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당진시의 옛 모습을 담은 1872년에 제작된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59㎝, 세로 98.7㎝이다. 지도책이나 지도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닌 단독 지도이다.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당진현의 옛 지도이다. 지도의 위쪽이 남쪽인 남상 방위 표시법으로 그려져 있어, 서울에서 바라보는 방향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방위 표시 방법은...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의 옛 모습을 담은 1872년에 제작된 지도. 채색 필사본이며, 크기는 가로 63.3㎝, 세로 79.5㎝이다. 지도책이나 지도첩에 포함되지 않은 단독 지도이다.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면천군에 관한 유일한 단독 지도이다. 「면천군 지도」는 회화식 지도의 장점을 살려서 면천 읍치의 객사, 동언, 향청, 작청, 책방, 노방 등 관아 배치를 상세하...
-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 재임 중에 지은 목민서. 「칠사고(七事考)」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면천군수로 있으면서 작성한 글을 모은 『면양 잡록(沔陽雜錄)』 가운데 포함된 글이다. 작성 시기는 면천군수로 재임한 1799년 5월부터 1800년 8월 사이다. 「칠사고」는 『경국대전』 규정에 나오는 ‘수령칠사(守令七事)’, 즉 수령이 해야 할 일곱 가지 업...
-
실학자 박지원이 1797년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인 면천 군수로 재직하며 토지 문제와 농촌 문제에 대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저술한 글.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주(周)나라의 정전제(井田制)를 이상적 토지 제도로 생각하였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그 대안으로 균전균부(均田均賦)의 정신을 담아 ‘한전론’에 대한 주장을 이 책에 담아냈다. 지주들의 토...
-
조선 후기에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인 면천 군수로 재직했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편찬한 농업서. 1798년(정조 22)에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중국의 기술을 도입하고, 재래 농법과 경험을 개량할 것을 주장한 농업 기술과 정책에 관하여 쓴 책이다. 그 개혁 정책의 방법으로 한전법(限田法)을 제시하고 있으며 당시 여러 농서들 가운데 체계가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되었다...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양원의 시문집. 『노저유사(蘆渚遺事)』의 서명은 ‘유사(遺事)’라고 하였으나 이양원(李陽元)[1526~1592] 본인의 저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구, 율시, 배율 등등 시의 장르는 자연을 벗하고 풍류를 읊은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도...
-
충청남도 당진 지역이 실려 있는, 1861년에 김정호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분첩절철식의 전국 지도첩. 김정호(金正浩)[1804~1866 추정]는 황해도 토산 출신으로 한양의 만리재 고개 약현에 살았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이다.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백원(伯元), 백온(伯溫), 백지(伯之),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다. 김정호는 지도...
-
조선 후기의 문신 연암 박지원이 면천 군수로 재직하는 동안의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한 책.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조선 후기의 소설가이며 실학자이다. 호는 연암(燕巖), 관향은 반남(潘南)이다. 1797년 7월부터 1800년 8월까지 면천 군수로 재직하였다. 『면양잡록(沔陽雜錄)』의 ‘잡록(雜錄)’이란 글자 그대로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
-
충청남도 당진시의 옛 모습을 담은 「당진현 지도」, 「면천군 지도」, 「홍주목 지도」가 수록된 조선 시대 읍지. 『여지도서(輿地圖書)』는 1757년(영조 33)~1765년(영조 41)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만든 전국 읍지이다. 총 55책의 필사본이며,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감영지(監營誌) 6, 병영지(兵營誌) 7, 수영지(水...
-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이 지금의 당진 지역인 면천 군수 시절 지은 서간첩.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문호 박지원(朴趾源)이 반초서체 친필로 쓴 편지글 모음이다. 2005년 서울 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에서 발굴되었다. 2005년 발견된 친필 편지글들은 『연암집』에는 실리지 않았던 글들인데, 연암이 60세가 되어 안의 현감으로 있던 1796년...
