 1960년대에는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라남도 목포시를 오가는 사람은 주로 정기 여객선을 이용하였다.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와 목포 간 항로를 오가는 여객선 연호(燕號)는 해남 지역의 황산면·산이면·해남읍 지역 주민들이 겪는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운항되고 있...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맹조(呂孟祚)[1894~1930]는 1894년 2월 20일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4월 만세 시위를 선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해남군 해창리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던 여맹조는 1919년 3월 이래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지만, 정작 자신의 마을에서는 만세 운동이 발생하지 않은 것...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문현(吳文鉉)[1911~1943]은 1911년 7월 21일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에서 태어났다. 농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 활동을 통해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오문현은 광주공립농업학교를 다녔으나 학비 마련이 어려워 중퇴한 후 1929년 서울로 올라가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1...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상록(吳上祿)[1913~1960]은 1913년 1월 2일 해남군 산이면에서 태어났다.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조하여 목포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출옥 후에도 일본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학생항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오자 목포에서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결의가 확산되었...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임탁(吳琳鐸)[1908~1950]은 1908년 7월 15일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펼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오임탁은 마산면에 있는 마산공립보통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30년 여름 교사 박채민(朴采敏)으로부터 사회주의에...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홍탁(吳鉷鐸)[1913~1950]은 1913년 8월 29일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후 해남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오홍탁은 1931년 해남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후 독서회를 조직하여 농촌계몽 활동을 전개했으며, 농민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소작쟁의 지도에 적...
-
일제강점기 해남 옥매산의 광산노동자들이 1945년 8월 21일 제주에서 귀환하던 중 바다에 빠져 사망한 사건.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사이에 있는 옥매산(玉埋山)은 조선시대부터 옥으로 이름난 산이었다. 1910년 니시자키 쓰루타로[西崎鶴太郞]를 시작으로 일본인들이 옥매산 광산을 본격 경영하기 시작했으며, 1937년 7월부터는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淺田化學工...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영홍(兪榮洪)[1905~1943]은 1905년 11월 11일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군청에서 조선어 사용을 역설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유영홍은 1926년 9월부터 1936년까지 전라남도 각 지역에서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2년 6월 17일 오전 11시 해남군청을 방문하...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봉현(尹奉鉉)[1922~1944]은 1922년 3월 9일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윤봉현은 광주서중 재학 시절인 1941년 3월에 기환도(奇桓度)·기영도(奇英度)·신균우(申均雨) 등 무등회(無等會) 회원들과 함께 광주 금동(錦洞)에서 모임을 갖고 무등회의 조직을 재...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성하(尹晟夏)[1911~1949]는 1911년 6월 5일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이끌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성하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난 1929년 11월 당시 광주공립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국인 학생들과...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옥하(尹玉夏)[1901~1929]는 1901년 12월 7일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윤병하(尹秉夏)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이신(尹二申)[1896~1964]은 1896년 5월 11일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 목포에 거주하면서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파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이신은 1944년 당시 목포시 죽교동에 있던 왕산한약국(旺山韓藥局)에서 점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이후 일본...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0년 10월 9일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52에서 태어난 윤인섭(尹仁燮)[1900~1967]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주연(尹柱淵)[1916~2010]은 1916년 4월 21일 해남군 삼산면 창리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에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주연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 서울 사직동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동교생 김상흠(金相欽)·서영원(...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창하(尹敞夏)[1908~1984]는 1908년 4월 9일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학생 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창하는 광주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928년 6월, 같은 학교 이경채(李景采)의 퇴학 처분에 대항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에 참가하였다. 동맹휴학 참가 건으...
-
1895년에서 1910년 사이 해남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해남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연안 지역의 어업에 대한 경제적 침탈이 많은 곳으로 타 지역에 비해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심하였다. 내륙에서 활동한 의병들이 해남 지역까지 내려와 의병 활동을 하였으며, 지역 주민들도 적극 의병 활동에 가담하였다. 대표적인 의병은 정석진(鄭錫振), 심남일(沈南一...
-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이동주(李東柱)[1920~1979]는 1920년 2월 28일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에서 아버지 이해영(李海瑛)과 어머니 이현숙(李賢淑)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달산학교[현 현산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오천 석 거부였던 집안이 몰락하여 공주(公州)의 외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순(李尙順)[1888~1967]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거주하며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다가 1920년 문내면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김종호...
