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일대에 전승되는 갑사 당산제의 유래 이야기. 「갑사 당산제 전설」은 괴목나무를 대상으로 삼아, 산신령이 신이한 이적을 보여준다는 식물에 관련된 불교 이야기이다. 오늘날에도 계룡산 갑사에서 해마다 정월 초사흘에 제를 지낸 후, 괴목의 구멍에 돌을 던져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1992년 공주시·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석탑 이야기이자 갑사 재건 이야기. 「공우탑 전설」은 갑사에서 대숙전으로 가다 보면 길가에 발견할 수 있는 삼층 석탑에 깃든 이야기이다. 바로 이 탑이 공우탑인데, 원래 동쪽 산중에 있던 남사자암 터에 있는 것을 옮긴 것이다. 「공우탑 전설」에서는 황소를 보내준 존재와 그 황소의 등에 갑사 재건을 위한 건자재...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본래 「석가후불화」, 「약사후불화」, 「아미타후불화」 3폭이 한 조를 이루는 『삼세불회도』였으나 수년 전 왼쪽의 「약사후불화」를 도난당하여 지금은 2폭만 남아 있다. 1700년대 전라남도 조계산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화사 의겸이 으뜸 화원을 맡아 조성하였다. 두 불화 모두 전형적인 군도 형식이고, 화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전해지는 공주 지역의 명승지를 노래한 민요. 각 고장에는 지명을 노래하는 민요들이 산재해 있다. 공주에는 「충청남도 창부 타령」과 충청남도 지명을 풀어 노래한 「호서가」, 공주의 명승을 노래한 「공주창부타령」(일명 「공주 타령」) 등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공주창부타령」은 2~4소절의 노랫말이 마을마다 다르게 산재해 있었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의 부속 암자인 고왕암과 마명암 터에 전해지는 이야기. 「마명암 전설」은 고명암과 지금은 사라진 마명암 터에 대한 이야기로서 백제의 패망과 충복의 말을 다루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전해지는 「엄대암 전설」 또한 백제 멸망에 관련된 전설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와 신원사의 승려들에게 널리 알려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 먹방산에 전해 내려오는 단맥 이야기. 「먹방산 전설」은 생기가 흐르는 지맥(地脈)을 끊어 명당을 파손한 단맥설화(斷脈說話)의 한 예이다. 지맥을 칼이나 낫으로 자르기도 하고, 도끼로 찍거나, 쇠·쇠말뚝·쇠못 등을 그대로 박거나 달구어 박기도 하며, 또는 삽으로 파거나 숯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서 끊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먹방산 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서 신도읍의 건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공주문화원에서 『공주의 전통마을』제4편의 집필을 위해 이길구가 주민을 만나 채록하였다.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의 불당리에는 이성계가 신도 건설을 위해 찾아왔을 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후 맨 처음 새로운 도읍지로서 계룡산 일대를 정했다....
-
충청남도 계룡면 유평리에서 영규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3년 임헌도 교수가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이다. 영규대사는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외로운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어느 날 나뭇짐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1리에서 용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계룡면 구왕1리 마을회관에 있는 느티나무 정자를 끼고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용산(龍山)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계룡산 자락의 마을로 경치가 수려해 반포의 신소로부터 상창소를 하창소로 이어지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예로부터 삼소지간이 마화구룡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던 곳이라...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전해지는 청소년들이 일상이나 놀이판에서 부르던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의 성인 민요 중에는 신세 타령조의 노래들이 많다. 이 노래는 청소년들이 가족을 모두 거창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을 돌팔이라 자탄하지만, 노래는 흥겹게 부르는 특징이 있다.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부르던 노래로 남녀 노래 2곡이 있다. 「우리 아버지 서...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전해지는 흥겨운 자리에서 부르던 연희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의 창부 타령은 경기민요와 달리 상청을 쓰지 않고 생활에서 사용하는 목청, 즉 평성을 써서 부르며 기분이 좋아지고 흥이 나면 상청을 섞어서 부른다. 앞뒤 후렴 또한 형식이 자유로워 여러 가지 변형된 소리가 존재하고 즉흥적으로 입술 터는 소리나 의성어를 이용하여 흥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서 영규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마루 전설」은 『공주민속』(공주문화원, 1992)에 실려 있다. 원전은 임석재의 『한국구전설화-충남북편』(평민사, 1990)이다. 채록이나 수집상황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임진왜란 직전에 한 총각이 갑사(甲寺)를 찾아와 상좌로 받아달라고 하였다. 주지가 그 총각을 절에 머물...
-
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뒤져보면 갑사와 관련한 기사들이 주목된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이 어린 시절인 해방 이전의 마을 모습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사적인 일에 제한되어 있어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한 신문기사를 통해 80여년전 갑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동아일보 1924년 9월 22일 “...
-
420년 아도화상이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에 창건한 사찰. 동학사, 신원사와 함께 계룡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서 갑사구곡(甲寺九曲)의 경관을 배경으로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갑사는 계룡산의 여러 사찰 중에서도 가장 문화재가 풍부한 사찰이며 공주시에 가까이 위치해 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전언이 있다. 그 이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삼층석탑. 탑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솔도파(率堵波)·솔탑파(率塔婆)라 부르다가 탑파·탑이라고 줄여서 부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하나의 탑을 세워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나, 이후 탑을 두 개로 나누어 세우기도 하고, 사원의 중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세우기도 하였다. 세월이...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청담 화상이 창건한 갑사의 산내 암자.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의 『한국 사찰 전서』에 의하면 갑사 내원암은 1808년(순조 8) 청담 화상(淸潭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암자 건축의 독특한 모습으로 당시 사찰 건축의 새로운 유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211호로 지정...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동종. 갑사 동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에는 두 마리의 용이 좌우로 용두를 힘차게 뻗치고 있으며, 입은 크게 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범종만의 특징인 용통(龍筒)은 마련되지 않았다. 어깨 부분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 삼단의 화면 중 중앙단에 삼신불을 큼직하게 배치한 다음 상·하단에는 해당 협시보살과 사천왕 및 권속들을 빈틈없이 채운 복잡한 구성의 불화이다. 삼신불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중앙에 안치하고, 왼쪽에는 보살 형태의 노사나불을 그렸으며,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을 배치하였는데, 모두 크기를 같게 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삼세불상. 삼세불(三世佛)이란 원래 과거, 현세, 미래불이라는 시간적인 개념의 부처를 말하는 것이었으나, 이후 점차 그 개념이 확대되어 서방극락정토, 사바세계, 동방약사유리광정토의 공간적인 개념까지 함축하는 다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갑사 소조삼세불은 주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계룡산사무소의 갑사분소가 갑사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계룡산 관리사무소의 역할뿐만 아니라 갑사를 찾는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갑사분소의 바로 앞에서 시작하는 갑사 자연관찰로는 산책로를 따라 총 14개의 안내판이 있어 어린이가 안내판의 내용을 읽으며 그것을 따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자연관찰로는 갑사로...
-
사찰의 일년 행사중 가장 중요한 날이 바로 초파일 석가탄신일이다. 갑사에는 수많은 신도가 찾아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 몇주전부터 계룡산 입구에는 연등이 걸리고, 초파일이 되면 아침 일찍 갑사 경내에 연등을 내건다. 방문객들에게는 갑사 앞에서 한끼 꺼리쯤 되는 절편을 나눠주고, 신도들은 절 마당에 들어서자 마자 앞마당의 어린 석가모니 상에 물을 부어 목욕을 시키는 관욕...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다포식 목조 건축물. 갑사 강당은 정면의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인다. 강당 남쪽에는 적묵당이, 북쪽에는 진해당이 좌우에 각각 있다. 갑사 강당은 정유재란 당시 소실된 후 1614년(광해군 6)에 중건하였다. 1798년(정조 22)에는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으며 1890년(고종 27)에 크게 보...