-
충청남도 당진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오산 차천로의 문집.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선조 대부터 광해군 대까지 활동했던 문신이자 시인이다. 뛰어난 시재(試才)를 지녀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문명을 날렸으나 재능과 포부를 다 펴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다. 오산 차천로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크게 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인 이행의 개인 문집. 『용재집(容齋集)』은 이행(李荇)의 문집으로 두 번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간본은 알 수 없고 중간본은 1634년 청주목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10권 3책으로 된 책이다. 이행은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로 관향은 덕수 이씨(德水李氏), 호는 용재(...
-
조선 후기 1785년에 당진 지역 사람들이 연루된 역모 사건.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 발생한 『정감록』 역모 사건(鄭鑑錄逆謀事件)은 주형채, 문양해, 양형 등 평민이 주축이 되어 좌의정 홍낙순 아들 홍복영, 노론 벽파지만 권력에서 소외된 이율, 훈련도감 구선복 등 양반을 설득하여 자금 지원을 받고 정감록에 따른 새 왕조를 도모한 역모사건이다. 『정감록』 역모 사건 당시 경상도,...
-
충청남도 당진시가 수록된, 고산자 김정호가 1834년에 필사본으로 제작한 우리나라 전국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1834년(순조 34)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전국 지도이다. 현존하는 옛 지도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가로 462㎝, 세로 870㎝이며, 축척은 약 1:216,000 이다. 옛 지도 가운데 일정한 크기의 지역으로 구분되어...
-
충청남도 당진시와 관련된 조선 후기에 편찬된 읍지. 조선 후기, 영조 때부터 헌종 연간에 편찬된 충청도 각 고을의 지리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각 고을별로 각 읍의 현황 파악 및 행정 자료의 수집이 자주 행해지면서 고을별로 읍지가 본격적으로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간행된 이후 16세기 말에 많은 고을에서 읍지가 편찬되었고, 조선 후기에...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인 조선 후기 문신 안민학의 개인 문집. 『풍애집(楓崖集)』은 풍애(楓崖) 안민학(安敏學)의 개인 문집으로 1권에는 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절구(絶句), 율시(律詩)에 다 능해서 오언 율시(五言律詩), 칠언 절구(七言絶句)를 많이 썼고, 고시(古詩)도 상당 편수가 수록되어 있다. 2권에는 기(記),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 위주...
-
김알지가 시조이고 김부광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김씨(慶州 金氏)의 기원은 김알지(金閼智)이고,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 입향한 인물은 김부광(金孚光)[1589~1638]이다. 김부광은 17세기 초기 인물로 이곳에 400년 넘게 집성촌을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많이 거주하지는 않지만, 한때 20여 호가 거주할 정도로 많이...
-
알평이 시조이고 이협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시조는 신라 6촌의 알평(謁平)이고, 중시조는 이거명(李居明)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복운리에 세거지를 형성한 경주이씨는 석탄공파(石灘公派)이며, 입향조는 이협(李浹)이다. 입향 시기는 대략 17세기 중엽인 1650년대로 추정된다. 시조는 초기 신라의 6촌중 알천양산촌...
-
최치원이 시조이고 최기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최씨(慶州崔씨)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 탄우 마을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당진 입향조는 최치원의 24세손 최기선(崔己宣)[?~?]이다. 최기선은 18세기 초에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에 거주하다가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입향하였다. 그 후 25세손 최차봉(崔次奉)이 송산면 매곡리에...
-
안방걸이 시조이고 안석복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는 광주안씨(廣州安氏) 사간공파(思簡公派)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입향조는 안석복(安錫福)[1400~1460]이다. 안석복의 후손들은 송악읍의 대지주로서 학문에 종사하였고, 중앙 관료로 진출하여 명성을 드높였다. 특히 근·현대 당진 지역 대표 유지로서 중추적 역할을...
