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자운(子運).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강봉삼(姜鳳衫)이다. 강윤하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한겨울에 구하기 힘든 꿩탕을 먹고 싶어 하여 고민하던 차에 마침 꿩이 집 처마에 날아들어 잡아다 꿩탕을 해 드렸다. 또한 잉어를 먹고 싶어 하자 얼음을 깨고 잡아와 봉양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즐겁...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강윤하(姜允河)의 정려비. 강윤하는 진주인(晋州人)으로, 자는 자운(子運)이며,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으로 강봉삼(姜鳳衫)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병환으로 꿩탕을 먹고 싶어 하였으나 눈이 내려 구하지 못하다가 꿩이 집 처마에 날아들자 이것을 잡아 꿩탕을 만들었다. 또한 잉어를 원하자 얼음...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동락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1676년(숙종 26) 동락서원(東洛書院)이 사액을 받았으나 1871년(고종 8) 훼철된 후 1932년에 중건되어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 향사하다가 1933년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를 종향(從享)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년 춘추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경락서원은 1807년(순조 7)에 세워져 판서(判書) 오식(吳湜), 상정(橡亭) 황필(黃㻫), 주부(主簿) 강거민(康居敏),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훈재(塤齋) 윤홍선(尹弘宣)을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나 그 후 복원하였다. 2013년 현재 사당만 온전히 남아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옥계서원(玉溪書院)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 고려 말의 충신 덕령부윤(德寧府尹) 송은(松隱) 장안세(張安世)를 향사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매년 음력 9월 9일에 향사하여 왔다. 1990년 8월 서원으로 명칭이 변경됨에 따라 지금은 매년 4월 곡우에 유림에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1893년(고종 30)에 세운 ‘고려충신시충정공송은장선생신단(高麗忠臣諡忠貞公松...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선산(善山).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의 후손이며, 남편은 곡부(曲阜) 공윤수(孔胤洙)이다. 공윤수의 처 선산김씨는 남편이 병을 얻자 주야로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결국 남편이 기절하여 온 가족이 황망히 울고 있을 때, 김씨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고 자결하였는데, 그 후 남편은 소생하였다....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장이상(張利相)이며,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 곽종화(郭鍾化)이다. 곽종화의 처 인동장씨는 품행이 단아하며 시부모를 봉양하는 데 정성을 다하였으며, 남편이 중풍에 걸리자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였다. 지역의 유림이 곽종화의 처 인동장씨의 열행을 추천하였고, 조정에서 정려가 내려졌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이석배(李碩培)이며,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 곽태호(郭泰鎬)이다. 곽태호의 처 양성이씨는 16세에 시집온 후 시부모와 남편을 잘 모시고 부도(婦道)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이 중병으로 5년 동안 앓게 되자 그 병을 자기가 대신 앓기를 매일 같이 기도했지만, 남편은 끝내 1918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향교.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 비봉산 기슭에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듯하다는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가 심한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하여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청아루(菁莪樓) 등을 배치하였다. 구미 선산향교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다 하나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으며, 1600년(선조 33)에 부사(...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박영이 공부하던 건물. 조선 전기의 유학자인 송당(松堂) 박영(朴英)의 강학지소로 정사(精舍)의 좌우측에는 사당인 문목사(文穆祠)를 두었다. 송당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앞열에는 모두 마루를 깔았고, 뒷열에는 온돌방 2칸과 마루 1칸을 연접시킴에 따라 마루칸이 앞열 마루와 연결되어 ㄱ자형을 이룬다. 오량가...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에 있는 조선시대 공자를 모신 사당. 인동향교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안태동의 옥산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지형이 좋지 않다 하여 1634년(인조 12)에 옥산 서쪽인 인의동으로 재이건하였다. 1988년에 구미 도심의 확장으로 말미암아 현 위치로 이건하게...