-
조선 전기 해남 지역에 정착한 문신이자 원주이씨 해남 입향조. 이영화(李英華)[1430~1517]는 원주이씨(原州李氏) 해남 입향조이자 강릉공파(江陵公派) 파조이다.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를 역임하다 해남 지역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다. 이영화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경원군(慶原君) 이을계(李乙桂)의 후손이다. 부인 청주김씨(淸州金氏)와의 사이에 아들 이맹건...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실(李在實)[1898~1958]는 1898년 3월 27일 해남군 송지면 소죽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재실...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1년 7월 10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이준섭(李俊燮)[1901~1956]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시...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준탁(李準鐸)[1896~1953]는 1896년 4월 4일 해남군 삼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호익(李浩瀷) 또는 이준탁(李駿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춘(李亨春)[1887~1966]은 1887년 8월 24일 해남군 해남읍 안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형춘 등은 해남공립보통학...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홍장(李洪章)[1926~1945]은 1926년 6월 10일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시절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홍장은 화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 정칙학원(正則學園)을 다녔다. 1942년 정칙학원 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중 동료들과 함께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기업인. 이훈동(李勳東)[1917~2010]은 1917년 10월 11일 해남군 황산면 외입리에서 태어났다. 조선내화주식회사 대표이사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전남일보사를 설립한 기업인이다. 이훈동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호는 성옥(聲玉)이다. 할아버지는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한 이종흠(李宗欽)이며, 아버지 이영률(李泳律), 어...
-
1945년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계열의 주민자치단체. 1945년 9월 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열고 국내외 좌우익 정치세력을 망라한 조선인민공화국의 설립을 선포하였다. 인민공화국 선포 이후 각 지방에서 지방인민위원회 조직이 진행되었으며, 이 흐름 속에서 인민위원회 해남지부도 결성되었다. 1945년 10월 중순 인민위원회 해남지부가 결성된 것으로...
-
1910년 8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강탈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식민통치 시기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해남군의 인구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1912년 처음 조사되었으며, 당시 해남의 인구는 8만 5663명[남자 4만 3791명, 여자 4만 1872명]이다. 일제강점기 인구 변화를 1915년부터 5년 단위로 살펴보면 1915년 9만 1903명[남자 4만...
-
전라남도 해남군 옥매광산 노동자들이 제주도로 강제 동원이 되었다가 해방 후 고향으로 귀향하던 중 바다에서 수몰된 사건. 1945년 8월 20일 새벽,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매광산 광부 255명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으로 제주도에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아 드디어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광부들을 실은 배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앞바다에 다다랐을 오전 여덟 시 무렵...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기열(林基烈)[1924~2011]은 1924년 2월 11일 해남군 문내면 고평리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 강제 징병되어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탈영한 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항일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말을 전후하여 중국 각 전선의 일본군에 배치된 한국인들 중 100여 명의 애국 청년들이 부대를 탈출하여 중국군에 합류하였다. 현...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3년 1월 4일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에서 태어난 임동수(林東秀)[1903~1933]는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홍우(任洪宇)[1906~1945]는 1906년 11월 29일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목포시에 이주하여 살면서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활동을 하였다. 목포는 1897년 국내에서 네 번째로 개항장이 된 이후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상업도시로 성장했고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이었다. 임홍우는 1...
-
1930년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사회주의 항일운동 단체. 1920년대 중반부터 한반도 내 항일운동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1930년대 초 민족주의자들이 항일운동 계열에서 이탈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확대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 4차례나 조직되었던 조선공산당이 채 1년도 못 가 연이어 붕괴되었고, 사회주의...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0년 5월 12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 957에서 태어난 전유봉(田酉峯)[1900~1939]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조...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경래(趙京來)[1886~1952]는 1886년 4월 28일 해남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 벌어진 독립 만세 운동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김동훈(金東勳)...
-
1945년 8월 17일경 전라남도 해남에서 조직된 정치 단체의 지부.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 직후 일본으로부터 행정권을 인수받고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1945년 8월 15일 여운형, 안재홍 등에 의해 결성되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도 같은 취지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가 결성되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해남지부가 정확히 언제 결성되었는지는...