-
이자성이 시조이고 이윤만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선대 시조는 이자성(李自成)이고, 실질적인 시조는 고려 말 인물인 이당(李唐)이다. 당진시 송악읍 금곡리의 입향조는 이윤만(李允蔓)[1624~1682]이다. 이윤만은 17세기 후반 정치 혼란기에 화를 피하기 위하여 낙향하였다. 당진 지역의 광주이씨는 350년간 세거지를...
-
인서가 시조이고 인희윤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교동인씨(喬桐印氏)는 당진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이다. 시조는 신라 시대의 인서(印瑞)이다. 당진에 입향한 것은 인희윤(印希尹)인데, 조선 후기인 17~1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인희윤은 당진시 면천면 죽동리에 세거지를 형성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인근 지역에 정착하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권제인의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율재(栗齋)이다. 권제인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우산리에서 태어났다. 권제인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평소 부모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어머니가 이질(痢疾)에 걸려 신음할 때 권제인은 한약을 시간에 맞추어 복용하도록 온갖 정...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김기연(金耆淵)[1827~1882]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학문이 깊었으나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지 못해 우송 처사(又松處士)라 불렸다. 김기연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년(景年), 호는 우송(又松)이다. 김기연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금암리에서 출생하였다....
-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기종(金起宗)[1585~1635]은 광해군 때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인조반정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신시리에 묘소가 있다. 김기종의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중윤(仲胤), 호는 청하(聽荷)이다. 아버지는 효자 김철명(金哲命),...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천주교 사제. 김대건(金大建)[1821~1846]의 집안은 1784년경 증조할아버지 김진후가 ‘내포의 사도’라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세례명 루도비코]에게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음으로써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다. 1821년 아버지 김제준[세례명 이나시오]과 어머니 우르슬라 사이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었다. 1821년 충...
-
김시흥이 시조이고 김경일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김령김씨(金寜金氏)는 경주 김씨의 일문으로,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이다. 당진 입향조는 16세손 김경일(金慶一)[1586~1669]이다. 김경일은 조선 후기의 인물로 입향 경위는 알려진 바 없다. 김경일의 후손들은 350여 년 동안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열녀. 김여란(金如蘭)[?~1627]은 정묘호란 때 안주성에서 남편 남이흥(南以興)[1576~1627]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임신 중이었음에도 자결한 열녀이다. 김여란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평안도 별마절도사를 지낸 충장공(忠壯公) 남이흥의 부실(副室)[첩]이다. 김여란은 평안도 귀성(龜...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천주교 순교자. 김제준(金濟俊)[1796~1839]은 첫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로, 세례명은 이냐시오다. 김제준은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聖人品)에 올랐으며, 할아버지 김진후[비오]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김제준은 솔뫼[현 충청남...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김진후(金震厚)[1738~1814]는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에서 태어났다. 족보상의 이름은 운조(運祚)이고, 천주교 세례명은 비오[Pius]인데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이다. 김진후의 집안은 솔뫼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었다. 1784년(정조 8)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이 내...
-
충청남도 당진시에 선정비를 남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인조·효종 때의 문신이다. 37세 때인 1638년 당진 현감에 부임하여 7개월의 짧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청덕 선정비(淸德善政碑)를 세우고 김홍욱의 치적을 기렸다. 김홍욱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이다. 아...
-
임비가 시조이고 임관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나주임씨(羅州林氏)는 고려 후기 문신인 임비(林庇)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16세기 중엽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입향한 인물은 임관(林鸛)[1548~?]이다. 임관이 생원(生員)를 지냈기에 후손들을 ‘생원공파’라고 부른다. 임관의 손자인 임항(林恒)이 석문면 교로리에 분가함으로써 집성...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남이흥과 아버지 남유의 충신 정려. 남이흥(南以興)[1576~1627]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에서 후금(後金)과 싸웠으나 상황이 어려워지자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전사한 인물이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남이흥의 아버지인 남유(南瑜)[1552~1598]도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있으면서...