-
예로부터 갑사의 수려한 계곡을 사랑한 인물이 많았다. 갑사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시와 글이 전하며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한 국권 강탈을 성사시키고 일제의 봉작(封爵)을 받은 윤덕영(尹德榮)[1873~1940]은 갑사 입구에 별장을 세웠다. 갑사에 방문했다가 좋은 경치를 보고 멋대로 갑사 앞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이때에 수정봉 중사자암 중턱에 있던 부도(보물 제257호)를 가까이...
-
윤길수씨는 갑사구곡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몇 안되는 주민 중 한사람이다. 모두에게 잊혀져가던 갑사구곡을 꼭 알리고 싶었기에, 지금도 종종 흙에 묻혀가는 3곡과 7곡의 바위를 찾아 흙과 이끼를 털어내곤 한다. 그는 갑사동에서 태어난 중장리 토박이로, 갑사 상가의 초원식당 뒤편에 태어난 집터가 있다. 어릴때에 현재의 주차장쪽으로 이사를 했다가 1981년에 지금 사는 삼거리...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갑사 대웅전에서 서쪽 개울을 건너면 비교적 넓은 마당 앞에 서향으로 요사와 나란히 있다. 갑사 대적전은 임진왜란 당시 사찰이 전화로 전소될 때 없어진 이후 조선 후기에 중건되었다. 앞면 어칸에 걸린 현판에 ‘도광육년사월목암서(道光六年四月牧岩書)’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1826년(순조...
-
삼거리 를 지나 갑사쪽으로 들어서면 나무장승과 돌장승이 좌우에 나란히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장승은 매년 새로 깎지는 않았고 주민이 만든 것은 1955년에 임광식, 임귀철씨가 깎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1990년대까지 서 있었는데 소실되어 형체가 없어진 것을 다시 깎은 것으로 ‘민족예술인총연합 장승굿준비위원회’에서 전국에 장승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곳에도 만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적비. 공주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를 가면 계룡면소재지로 빠지는 길목이 있고, 이곳에서 계룡저수지를 지나 6㎞ 거리에 갑사 입구가 있다. 갑사 일주문을 통과해 사천왕문에 이르러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갑사 부도군 옆에 갑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화강석 자연 암반을 좌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사당식 목조 건축물. 삼성각은 칠성(七星), 산신(山神), 독성(獨聖)의 삼성(三聖)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 형태의 건축물이다. 대개 이 삼성을 따로 봉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갑사에서는 삼성각에 함께 봉안하였다. 갑사는 크게 대웅전 구역, 대적전 구역, 팔상전 구역, 표충원 구역으로 구분된다. 갑사 삼성각은 대웅전 구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조 보살입상. 갑사 석조보살입상은 계룡산에 남아 있는 유일한 백제시대의 석불상이다. 원래 중사자암(中獅子庵)에 안치되어 있던 것을 갑사 부도 및 석조약사여래입상과 함께 갑사 경내로 옮겨졌다고 한다. 불상의 높이는 130㎝이며, 보주형의 머리 광배를 불신과 한 몸으로 조각하였다. 현재 광배를 포함한 얼굴 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인근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 갑사에서 동학사(東鶴寺)로 이르는 계곡을 따라 약 100m쯤 가면 나타나는 동굴 내에 있다. 갑사 석조보살입상과 마찬가지로 원래 갑사의 뒷산에 있는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얼굴은 장방형에 가깝지만 전체적으로 둥근 편이며, 민머리에 육계는 낮고 넓고, 이마 중앙에 백호(白毫) 구멍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삼층석탑. 원래 갑사의 부속 암자인 중사자암에 건립되었으나 암자가 폐허되면서 갑사로 이건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워지게 되었다. 지면에 4매의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렸다. 지대석에는 4면에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갑석에는 우동(隅棟)이 성형되어 있다. 몸체[옥신] 받침은 곡선으로 처리하고, 몸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건물. 갑사의 전체 배치 구성에서 가장 깊은 곳에 해당되는 언덕 위, 대웅전 구역에서 동북쪽 구릉 위에 있다. 팔상전의 역사적 변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건축 양식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에 삼량집 구조이다. 평면은 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운 승병장 서산(西山)대사 휴정(休靜)과 사명(四溟)대사 유정(惟政), 기허(騎虛)대사 영규(靈圭)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갑사 표충원에 봉안된 영규는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를 하였고, 뒤에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수백 명을...
-
갑산소마을은 중장천의 북쪽, 남향한 골짜기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에서 꽤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오래전 이 안쪽에 큰 대갓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 대갓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윤이문’이라 불렀으며, ‘이선달댁’이라고도 했다. 이선달댁은 소유의 땅이 10리 밖에도 있다고 할 만큼 아주 큰 부자였고, 실제로 이선달댁 땅을 밟지 않고는 이 일대를 다닐 수 없다고 할...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1898년에 천안·공주 지역에 처음으로 북감리교의 스웨러 선교사가 파송되었고, 1901년에는 충추·진천·청주에 각각 교회가 세워졌다. 공주에는 1903년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같은 해에 원산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맥길 선교사가 공주 지방에 파송되어 의료 선교를 시작하였다. 1905년 4월 10일 넓...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경천역(敬天驛)이 있어 경천(敬天)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익구곡면(益口曲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의 용두리(龍頭里)·장대리(場垈里)·상성리(上城里)·석정리(石井里)·하성리(下城里)·공평리(公坪里)가 통합되어 경천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의 이문에서 정월 14일에 부녀자들 중심으로 올리는 민간의례. 경천리 이문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마다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위하여 이문(里門)에서 지내는 제의이다. 이문은 마을입구에 만든 출입문이다. 경천리 이문제는 마을의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행한다. 제관은 보통 부녀회장이 맡는데,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벌이기도 한다. 경...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서 매년 정월 보름에 지냈던 민간의례. 경천리 축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마다 말[馬]을 위해 지내던 의례인데, 지금은 사라져 그 성격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짐작이 되는 부분은 경천이 역원인 관계로 말 관리가 항상 중요한 일의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경천리 축우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마을회의에서 가려 뽑았고, 경비는 집집...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경천역에 관한 기록은 여러 지리지나 읍지에 위치, 소속된 말과 노비의 수 따위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세조 6년 2월 5일자 기사에서는 성환도, 일신도, 증약도, 율봉도를 합하여 성환도라 칭하고 증약도찰방으로 책임을 맡게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관개용 저수지. 1963년 1월 1일 착공하여 1967년 1월 1일 준공된 인공 저수지이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신원사 저수지 또는 경천양화저수지라고도 한다. 제방 형식은 흙댐(휠댐)이다. 유역 면적은 800㏊, 총 저수량은 202만 9,710㎥이다. 제방 높이는 17.2m, 길이는 160m이다. 물넘이 형식은 월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즐거운 교실, 행복한 미래를 교육 지표로 하여 성실하게 생활하는 사람(성실인), 신념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신념인), 협동할 줄 아는 사람(협동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52년 11월 경천고등공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경천고등공민학교는 18년여 동안 총 66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70년 2월 1...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초 기본이 튼튼한 실력있는 학생, 기본 생활을 지키고 바르게 행동하는 학생, 지식 정보 활용 능력을 스스로 배양하는 학생, 다양한 체험으로 문화를 애호하고 계승하는 학생,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의지가 강한 학생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직·성실·협동이다. 1944년 5월 5일 계룡초등학교 경천분교장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 있는 농공단지. 계룡농공단지는 1983년 제정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촉진법’에 따라 공주 지역에 공업을 유치하여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고, 나아가 지방 재정 확충 및 주민 소득 증대를 통해 도시와 농·어촌 간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계룡농공단지는 충청남도 공주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 11㎞...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계룡면은 계룡산(鷄龍山)이 있는 지역으로, 계룡산의 모양이 닭의 볏같이 생겼으며 사방에 계추(鷄雛)가 있으므로 계룡면이라 하였다. 백제시대에 웅천 관할이었고, 신라시대에는 웅주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공주목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익구곡면과 진두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룡면이라 하고...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집성촌. 현재 계룡면에 유허가 남아 있는 전통 있는 성씨들은 대체로 16세기 이후 터를 잡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그 이전에는 간혹 전설상으로 나타날 뿐이다. 계룡면의 대표적인 성씨로는 진주정씨, 전주이씨, 강릉유씨, 해주오씨, 순천박씨, 부안임씨, 창녕성씨, 장기정씨 등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는 수백 년 전부터 많...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계룡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남도 공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6개 동[중학동, 웅진동, 금학동, 옥룡동, 신관동, 월송동], 1개 읍[유구읍], 9개 면[이인면, 탄천면, 계룡면, 반포면, 의당면, 정안면, 우성면, 사곡면, 신풍면] 중 계룡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계룡면의 행정, 민원 및...