-
일제강점기 말에 방공 및 방첩을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친일 관변단체의 해남 지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한반도를 전진기지로 삼고, 전쟁터로 조선인 청년·학생·여성들을 내몰면서 사상을 개조한다는 목적으로 많은 관변단체를 세워 활동하게 하였다.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어 국가 사회체제 전반에 총동원이 선언되었다. 7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체육인. 조오련(趙五連)[1952~2009]은 1952년 10월 5일 해남군 해남읍 학동리에서 태어났다. 제6회, 제7회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하였고,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너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다. 조오련은 1968년 10월 10일 해남고등학교를 자퇴하였다. 1968년 11월 3일 상...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종운(曺鍾運)[1896~1971]은 1896년 11월 6일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신흥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조종운 등은...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2년 8월 2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주봉옥(朱奉玉)[1902~1964]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주봉옥은 주봉윤(朱鳳胤)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5년 9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주영철(朱永徹)[1885~1929]은 1920년 4월 23일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주유금(朱有今)[1903~1995]은 1903년 5월 15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재학 중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주윤애(朱允愛)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정명여학교[현 정명여자고등학교]는 목포 양동교회 외국인 선교사들이 1903년에 개설한 전라남도 최초의 여학교이...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덕운(千德云)[1913~1970]은 1913년 4월 19일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천덕운은 1931년 3월 해남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3년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혁명...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보여(千甫汝)[1870~1929]는 1870년 12월 3일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 펼쳐진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김동훈(金東勳) 등 지역의 청년...
-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동양화가. 최광익(崔光益)[1891~1970]은 1891년 8월 4일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유학한 뒤 동양화가로 활동했으며, 호는 설산(雪山)이다. 최광익은 일본 동경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를 졸업한 뒤 초상화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사진술의 발달로 초상화의 수요가 줄어들자 동양화 분야에서도...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2년 10월 10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514에서 태어난 최이규(崔伊奎)[1902~1961]는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국악인. 한수동(韓壽同)[1895~1940]은 해남 출신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살면서 활동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이다.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한숙구(韓淑求)[1865~?]의 아들이다. 역대 가야금산조 명인 가운데 첫손에 꼽히고 있다. 한수동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웠다. 천재적인 소질...
-
개항기 해남 출신의 국악인. 한숙구(韓淑求)[1865~?]는 해남 출신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서 주로 활동한 가야금산조·풍류의 명인이다. 가야금산조 명인인 한수동(韓壽同)[1895~1940]이 아들이다. 본명은 한성준(韓聖俊)이다. 한숙구는 신방초(申芳草)[?~?]와 이장선(李壯善) 등에게 풍류를 배워 일가를 이루었으며, 대금과 피리도 잘하였다고 한다....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창수(韓昌洙)[1892~1944]는 1892년 5월 19일 해남군 신흥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
-
1919년 4월 6일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 김규수(金奎秀)는 일제 식민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김규수는 해남보통학교 기숙사 방에서 김한식(金漢植)·신건희(申健熙)·윤옥하(尹玉...
-
1939년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화재 방지를 위해 조직되었던 단체. 일제는 1939년 7월 3일 「경방단 규칙」을 제정·공포하고 소방조(消防組)와 수방단(水防團)을 해체하여 경방단(警防團)으로 통합하였다. 「경방단규칙」은 전문 16조와 2개 부칙으로 되어 있었으며, 방공, 수(水)·화(火) 소방 및 기타 경방 등이 주 임무였다. 경방단 설치와 동시에 방공 설비의 강화와 방공 사상...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있는 1908년에 건립된 등대. 1908년 『황성신보(皇城新報)』에는 해남 구 목포구 등대에 관한 기사가 있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목포의 일본인 마쓰우치 쓰루타로우[升內鶴太郞] 씨가 목포 근해 연안 항로를 경영하더니, 금번 목포에서 추자도를 경유하여 제주도 조천에 당도하는 항로와 목포에서 진도, 완도, 장흥군 해창에 도달하는 항로...
-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근축 조합. 해남 근축 조합은 근검저축 장려와 원활한 금융을 통해 해남 지역의 농촌 경제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해남에서 만들어진 근축 조합은 성진근축조합, 교풍근축조합이 있다. 성진근축조합은 해남군 계곡면 성진리에서 1928년 2월 설립되었다. 1931년 3월 조합원은 35명이 있었고, 저축액은...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세운 비. 팔굉일우(八紘一宇)는 태평양전쟁 시기에 접어든 일제가 세계 정복을 위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로, “전 세계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팔굉일우는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총리가 1940년 시정 방침 연설에서 “황국[일본 제국]의 국...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활동한 소비조합. 소비조합은 경제적 약자로서 소비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있다. 소비조합을 기반으로 하여 소비자들이 생활의 안정과 문화, 교육의 충실을 도모한다. 해남 소비조합은 해남 지역 소비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농민 개인의 삶은 물론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하고자 하였다. 해남에서 만들어진 소비...