-
홍은열이 시조이고 홍박연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입향 배경은 인조 때 반정 공신인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1572~1645]이 초락도를 사패지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 18세기 말, 홍박연(洪博淵)과 형제들이 입향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거지가 되었...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있는 남유의 업적을 기록한 공적비. 남유 유허비(南瑜遺墟碑)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남유(南瑜)[1552~1598]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남유는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였다. 군수와 현감을 거쳐 1592년(선조 25) 부평 부사(富平府使)로 재임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정을 도왔다. 1597년 정유...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중기 무신. 남이흥(南以興)[1576~1627]은 1602년(선조 35) 알성 무과에 급제해 현감, 부사. 목사를 역임하였고, 평안 병사로 재직 시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서 후금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순국하였다. 남이흥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호(士豪), 호는 성은(城隱), 시호는 충장...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남이흥의 신도비. 남이흥 신도비(南以興神道碑)는 1714년 5월 왕명에 의해 좌의정 허목(許穆)이 찬(撰)한 신도비로서, 남이흥이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성에서 순직한 내용과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남이흥(南以興)[1576~1627]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갈성분위...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의 모충관에 소장된 남이흥과 의령 남씨 일가의 유품. 남이흥(南以興)[1576~1627] 장군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때 평안도 안주에서 후금(後金)군과 싸웠으나 전황이 어려워지자 적과 함께 자결하였으며, 그의 아버지인 남유(南瑜)[1552~1598] 장군은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을 도와 왜군과 싸우다 1598년(선...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로에 있는 남유·남이흥 양세 충신 묘역. 남이흥 장군 묘 일원(南以興將軍墓一圓)에는 조선 후기의 무신 남이흥(南以興)[1576~1627]과 아버지 남유(南瑜)[1552~1598]의 묘소, 부자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인 충장사(忠壯祠)가 조성되어 있다. 남이흥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였고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성에서 후금(後金)의 침입을...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 영랑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영랑사 대웅전(影浪寺大雄殿)은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에 있는 영랑사(影浪寺)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영랑사 대웅전이 있는 영랑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로 142-52[진관리...
-
이돈수가 시조이고 이행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조선 전기의 문신인 연헌(蓮軒) 이의무(李宜茂)[1449~1507]가 홍주 목사로 부임하여 조선 시대 목장이 있었던 송산면을 순회하다가 능안 마을을 명당이라 눈여겨봐 두었다. 그 후 자손들이 능안 마을에 이의무의 묘를 조성하였다. 입향조인 이행(李荇)[1478~1534]은 이의무의 아들이며, 좌의정을 지...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정자. 군자정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다.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된 면천 은행나무 동쪽 옆이다. 1803년 당시 면천군수였던 유한재가 면천 객사(免賤客死) 옆에 군자지(君子池)를 준설하여 연꽃을 심고, 연못 안에 조그만 섬을 만들고 섬 안에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19세기경에 편찬된 『면천읍지』에 전하지만...
-
손순이 시조이고 손윤생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밀양손씨(密陽孫氏)는 통일 신라 흥덕왕[재위 826~835] 때의 효자인 손순(孫順)을 시조로 한다. 밀양손씨 세거지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2구 ‘개정한천(蓋井寒泉)’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세조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손윤생(孫潤生)[?~?]은 당진포 진성을 순시하다가 맑고 시원...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의 면천 군수를 지낸 문신·학자.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아버지가 벼슬을 하지는 않았으나 당대 내로라하는 반남 박씨 노론 명문가 출생이었다. 박지원은 학문이 뛰어났으나 1765년 처음 본 과거에서 낙방한 이후로 과거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 오늘날의 파고다 공원 자리인 백탑(白塔) 근처로...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원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효건의 효자 정려. 박효건(朴孝騫)은 조선 영조 때 인물이다.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자선대부에 이르렀다. 박효건은 효성이 지극하여 한양에 있으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고향을 찾아 부모에게 문안을 드렸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박효건이 지체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 칼로 손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향리. 박희란(朴希蘭)[1647~?]은 동생 박희전(朴希荃)[1657~1746]과 더불어 부모를 정성껏 봉양한 효자로 적군과 싸워 공을 세웠으나 전사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박희란의 효자 정려가 있다. 박희란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형백(馨伯)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된 박우림(朴遇霖)이고,...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희란·박희전의 효자 정려. 박희란과 박희전 형제는 조선 후기 사람이다. 대대로 효행으로 이름난 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행동을 통하여 효행을 몸에 익혔다. 형제는 관직에 올라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도 효를 으뜸으로 여기면서 나랏일을 보아 칭찬이 자자하였다. 박희란은 정4품, 박희전은 정2품 벼슬을 지냈다....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보덕사 입구에 있는 중수비. 보덕사 중수비(報德寺重修碑)는 조선 후기 승려 혜행(惠行)이 보덕사를 중수하면서 세운 비석으로, 전면에는 중수와 관련한 기록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중수할 때 시주한 신도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보덕사 중수비는 승려 혜행이 1676년(숙종 2) 보덕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는데, 건립 경위는 전하...