-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 있는 정석군(貞石君) 이융생(李隆生)을 향사하는 재실. 구암재는 재실 건물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구미역 부근에 있었으나,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 때문에 1914년에 이곳으로 옮겨지었다. 구암재는 정면 6칸, 측면 1.5칸 크기의 ㅡ자형 맞배기와집인데, 좌우 양측에 다시 1칸을 달아내어 가적지붕을 얹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8칸 크기가 되었다. 재실...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 1567년(명종 22)에 선산의 유학자 최응룡과 김취문이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고, 송기충은 이를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 마침내 재가를 받아 1570년(선조 3)에 금오산 밑에 건립하게 되었다.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길원득의 처 김씨는 산중에서 졸지에 만난 왜군이 욕을 보이려 하자 끝까지 저항하다가 피살당하였다. 조정에서 길원득의 처 김씨의 열행을 인정하여 정려를 내렸다....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고려 충신 길재(吉再)의 정려비. 길재 정려비는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자료인 삼강정려비각 내에 있다. 이 비각은 고려 충신 길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한 배숙기(裵淑綺), 정절을 지킨 조을생(趙乙生)의 처 약가(藥哥)의 정려비를 모아 1795년(정조 19)에 세웠다. 길재는 봉한리 마을 출신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던...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효자 김광수(金光洙)의 정려비. 김광수는 일선인(一善人)으로 자가 사옥(士玉)이다. 선산 이문리(里門里)에 거주하였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육십 노모 병환에 약을 구하러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했다. 근심 걱정으로 울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의원을 찾자 의원이 이르기를 “뱀을 구해서 달여 드리면 치료가 될 수 있다”고...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 있는 개항기 동몽교관(童蒙敎官) 김광택의 효자정려비. 김광택은 김해인(金海人) 김희덕(金希德)의 후손이며, 양친의 병환을 당하여 정성을 다하였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러 넣었다. 부친상에 시묘(侍墓)하자 밤에는 범이 와서 지켜주었다고 한다. 고종 때에 정려되었고, 동몽교관(童蒙敎官)을 특증(特贈)하였다. 이에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정려비각...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김기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산중에 피난했는데, 왜적이 숙부를 죽이고 다시 어머니를 범하려고 하자 막대기로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피살당하였다....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효자. 김내근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진잠현감으로 있다가 모친이 돌아가시자 여막을 짓고 죽으로 연명하며 3년 동안 시묘를 하였다. 시묘를 하는 동안 재실에 흰 감과 흰 대추가 돋아나서 세상 사람들이 하늘이 효성에 감동한 소치라고 하였다....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김도의 처 하씨는 부덕을 두루 갖춘 열부였는데, 임진왜란을 당하여 부부가 산중으로 피신하다가 적을 만나면 욕을 보기 전에 투신할 것을 서로에게 약속하였다. 마침 적을 만나서 남편이 투신하려고 하자 하씨가 만류하면서 먼저 투신하였고, 남편도 곧 뒤를 따랐다....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김무석(金武錫)의 처 김씨는 임진왜란 때 남편이 왜적에게 난도 당하자, 필사적으로 항거하다가 피살되었다.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정려가 내려졌다....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산(商山). 대호군 김려(金旅)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구주목사를 지낸 김명도(金明道)이다. 김보륜은 약관의 나이에 중사마(中司馬)를 하였고, 1519년(중종 14)에 문과에 등과한 후 안음현감을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다. 효성과 우애가 뛰어나 아버지가 멀리 출타하면 반드시 사람을 보내 안부를 듣고 난 후에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또한 아버지의...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김보륜(金輔輪)의 정려비. 김보륜은 상산인(商山人) 대호군(大護軍) 김여(金旅)의 후손으로 구주(九州)의 목사(牧使)를 역임한 김명도(金明道)의 아들이다. 약관(若冠)에 중사마(中司馬)를 하였고 1519년(중종 14) 문과에 등과하여 안음현감(安陰縣監)을 거쳐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이르렀다. 효성과 우애가 뛰어났으며, 부친이 멀...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효자. 김복언은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낙동강으로 가서 잡으려고 하였으나 풍랑이 심해서 잡을 수 없었다. 안타까워 통곡하면서 하늘에 호소하자, 큰 잉어가 나와서 어머니에게 올릴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김복언의 지극한 효성을 칭찬하여 조정에서 급부와 정려를 명하였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신천(信川). 아버지는 강경선(康景善)이며, 남편은 김석지(金錫址)이다. 김석지의 처 신천강씨는 품성이 정결하고 효성과 우애가 뛰어났으며,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였다. 임진왜란 때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자 자결하려고 하였으나, 어린 자식이 있어 당장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단도를 품고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란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져서 끝이 날...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일선. 자는 계명(季明), 호는 모화재(慕華齋). 대장군 김창서(金昌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완수재(玩睡齋) 김배(金培)이며, 아버지는 사우당(四友堂) 김구성(金九成)이다. 김선초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셨는데, 아침저녁으로 문안하고 보살핌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음식을 몸소 지어 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적이 인동 고을에 진을 치고 갖은 만행을 자행하였다. 왜적들이 김성기의 처 임씨를 붙잡아 욕을 보이려 하자 끝내 항거하며 바위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정려가 내려졌다....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김언제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 김언개(金彦愷)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바위굴로 피신하였다. 