-
공주에는 역사 깊은 사찰과 절터가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이는 백제의 고도에서 조선시대 충청도관찰사가 머무는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의 지역적 위상 덕분이며 그것은 즉 많은 사람들이 공주에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계룡산에 사찰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통일신라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갑사가 백제 때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입증할...
-
계룡산을 찾는 등산객은 매년 백만명이 넘는다. 등산로가 험하지 않으면서도 단조롭지 않으며 코스가 다양하여 등산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어렵지 않게 오른다. 또한 계룡산의 산줄기가 충남 공주시·논산시·계룡시, 대전광역시 등에 뻗어있어 대도시의 도시인들이 쉽게 찾아 올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계룡산 등산로는 갑사에서 시작해 동학사에서 끝내는 것이다. 물론 반대 코스도 마찬가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서 생산하는 온상 재배 딸기. 계룡산 산지의 기후 조건과 깨끗한 농업용수가 합쳐져 재배·수확된 공주시 계룡면의 특산 딸기로 맛과 육질이 탁월하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2리는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산2리를 이루고 있는 다래울·중대·원동 세 마을은 목마른 말이 물을 찾아 마신다는 갈마음수(渴馬飮水) 명당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일대에서 열리는 아시아 산악신앙 축제이자 마을 제사. ‘巫(무)·佛(불)·儒(유)’의 다종교 공존의 축제인 ‘계룡산 산신제’는 조화스러움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충청남도의 정서에 어울리는 전통적이고도 특색 있는 향토축제이다. 1998년에 복원하여 행하여지고 있는 ‘계룡산 산신제’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선양하는 축제임은 물론이요, 나아가서...
-
계룡산은 공주, 대전, 논산에 걸쳐 있는 충청의 명산이다.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국가에서 신성시하며 제사를 지냈던 ‘5악(동악 토함산, 남악 지리산, 서악 계룡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 중 하나였다. 유교주의 국가였던 조선에 와서도 명산이라 하여 국가에서 매년 봄·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하였던 산이다. 계룡산의 서쪽에는 ‘으뜸’을 뜻하는 갑사(甲寺)가 자리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있는 계룡산 산신제를 보존하고 주관하는 단체. 계룡산 산신제를 복원하고 보존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일반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1998년 계룡산 산신제를 복원하면서 계룡산산신제보존회를 발족하기로 하여 심우성(공주민속극박물관장)이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공주민속극박물관에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1999년 구중회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동쪽은 계룡산에 이어지는 완사면이고, 남쪽과 북쪽에는 약 300m 높이의 화강암 구릉지가 있다. 중앙부는 분지를 이루어 서남부에 저수지 제방을 쌓기가 용이함에 따라 계룡면 하대리 인근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4년 착공하여 1964년 준공되었다. 제방 형식은 흙댐(휠댐)이며, 유역 면적은 1,574㏊,...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더불어 사는 삶을 기반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기초 기본 학습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위생과 안전을 생활 습관화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다양한 학습 경험을 기초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이다. 1919년 3월 12...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법당 건물. 갑사 정문인 해탈문을 지나면 강당이 있는데, 강당 뒷면에 있는 중간 뜰을 두고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갑사 대웅전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1604년(선조 37)에 중건되었다. 이후 1654년(효종 5)과 1875년(고종 12)에 크게 보수를 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승탑.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석조 승탑[浮屠]과 탑비(塔碑)는 국사(國師)나 왕사(王師)를 역임하였거나, 그러한 지위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을 경우 세워졌다. 승탑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의 기능도 있었지만 사찰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는 기능도 있었다. 원래는 중사자암이라는 암자에 있었는데, 1917년경...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철당간. 통일신라 이후 사원에서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었는데, 이러한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한편 당은 사원의 종파를 알리기도 한다. 기단과 철당간, 당간지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석은 장대석 2매를 철정으로 고정...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하던 제향 건축물. 1879년(고종 16) 중수한 건축한 건물이지만,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은 신라의 제사 규정에서 중사(中祀)에 속한다. 신라 5악 신앙에 의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이 후대로 계승된 것이다. 15세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 소림원에 봉안되어 있는 일제 강점기 조각가 김복진이 제작한 불상. 공주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은 근대기 조각가인 김복진[1901~1940]의 작품이다. 1935년 금산사 미륵불 입상의 공개 입찰 당시 김복진이 모형작으로 제출하였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라북도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에 봉안된 미륵불 입상과 상호를 비롯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 임립미술관에서 매년 10월 주관하는 국제 미술제. 공주국제미술제는 관객의 시각을 일시적으로 사로잡는 대중적이고 떠들썩한 설치와 행위 중심의 미술제가 아니라 보다 넓고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요란하지 않고도 저력 있는 미술제로서의 특징을 갖추고자 미술 현상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평면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2003년 임립미술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장되어 있는 1507년(중종 2)과 1625년(인조 3)에 간행된 공신 녹권. 『공주순천박씨공신녹권』2책은 계룡면 양화리에 세거하는 순천박씨가에 소장되어 있는 『십공신회맹록(十功臣會盟錄)』1책과 『정사원종공신녹권(丁巳原從功臣錄券)』1책 등 2책을 가리킨다.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순천박씨가는 중종반정의 주체인 박원종(...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 임립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미술 실기 대회. 공주시어린이미술실기대회는 다른 사람들과 실력을 겨루어 좋은 상을 수상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실기 대회라는 행사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고 함께 전시하고 보고 즐기며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미술 잔치로, 예술적 감각이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어린이들에게...
-
마을에 연세 60대 이상의 어른들은 누구나 기억하는 소리꾼이 있다. 삼거리마을에 살았던 김재익. 그는 공주의 민간 재인 중 마지막 우두머리 재인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유명한 재인이었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실력이 청출어람이라 소문이 자자했다. 살아있다면 100살쯤 되었을까. 미인박명이라더니 6·25 전쟁 직후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에는 중장2리인 오미마을에 살다 삼거리마...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서 발원하여 하대리에서 노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구곡천은 중장리에서 갑사지라는 큰 저수지와 합류한 후에 북서 방향으로 흘러 하대리에서 노성천과 합류한다. 계룡면 중장리와 구왕리, 내흥리 일대를 흐르는 구곡천의 본류와 연변에는 촌락이 형성되어 있어 벼농사와 밭농사가 국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장리의 만학골, 구왕리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겨서 구렁말·구룡말 또는 구왕(九旺)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익구곡면(益口曲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 구왕리(九旺里)·이거리(二巨里)·하청리(下淸里)·흥룡리(興龍里)·반송리(盤松里)·용산리(龍山里)·양동(陽洞)·덕소리(德沼里)·만학리(萬壑里)가 통합되어 구왕리라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
계룡산의 수많은 전통 사찰 중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갑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시대의 당간지주, 고려시대의 부도, 조선시대에 지어진 절집들, 돌부처, 종, 월인석보의 판목 등 그 종류도 많고, 하나같이 지정 문화재가 될 만큼 역사성과 예술성에 손색이 없다. 갑사에 남아있는 지정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국보 제298호 갑사삼신불괘불탱(甲寺三身佛掛...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에 있는 평야. 우리나라의 자연 취락은 대부분 전면에는 평지와 하천을, 후면에는 산을 둠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를 취해 입지해 왔다. 이 중 전면의 평지는 보통 해당 지역 또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금대들도 그렇게 지어진 명칭 중 하나이다. 금반형의 명당이 있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금대리라 지어졌으며 전면의 평야를 금대들이라 부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반형(錦鞶形)의 명당(明堂)이 있는 곳에 새로 마을이 들어섰다 하여 금띠·금대(錦帶) 또는 신대리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진두면(辰頭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의 옥동(玉洞)·상신리(上新里)·석계리(石溪里)·불당리(佛堂里)와 익귀곡면(益貴谷面)의 삼성리(三省里)·대조리(大鳥里)가 통합되어 금대리라 하여 계룡...