-
조선 중기 무렵 충청남도 당진에서 말년을 보낸 구봉 송익필과 우계 성혼, 율곡 이이 세 현인이 주고받은 서신을 후대에 4첩으로 엮은 간찰첩.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우계(牛溪) 성혼(成渾),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후대에 제작한 4첩(帖) 98통의 편지 모음집이다. 세 사람은 16세기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들로서 편지의...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천주교 전래 과정. 서학(西學)은 서양 학문과 서양 과학 기술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천주교를 의미한다. 원래 서학은 중국의 명·청대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사용한 명칭이다. 이들은 천주교 신앙을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해 전반적인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보급했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중국을 왕래하면서 서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
-
충청남도 당진시 사기소동에 있는 선산김씨의 효부 정려. 선산김씨(善山金氏)[?~?]는 김녕 김씨(金寧金氏) 문중의 김무립(金武立)에게 시집가 당진시 용연동에서 살았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늙고 병든 시아버지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한겨울에 시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이를 잡아 대접하였고,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산을 헤매며 꿩을 잡아서 대접했...
-
가유약이 시조이고 가세한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소주가씨(蘇州賈氏)는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성씨이다. 중시조 가유약(賈維鑰)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병으로 와서 전사한 이후, 그 후손들이 명나라로 귀국하기 위해 태안반도 안흥항으로 왔지만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안흥에 정착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의 소주가씨는 이들이 해로를 따라...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문신. 신경보(申慶普)[1688~1772]는 당진시 석문면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평산 신씨의 인물로 조선 후기 문신이다. 신경보는 진사에 급제한 후, 면천 군수를 중심으로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정조 때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신경보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천보(天甫), 호는 은포(隱浦)이다. 아...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신경일의 효자 정려. 신경일(申慶一)[1675~1735]은 1675년 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아버지 신기와 어머니 한양 조씨 사이의 4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신경일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 또한 형제간에 우애 깊고 어른에 대한 예의가 남달랐다. 신경일이 열 살 때...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본관을 두고 있는 세거 성씨. 신평이씨(新平李氏)의 시조는 고려 시대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이덕명(李德明)이다. 이덕명의 묘소는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에 있다. 신평이씨는 모두 6개의 계파가 있는데, 당진 지역에는 문정공파(文定公派)와 판서공파(判書公派)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시조를 제향하는 덕모재(德慕齋)와...
-
충청남도 당진시 대덕동에 있는 신평호씨 효녀문. 신평호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여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신평호씨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돌아온 후에도 아버지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몸이 쇠약했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신평호씨는 급한 김에 양 손가락을 찢어 아버지에게 피를 먹였고, 그 다음엔...
-
권행이 시조이고 권여경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는 고려 시대 ‘염솔부곡’이 있었다고 전하는 지역이 있다. 그곳은 6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하성리(下城里)와 우산리(愚山里)에 안동권씨(安東權氏)가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입향조는 권여경(權餘慶)[1565~1639]이며,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찾다가 정착하...