-
1980년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서 전개되었던 민주화운동.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사망하는 10·26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세력들은 1979년 12월 12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을 장악하였고, 이어 1980년 5월 17일에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10·26사건 발생 때부...
-
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노동단체. 노동자의 인격 상승, 지위 향상과 소작권과 소작료 보장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는 1924년경 리(里) 또는 몇 개 리(里) 연합의 노농회가 창립되어 1920년대 전반기에 창리노농회, 서홍리노농회, 영평노농회, 삼산노농회가 존재하였다. 창리노농회는 1924년 10월 1일 북평면 남창리에서 김성호 외 5명...
-
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에서 일어난 노동운동. 일제강점기 노동자들은 식민지 민중의 구성원으로 억압받으면서 특정 계급의 일원으로 착취를 받는 이중의 굴레에 놓여 있었다. 노동운동은 민족차별에 반대하고 한편 일제에 의한 식민지적 착취와 종속에 반대하는 반일 민족해방을 지향하였다. 1920년대 전라남도에서는 목포·광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업이 발전하였다. 전라남도 지역은 1931년의 경...
-
일제강점기 해남 지역에서 전개된 교육문화운동. 민립대학 설립 운동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뒤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이상재(李商在)·한규설(韓圭卨)·윤치소(尹致昭) 등 100여 명의 민족주의자들이 민족교육과 민족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민립대학을 설립하려고 시작한 운동이다. 구제척인 실천을 위한 조선민립대학기성회의 창립과 더불어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일어난 사립학교와 야학 설립 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제한적이나마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민족운동은 청년운동·노동운동·여성운동 등 부문별로 분화·발전하였으며, 민족운동의 제일의 목표는 계몽과 교육이었다. 3·1운동으로 고취된 민족의식은 자연스럽게 배움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1920년 당시...
-
1950년 7월 경찰의 예비검속에 해남 지역의 보도연맹원이 학살당한 사건.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9년 6월 15일 좌익 전향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로 좌익 세력 색출 및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1949년 12월 13일 전라남도에서도 국민보도연맹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후 각 군별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
-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이 해남을 비롯한 전라도 각 고을의 관아에 설치하였던 기관. 동학교도가 각 고을의 집강이 되어 지방의 치안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집강소는 고을에 따라서는 수령이 반발하여 집강소의 설치를 거부한 곳도 있었다. 1894년(고종 31) 전주화약(全州和約)을 체결한 후 농민군은 자신의 고을로 돌아가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개혁을 실시하였다. 해남...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일어났던 청년들의 민족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제한적이나마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또 국내 보통학교 수가 증가하고 야학 등의 교육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청년들은 각종의 청년 단체를 조직하고 활발하게 청년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계몽운동은 물론 농민운동·노동운동에서도 주도적인 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세운 항일운동 추모비. 해남 항일운동 추모비(海南抗日運動追慕碑)는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3년 7월 9일 해남항일독립운동희생자추모사업회가 건립하였다. 해남항일독립운동희생자추모사업회는 광복 72주년을 앞두고 2013년 해남 항일운동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1930년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설립된 초등 교육기관 . 1906년 「보통학교령」에 의해 소학교의 명칭을 보통학교(普通學校)로 바꾸었다. 해남에서는 1908년 해남동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미산보통학교가 세워졌다. 해남의 토호였던 황산면 우항리 이재량(李載亮) 참판과 해남읍 읍내리 김익준, 해리의 만석꾼이었던 민영옥(閔泳玉) 등이 사립미산보통학교 설립에 참여하였다. 미산보통학...
-
1921년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지역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사설 학교. 1920년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은 학교의 부족과 가난으로 인해 학교의 문을 두드리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해남읍내의 기독교회와 강봉래(姜奉來)는 1921년 해남면 수정기독교회(壽町基督敎會)에서 해남야학원을 개설하였다. 해남야학원의 주요 업무는 가난한...
-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역사. 해남이 지금과 비슷한 경계를 갖게 된 것은 1448년(세종 30)으로 올라가며, 1895년에 해남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접 지역을 병합하면서 13개 면이 되었다. 13개 면은 해남면(海南面)·삼산면(三山面)·화산면(花山面)·현산면(縣山面)·송지면(松旨面)·북평면(北平面)·옥천면(玉泉...
-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채연(黃彩淵)[1913~1960]은 1913년 5월 20일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황채연은 일본을 건너가 단파시(丹波市) 사립천리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32년 4월 고지고등학교(高知高等學校) 이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였다. 일시 귀국해 전라남도 순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