-
충정남도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시 계룡면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에 금대리에서는 장승제가, 금대리 황새울에서는 산신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금대리의 장승제와 금대리의 산신제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마을 제사인데, 정확히 그 연원이나 변천된 과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주민들은 마을의 역사와 맥...
-
갑사의 승려와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사흩날 갑사 입구의 괴목을 위하는 제사를 지낸다. 현재 이 괴목은 줄기가 부러지고 썪어 밑둥만 겨우 남아있는 모습이지만, 그 굵기를 보면 수령이 수백 년은 되었음직하다. 마을에서는 1600살 된 나무라고 믿고 있다. 죽은 나무에 아직까지 정성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갑사에 전해지는 전설 때문이다. 갑사가 창건되고...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산(萁山) 아래 마을이 있어 기산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익구곡면(益口谷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 봉곡(鳳谷)·소봉곡(小鳳谷)·목월암(木月岩)·원동(院洞)·우와리(牛臥里)·황룡리(黃龍里)·평전리(坪田里)·방축리(防築里)와 목동면(木洞面) 중대리(中垈里)·시목리(柹木里)가 통합되어 기산리라 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달래꽃이 많이 피는 산골이어서 난댕이라 부르던 곳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흥리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익구곡면(益口曲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의 신내리(新乃里)·상내리(上乃里)·고비리(高飛里)·시화산리(柴花山里)·소룡리(巢龍里)·직동(直洞)이 통합되어 내흥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에서 발원하여 계룡면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노성천은 행정구역상 충청남도의 공주시와 논산시에 걸쳐 흐르고 있다. 노성천은 대체로 해발 고도 40~60m에 발달해 있으며, 상류부에는 계룡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어 홍수 조절 및 관개용수 수급이 비교적 수월하다. 노성천 연변에는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금대들, 상평들, 산정들,...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마을에서 주로 농사를 지을 때 사용했던 기구. 농기구는 농사 쓰임새에 따라 가는 도구, 삶는 도구, 매는 도구, 물대는 도구, 거두고 터는 도구, 알곡내는 도구, 말리고 갈무리하는 도구, 운반 도구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가래는 조선가래와 왜가래가 있었다. 조선가래는 나무로...
-
계룡산은 백제시대부터 나라를 지키는 명산이라는 대우를 받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산의 모양새가 금닭이 알을 품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라 하여 각각의 글자를 따 ‘계룡’이라 한 것인데 백제가 망하고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서도 역시 국가에서 제사를 올리는 산이었고, 유교주의가 지배한 조선시대에까지도 국가적으로 정성을 들인 곳이었다. 그런 역사속에 갑사가 들어섰고, 갑사...
-
갑사와 상가촌이 주관하여 괴목대신제를 성대하게 치른 후 해가 지면 중장리 삼거리마을에서는 길가의 보호수 아래에서 당산제가 조용히 치러진다. 괴목대신제에 비하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으나, 그 방식을 비교하면, 우리 전통에 훨씬 가깝다. 당산제를 지내는 보호수는 수령이 350년으로 되어있는데, 주민들은 ‘350’이란 나무 나이는 수십 년 전부터 그래왔으니 믿을 수 없고, 아...
-
갑사에서 시작되는 대장골 골짜기는 ‘익구곡’이라고도 불리우며 그 면적이 중장 1,2,3리를 거쳐 하대 1,2,3리에까지 이른다. 이 대장골 골짜기에 자리한 여러 마을을 일컬어 ‘열두대징이’라 하였다. 열두마을의 지명은 조금 다르게 전하기도 하지만 중장리와 하대리의 주요 마을을 일컫는 것은 분명하다. 열두마을을 갑사 입구에서 골짜기 끝의 순서로 보면, 갑산소 → 삼거리 →...
-
과거에는 절기마다 철마다 마을잔치를 벌였던 기억이 있다. 매년 보릿고개를 걱정하는, 여유롭지 않은 삶이었기에 마을잔치는 모두가 조금씩 추렴해 다같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농사일의 중요 시기때마다 이런 행사가 함께해 농사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다음 작업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먹고살기 좋아지니, 마을잔치가 더 줄어들었다. 정월에 괴목대신제와 삼거리 당산...
-
한 마을에 오래 살다보니 건너집도 가족같은데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동갑친구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들이다. 2007년 중복날에는 1941년생들의 동갑계 모임이 있었다. 마을회관에서는 한참 복달음 잔치가 벌어졌는데 동갑계 모임을 가진 이들은 마을 옆의 ‘갑사골가든’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굽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물었더니, 다들 바빠서 모이기 힘든데 이렇...
-
중장 1리의 7개반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마을 총회는 매년 12월경에 개최된다. 다른 동네에서는 ‘동계’나 ‘대동계’라 하기도 하는데 중장 1리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마을마다 각각 독립적인 마을계가 있다. 1950년대 초 행정적으로 ‘중장 1리’가 편성된 후에야 마을 총회라는게 생겼다. 마을계는 연반계의 성격이 강하고, 총회는 마을의 전반적인 운영과 관련이 있다....
-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는 총 3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바로 중장 1리. 갑사의 아랫마을이다. 갑사 사찰은 계룡산 둘러둘러 골짜기마다 자리잡은 고풍스러운 여러 사찰 중 가장 으뜸되는 절이니, 매년 갑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장1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계룡산을 등산하는 등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갑사에서 고개를 넘어...
-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지난 1700여년간 불교는 한국인의 정신적 귀의처였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동양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각각의 나라에서는 그 민족의 특성에 맞게 서로 다르게 성장해 왔다. 한국의 불교는 동양의 어느나라 보다도 불교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있는 사찰마다 절의 상징과 같은 귀중한 문화재가 현존하고 있다. 한국인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
조선 후기 대한제국의 황후. 생전에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위치한 신원사 내의 중악단이 1651년(효종 2)에 폐지된 것을 명을 내려 재건하였다.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천거로 왕비에 간택되어 1866년(고종 3) 한살 아래인 고종의 비로 입궁하였다.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민치록(致祿)의 딸이다.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
상장마을에는 진씨 가문의 정려인 여흥민씨 열녀문이 있다. 여흥민씨는 어려서부터 효녀로 이름났다. 겨우 열세살 어린나이에 병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드려 부모를 살려냈을 정도였다. 부모에게 효성스러웠던 그 고운 마음은 열일곱에 삼척진씨 진철규(陣喆奎)[1788~1805]와 결혼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편이 몹쓸병에 걸려 죽게되자, 결국 진씨...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박이검(朴而儉)이다. 박인손의 손자인 박정제(朴廷濟)는 1624년 이괄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공신녹권(功臣錄卷: 공신 전체의 공적과 상훈을 기록한 문서)을 받음으로써 공신 집안으로 유명해졌다. 원래 박인손은 전라남도 영암에 살았다. 후손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박이검과 박인손 부자가 영암에 가기 위하여 공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명산(鳳鳴山) 아래에 위치하여 봉명산에서 유래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중봉리(中鳳里)·신봉리(新鳳里)·상봉리(上鳳里)·내동(內洞)·모일리(茅日里)와 익구곡면(益口谷面) 화암리(花岩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봉명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제사.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봉명리 장승제는 한때 마을에서 장승을 없애고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 안 좋은 일들이 많아지자 다시 장승을 모시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 장승제는 규모나 제례의식이 간소화되었으나, 매년 음력 정월 14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장승제를 치르고 있다. 공주시...