-
차효전이 시조이고 차건의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연안차씨(延安車氏)는 황해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다. 시조 차효전(車孝全)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연안차씨는 당진시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집성촌이 대호지면 적서리의 오산공파 후손들이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건립하여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영...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 영랑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범종. 영랑사 범종은 법당 안에서 의례 때 사용되는 소형 동종으로 높이 77.1㎝, 천판 직경 35㎝, 종복[하대] 구경 52㎝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두 마리 용이 머리를 역방향으로 하고 네 팔로 천판을 딛고 있으며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통상적인 음통은 없고 천판에 음공을 뚫...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영탑사에 있는 조선 시대 동종. 영탑사 범종은 1760년 2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던 가야사에서 만들어졌다. 흥선 대원군에 의해 사찰이 불탔을 때 가야사 승려들이 금동 삼존불 등과 함께 영탑사(靈塔寺)로 옮긴 조선 시대 동종(銅鐘)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19호로 지정되었...
-
충청남도 당진시 영탑사 유리광전 뒤에 있는 칠층석탑.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의 영탑사는 유리광전 뒤에 있는 바위를 기단으로 오층 석탑을 세우고 절 이름을 ‘영탑사’라 했다고 전한다. 1930년에 고시중이 6~7층을 증축하여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영탑사 칠층석탑은 1798년(정조 22) 승려 지윤이 오층 석탑을 세웠는데, 1930년에...
-
원경이 시조이고 원몽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시조는 원경(元鏡)이고, 당진시 석문면의 입향조는 18세 원몽선(元夢善)[1690~1763]이다. 원주원씨 시중공파(侍中公派)다. 석문면의 원주원씨는 약 300여 년을 계승하며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당진시 순성면에도 원주원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는데, 국회 의원과 농림부...
-
남민이 시조이고 남두극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의령남씨(宜寧南氏)의 시조는 남민(南敏)이며, 원래 중국 봉양부(鳯陽府) 여남 사람인 김충(金忠)이다. 김충은 755년 이부 상서 안념사(按廉使)로 일본에 다녀오다가 풍랑을 만나 신라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신라 왕이 여남 땅에서 왔다 하여 남(南)씨 성을 내리고 영의공(英毅公)에 봉했다....
-
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당과 영정을 둔 조선 후기의 무신. 이만유(李萬囿)[1684~1750]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영조 때 경상 좌수사(慶尙左水使)를 지냈고, 1728년(영조 4)에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반란군을 평정하였다. 이만유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숙함(淑咸), 호는 사상당(四尙堂)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5대손이다...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 한원사에 보관된 조선 후기의 무신 이만유가 남긴 유물. 이만유(李萬維)[1684~1750]는 조선 숙종·영조 때 인물로 1719년(숙종 45)에 무과에 급제해 도문무사 자헌 지중추부사, 양성, 낙안 등 현감, 경상도 좌수사, 의주 부윤,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고려 후기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5대 손으로 본관은 한산(...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효자. 이성규(李聖規)[1678~?]는 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한 효자이다. 이성규의 효성은 아들 형제에게로 계승되어, 3부자가 모두 효자 정려를 받았다. 이성규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성규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이웃 마을에 잔치가 있으면 과일과 고기를 가슴에 품고 와서 부모에게 드렸다. 이성규가...
-
충청남도 당진시에 충신 정려가 있는 조선 시대 무신. 이시경(李蓍慶)[?~1597]은 정유재란 때 군공을 세웠으나 전사하였다. 1792년 정조 때 충신 정려를 내렸는데, 현재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에 있다. 이시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약산(藥山)이다.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李陽元)의 셋째 아들이다. 이시경은 진사과에 급제한 뒤...
-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시경의 정려. 이시경(李蓍慶)[?~1597]의 충신 정려는 약산사(藥山詞) 또는 세마 별묘(洗馬別廟)라 부른다. 이시경은 조선 후기 영의정 이양원의 아들로 정유재란 때 군공을 세웠으나 불행히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1792년에 충신 정려를 내렸다. 이시경 충신 정려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문헌로 303-1...