얼마 후 왜적에게 발각되어 왜적들이 어머니를 해치려고 하자 형과 함께 저항하다가 모두 피살당하였다. 조정에서 김언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정려를 내렸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진성(眞城). 아버지는 퇴계 이황의 7세손 이세룡(李世龍)이며, 남편은 김예선(金禮宣)이다. 김예선의 처 진성이씨는 18살 때 출가하여 시부모를 정성으로 봉양하였으며, 시부가 병환이 나자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쾌유를 빌었다. 남편이 죽자 오히려 시부모를 위로하고 아들을 잘 키웠으며, 3년 상이 끝나던 날 아들을 시숙에게 맡기며 남편의 뒤를 따라...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산은 선산(善山). 동생은 김윤덕(金允德)이다. 김윤수(金允壽, 1387~1463)는 1427년(세종 9)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마사(兵馬使)에 이르렀다. 오랑캐 기병(騎兵)의 침입을 막아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여막을 짓고 시묘(侍墓)하였다. 이후 효행을 인정받아 효자에 정려되었다. 1453년(단종 1) 중추원사(中樞院使)가 되고 충청도와...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순좌(舜佐), 호는 호와(箎窩). 아버지는 야은(野隱) 김술로(金述魯)이다. 김익흠(金益欽)은 부친의 등창을 입으로 빨고 하늘에 기원하여 완쾌시켰으며, 부모를 봉양하는데 정성을 다했다. 부친의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시묘(侍墓)하였다. 이후 효행을 인정받아 효자에 정려되었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중현(仲鉉), 호는 추모재(追慕齋). 증조부는 돈봉(遯峰) 김녕(金寧)이다. 김정태(金鼎台)는 1700년(숙종 26) 진사가 되었으나 부모의 상을 당하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6년간 시묘(侍墓)하였다. 이후 효행을 인정받아 효자에 정려되었다....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효자. 김존성(金存性)은 부모의 상을 당하자 엄동설한 가운데도 극진히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으며, 두 귀가 얼고 두 눈이 어두워지며 눈물이 흘러 자리가 썩게 될 지경에도 미음 죽을 먹으면서 장례를 마쳤다. 이후 효행을 인정받아 효자에 정려되고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종무의 정려비. 상주 북천 전투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변사 이일이 인솔한 중앙군 60여 명과 상주에서 창의한 의병 800여 명이 북상하는 왜군의 선봉 주력 부대 1만7,000여 명과 싸웠던 전투로, 적의 북진을 잠시나마 막을 수 있었지만 의병의 수가 너무 적어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때 전사한 인물들로서 충렬사에...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열녀. 김춘심(金春心)은 김복재(金卜才)의 아내로 남편이 물에 빠져 죽자 따라서 물에 빠져 죽었다. 다음날 물에서 건져 보니 남편의 시체를 안고 죽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열행(烈行)이 인정되어 열녀에 정려되었다....
-
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열녀. 김효충(金孝忠)의 처 한씨(韓氏)는 남편이 역병으로 죽자 역병이 옮길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들이 피신하고 친척들도 오지 않았기에 홀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르고 3년상을 마쳤다. 부친이 후사(後嗣)가 없음을 가련하게 생각하여 개가(改嫁)를 권하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자결하려 하여 다시 권할 수 없었다. 이후 열행(烈行)이 인정되어 열녀에 정려되었다....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김희준(金希俊)의 처 최씨(崔氏)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자암(鸕鶿巖)에 피신해 있다가 왜적에게 붙잡혔으나, 배를 타고 끌려가던 도중 강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이후 열행(烈行)이 인정되어 열녀에 정려되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낙봉서원은 1646년(인조 24)에 건립되어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 진락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 용암(龍巖) 박운(朴雲),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 두곡(杜谷) 고응척(高應陟)을 배향하고 있다. 1787년(정조 11)에 사액되었으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그 후 1933년에는 강...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1792년에 건립되었으나 고종 때 내려진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1937년에 강당만 다시 복원되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며, 평면은 어간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가구(架構)는 무익공(無翼工)의 오량가(五樑架)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남사순(南思舜)의 정려편액. 남사순은 영양인(英陽人)으로 자는 사효, 호는 충의당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충량(忠良)하고 재질이 뛰어나 어른들이 큰 인물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장년이 되어 전력부위용양위좌부장으로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보위할 때에 성의를 다하였다. 병자호란이 나고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으며, 사...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묘. 농암(籠巖) 김주(金澍)는 공양왕 때 하절사로 명에 가서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다가 조선 건국의 소식을 듣자 귀국하지 않고 명나라의 형초(荊楚)에서 충절을 지키고 생을 마감하였다. 내격묘는 김주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내격묘는 1920년경 김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1971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세장한 대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노경건의 처 송씨의 정려비. 송씨는 사인(士人) 노경건의 처로 임진왜란을 당하여 1593년(선조 26) 5월 상주(尙州)의 산중으로 부부가 함께 피난하던 도중 적을 만났는데 적이 남편을 해치려 하자 송씨(宋氏)는 전력을 다하여 대항하였다. 적이 남편을 살해하고 다시 송씨를 겁탈하려고 하자 송씨는 자신의 목을 베더라도 그들의 뜻을 따를...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우곡(愚谷) 송량(宋亮)이다. 노경건(盧景鍵)의 처 여산송씨(宋氏)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편과 함께 상주(尙州)의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1593년(선조 26) 5월 왜군에게 발각되어 남편이 위험해지자 전력을 다해 대항하였고, 왜군이 남편을 살해한 뒤 겁탈하려고 하자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하다가 피살되었다. 이후 열행(烈...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강학을 위한 조선 전기 건물. 