-
우리나라에는 사람을 위해 제 한몸을 희생한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대부분의 전설은 그저 이야기로 끝날 뿐이고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갑사 앞에는 갑사를 위해 큰 공을 세우고 죽었다는 소를 기리기 위하여 석탑이 세워져 있다. 일명 ‘공우탑(功牛塔)’이 그것이다. 갑사는 백제 때 창건설화가 전해질 만큼 유서 깊은 고찰이다. 그러나 국가의 전란시기에 어딘들 무...
-
조선 말기에는 유서깊은 사찰의 사하촌마다 신도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의 사찰은 배불정책과 맞물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았으므로 조선 말기에는 사찰 자체적으로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승려와 신도가 함께하는 신도계를 결성하였던 것이다. 갑사의 경우 어떤 종류의 사찰계가 있었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가까운 공주의 마곡사 불량계(佛糧契), 동학사 지...
-
갑사 입구의 상가촌은 어느날 갑자기 형성된 것도 아니고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여러사람의 피땀어린 노력이 있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 역시 공주와의 인연으로, 갑사와의 인연으로 상가촌 형성 이전부터 이곳에 모여 식당을 차리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계룡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갑사 입구에는 작은 식당이나 잡화점, 그리고 여관 등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城)같이 둘러싸인 지형의 위쪽에 위치하였다는 설과 옛날에 마(麻)를 재배하였다 하여 상성(上城) 또는 마근대미·마근현이라고 하였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상동천리(上東川里)와 하성리(下城里)에서 ‘상(上)’자와 ‘성(城)’자를 따 ‘상성(上城)’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평야. 상평의 순 우리말은 위들이며, 이곳의 자연 취락으로 마룻들의 위쪽이라는 뜻의 위들말이 있었다. 마룻들은 경천리 전면에 있는 들로서 현재는 화평들로 불리는 것 같다. 위들말은 현재 상평이라고 불리며, 상평들은 이곳 상평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생평들이라고도 하며, 생평은 상평이 변화된 형태이다. 상평들은 계룡저수지...
-
서울 출신 조순자씨는 스무살에 공주 사람을 만나 결혼하여 중장리 삼거리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과 중장마을의 분위기를 비교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루에 한두번 동네에 들어오는 버스는 물론이고 신문과 TV가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시골동네. 그저 벌레소리 새소리만 들려오는 조용한 세상이었다. 답답했다. 나물조차 뜯어본 적이 없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리에 있는 산. 산의 지형이 모란꽃을 담아 놓은 듯하다 해서 성화산이라 불리운다. 성화산은 높이가 340m이며, 계룡산지의 북쪽 능선에 해당하는 산이다. 계룡산지와 능선을 함께 하기에 화강암 계열이 관입되어 형성되어 있으나 반상쇄층편마상화강암이 점이된 형태이며, 정상부는 화강암 관입 이전의 운모편암이 일부 덮여 있는 형태이다. 성화산...
-
아랫마을로 조금만 내려가도 평지가 넓고 양지바른 곳이라 농사가 잘된다 하지만, 중장1리는 다르다. 아랫동네보다 연평균 기온이 낮고, 산 그림자로 볕이 드는 시간이 짧은데다 농토는 좁다. 그러나 아무리 농사짓기 어려운 환경이라도 해도 중장리는 농촌마을이었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고, 지금도 토박이들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동네에서 제일 넓은 경작지를 소유한 사람은 진대섭씨로...
-
당산제의 상차림은 일반 가정의 제사상과 비슷하고 거기에 통돼지와 백설기를 더한다. 떡은 3되3홉으로 만든 것이라야 한다. 어렵던 시절에는 당산제날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어른들 꽁무니에서 기다려 줄을 섰다가 겨우 떡을 한쪽씩 얻어먹었는데, 그마저도 너무 적어서 감질나기만 할뿐이었다. 요즘에는 더 좋은걸 준다 해도 젊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
-
솔아티마을 은 소나무 아랫동네라는 뜻으로 ‘소라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1968년 계룡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갑사의 바로 아래에 조성되어있던 민가와 상가가 모두 철거됨에 따라 이주한 가구들이 모여 민박촌을 이룬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솔아티마을 조성을 위해 주민들을 주축으로 한 ‘자율정화추진위원회’ 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는데, 위원장 박헌춘(...
-
갑사 입구에는 ‘갑사로 가는 길’ 이라 쓰여진 커다란 아치가 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식당가가 ‘ㅁ’자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 입구 우측에 바로 수정식당이 있다. 수정식당은 공주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꽤 알려져 있고, 계룡산을 안내하는 책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수정식당을 경영하는 김태순씨는 여자의 몸으로 쉽지 않은 식당경영을 20여년간 성공...
-
갑사와 갑사 앞 상가번영회가 함께 주최하는 괴목대신제는 문화도시 공주시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전통행사중 하나이다. 괴목대신제는 갑사동이 토박이들의 기원의식이었지만, 이제는 사찰의 신도는 물론이고 계룡산을 찾는 등산객과 공주시민들이 함께하는 큰 행사로, 매년 정월 초이튿날 오전에 치러진다. 2007년은 2월 20일에 제의가 시작되었다. 10시에 갑사 경내에서 입재식을 올리...
-
651년(의자왕 11) 열반종 개산조 보덕(普德) 화상이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창건한 사찰. 갑사, 동학사와 함께 계룡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서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 중 남사(南寺)에 속한다. 계룡산 남쪽에 위치한 신원사는 651년(의자왕 11)에 열반종의 개종조 보덕화상이 창건한 이래 940년(태조 23)...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신원사 소속의 국제선원. 1988년 승려 숭산이 한국 불교의 국제화를 촉진하기 위해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인 신원사에 설립하였다. 세계 각국의 승려들이 매년 동안거 때 참선 수행 정진하고 있다. 1988년 동안거에 18명, 1989년 동안거에 16명, 1990년 동안거에 18명, 1991년 동안거에 24명...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야외 의식용 불화. 비로자나 화불이 안치된 보관을 쓴 설법인의 원만보신노사나불을 화면 중앙에 큼직하게 그리고, 화불과 협시보살 및 사천왕 등 등장 인물들을 주위를 에워싸듯 배치한 뒤 바탕을 5색의 광채로 가득 채워 화려함을 더해준다. 본존불의 경우 유난히 큰 두 손과 근엄한 표정의 얼굴, 뭉툭한 코와 작은 입 등을 표현하여 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대웅전. ‘대웅(大雄)’이란 곧 부처를 이르는 말이다. 진리를 깨달아 세상에 두루 뜻을 펼친 위대한 영웅이란 뜻이다. 대웅전은 가운데에 석가모니 부처를 두고, 그 좌우에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를 시립(侍立)시키고 있다. 신원사는 계룡산의 서남방 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웅전은 신...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오층석탑. 탑은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솔도파(率堵波), 솔탑파(率塔婆)라 하다가 탑파(塔婆), 탑이라는 줄임말로 부르게 되었다. 스투파의 원래 뜻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묘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탑을 하나 세워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나 나중에는 탑을 두...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 양화부곡(良花部曲)이 있었고, 양화산성(陽花山城) 아래에 위치하여 양화(陽化)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공주군 진두면 신기리(新基里)·금곡리(金谷里)·능산리(陵山里)·송현리(松峴里)가 통합되어 양화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중장1리는 여섯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들은 각각 약간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골짜기에 형성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여섯 개의 마을은 때로는 함께하고 때로는 각자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다음과 같이 각각 1반~7반으로 편성되어 있다. 1반 : 행이펄 2반·3반 : 솔아티 4반 : 삼거리 5반 : 갑산수 6반 : 배살미 7반 : 윗장(상장)...