-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안눌(李安訥)[1571~1637]은 학문이 뛰어났고, 청렴한 관직 생활로 명성이 높았던 청백리였다. 이안눌의 학문은 조선 후기 동악 시단(東岳詩壇)을 구축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관직은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현재 당진시에 거주하는 덕수 이씨 후손들은 묘소와 신도비를 관리하며 이안눌의 공덕을...
-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안눌의 신도비. 이안눌(李安訥)[1571~1637)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이다. 좌의정 이행(李荇)의 증손자다. 아버지 진사공 이형(李炯)과 어머니 경주 이씨의 셋째 아들로 서울 서리(西里)에서 태어났다. 이안눌은 1599년(선조 32) 정시(庭試)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
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장여일의 효자 정려. 1801년(순조 원년) 순천 장씨 장여일(張汝一)[163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장여일은 평소 효행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한겨울에 오이가 먹고 싶다고 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깊은 산 계곡을 헤메다 오이를 발견하여 어머니에게 드려 병이 낫게 하였다고 한다....
-
이한이 시조이고 이유연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는 가장 번성한 성씨 중의 하나로, 당진 지역 많은 곳에서 세거지를 형성하면서 거주하고 있다. 당진시 송악읍 봉교리에 집성촌을 형성한 전주이씨는 덕천군파(德泉君派)다. 입향조 이유연(李有然)[1583~1659]의 후손들이 봉교리의 봉하제(鳳下齊)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였다...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조선 후기 윤협의 아내 전주최씨의 열녀문. 전주최씨(全州崔氏)[?~1836]는 어머니가 위독할 때 손가락을 찢어 피를 먹임으로써 소생시킨 효녀였고, 합덕읍 도곡리 윤협(尹挾)에게 시집가서는 병약한 남편을 회복시키고자 허벅지 살을 베어 달여 먹였다. 하지만 1836년(헌종 2년) 남편이 결국 사망하자 자결하여 남편의 뒤를 따른 열녀...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있는 차천로를 배향하는 사당.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당진지 대호지면 적서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세우고, 조선 선조 때의 대문장가였던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하여 학문과 사상을 기리고 있다. 문원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번지...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도곡리에 있는 창녕성씨의 효부문 창녕성씨 효부문(昌寧成氏孝婦門)은 윤정호의 부인 창녕성씨(昌寧成氏)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부문이다. 창녕성씨는 문용공 석용의 후손 성의환의 딸로서 윤진태의 아들인 윤정호의 아내가 되었다. 창녕성씨는 윤씨 가문에 출가한 후로 정성을 다해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과 화목하게 지냈다. 가난하였으나 가정에 불...
-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채운교 건립 기념비. 채운포 석교비는 1688년(숙종 14년) 당진의 채운포에 세워진 비석이다.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심지에서 서쪽에 있는 당진시 석문면과 고대면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역천(驛川)이라는 개울을 건너야 한다. 그 포구가 채운포이다. 석교비는 이곳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유물이다. 채운포 석교비는 1...
-
심홍부가 시조이고 심봉채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청송심씨는 고려 시대의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는 16세 심봉채(沈鳳彩)[1678~1750]가 낙향한 이래 300년 가까이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당진 지역의 청송심씨는 주로 송악읍 광명리·방계리·본당리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심씨 성의 연원...