대월재는 조선 전기의 명신이며 청백리였던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이 강학 공간으로 마련한 건물이다. 김취문은 선산 평성(들성) 출신으로 송당 박영(朴英)의 문인이다. 1537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종2품에 올랐으며, 명종 때는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또한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도성유(都聖兪)의 처 김씨(金氏)는 임진왜란 당시 남편이 왜군에게 살해되자 남편의 장례를 마친 뒤 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이후 열행(烈行)을 인정받아 열녀에 정려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미 공단에서 인동으로 연결되는 구미대교 끝 부분 좌측 아래의 낙동강 기슭 야산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락서원은 인조(仁祖) 때 산림(山林)으로 이름이 높았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55년(효종 6) 제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1601년(선조 34)에 장현광이 지은 부지...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동락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 강당 건물. 구미 공단에서 인동으로 연결되는 구미대교 끝 부분 좌측 아래의 낙동강 기슭 야산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락서원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55년(효종 6) 제자들이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 자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1676년(숙종 2) 동락서원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고아읍 예강리 강정 매학정 부근에 있었다. 1843년(헌종 9)에 중건하여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아우인 옥산(玉山) 이우(李瑀)를 향사하였다.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시인들이 즐겨 찾던 명소. 밀양 사람 용암(龍巖) 박운(朴雲)이 즐겨 머물던 곳이다. 그밖에 송당 박영(朴英), 회재 이언적(李彦迪), 진락당 김취성(金就成), 퇴계 이황(李滉), 두곡 고응척(高應陟), 기촌 송순(宋純), 여헌 장현광(張顯光) 등 여러 사람들이 시를 읊은 곳이었다....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택지(澤之), 호는 용암(龍巖). 박운은 효심이 남달라 40년간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항상 곁에 모시어 손수 시중을 들었고, 늙은 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애절한 마음이 하늘에 사무쳐 3년 동안 묘 옆에 띠 풀을 이은 집을 짓고 나물죽만으로 연명하여 시묘의 정성을 다 하였다. 또한 시묘가...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박진환(朴震煥)의 효자정려비. 박진환(1605~1650)의 자는 양백(楊伯)이며, 호는 남강(南岡)이고, 관직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부친 경주부윤(慶州府尹) 박수홍(朴守弘)의 급서(急逝)로 3년 동안 시묘 후 몸이 극히 쇠약하여 46세를 일기로 운명하여 1681년(숙종 7)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밀양박씨 박진환(朴震煥)의 정려편액. 박진환(1605~1650)의 자는 양백(楊伯), 호는 남강(南岡)으로, 관직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부친 경주부윤(慶州府尹) 박수홍(朴守弘)의 급서로 3년 시묘 후 몸이 극히 쇠약하여 46세의 일기로 사망하자 1681년(숙종 7)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후에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박성유(朴...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배숙기(裵淑綺)의 정려편액. 배숙기는 성주인(星州人)으로 1470년(성종 1) 진사를 거쳐 문과에 등제하여 홍문관저작에 이르렀다.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성격이 온순하여 부모님의 뜻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었다. 부모를 편히 잘 모시는 능양(能養)을 극진히 하여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외출하여 늦게 돌아와 양친이 잠을 자면 밖에서...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백중휘(白重暉)의 정려비. 백중휘는 수원인(水原人)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으로 모친상 때 부친이 살아 있어 여막을 지을 수 없게 되자 날마다 묘소에 가니 범이 수호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친이 병환 중 일 때 실화(失火)로 집이 타자 하늘을 우러러 비통해 하자 바람이 그쳐 화를 면했다고 한다. 고종 때 정려를 명하고 동몽...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비각. 봉곡동 효열비각에는 효자 박진환(朴震煥, 1605~1650), 열녀 양주조씨(楊洲趙氏, 1696~1724), 열녀 함종어씨(咸從魚氏, 1778~1811)의 행적을 기리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과 편액을 보관하고 있다. 효자 박진환은 경상남도 밀양 사람으로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하였으며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장자이다. 아버...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유교 건물. 조선 현종 대 유학자였던 삼우당 장해(張𣴴)가 건립한 4칸 건물이다. 1930년경에 임수동의 건대산(件岱山) 밑으로 옮겼는데, 1978년 그 부지가 구미공업단지에 편입됨으로써 이듬해에 구평동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조선시대 이후 선현제향(先賢祭享)과 교육을 위해 설립된 기관. 우리나라에서 서원의 시작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면서부터이다. 서원의 건립은 본래 향촌 유림들에 의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었으나,...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삼강(三綱) 정려각. 봉계마을 출신의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이다. 충신은 야은(冶隱) 길재이며, 효자는 배숙기, 열녀는 조을생(趙乙生)의 아내 약가(藥哥)이다. 길재(吉再)[1353~1419]는 고려말과 조선초의 학자로 1374년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제자...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유학자 기촌 장용한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1813년(순조 31) 7월에 중건하였다. 1978년에 성경당이 도로로 편입됨으로써 본래 5칸이었던 아래채를 헐고 그 해 가을에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등서원의 부속 건물. 성암재는 1650년에 건립된 무등서원(茂等書院)의 부속 건물이다. 지금의 성암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은 어간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꾸미고 전면에 퇴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인데, 대청의 전면에는 각 칸마다 4분합들문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종량위에 파련대공을...