-
중장1리의 관문인 통미산 입구에는 주유소를 가운데에 둔 삼거리가 있다.(삼거리마을과는 상관없다.) 여기에서 갑사 방향으로 가면 중장1리의 삼거리마을로 들어가고, 좌측의 대전 방향으로 가면 윗장마을과 배살미마을이 있다. 배살미마을은 중장리에서 가장 전통있는 삼척진씨의 터전이다. 삼척진씨는 계룡면 열두대장의 대표적인 세 성씨중의 하나로, 1500년대 후반에 진응린(陳應麟)[...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전통시대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어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의 공문서 전달, 변경의 긴급한 군사 정보 전달, 관물 수송, 관리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등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역(驛)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원(元)의 참적...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계룡산 연봉 중의 하나.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계룡산 연천봉에 올라 제단을 차려 놓고, 이곳에 왕도가 서고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천지신명께 엄숙히 기도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꿈에 신선을 만났는데 신선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한다. 연천봉의 명칭 뜻 그대로 하늘과 이어진 곳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와 하대리에서 칠석날 열리던 두레 막음 민속놀이. 계룡면 중장리·하대리는 계룡산 아래 위치하여 지형이 삼태기 속처럼 안온하고, 하나의 생활 권역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장리·하대리 지역 12개의 두레는 여름두레를 먹는 날이 모두 칠석날로 같았다. 중장리 마루들[宗谷]에는 선인이 심었다는 12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는 큰 두레 마당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갑사의 표충원에서 매년 10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영규대사를 비롯한 800 의승의 넋을 기리는 제사. 2000년 11월 5일 갑사 표충원에서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승병 800명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친 승장 영규대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제(大祭)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하여 매년 시행되고 있다. 1594년 열반 이후 408년 만에 처음으로 열...
-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승려를 규합해 전장으로 나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영규대사’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속성은 밀양박씨, 이름은 영규(靈圭), 호는 기허당(騎虛堂), 공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출가한 뒤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규대사의 묘.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당(騎虛堂), 속성은 박씨이다. 공주 출신으로 갑사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헌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금산성 전투에서 항전하다가 부상을 입고 현재의 비각 자리에서 숨...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 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
-
갑사에서 중장리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길가 양쪽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우거진 나무 숲의 터널은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녹음을 자랑한다. 숲은 장승이 자리한 곳에서 시작해 갑사까지 1㎞에 못 미치는 거리로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 숲을 ‘오리숲’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전의 오리숲은 약 2㎞에 달하는 거리로 지금보다 훨씬 우람한 나무들이 대단한...
-
수백년간 열두대징이를 지킨 집안이 있다. 밀양변씨, 삼척진씨, 전주이씨가 순서대로 입향하여 중장리 일대에 자리잡았고, 훗날 동래정씨가 아랫동네인 하대리 넓은 땅을 소유하면서 세거하였다. 이 네 가문은 오늘날 대부분 마을을 떠나 후손을 찾아보기 힘든데, 지금까지 집안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윗장마을 진중용씨 부부이다. 중장1리 윗장마을에 입향한 삼척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한영(吳漢英)이고, 어머니는 공산이씨이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부모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매일 어머니의 인분을 맛보아 병세를 확인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어머니에게 먹여 여러 날 목숨을 연장시켰다. 1782년(정조 6) 뛰어난 효행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
당산제의 기본적인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은 매년 연말 마을 총회때부터라 할 수 있다. 이때에 전 주민이 다 모이면 다음해의 당산제를 주관할 제주와 유사를 선출한다. 옛날에는 생기복덕을 가려서 엄하게 선출하였지만, 이제 마을 노인 중에 당산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골라 뽑고, 유사는 지목하되 총회 직후 당산제 당일까지 1~3개월간 부정한 일이 없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
갑사에서 시작되는 익구곡 골짜기에는 도참설에 따라 수많은 명당 터가 있었다. 갑산소의 뒷산을 ‘뜸띠날맹이’ 라고 하는데, 뜸을 뜬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명산과 명당터를 찾아 그 맥을 끊고 다닐 때에 갑산소 뒷산에 기인이 나온다는 자리를 찾아내서 불을 지폈다. 이 산줄기가 부여로 이어지는데 강한 지기가 흐른다 하여 뜸을 떠 기를 없애버린 것...
-
열일곱살에 중장리로 들어왔다. 그해가 1942년. 해방되기 직전이었다. 원래 고향은 충청북도 옥산이었는데, 선비로 사셨던 아버지는 나라가 일제치하에 들어가자 1934년에 고향을 떠나 10승지지로 알려져 있던 공주로 오셨다. 일곱 살부터 10년간 살았던 동네는 이인면 잣골로, 두 형이 이인에 있던 금광산에서 일을 하며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다. 형들 덕분에 어려서는 직접 고생하는 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폭포. 용문폭포는 예로부터 갑사구곡(甲寺九曲)의 하나로 유명하다. 갑사구곡으로는 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담, 군자대, 명월담, 계룡오암, 용문폭포, 수정봉을 말한다. 갑사구곡은 갑사로 오르는 계곡 일대를 지칭하는 데 추갑사(秋甲寺)라고 불릴 만큼 가을이면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여름에는 우거진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
윗장마을 의 진중용씨는 1927년생으로 일제강점기에 10대를 보내고 18세에 해방을 맞았다. 그 시절의 고생담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대대로 양반집안이란 자부심에 살았어도 세상이 뒤바뀐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집안의 전통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어려서는 계룡면사무소 옆동네인 유평리의 계룡보통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는데 그 시절 인근에서 유일한 교육시설이었기에 계룡면 뿐...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月山) 아래에 위치하여 다리실 또는 월곡(月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평전리(平田里)·암정리(庵亭里)·치곡(治谷)·상동천리(上東川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월곡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계룡면 월곡리가 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서 발원하여 노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제1지류는 논산천이고, 제2지류는 노성천(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177호(1966년 7월 2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월산천은 해발 고도 약 40m에서 흐르며, 계룡면 경천리, 논산시 상월면 월오리와 지경리 일대에 규모가 상당히 큰 평야들이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상문곡(上文谷)과 하문곡(下文谷)이 통합되어 월암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가 되었다. 월암리의 서부와 동부로는 해발 고도 300여m와 100여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중앙부로는 월암천(月岩...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서 발원하여 경천리에서 노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제1지류는 논산1천이고, 제2지류는 노성천(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88호(1991년 5월 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월암천은 계룡면의 기산리·봉명리 경계 지대에서 남쪽으로 흘러들어 월암리, 유평리, 하대리, 금대리, 화헌리, 경천리 등...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월인석보』를 찍어내던 조선 중기의 판목. 『월인석보』는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을 합하여 1459년(세조 5)에 편찬한 불경 언해서이다. 석보는 석가모니불의 연보, 즉 일대기라는 뜻이다. 『석보상절』은 1446년(세종 28)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이 불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장. 본관은 풍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아버지는 임수성(林守成)이다. 1559년(명종 14)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다. 1575년(선조 8)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을 찾아가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미 또는 유산(柳山)이라 하였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유산리(柳山里)와 유평리(柳平里)에서 ‘유(柳)’자와 ‘평(平)’자를 따 ‘유평(柳平)’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유평리(柳坪里)·한림리(翰林里)·화곡리(華谷里)·월암리(月岩里)와 익구곡면(益口谷面)의...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윤원거는 1635년(인조 13)에는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운동에 참여하여 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원거의 묘. 공주시 계룡면소재지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6㎞를 가다 보면 유평리 계룡초등학교가 나온다.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를 가면 영규대사 묘 입구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300m 들어가면 유평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파평윤씨 묘소 중 가...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찬(尹燦), 자는 정숙(靜叔), 호는 후촌(後村)이다. 병사(兵使) 윤선지(尹先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며,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윤창세(尹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 경혼(慶渾)의 딸이다. 아우는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이다. 부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의 묘. 명재 윤증은 윤선거(尹宣擧)의 아들로, 17세기 조선조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성리학자, 예학자이다. 윤증은 주자학적 종본주의를 고수하고, 학문의 자유로운 토론을 억압하며, 시대 변천에 역행하여 당면 과제를 외면하는 당시의 노론 정객과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윤증의 사상은 소론 진보 세력...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 전주(全州).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면달(李勉達)[1793~1877]이며, 어머니는 보성오씨(寶城吳氏)로 오종헌(吳宗憲)의 딸이다. 공주 지역의 전주이씨들은 덕천군의 후손들로 덕천군의 손자인 상산군(商山君)의 장남 이요년(李堯年)의 아들인 진주목사 이몽경(李夢慶)[1538~1624]부터였다. 원래 이들은 양주 지역에...