-
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최유해(崔有海)[1588~1641]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광해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승정원 부승지까지 올랐다.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거주하는 후손들이의 최유해의 영정을 봉안한 묵수 영당(黙守影堂)을 세워 공덕을 기리고 있다. 최유해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대용(大容), 호는 묵수...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효열 3정려. 최흥우·김해김씨·순흥안씨 효열 3정려는 해주 최씨 최흥우(崔興佑)의 효행(孝行)과 부인인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열행(孝行), 그리고 최흥우의 제수인 동생 최흥달(崔興達)의 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열행(烈行)을 기리고 있다. 최흥우는 우애가 깊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에는 밤낮을...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 있는 남유, 남이흥 양세충신 사적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73-54[도이리 373-1]에 있는 불천위 사당(不遷位祠堂)인 충장사(忠壯祠)는 남이흥 장군의 위패 신주가 모셔진 사당이다. 충장사는 1667년(현종 8)에 세워진 건물이나 오랜 세월로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1968년 내부 공사를 하였다. 사당 주위는 담장으로...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있는 평산신씨의 열녀문. 평산신씨(平山申氏)[?~?]는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기경(朴基敬)의 부인이다. 부부는 조선 후기 정조 때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살았다. 평산신씨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효심이 뛰어났으며, 시집간 후에도 남편을 하늘같이 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박기경이 갑자기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평산 신...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상오리에 있는 고엽의 아내 한산이씨의 열녀문.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본당리에 살던 한산이씨(韓山李氏)[1820~1841]는 인근 마을인 신평면 상오리에 사는 고엽과 혼인하였다. 하지만 혼인한 지 불과 2년 만에 고엽이 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달여 먹임으로써 소생시켰다. 3년 후 고엽이 결국 사망하자 한산이씨...
-
조지수가 시조이고 조구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시조는 조지수(趙之壽)이며, 고려 시대 문벌을 형성했던 가문이다. 조선 시대에도 명문으로 자리 잡았던 한양조씨 일문 중, 평촌파 조구(趙球)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낙향하였다. 그 후 조구의 손자인 조징(趙澄)은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이거하여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이...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있는 한양조씨의 열녀문. 『밀양 박씨 열행기』에 따르면, 한양조씨(漢陽趙氏)[?~?]는 박내정(朴來貞)의 부인이다. 부부는 19세기 순조 때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 기시미 마을에 살았다. 한양조씨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이 병이 들어 사망하였다. 얼마 후 한양조씨도 병을 얻어 친정에서 치료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금곡리 한음 영당에 모신 조선 후기 문신 이덕형의 영정. 한음선생 영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초상화로, 현재 ‘한음 영당’에 보존되어 있다. 한음선생 영정은 1590년경에 당시의 궁중 화가 이신흠(李信欽)이 처음 그렸다. 한음의 9대 종손 이의익(李宜翼)이 1860년대에 당시의 궁중 화가...
-
충청남도 당진시와 관련된 지역이 그려진 조선 후기의 전국 336개 고을을 그린 군현 지도책.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는 20리를 가로 세로 4.1㎝의 방안으로 그리고, 그 위에 지도를 그린 경위선 표식 지도이다. 3책 충청도 중 당진시 지역과 관련된 채색 필사본 '홍주' 편 지도, '당진-해미' 편 지도, '면천-덕산' 편 지도가 있다. 보물 제1593호로...
-
충청남도 당진시의 옛 지명인 당진현이 포함된 회화식 지도첩. 1750년대(영조 연간)에 작성된 도별 읍지를 모은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제작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 8책 중 제2책에 「당진현 지도」와 「면천현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35.7㎝, 세로 47.0㎝이며, 총 8책의 채색 필사본이다. 지도의 위쪽이 동쪽인 동상 방위(東上方位)의 지도...
-
최온이 시조이고 최순형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해주최씨(海州崔氏)의 시조는 최온(崔溫)이고, 당진 입향조는 16세기 인물인 계공랑(啓功郞) 최순형(崔順亨)이다. 최순형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세거지를 형성해 400여 년을 이어 오고 있다. 후손들은 해동공자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984~1068]의 영정을 모신 ‘...
-
충청남도 당진시의 옛 모습을 담은 조선 시대 지도첩. 충청도 전도 2매와 충청도의 대축척 고을 지도 68매를 6첩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제1·2·5첩에는 1리 간격의 눈금선[方眼]을 그어 정확하게 그리려고 노력한 고을 지도 41매가, 제3첩에는 20리 간격의 눈금선을 그은 충청도 전도 1매가 수록되어 있다. 제4·6첩에는 27매의 그림식 고을 지도와 충청도...