-
조선 선조 때 예조참의를 지낸 박응립(朴應立)을 추모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건립한 재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소로수장한 굴도리집이며, 가구(架構)는 3량가이다. 원래는 구포동에 있다가 그 지역이 1979년 공단 부지에 편입됨에 따...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창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구미 지역의 송산서원에서 유래된 서당. 송산서원은 1647년(인조 25) 해평리에 송산사를 세운 데서 비롯되었는데, 1656년(효종 7) 현재의 위치인 창림리로 옮겨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송산서당은 일제강점기 때 중수한 것이다. 출입문인 사주문과 강당이 남아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창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서원. 1647년 해평면 해평리에 송산사(松山祠)를 세운 데서 비롯되었다. 1656년(효종 7) 현재의 위치인 창림리로 옮겨 서원으로 확장되었다. 병암 김응기, 신재(新齋) 김진종(金振宗), 송정(松亭) 최응룡(崔應龍), 주천(舟川) 강유선(康惟善), 인재(訒齋) 최현(崔晛), 경암(敬庵) 노경임(盧景任)을 배향하였다. 18...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신당 정붕이 세운 서당. 조선 전기의 학자인 신당(新堂) 정붕(鄭鵬)이 강학하던 곳으로, 경내에 사당과 신도비가 있다. 정붕은 1492년(성종 23)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연산군 때에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그 후 중종 때 복직되었으나 병을 핑계 삼아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신포서당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조선 전기 사당. 이 사당은 1403년 당시 경상도관찰사이던 남재(南在)가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소거지를 사당으로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집인데, 어간(御間)을 양협간(兩夾間)보다 넓게 잡았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초익공(初翼工)의 겹처마집이며, 목부(木部)에는 모로단청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있는 조선 말 구미 지역의 학자 장현도의 재사. 1890년에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장현도(張顯道)를 모신 재사이다. 6칸 규모의 건물인데, 양양재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1924년에 중수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항령(朴恒齡)의 처 양주조씨(楊州趙氏)의 정려편액. 열녀 양주조씨(1696~1724)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조태방(趙泰邦)의 딸로 밀양인(密陽人) 박항령(朴恒齡)의 아내이다. 박항령은 경주부윤 박수홍의 현손이며 박성원(朴成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몸이 나약하고 폐질환에 시달렸다. 이에 양주조씨는 병약한 남편을 치유하여 소생시키...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된 여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열녀는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죽은 여자 및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强暴者)에 항거하는 미혼녀를 가리켰고, 열부는 기혼녀로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은 부인 및...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박교령(朴喬齡)을 추모하기 위한 일제강점기 재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은 어간(御間)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인데,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4분합의 불발기문을 설치하였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무익공(無翼公)의 장혀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있는 조선시대 함녕군(諴寧君)과 부인 전주군부인(全州郡夫人) 최씨를 모신 사당. 함녕군은 신빈(信嬪) 영월신씨의 소생으로 1417년(태종 17) 공영군(恭寧君)으로 봉해졌다가 1430년(세종 12)에 함녕군으로 개봉되었다. 1429년(세종 11)에는 주청사(奏請使)로 명에 가서 명 황제를 설득하여 오랜 숙원이던 금은세공(金銀歲貢)을 폐지하는 데 공을...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조선 전기 길재를 모신 서원. 1529년(중종 24) 현감 조천계(趙天啓)가 화동산(花洞山) 아래에 서원 건립을 시도하였으나 중단되었다. 1585(선조 18) 현감 유운룡(柳雲龍)이 유림들과 상의하여 야은 길재의 묘 앞 산기슭 나월봉(蘿月峰) 아래에 다시 서원 건립을 추진하여 3년의 공사 끝에 완공하여 오산서원이라 하였다. 길재를 주향으로 배향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송은(松隱) 장안세(張安世)를 향사하기 위해 세운 서원. 1774년 (영조 50)에 창건하였으며, 1819년(순조 19)에 중수하였다. 고종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893년 사당이 있던 자리에 신당과 단비(壇碑)를 세우고 장안세만을 독향으로 하여 향사를 이어왔으며, 1984년 묘우과 강당을 중건하고 비각과 동재와 서재를 증축하여 1987년 완공...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장금용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 고려 전기에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을 향사하기 위해 1969년 세운 사당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정면 6칸, 측면 3칸 반 규모의 강당이 있다. 오른쪽에는 사당인 숭의묘(崇義廟)가 배치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평면은 앞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을...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외예리 연흥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서당. 