-
갈색 한복을 곱게 입은 김종국 할아버지는 삼거리마을 안쪽에 ‘영덕사’ 라는 작은 절집을 짓고 살고 있다. 어릴 때 경상도 안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청년시절에는 전라도 광주와 강원도 삼척, 경기도, 충청북도 등 안가본데가 없이 떠돌며 살았다. 말년에 우연히 중장리에 들어왔다가 아예 자리잡고 사는데 살아본 중에는 이동네가 제일 좋다. 어릴때에 부모가 돌아가시면서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일...
-
윗장마을 은 양반마을이라 풍장을 못쳤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농사짓는 마을에 두레가 없을 리가 없다. 열두대징이의 각 마을별 두레는 본래의 역할과 별도로 마을 사람들의 단결력을 보여주는 상징과 같았다. 중장1리에서는 갑산소와 갑사동 두레가 유명했는데, 하대리 마룻골 형님두레를 제외하면 갑산소와 갑사동 두레패가 세기로 유명했다. 두레가 나서는 날에는 풍장패가 요란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미술관. 미술 작품을 수집·보전하고 전시하여 지역민들의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미술 문화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미술 문화를 이끌어갈 차세대를 양성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96년 2월 착공하여 1997년 5월에 본관과 휴게실 2개 동이 준공되었다. 1997년 10월 2월에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었고, 설립자 임립이 관장으로...
-
학력고사 세대라면 교과서 속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을 기억할 것이다. 이 수필은 작가 이상보가 겨울에 동학사에서 갑사로 산을 넘으면서 만난 남매탑의 전설을 되새기고 그 감상을 수려한 문체로 적은 글로서 교과서에까지 수록되었다. 이제 이상보 전집 정도를 사야 접할 수 있는 ‘갑사로 가는 길’, 이 짧은 수필이 1990년대 이전까지 갑사의 부흥에 일조했을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2리 점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점골 고분군은 점골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해발 300m의 무명산 남사면 중하단부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능선은 2개의 구릉으로 나뉘어 있으며, 양쪽 구릉의 해발 80~100m 내외 지점에 고분과 관련 석재들이 분포한다. 점골 고분군은 1987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기(長鬐). 할아버지는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제자 정래교(鄭來僑)이다. 아버지는 종제 정래숭(鄭來崇)의 장남 정광흠(鄭光欽)으로, 후사가 없는 집안에 양자로 입적되었다.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벽(趙壁)의 딸로 풍녕군(豊寧君) 조응록(趙應祿)의 6대손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심태진(沈泰鎭)의 딸로 부원군 심온(沈...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나무가 많은 산골이라 하여 대실 또는 죽곡(竹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중죽리(中竹里)·유정리(柳亭里)·정자리(亭子里)·서당리(書堂里)·영청리(永淸里)·효리(孝里)·야곡(冶谷)의 일부가 통합되어 죽곡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의 중악단에서 음력 3월 중순경 국행제를 복원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우리나라는 고대 삼국시대부터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가 행해져왔다. 명산대천의 의미는 신앙적인면 뿐만 아니라 군사적 목적도 중요하게 작용하여 왕조가 달라질때마다 제사처도 변해왔다. 계룡산은 백제의 웅진천도 이후부터 국가적 제사처로 지목된 듯 하고, 통일신라시대...
-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지주제라는 것은 한국의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일본인들의 지배를 강화시키고 수탈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우선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수탈을 강행하였고, 온갖 이유를 들어 소작료를 엄청나게 올리면서 끊임없이 농사에 간섭을 했다. 조금씩 불만을 갖고 있던 소작인들은 신분적으로도 일본에게 예속되는 상태가 되자, 소장쟁의라는 이름으로 1920년부터...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갑사(甲寺)에 있는 짐대(솟대)의 이름을 따서 대장(大檣)골 또는 장대(檣大)라 하였다가 대장골(大檣골)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하여 중장(中壯)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익구곡면(益口曲面)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 상장리(上壯里)·신암리(莘岩里)·주산리(舟山里)·갑산리(甲山里)·우암리(牛岩里)·오은리(午隱里)·...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서 음력 정월 초사흘에 지내는 마을 제사. 갑사는 공주에서 동쪽으로 약 17㎞ 떨어진 계룡면 중장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룡산 연천봉 서쪽 산골에 싸여 있다. 갑사는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에 아도(阿道) 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중장리 갑사 괴목대신제는 갑사 입구에 있는 1,600년이 넘는 나무에 제를 올리는 행사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오미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중장리 고분군은 계룡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수정봉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산맥의 서사면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해발 95.2m 내외의 나지막한 산봉의 서남사면 중하단부 일대이다. 중장리 고분군은 1975년 주민의 신고에 의해 알려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공주시내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변에 있는 만큼 공주 남쪽에서 공주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9㎞쯤 가면 계룡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시 계룡산 쪽으로 약 800m 정도 들어가면 중장리 성재산이 나온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1리 삼거리에서 음력 정월 초사흗날 지내는 마을 제사. 괴목대신제는 처음 갑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서 자체적으로 매년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행사는 불교와 민속신앙이 서로 상생하고 화합하는 만남의 장으로, 사찰과 마을의 주민, 행사 참가자 모두가 하나 되어 오랜 생명력으로 이 지역을 지켜온 괴목에 제사를 지내는 아름다...
-
백영길씨(66세)는 솔아티에서 종일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솔아티 민박촌 사람들은 대부분 갑사 아래에 살다가 사찰 정화사업때에 살던 집이 철거당하고 한꺼번에 솔아티로 이주해 와 거주하고 있는데, 백영길씨는 원래 괴목제 지내는 괴목 옆에 살았다. 그러다 십수년전에 종일민박집을 인수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백영길씨 집안이 중장리에 터를 잡게 된 것은 노성에 살던...