성와(省窩) 윤중방(尹重邦)을 추앙하고 후학의 강학지소로 사용하기 위해 1917년에 중창한 서당이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형 건물이다. 평면은 중당 협실형(中堂夾室形)인데, 양측 온돌방의 앞면에는 한 칸씩의 마루가 돌출되어 전체적으로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강당의 뒤에는 사당인 연봉사(蓮...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인물 박운(朴雲)의 정려비. 박운은 밀양인(密陽人)으로 자는 택지(澤之) 호는 용암(龍巖)이다. 고려시대 우정승(右政丞) 박화(朴華)의 후손으로 진사 박종원(朴宗元)의 아들이다. 1493년(성종 24) 해평 고리곡(古里谷)에서 출생하였다. 1519년(중종 14)에 진사(進士)에 입격하였으나 당시는 사화가 잦은 때라 관직에 나가지 말라...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1630년(인조 8)에 이 지역 출신으로 절의를 지킨 하위지(河緯地), 이맹전(李孟專) 및 고려말의 충신 김주(金澍), 명종 때의 학자 박운(朴雲) 등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2010년 복원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월암서원에 속해 있던 정자. 1630년(인조 8) 농암(籠巖) 김주(金澍),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을 모시는 사당인 삼인사(三仁祠)가 세워졌으며, 1694년(숙종 20)에 월암서원으로 사액되었다. 그 후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월암정만 남게 되었다. 월암서원은 2010년...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 구평마을에 있는 전윤무(田胤武)의 재실. 전가식의 후손이며 전좌명의 증손인 가정 전윤무(1511~1560)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1878년(고종 15)에 건립하였으며, 1960년 중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1층 기와집이다. 평면은 중앙에 어칸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1칸의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 挾室形)...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학자 남파(南坡) 장학(張澩)이 살던 집의 당호(堂號). 당호인 육약(六若)이란 작게 지은 누추한 집에 살면서 고루(高樓)같이 여기고, 해진 옷을 입고도 수놓은 비단같이 여기고, 식물의 뿌리를 씹으면서 고량진미(膏粱珍味)같이 여기고, 무덤을 갈면서도 논밭같이 여기고, 자제를 부리면서도 사령(使令)같이 여기고, 훈화를 공부하면서 정사(政事)같...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조선시대 육의당(六宜堂) 장대림(張大臨)이 건립한 전통 가옥. 정침(正寢) 6칸, 사랑채 4칸 규모이다. 장대림은 육의당에서 경사(經史)를 쌓아두고 금서(琴書)를 모아 날마다 스스로 즐기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당호인 ‘육의(六宜)’는 돌을 다듬어 단을 쌓고 꽃을 심어 사시와 조석으로 알맞게 즐긴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여러 번의 중수를...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말 의우총(義牛塚) 비. 의우총은 짐승으로서 의행(義行)을 한 소의 무덤이다. 조선 말기 봉곡 지역에 거주한 여양인(驪陽人) 진숙발의 처 밀양박씨는 빈곤한 처지에 일찍이 과부가 되었다. 이러한 형편에 암소 한 마리를 길러오던 중 송아지를 낳은 지 불과 사흘 만에 불행히 어미 소가 죽고 말았다. 밀양박씨는 어미를 잃은 송아지를 불쌍히 여겨 그대로...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명준(李命峻)의 정려편액. 이명준은 벽진인(碧珍人)으로, 자는 성중(性中), 호는 성괴재(省愧齋)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효행이 탁이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다. 부친이 별세하자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3년 시묘하여 무릎 닿는 곳이 구덩이가 되고, 절한 곳에 풀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 부친 별세 후 34년간 노모를 위해 약탕관...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진화(李晉華)의 효자정려비. 이진화는 덕수인(德水人)으로 자는 명진(明進)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아우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후손으로 참의(參議) 이동로(李東魯)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다가 모친이 사망하자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지어 3년 동안 시묘를 하루같이 하자 향리(鄕里)에서 추...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진화(李晉華)의 정려편액. 이진화는 덕수인(德水人)으로 자는 명진(明進)이다. 율곡 이이의 아우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후손으로 참의(參議) 이동로(李東魯)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다가 모친이 사망하자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지어 3년 동안 시묘를 하였고, 향리(鄕里)에서 추천을 하여 정려가...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공자와 선현을 향사하고 후학들에게 교육을 실시한 향교. 인동향교는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건립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의 어느 시점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인동의 북쪽 2리 지점인 황상동의 어운산 자락에 향교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임재의 정표비(旌表碑). 임재는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황간감무(黃澗監務)를 역임하였으며, 부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조석으로 극진히 약을 달였고, 사망하자 슬픔이 극에 달했다.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면서 6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들른 적이 없었으며, 1472년(성종 3)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장방형의 자연...
-
조선시대 구미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 인동(仁同).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증장악원정 장내적(張乃迪)이다. 장경욱은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하여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봉양하여 주변 사람들이 남다른 효성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
조선시대 구미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오(敬五), 호는 긍재(兢齋). 심곡(深谷) 장제원(張悌元)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성균진사 장원표(張源杓)이다. 장교찬은 부친의 병환에 11년 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부친의 시탕(侍湯)에 정성을 다하고 부친이 변비로 몹시 고통을 겪자 대나무 통을 항문에 꽂고 입으로 빨아서 대변을 나오게 하여 괴로움을 덜어 주었다고...
-
조선시대 구미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태로(台老), 호는 검계(儉溪). 기산(岐山) 장용한(張龍翰)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탄(張坦)이다. 장국주는 일찍이 부모를 잃어서 예를 다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하다가 작고한 부친의 환갑이 되는 해 가묘에 고하고 재사(齋舍)에서 여묘하는 의절을 본받아 3년을 지냈다. 또 집의 처마에 흰 비둘기가 날아와 서식하는 이적이...
-
조선시대의 구미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의(全義). 인동(仁同) 사람 장병구(張炳九)의 아내이다. 장병구의 처 전의이씨는 20세에 남편이 죽은 후에 시부모를 극진히 모셔 효도를 하였으므로 관에서 포창을 하였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동언(東彦). 아버지는 통덕랑 장돈(張暾)이다. 장석진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영조 때 아버지 장돈이 원통한 옥사에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되자 서울에 가서 길거리에서 밤낮으로 통곡하였는데, 때마침 당시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었다. 당시 형조판서 윤동도(尹東度)가 불러서 그 까닭을 듣고는 영조에게...
-
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김해(金海). 남편은 인동장씨(仁同張氏) 장시호(張時皥)이다. 장시호의 처 김해배씨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17세에 장시호에게 출가하였다. 성품이 순박하고 행실이 예의에 어긋남이 없어서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고 동서 간에 화목하며 하인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아껴주니 온 집안이 화목하고 엄숙하였다. 1800년(정조 24) 인동부사 이갑...
-
조선 전기 구미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립(斯立), 호는 죽창(竹窓). 할아버지는 풍저창승(豊儲倉丞) 장보(張俌), 아버지는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장맹저(張孟儲)이다. 형은 장적손(張嫡孫)이다. 장신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형 장적손(張嫡孫)과 함께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시...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자장(子長). 할아버지는 풍저창승(豊儲倉丞) 장보(張俌), 아버지는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장맹저(張孟儲)이다. 동생이 죽창(竹窓) 장신손(張信孫)이며, 아들이 죽정(竹亭) 장잠(張潛)이다. 장적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동생 장신손(張信孫) 함께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는데...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장한(張翰)의 정려비. 장한은 조선시대 월호리에 거주한 사람으로,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고 모친이 사망하자 여막(廬幕)을 지어 3년간 시묘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한 극진한 효성이 알려져 조정에서 유곡찰방(幽谷察訪)을 제수하고 정려비를 세웠다. 자연석을 치석하여 전면을 평면화하였다. 규형(圭形)으로 높이...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좌명 효자정려비. 전좌명은 연안인(延安人)으로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중정대부삼사좌윤 전목(田霂)의 증손자이다. 관직은 광흥창주부로,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을 추증받았다. 전좌명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의 상을 당하였을 때 6년간 시묘를 하였다. 후에도 계속하여 삭망(朔望)때 묘소를 찾아갔는데, 향...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전좌명(田佐命) 정려편액. 전좌명은 연안인(延安人)으로,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중정대부삼사좌윤 전목의 증손자이다. 관직은 광흥창주부로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을 추증받았다. 전좌명은 1421년(세종 3)에 출생하여 1524년(중종 19)에 별세하였는데, 향년 104세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있는 정방준의 처 초계변씨의 정려비. 초계변씨는 목사(牧使) 변세봉(卞世鳳)의 딸이며, 강령현감 정방준의 부인이다. 임진왜란 때 지아비는 종군(從軍)하고 초계변씨는 신곡 문암산에 숨어 있는데, 왜적이 이미 알고 찾아오자 욕을 면치 못하리라는 생각에 치마폭에 혈서를 써 던지고 6세 된 딸을 안은 채 언덕에서 뛰어내려 절개를 지켰다. 이에 조정에서 정려...