-
계룡산 문필봉과 삼불봉에서 시작되어 각각 흐르던 물이 갑사 철당간지주 앞에서 합수하여 골짜기를 따라 흐르며 중장천을 이룬다. 중장천은 중장 1, 2, 3리를 통과하여 계룡저수지로 유입된다. 중장천은 길이가 4㎞에도 못미치는 짧은 하천이지만, 중장리 일대 농경지를 적시는 중요한 물길이며, 또한 그 맑고 깨끗함에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특히 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을 튼튼히 다듬고 개성을 멋지게 살리는 사람, 기초와 기본을 충실히 다지고 능력을 알차게 펼치는 사람, 교양과 정보를 풍부히 넓히고 진로를 굳세게 가꾸는 사람, 전통 문화를 소중히 기리고 가치를 새롭게 높이는 사람, 말과 행동을 바르게 익히고 행복을 다함께 누리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평야. 여러 곳 작은 들의 종가(宗家)와 같은 들이라 해서 종평이라고도 부르며 마루처럼 판판한 들이라 해서 마룻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평들은 공주시가지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계룡산 국립공원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곡저 충적 평야 중 하나이다. 공주~논산에 걸치는 남북의 구조곡에 형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충적 평야로 상평들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신흥암 뒤에 있는 자연 석탑. 자연스럽게 생긴 높은 바위가 마치 석탑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불교적인 전설과 결합되면서 천진보탑이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천집보탑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후 인도 아소카 왕이 구시나가라국에 있는 사리탑에서 부처의 사리 8곡(斛) 4두(斗)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를 시방 세계에...
-
조선 후기의 학자 미촌 윤선거(尹宣擧)[1610~1669]는 계룡의 남북으로 명승지가 있는데 공암의 산수가 최고의 경치이고 그 다음이 갑사라 하였다. 공암은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를 말하는데 이곳은 계룡산 산줄기가 뻗은 사이로 용수천이 흐르고 낮은 야산 아래에 절벽이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공주와 대전의 중간에 위치한 덕분에 급속히 개발이 진행된 상태이다. 그러나 갑사는 아...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충헌공 윤전(尹烇)의 사우. 공주시 계룡면소재지인 유평리의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쯤 가면 영규대사의 묘소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그 길을 따라 300여m 정도 들어가면 유평리 중앙에 있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인조 때 세자시강원 필선을 지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산. 산봉우리 밑부분의 돌이 여덟 팔자 모양을 띠고 있어 팔재산 또는 팔자산이라 한다. 팔재산은 높이가 350m이며, 전체적으로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부는 규장암, 석영반암, 화강반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룡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와우산, 성화산에 이어지는 남쪽 능선에 해당된다. 동쪽으로는 계룡산지...
-
윗장마을 은 대장골의 가장 위에 있다는 뜻으로 상장이나 구억대징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마을의 형성이 산 기슭의 중단부에서 점차 평지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비추어 볼 때, 대장골에서 윗장마을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윗장마을은 오래전부터 양반마을이란 자부심이 대단했다. 중장리의 다섯두레 중 유일하게 풍장을 세우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갑사(甲寺)에 있는 짐대(솟대)의 이름을 따서 대장(大檣)이라 하였는 데, 대장 아래쪽에 위치하여 하대장(下大檣)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익구곡면(益口谷面)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 오산리(午山里)·신대리(薪大里)·구암리(九岩里)·신구리(薪九里)·벽사리(碧沙里)·벽계리(碧溪里)·상현리(上玄里)·하현리(下...
-
갑사 입구의 주차장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민박촌, 동쪽에는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1968년에 계룡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나 공주시가 주도적으로 이 개발사업을 진행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상가 사람들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현 한양식당의 이붕선씨는 당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약재인 지초(芝草)가 많아 향지(香芝)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향지리(香芝里)·죽평리(竹坪里)·화산리(花山里)·점촌리(店村里)가 통합되어 향지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가 되었다. 향지리의 북부와 동부로는...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계룡면 향지리의 동북향에 있는 형지산의 서남 기슭에 있다. 약 1,322㎡의 평지가 사역(寺域)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유구는 없으며, 약간의 기와편이 산포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이전의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울러 곡간에 형성된 사역 내에 있는 작은 하천은 축석이 이루어져 있고 곳곳에 돌무더기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 입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는 계룡면 16구(區)의 하나였다. 마을 입구 둥구나무와 논 건너 또 다른 둥그나무에 각각 돌장승, 즉 선돌로 서 있다. 선돌의 높이는 150㎝, 너비 85㎝, 두께 40㎝의 자연석이다. 수령이 150년 정도인 나무와 곁에 위치해 있다.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 모셔진 증언은 없...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김씨의 열녀비. 향지리 열녀비는 지방 유림의 발의로 군수가 세운 열녀비이다. 안동김씨는 부안임씨인 임완수의 처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죽는 슬픔을 맞았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극 정성으로 3년간 남편의 묘소를 옆에서 보살폈다. 안동김씨는 남편의 3년상이 끝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 임립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예술 행사. 향토작가초대전은 충청도 지역의 작가와 출향 작가를 초청하여 지역 작가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과 예술 문화 활성화, 지역 작가들의 작품 활동 의지를 높이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 문화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여 예술 문화의 공유를 꾀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이에 따라 2000년 11월 충청남도에서 후원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서 발원하여 소학동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177호(1966년 7월 2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혈저천은 계룡면 기산리에서 발원하여 남북 방향으로 흐르면서 계룡면 화은리, 신기동을 거쳐 소학동에서 금강에 합류한다. 계룡면에는 기산리와 봉명리의 경계인 무넘이고개를 분수계로 하여 북...
-
‘집구석에는 늙고 꼬부라진 고물딱지만 남았지. 여자들은 갑사 입구에서 밤 구워팔고, 모텔이나 식당에 나가서 일해. 그것도 잘 안돼’. 사는 게 괜찮던 시절은 1970년대라고 회상한다. 갑사 입구에는 술집이 늘어서 있었고, 공주 사람 뿐만 아니라 먼 데에서도 술 마시러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갑사 바로 아래에서 현재의 관리사무소가 있는 자리까지 술집이 있었다. 취객들 때문에 매일...
-
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화산(華山) 정규한의 영당. 공주에서 논산 방향 국도 23호선을 통해 계룡면소재지를 지나 4㎞ 정도 가면 화헌우체국이 나온다. 화산영당은 화헌우체국에서 뒤편으로 70~80m 올라간 산기슭에 있다. 「화산영당창건기」에 의하면 정규한이 죽은 후 문인과 후손들이 1830년 문집인 『화산집(華山集)』을 발간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화산(盛花山) 아래에 위치하여 화은(花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익구곡면(益口曲面)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 가마리(加馬里)·양촌(陽村)·거사원(居士院)·냉정리(冷井里)·향포리(香浦里)와 동부면(東部面) 명산리(明山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화은리라 하여 주외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8월에 면이 폐지됨에...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꽃을 펴놓은 것 같은 들이 있다하여 화(華)마루 또는 화헌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상화리(上花里)·증산리(甑山里)·하화리(下化里)·상동천리(上東川里)와 노성군(魯珹郡) 월오면(月午面) 소평리(小坪里)가 통합되어 화헌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서 농부들이 두렛일의 마지막 날 하던 민속놀이. 호미씻기놀이는 여름 농사일의 고된 작업 중 하나인 논매기에 사용하던 호미를 올해에는 더 쓸 일이 없어 씻어 보관한다는 의미이다. 화헌리 호미씻기놀이와 유사한 민속놀이로는 공주시 신풍면 선학리의 두레 막음 놀이 중 ‘호맹이 목매달기’가 있고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에 ‘호맹이 빨래줄’이 있는데 두...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수혁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계룡면 기산리 소정이에 이르게 된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이 마을의 입구에 있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오수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782년(정조 6)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이규헌(李圭憲)이 지은 「효자오공정...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효자 이기원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으로 약 9.4㎞ 가면 계룡면 화은리가 나온다. 정려는 화은리 맞은편(도로 오른쪽)에 있다. 효자 이기원 정려는 전주이씨 이기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1년(고종 28)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효자 이기원 정려 안의 비석에 당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 있는 장류 제조공장. 1996년 재정경제원장관 표창 수상, 1998년 석탑산업훈장 수상, 2000년 생산성 대상 고객 만족 부분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해찬들 태양고추장으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대상을 수상하였다. CJ 공주공장은 된장, 쌈장, 춘장 등의 장류 생산과 전통의 맛을 살린 고급 브랜드의 개발을 목적으로 건립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