-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설 학교 건물. 1520년(중종 15) 인동의 유학자인 진사 장잠(張潛)이 건립하여 1537년(중종 32)에 1차 중수를 하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종 때에 현감으로 재직하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자주 방문하여 장잠과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형조판서 장석룡(張錫龍)이 지...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계거(鷄渠) 장거(張渠)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 평면은 어칸의 2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夾室形)인데, 양측에 마루 1칸씩을 달아내고 가적지붕을 올려, 전체적으로 정면이 6칸 규모가 되었다. 이처럼 양측의 측간을 달아내어 가적지붕을 얹는 형태는 이 지역의 특징으로 보인다. 가구(架構)는 2량가(三樑...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장응일(張應一)이 지은 3칸 규모의 건물. 1903년에 지은 형조판서 장석룡의 「중건상량문」에 의하면, 장응일이 임진왜란을 겪고 옛터로 돌아와 모원당을 지어 부친 장현광의 거처를 평안케 하였다고 한다. 또한 안거하기 위하여 청천당을 지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어버이를 정성을 다하여 받들기 편하였다고 한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 비바람으로 인해...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부 초계변씨 정려편액. 초계변씨는 목사 변세봉의 딸이며, 강령현감 정방준(鄭邦俊)의 처이다. 임진왜란 때 정방준은 종군을 하였고, 변씨는 신곡 문암산에 숨어 있는데, 왜적이 은신처를 알고 찾아오자 욕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치마폭에 혈서를 써 던지고, 6세 된 딸을 안은 채 언덕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여 절개를 지켰다. 이에 조정에서 정...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오산서원의 강당. 오산서원이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948년에 도량동 720번지로 옮겨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안에는 숙종어제필(肅宗御製筆)의 판각(板刻)과 이조판서 조상우(趙相愚)의 어제운(御製韻), 선산부사 조두수(趙斗壽)의 어제운 등의 목각판과 율리전원(栗里田園)의 편액이 걸려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래은(朴來殷)의 처 함종어씨(咸從魚氏) 정려편액. 함종어씨는 어유찬(魚有瓚)의 딸로서 밀양인(密陽人) 박래은(朴來殷)의 처이다. 박래은은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9세손이며 박의호(朴義浩)의 독자로 1811년(순조 11) 1월 29일 질환으로 급사하였다. 갑자기 닥친 불행에 함종어씨는 슬픔을 삼키지 못하고 슬하에 혈육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당. 해평김씨의 시조인 장렬공(莊烈公) 김훤술(金萱術)의 석상(石像)을 봉안하여 공덕을 추모하는 사당이다. 해평동 시중사(侍中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정면의 간살은 양측간을 반 칸 규모로 잡아 실제 정면의 길이는 2칸 규모이다. 화강석으로 소로수장한 무익공(無翼工)집으로 기둥은 앞면에만 둥근 기둥을 사...
-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죽정(竹亭) 장잠(張潛)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장잠은 자(字)는 호원(浩源), 호는 죽정(竹亭)으로 조선 중종 및 명종 때의 유학자이다.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1531년(중종 26)에 진사가 되었으며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 존경받았다. 현암서원은 1692년(숙종 18) 9월에 현암사우(賢巖祠宇) 2...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물.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선산인 충순위(忠順衛) 김광보의 존모지소로 1928년에 건립되었다. 통훈대부 장교원(張敎遠)의 기문이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조선 말 황두선(黃斗善)의 효자비. 황두선은 장수인(長水人)으로 영상(領相)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황충로(黃忠老)의 아들이다. 양친이 병환에 있으면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고, 한 번도 병석을 떠나지 않았다. 노환으로 양친이 별세하자 피눈물을 흘리며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侍墓)를 한 후에도 초하루 보름에 묘를...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황중화의 정려비. 황중화는 평해인(平海人)으로 자는 응오(應五) 호는 국사(菊史)이다. 무을 웅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 부친의 병환 때 변을 맛보며 탕약(湯藥)을 조절하였고, 변을 보지 못하면 입으로 빨아주었다. 부친의 타계 후 3년 시묘를, 부모님 살아계실 때처럼 하였다. 황중화의 효행에 감동을 받은 선산 유림(...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부모를 극진하게 섬긴 아들. 가계(家系)의 연속이 중요시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제도 하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가정 내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흔히 부자관계(父子關係)로 표현되는 이 관계는, 부모와 자식이 각기 독립적인 인격자임을 상호간에 인정하는 바탕에서 발생한 인간관계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